그는 “지나간 세계” 라는 시를 쓰고 또 동명의 술집에서 형수라는 친구와 함께 산다. 대학생 무렵에는 운동권에 몸담았다. 운동권 학생들이 마음에 안들었던 한 교수는 역사 시험에서 시험지에 이름만 쓰면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시험을 받아들일 때 그는 부끄러움을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일”에 그는 동조하지 않고 시험지에는 이름과 함께 시를 썼다. 이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점심을 안먹고 점심 식대를 월급에서 제하지 않는 그에게 누군가 “몰래 점심을 먹을 수도 있지 않냐”라는 의심을 하자 그는 다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매일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확인 서명을 받았다. 일정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상사는 그가 나태하게 일한다는 의심을 했고 그는 다시 그 의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매 시간 조카뻘되는 동료에게 찾아가 나태하게 일하지 않았다는 확인 서명을 받았다. 왼손 약지가 두 마디 정도 없던 그의 삶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한지를 찾는 것이 편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한 대가였다.
신념 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 어쩐지 고리타분한 냄새가 난다. 돈이 신념이 되버린 시대다. 내게 이득이 되도록 우리는 무수히도 부끄러운 순간들을 눈감아왔다. 신념 같은 것들은 국어사전 속에나 존재했고, 이득을 위해 어느 선까지 부끄러울 수 있는가를 저울질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전부 부끄러움 앞에서 발가벗은 것처럼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