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쌍팔년도"를 1988년을 칭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쌍팔년도"는 사실 단기 4288년, 즉 서기 1955년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서로 다른 기년법에서 비롯되는 오해인 셈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서기는 예수가 탄생했을 것을 추정한 해를 기원으로 하고, 단기는 단군이 고조선을 개국했다고 전해지는 해를 기원으로 하는 기년법이다. 이렇듯 우리가 자연스럽게 헤아리던 년도가 실은 특정 시점이 일어난 시기를 기점으로 세어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다보니 나이라는 것도 이러한 셈법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세어지는, 실은 어찌보면 기년법의 일종인 것이다.

서기 2020년이라는 숫자 외에 다른 숫자를 더 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올해는 인생 34년차이자, 아버지 1년차, 운전경력 4년차에 개발자 8년차이다. 대개 경력의 연차를 가지고 역량의 농익은 정도를 대략적으로 추정하곤 한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미천한 주니어인지, 혹은 어느정도 농익은 경륜을 기대할 수 있는 시니어인지를 우리는 대개 경험의 역사의 길고 짧음에 빗대어 추정하곤 한다. 채용 공고에 항상 사족처럼 붙어있는 “관련 분야 n년 이상” 이라는 조건들이 이러한 경향성을 뒷받침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면서 나는 인생 34년차 걸맞게 충분히 농익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이 연차에 어울리는 역량은 어떤 것일까. 나라는 개체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지, 또 충분한 정도의 지식과 상식과 경험들을 쌓아두었는지,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비전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다. 다소간의 반성과, 또 다소간의 위안 같은 것들을 책상 위에 흩뜨려 놓고 나는 나를 돌아본다.

그냥 살아지는 것만이 생生이 아님을 다시금 생각한다. 한낯 김치조차도 익힌 시간만큼의 깊은 맛을 낸다. 이제 막 맛을 내기 시작 하는 올해는 서기 2020년이자, 단기 4353년, 그리고 생生기 3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