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Reminiscence S#1 St. Valentein  
장*혁A  [Homepage]  2008-05-15 07:45:52, 조회: 382, 추천:0 

reminiscence.
S#1. St. Valentein

때는 바야흐로 2004년. 2월 14일.

왜 하필 그 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부 동문여고인 S여고에서 방송제가 열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문 학교인 관계로 2월 10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남성불가침-정확히는 남학생불가침인- 여고에 들락날락 거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즐거운 일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하긴. 여느 남학교와 다름없는 검푸른색 계통의 상의와, 진회색 바지를 입고 S여고 오르막을 올라 갈때면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으로 받긴했으니까. 묘령의 여고생들에게 있는 묘한 남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 이제 막 신입생 티를 벗은 2학년 녀석들과 내 동기놈들까지 6명의 남학생들이, 우르르 때를 지어 올라가면 전교생의 시선은 우리를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위아저씨와 방송부 고문 선생님에게는 허가를 받은 일이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입고 있는 교복은 시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중 하나니까.

"니놈들은 자부심을 가져야돼. 고교 평준화 전 한강 이남 최고의 명문이야 임마!!"

..그렇다..
입만 열면 저 말을 해주시는, 25년 학교 선배이시자-당연히 이분은 고교 평준화전 세대다- 현재 모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계시는 하모 선생님이시다. 뭐, 대통령도 나왔고 당시, 그러니까 04년도에 현역 국회의원의 45%가 나의 모교 출신이니 말은 다 했다. (이게 자랑인지 아닌지는, 이제와서 판단해보면 부끄럽긴 하다)
진짜 자랑은 프로야구 롯데의 이대호 선수가 선배라는거? 그외에 다수의 야구선수들이 있지만..


자랑 같지도 않은 학교 이야기때문에 옆으로 새버렸다. 
각설하고,여하튼 그렇게 금단의 성지로 발을 들이밀고는 어김없이 방송실을 찾았다. 3일째 찾아와서 방송장비 세팅을 도와주고, 방송제가 있을 소강당의 창문에 빛을 막는 작업을 해주고 있는 우리를 반겨 주는건 역시나 한해 밑 후배들. 남학교나 남녀공학보다 까칠한 여고 방송부에서, 넷이나 있던 동기중 다 탈퇴하고 한명밖에 남지 않은 Y양은 시나리오를 체크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우리는 평소 하던대로 분업에 나섰다. 엔지니어인 내 동기 두녀석은 엠프와 콘솔을 세팅하러 갔고, 기술적으로는 하릴없는 아나운서 출신의 나와 후배 셋, Y양, K양은 무대 세팅을 마무리 하러 강당으로 향했다.

평소에 나와 친한 Y양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고, 과묵한 K양은 조용히 혼자 할일을 계속했다. 내 후배 1과 2는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이서 웃고 떠들며 창문에 박스를 붙이고 있었다.

"선배? 선배는 작년에 초콜렛 받았어요?"

Y양이 몇일 후에 있을, 여고시절 남길수 있는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발렌타인에 대해 물어왔다. 

"Y야! 니가 주는 초콜렛 받는 사람이 있디?"
"뭔소리야!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후배1이 Y에게 농을 건다. 예전부터 Y가 좋다고 방송실에서 난리를 친 후배1이다.
물론 저렇게 시비를 거는 저의를 알고 있는 나와 후배2는 속으로 박장대소 할 수 밖에.

짜식. 어지간히 받고 싶나 보구나.

여전히 K양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 계속해서 테이프 질을 하고 있다.

"난 이제 껏 받은 적 없어."
"엑? 정말요? 선배는 우리 학교랑 동문이었고 또 J선배랑 사귀는거 아니었나요?"
"J랑? 얘가 또 아픈기억을..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지난 달에 탈퇴한 내 동기인 J의 이름이 나왔다. 
어이어이 후배님. 저는 J에게 퇴짜 맞은 인간입니다. 개뿔 초콜렛은 무슨..

뭐, 슬픈 현실이지만 여지껏 열아홉이 되어가는, 짧다면 짧은 인생 동안 Love 초콜렛은 받은 역사가 없다. 우정초코니 가족초코니 하는건 Base에 깔아두더라도, 이건 뭐 발렌타인과는 인연이 없으니...

"어이어이, 후배1. 피식거리지 말고 저기나 마저 붙여! 빛이 보이잖아."
"괜히 그러네요. 선배 퇴짜 맞은거 우린 다 알고 있었다구요."
"망할놈. 닥치고 일이나 해."

그렇게 그날도 버스가 끊기기 전까지 일을 하고는 헤어졌다.



St. Valentein's Day

사실.. 몇 없는 인원으로 진행된 방송제는, 그저 그랬다. 단편 드라마도 없었고 막연한 따라 하기 식의 개그 몇가지. 뭐, 영화의 편린을 모아서 만든 뮤직비디오는 꽤나 호응이 좋았지만, 5명도 안되는 인원이 만들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우리야 기술력만 도와준 거고...그나마 뒷풀이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우리 학교 선배들과 S여고 선배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즐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복이었기 때문에 알콜은 무리였고(게다가 전반적으로 다들 술을 좋아하진 않았다, 고등학생들이 가지는 막연한 술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고기집에서 배에 기름칠 좀 한뒤 필수 코스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근 두달을 압박해온 방송제가 끝났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여고생들은 체면도 버리고 즐기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도 지르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마음껏 따라부르고.

그렇게 또 두시간. 노래방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선배들이 맥주를 사와서 바닷가로 갈지 의견을 조율하는 동안 갑자기 Y양이 내 등을 건드린다.

"선배! 저 노래방에 짐 놔두고 온거 같아요! 같이 좀 가주세요."
"칠칠맞게 왜 흘리고 다녀. 어서 갔다와."
"그러지 말고 같이 가주세요."

10초 도 안되는 사이 이미 일행들은 큰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나와 Y와 후배1만이 노래방 앞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나야 Y가 부탁아닌 부탁을 받아서 그러고 있었지만 후배1은 관심이 지대한 Y양이 안가고 있으니 남았으리라. 게다가 후배1은 Y양이 뒷풀이 내내 애지중지 관심을 기울인 '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리도 없었고. 혹여나 녀석은 그것이 자신에게 올 초콜렛이라 생각했는지 모를일이다.

"아 정말. 후배1이랑 같이 들어갔다 와. 난 애들 따라가 있을께."
"네. 알겠어요. 선배 치사해요"
"아~ 몰라몰라. 어이. 어서 같이 갔다와라."
"네 선배!"

후배1만 싱글벙글이다.
심통난 얼굴로 두사람이 내려간 노래방 계단에서 시선을 돌려 나도 큰길가로 따라나왔다. 잠깐 사이 중론은 '맥주 한캔과 바닷가'로 흘러있었고, 피곤해진 나는 먼저 집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길 건너에서 집쪽으로 가는 심야 버스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배들과 인사를 끝내고 서둘러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로 올라갔다. 

"선배~ 잠시만요~"

놀래라. 차도 없이 한산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자는 사람까지 깰 큰 소리로 Y양이 달려오고 있었다. 길 건너편 육교 아래에서 헤어진 일행들이 잠시 쳐다보았지만 이내 금새 다시 걸어가고있다.

군청색의 교복을 입은 Y가 달려온다. 방금까지 한가닥으로 묶고 있던 머리는 언제 풀었는지 바람에 날려서 꽤나 로맨틱해보이길 원했지만, 어디 현실이 그리 만만한가. 2월의 차가운 바람에 볼만 빨게져서 마치 촌병에 걸린 아이마냥 달아올랐는데. 

"야, 너 갑자기 머리는 풀고 난리냐. 추워죽겠는데 왜 불러! 나 버스 타야돼!"
"5분만요! 5분이면 되요!"

그러고 보니 가방도 어디 던져놓고 왔나보다. 손에는 아까 놔두고 왔다는 '짐'이 보인다. 이거 참. 저차 막찬데. 저거 놓치면 택시타야 하는데...

"왜그래."
"이거요!! 받아주세요!!"
"어? 어. 그래. 주니까 받는다만.."
"그럼 저 먼저 갈께요!"

1분도 안걸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다시 육교를 건너간다. 육교 중간즘에서 손흔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앉아서 '짐'을 열었더니 보이는건 동그란 종이상자. 

설마.. 설마..



다음주 월요일 방송실에선 난리가 났다. 

Y양 충격! 발렌타인 초코로 어택?

이라고 방송실 알림판에 대문짝만하게 적어놨다. 물론 그걸 적어놓은 후배2는 그날 숙제로 방송 멘트 3일치를 받았다.

그 후로 동기들과 후배놈들의 주도로 YJ 커플만들기가 2주정도 붐이었긴했는데, 고3이 다가오고 입시니, 논술이니 하는 핑계로 Y를 밀어내기 급급했을 뿐이다.

지금에야 솔직히 말하지만 Y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땐 여자친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시기였으니까. Y에게는 어떠한 답변도 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내 사촌동생도 아는 진리를...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를 선택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게 지금은 아쉽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느낀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선택하는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도...


어제 문득 500원짜리 초콜렛을 사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때 돌아서는 Y의 손을 잡고 그녀의 집으로 함께 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p.s 지금 Y양은..대학가더니 아주 예뻐졌어요..허허 후회할 정도로 말이죠.
이래서 10대에 남자가 해야할 중요한 일중에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동생을 만들어 두라, 5년 안에 그녀는 당신이 말도 붙일수 없을만큼 아름다워져 있을테니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41:00 

 

전*석 
  안타까울뿐입니다. 2008-05-15
08:39:16
  

 

강*준 
  10대에 남자가 해야할 중요한 일이라...그런일이 있군요 2008-05-15
08:40:53
  

 

조*환B 
  이거 괜시리 설레는 걸요??(웃음) 2008-05-15
10:49:02
  

 

박*걸A 
  하지만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들 20대라는게 문제겠죠... 

갑자기 울컥하네(울음) 2008-05-15
11:32:00
  

 

병장 문 혁 
  친구가 있던 휘문고같은데요?(웃음) 2008-05-15
13:05:24
  

 

장*혁A 
  덜덜..부산입니다.. 
이대호의 연고지 센스? 2008-05-15
13:44:49
  

 

남*윤 
  S고라면 서여고 (?) 2008-05-15
16:09:46
  

 

장*혁A 
  희윤// 저희학교랑은 멀리 떨어진 학교랍니다. 신평쪽에 있는 S여고..허허.. 2008-05-15
16:27:26
  

 

고*구 
  삼성여고? 

제가 신평에 오래 살았었는데..S여고가 있었나요..??(땀땀) 2008-05-16
07:46:05
  

 

남*윤 
  으흠.. 그런가요 /땀땀/ 
삼성여고는 신평쪽이 아니지 않나요..? 
이거 갑자기 왠 학교 토론회가 된듯한.. 

그나저나 하선생님은 아직도 있군요..덜덜. 
수위아저씨도 계실라나?? 2008-05-16
08:22:46
  

 

고*구 
  아..성일여고!! 

그럼 재혁님은 D고 출신!?(웃음) 

D고에서 대통령이??(땀) 2008-05-16
09:24:11
  

 

병장 문 혁 
  아 부산이였군요... 2008-05-16
10:00:29
  

 

장*혁A 
  성구// K고인데요..경남고에요 경남고. 허허.. 
그리고 삼성여고는 괴정에서 송도 넘어가는 사이에 있죠. 
정확한 동내 이름이.... 2008-05-16
11:13:28
  

 

이*훈D 
  결국 인맥, 2008-05-16
13:42:40
  

 

이*형B 
  회상은 보통 리멤버나 리콜렉션만 알고 있어서 무슨 단어인가 찾아봤습니다(웃음)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10대때 그런 일을 해야 하는거군요. 
처음 듣지만 왠지 크게 와닿는 문장인데요! 2008-05-16
14:31:04
  

 

이*석C 
  울컥. 흐흐. 2008-06-20
15:3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