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영화를 보고 왔다. 이전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 미루면 상영관에서 내려갈 것 같아서 급히 동탄 메가박스까지 가서 보고 왔다.
사실 큰 감동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원작 만화를 즐겁게 읽긴 했지만, 그 시절 읽었던 수많은 만화 중 하나일 뿐이었다. 재매있긴 했지만 그 이상의 기억은 희미했다. 스토리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만화를 영화로 옮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메인 스토리를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기존 만화의 이야기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고,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산왕과의 경기로만 흘러간다. 대신 각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오버랩되어 나오는 구성이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각 인물들의 과거의 그들이 겪은 좌절, 그리고 이를 극복한 경험들이 모두 한데 침착되어 산왕전의 패스 하나, 슛 하나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매일의 작은 경험, 기억,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만의 개성과 역사를 구축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덩어리가 결국 미래의 항로를 결정해나간다. 이 관점에서 강백호의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 나는 지금입니다.” 라는 명대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전에는 “미래의 어떤 순간보다 지금이 중요하니, 바로 지금 모든 걸 쏟아붓겠다” 라는 의미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오늘의 경험과 승리를 쌓아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삶을 쟁취와 성취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상의 작은 승리들은 결코 소홀히 대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이기는 습관"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슬램덩크는 겉보기에는 단순히 스포츠 만화일지 모르지만, 깊어 들여다보면 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시련,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내는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그린 것이다. 정우성처럼 이미 완성된 천재라 할지라도 조그만 생채기가 나고 그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에서 더 강해진다. 송태섭 같은 노력파는 손바닥에 쓰여진 글씨를 읽는 습관을 통해 걱정을 지우고 여유로운 마음을 찾는 훈련을 통해 목표에 다가선다.
대부분의 삶은 어쩌면 땀에 흠뻑 젖은 채 코트 위를 달리는 열 명의 선수가 아니라, 벤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교체 선수, 혹은 응원을 보내는 아무개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삶의 특별한 순간은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주인공의 순간은 있다. 멀찍이서 삶의 항로를 뒤돌아봤을 때 유난히 빛나고 있는, 그래서 오늘날의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다. 그 기억들을 쉬이 잊게 된다면 나는 어쩌면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