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아파트 상가의 한 편의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한 노인분이 들어오셔서 갑자기 말을 걸었다.

“109동이 어딥니까?”

처음에는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몇 번을 되물었다. 하지만 곧 노인께서 찾으시는 게 아파트 단지 내 109동이란 걸 확인한 후에 지도 앱을 켜서 위치를 안내해드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다시 “109동이 어딥니까?” 하고 물으셨다. 좀 더 자세히 설명드려야 하나 싶어 고민하는데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109동이 우리 집인데 어딘지를 기억이 나질 않아요.”

심장이 덜컹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침 친구도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직접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롱패딩으로 꽁꽁 싸맨 제 외투와는 다르게 노인의 외투는 그다지 두꺼워보이지 않는 등산복 재킷이었다.

“한 시간을 헤맸어.”

그때 기온이 영하 5도였다. 두꺼운 롱패딩으로 둘둘 싸맨 나 마저도 추워서 편의점 안으로 대피해있던 참이었다. 노인께서 한 손에 쥐고 있던 등산용 스틱인지 지팡이 인지가 유난히 위태로워 보였다.

가족에게 연락을 드려야 하나 싶어 댁에 가족이 있으신지 여쭈었다.

“아내가 있었는데 작년에 갔어. 지금은 혼자 살아요.”

그리고는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가 씁쓸한 목소리로 다시 덧붙이셨다.

“109동이 우리 집인데 기억이 안나. 내 머리가 정말 이상한가봐.”

노인분의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로 연세가 88살이라고 하셨고, 이 아파트에는 2017년 1월 13일에 이사를 오셨다고 했다.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시는 걸 보니 기억력이 정말 좋으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조용히 웃으셨다.

자제분들에 대해 여쭈니 분당에서 살고 계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얼마전에 자식 분들이 점심 시간에 찾아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 괜찮냐"고 묻고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는 이야기를 했단다.

이윽고 109동에 도착했다. 노인께서는 고맙다며 몇 번이고 내게 악수를 청했다. 혹시 몇 호인지도 기억을 못하실까 싶어 들어가시는 것까지 보고 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괜찮다며 나를 돌려세우셨다. 다음 번에 또 헷갈리시면 아파트 입구의 관리사무소를 찾으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요 며칠 계속 그 때의 생각이 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잊어갈 때도 마지막까지 나를 기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런 나 자신마저 나를 잊어가는 일이 얼마나 암담하고 무서울 지, 또 얼마나 서럽고 외로울 지 감히 상상도 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