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키워드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탄생하고 유행한다. 2000년대 언젠가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웰빙"의 시대가 있었다. “그린라이트"라는 표현이 유행하게 된 맥락에는 남녀 문제와 성 문제를 공개적인 영역에서 당당하기 논의하게 된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먹고살기 퍽퍽해진 시대에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튀어나오기도, 헬조선을 견디다 못해 “욜로"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뜻하는 신조어가 유행을 타기도 했다. 가상화폐와 코로나 발 유동성 파티가 벌어지던 시대를 맞아 “파이어족”, “경제적 자유” 같은 단어들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근래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다른 단어를 찾다보니 “손절"이 떠오른다. 손절은 원래 주식을 매입했으나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감수하고 매도하는 손절매라는 단어가 원형이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에는 사람간의 관계를 끊어내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용례를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하다.
친구를 손절하고, 여자친구를 손절하고, 부모를 손절한다.
가끔 온라인에서 고민 상담글을 종종 보곤 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못 돌려받고 있다, 남자 친구 핸드폰에서 전 여자친구 사진을 발견했다, 결혼을 앞두고 장인될 사람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 등등. 댓글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손절을 외친다.
손절하세요. 일찍 알게 되서 다행이네요. 그런 관계를 굳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유지할 필요가 있나요. 손절하세요.
바야흐로 그런 시대인 것 같다. 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 인격, 상식 수준은 모두 상향 평준화 되었고 흠결 사유가 발견되면 가차없이 아웃이다. 그 대상이 TV에 나오는 공인이던, 랜선 너머 익명의 누군가이던, 20년 지기 친구던 이해의 여지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점차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것을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씁쓸해하면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언을 한다. 의도와 본심은 상황에 따라 곡해된다. 하지만 충분히 무르익은 관계는 실수와 오해를 초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정말로 그러한지, 혹은 너그럽게 보면 그려려니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