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Reminiscence S#4 - 에우로페는 기차를
장*혁A [Homepage] 2008-06-09 16:15:13, 조회: 151, 추천:0
1.
미국 비자신청에서 결국 물을 먹었다. 두번째다. 아버지가 영주권 신청이 되어있어서 잘나신
'비자 면접관'님들 눈에는 '아들 먼저 입국시키고, 영주권 나오면 가족이 모두 들어가 살려고한다'로
밖에 보이지 않나보다. 이런 젠장.
4년전 Virginia State의 그 이름높다는 st.Louise High School의 입학 허가가 났을때도,
대학 입학후 학과의 교환학생 신청이 접수되었을때도,
내 미국행의 발목을 잡은것은 영주권 신청이었다.
가족초청이라는 미명하에 시민권을 가진 숙부의 선도로 우리 가족은 모두 영주권 신청이 나있더랬다.
왈가왈부 해봐야 돌아오는건 비자거부의 빨간 스탬프.
준비했던 여비는 허공에 흩어질까, 뱃속으로 들어갈까 갈등하던차에,
서울의 7월은 유래없이 더웠고 짜증이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나는...바람이 되었다~는 아니고 질러버렸다.
7월 21일 인천발 홍콩 경유 런던도착 Cathy Pacific의 항공권을.
스무살의 여름, 그렇게 난 한국을 뜨긴했다.
2.
이게, 지르고 나니까 뭔가 심각해졌다는걸 깨달았다. 아! 티켓만 있다고 되는게 아니지.
명색이 배낭여행인데 배낭도 챙겨야 했고, 남들 다 한다는 캐리어는 안끌어도 옷가방은 있어야하니
고등학교때 쓰던 루x스 사이드 백에 옷을 바리바리 챙겨넣었다. 아! 고추장. 에이 무겁게 그런걸
왜 챙겨. 라면? 가서 사먹지 뭐. 가이드북? 티켓사니까 주더라. 디카는 챙겨야겠고, 사진을 담을
메모리도 필요한데.. 그건 mp3로 대체하고. 일기적은 작은 수첩, 로밍은 안되지만 카메라가 있으니
핸드폰도 챙기고. 유럽엔 비도 자주 온다니까 우산도 챙기고.
백팩과 사이드백을 싸는데는 시간이 좀 걸리긴했지만, 영락없는 문자그대로의 '배낭여행객'으로
거듭나는데는 하루라는 시간으론 충분했다.
옷가지랑 생필품과 정신줄만 잡고 출발 준비 끝.
인천공항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함께 출발한 2명의 아낙들을 만났다.
스무살의 유럽배낭여행객은 아주 희귀한 '직업'이라 그녀들은 나를 아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각각 스물셋, 스물넷. 이제 막 대학 졸업반에 S기업 반도체에 취직한 인턴들이란다.
우수요원이라 미리 뽑혔다나 뭐라나. 인턴쉽에서 친해져, 입사후에는 도저히 시간이 없을것 같아
이렇게 유럽으로 가볼예정이라니 역시 사람은 대기업에 취직하고 봐야겠다는 생각만 한가득.
게다가 여비는 면접 볼때 받은 품위유지비로 간덴다. 좋구나 정말.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 오를때 까지 우리는 유럽에서의 황홀한 23일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3.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내려앉은 순간부터 희망찬 23일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켈베로스가 지키고
선 지옥문이 열렸다.
빌어먹을 Strike. 손민한이 상대팀 타자의 무릎에 걸쳐서 꽂아넣은 150km 강속구도 아니고,
무슨 지하철이 파업을 하냐말이다. 개념없는 우리네 지하철 노조도 운행량을 줄일 뿐인 판인데
지하철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이런일이.
너무 선진국이라서 파업도 선진적으로 하나보다 같은 시덥잖은 농을 시시 껄렁하게 나누다가 pick up
나온 민박집의 밴에 승차했다.
하늘이 도우신 결과라고 지껄이는 스물네살 아가씨의 넋나간 헛소리는 귓등으로 넘겨버리고,
상대적으로 예뻣던 스물셋의 누님과 화기애애한 수다를 떨었다.
보통 유럽의 유스호스텔은 혼숙을 하고 있지만, 한인 민박이 있는 대도시에서는 당연하게도 남자방과
여자방을 따로 쓴다. 마치 국방부가 30인 정도의 침상에서 8인실 침대형 구조로 생활반을 바꾸길
예견이라도 하듯, 2층 침대만 들어선 8인실에서 유럽에서의 첫날밤을 넘겼다.
미리 말해두지만, 혼숙을 언급했다시피 소도시에선 그녀들과 같은 방을 썻다. 4인실에서.
딱히 여러분들이 원하는 일은 없었다. 아쉽겠지만.
4.
아무래도 유럽여행의 백미는 기차다. 300km를 넘어제끼는 테제베(TGV)형도 이쪽 동내 출신이고
그 빛깔 찬란한 EuroStar도 이쪽 출신이다. 게다가 그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그득한 야간열차라면야
말 다했지.
간단히 23일간 사용해본 경험담으로 유럽의 야간열차를 설명하자면 그 종류도 다양하다.
야간열차는 초호화 1인실 침대칸부터 2,3,4인실 침대칸은 물론이고 6인실 객차도 있다.
그대가 돈이 있다면 3인실 침대칸을 추천하는 바이지만, 가난한 대학생 여행객에게 선택의 여지란
대부분 6인실 '쿠셋'되겠다. Day타임에는 3명씩 마주보는 객차로, Night타임에는 의자를 붙여 불편한
6인실 침대칸으로 변신한다. 이마저도 배낭여행 기간엔 예약하지 않으면 하늘의 별따기다.
스위스 바젤에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가는 도중 사용해 봤는데, 이게 말이 쉬워 6명실이지 크기는
4인실 정도라서, 의자를 당겨 누우면 상대방 허리춤에 내 발이 가있다. 은근히 찝찝하다.
게다가 서양아이들은 노린내, 혹은 암내가 심하다. 미쳐버릴정도로. 이정도로만 하자. 기억이 살아나
코가 막히려고 한다.
티켓을 못구하면 우리가 익히 볼수 있는 일반 열차에서 의자가 160도 정도 기울어지는 아.주.불.편.한
야간열차를 타야한다. 괴롭다. 이걸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삭신이 뻐근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독일의 뮌헨까지.. 10시에 출발해 새벽 6시까지 8시간동안 12번은 더 깼다. 불편해서.
저마저도 구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등급이 올라간다. 3인실의 가격은 쿠셋의 두배다.
3층 침대가 벽한 쪽에 붙어있고, 그 침대의 위아래 폭은 가히 압박이다. 덜컹! 하고 열차가 흔들리면
윗층사람 엉덩이에 얼굴을 박을 지도 모를정도다.
-해군 전투함 출신들은 그 압박을 공감하리라 생각해 마지 않는다. 참고로 본인도 해군이다.-
3인실은 쿠셋에 비하면 천국이다. 무려 문도 잠궈지고 영화에서마냥 패스포트를 차장에게 맡기면
알아서 국경도 pass다. 뮌헨에서 체코 프라하로 들어가면서 3인실 차량에 몸을 뉘었었다.
-하지만 체코로 들어갈때는 Eurailpass가 통용되지 않아서, 새벽 2시에 차장이 국경넘는다고
깨워서 본인대조 확인까지했다-
2인실과 특실은..안타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안타본걸 어떻해.
5.
그런고로(뭐가?) 이번 회상은 단상으로 뮌헨에서 프라하로 들어갈 때의 일이더라.
멋도 모르고 Eurailpass를 스타트 하는 브뤼셀의 중앙역에서 나와 누님-정확히는 누님들-은 4번의
야간열차를 모두 예매해버렸다. 배낭여행 시기의 야간열차는 언제나 만원이라는 말에, 수첩에다가
짧은 영어로
NightTrain. Bed Cell. 6 쿠셋(스펠이 기억이 안난다). How much?
라고 적어서 냅다 매표원에게 들이밀었다. 뭐,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부끄럽긴 해도 의사소통은
다 되더라. 거 왜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패널아가씨들도 우리말 단어만 우물쭈물해도 우리는
다 알아먹지 않나? 그거랑 같은거다.
여행초기고 해서 돈이 있을때 예매하려고 했는데, 그게 또 쉬운법이 아니지. 위에서 말했듯이 자리가
없는 구간이 많아서 프라하로 들어가는 열차는 3인실. 베네치아에 들어가는 열차는 6인실. 스위스의
인터라켄으로 들어가는 열차는 6인실 침대차(3인실 침대차*2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일 뮌헨행 열차는
일반 야간열차로 끊어졌다.
-여행지의 시간적 순서는 엉망이므로 참고하지 말것-
사실 말이 좋아 대기업이지 누나도 썩 회화에 능통하진 않아서, 어렵사리 몸통언어로 티켓팅을 끝냈다.
중간 과정 및 여행지는 죄다 생략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불타오르는(?) 여행담은 없다.
6.
뮌헨 여행은 각자 가고 싶은대로 갔다가 야간열차를 타기위해 뮌헨 중앙역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자기 몸통만한 캐리어를 끌고 오는 누나가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슴넷 짜리 누나는
어디다 버리고 온건지 혼자 오는거다.
사연인즉슨,
"언니가 일본에서 온 놈하고 눈맞아서 유로라인-유럽전역에 있는 고속버스-편으로 프라하에 먼저
들어가 버렸어"
그렇다. 눈맞았단다. 이전 여행지에서 말로만 듣던, 배낭여행에서 눈맞는 것들이 내 옆에서도
일어나 버렸다. 배가 조금 아프긴했지만, 그래도 이건 기회가 아닌가!!
누나와 둘이서 3인실 침대칸(!)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다니.
그래.
이건 하늘이 준 기회야.
20년 내인생에도 드디어 꽃이 피는구나.
등등.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리속에서 접영(?)하기 시작했다.
일단 3인실의 첫 감상은, 아늑하지도, 편해보이지도 않았다.
딱! 정말 딱 3.3 제곱미터의 크기의 격실에 선반 하나, 거울 하나, 벽에 매달린 침대 3개.
이건 타오르는 청춘들을 위한 방이 아니다. 보자마자 내가 내린 결론이다.
당연히 용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시설이겠지. 이건 뭐, 이미 그땐 한마리 타오르는 스무살의
늑대와 다름없었으니 실망감은 뻗쳐나와 이미 프라하에 도착해있었다.
"와.. 완전 귀여워!"
를 연발하면서 그 좁은방 어디를 그렇게 찍을게 있다고 셔터를 눌러대는지.
그녀의 비명(?)은 테이블에 놓여진 조그만 생수팩 3개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거 좀 들어봐! 아니~ 눈높이로!"
그날 난.. 누나가 아니라 생수팩과 10컷이 넘는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7.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피로감이 몰려오자, 자기엔 이른시간임에도 우리는 취침준비를 끝냈다.
역에서 사온 맥주 4병을 사이좋게 나눠마시고-독일에서 맥주와 소시지가 아니면 무얼 먹으리, 참고로
이탈리아에서는 피자만 사먹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소시지를 하나씩 물고 자리에 누웠다.
이게 바로 야간열차의 묘미아니겠는가!!
(양치질 같은건 이미 저하늘에 날려먹은지 오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새벽 1시를 넘어갔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우리문 앞에서 멈췄다.
위층에 누워있던 내가 아래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빛을 교환한다. 설마...
이탈리아에서는 야간열차 문을 따고 돈을 훔쳐간다던데, 칼도 들고 있다던데, 체코도 아직 그런쪽으로는
선도되지 않아서 이거 위험한거아냐?
5초동안 우리가 교감한 내용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누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니 교감이 맞는거다.
"Excuse me~. plz open door."
"Wait plz"
걸쇠를 걸고 눈만 빼꼼이 보이며 여권을 내밀었더니, 문을 다 열어란다.
"솰라솰라솰라. 솰라솰라."
"????"
"솰라 솰라! 솰라솰라."
일단 영어가 아니다. 젠장. 파스(face)니 피플이니 하는 말이 들리니 얼굴 확인을 사람수대로 해야
한다는 말 같다.
걸쇠를 풀고 누나와 얼굴을 확인 한 후, 자리에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긴장했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열차는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나의 카메라질은 여기서도
발휘되어서, 내리기 직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침대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그나마 이 사진들은 잘나왔다. 흠흠.
8.
두서 없는 이야기다. 기차가 주제도 아니요, 그렇다고 유럽여행기가 중심도 아니다.
그냥 머리속에 떠오르는 걸 휘갈겨 쓴 글자의 집합체이다.
사실... 처음 쓸때는 유럽 배낭여행에 대한 글이었다가 중간에 야간열차로 넘어가더니, 종국엔
의미없는 회상으로 마무리 되어버렸다.
처음 도입부를 적다가 환송행사가 있어서 잠시 버로우타고 왔더니, 머리속이 새하얘졌다는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게다가 행사하는 동안 방에서 '도쿄 여우비' 재방송을 보다가 일본여행도
가고 싶다고 느낀건 보너스. 김사랑이 참 예쁘더라.
이렇다. 에필로그도 마구 흐트러 지고 있다.
일관성 있는 흐트러짐이라도(?) 일관성으로 보였다면 이 글은 성공한거 같다.
그렇다면 덧글을 남기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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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편의상 반말로 해서 죄송합니다. 쿨럭. 용서해주세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41:53
홍*기B
잘 읽었습니다. 첫 해외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오시다니 부럽네요. 저는 제 예전 신분(?) 의 특성상 미국만 줄창 가고 일본, 캐나다만 한번씩 갔었습니다. 유럽 가고 싶었는데 비행기값의 압박으로 인해 못갔다는...(땀땀)
미국 대사관 정말 짜증나죠. 딱 두 번 가봤는데 두번 다시 가기 싫네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엔 8시에 가도 족히 40분은 기다려야 하는 인파의 압박(?) 도 싫었고, 한없이 비굴해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싫었어요. (퇴짜맞고 싹싹 비는 어떤 분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2008-06-09
16:41:21
김*B
저도 베낭여행은 한번도..
해외는 몇번 가봤지만요. 2008-06-09
18:51:11
이*석C
여담이지만,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
나온 지하철 파업에 관한 눈물나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
지하철 파업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시민들은
"우리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로 닥칠것"이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한다.
이건 아무리 우리 홍세화씨라도 구라가 좀 심하다 싶어 국제학부에 난입해 제가 아는 몇 안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눈 푸런 친구들은 하나같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이런 사회주의자들 같으니
전 그래서 공화당을 지지한다던 미국인 여성에게 다가가 쟤들 빨갱이 같지 않냐고 물으니
오히려 저를 안쓰럽게 쳐다봅니다.
공산당이었나 봅니다. 2008-06-10
15:48:32
김*B
푸하하하하 2008-06-10
17:5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