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관련 글을 읽다 보면 ’taste’ 라는 단어가 자주 걸린다. 한국어로는 대개 ‘취향’이라고 옮기는데, 볼 때마다 조금 아쉽다. 취향이라고 하면 나는 자꾸 “아메리카노 보다는 다방 커피가 취향이야” 같은 문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오래 가는 개인의 선호, 남이 뭐라 하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쪽. 그런 말로는 AI 글에서 말하는 taste 가 잘 안 잡힌다.

이 taste 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래도 단순한 선호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읽어낸 의미에 더 가까운 한국어는 취향보다 안목이다. 취향은 좀 억지를 부려도 된다. 그냥 내가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거기에 굳이 논문 같은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안목은 조금 다르다. 뭘 고르는 데 자기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이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 목적이 다르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다르고, 지금 손에 쥔 시간이 다르면 좋은 선택도 달라진다. taste 라는 말이 자꾸 이쪽으로 읽힌다. 오래 쌓인 판단의 기준 같은 것. 그리고 그 기준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해진 답이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대개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답이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답 비슷한 선택지들이 몇 개 놓여 있고, 어느 것을 집어도 반드시 뭔가를 잃는다. A 를 고르면 B 를 얻지만 C 를 잃고, B 를 고르면 또 다른 것을 얻는 대신 엉뚱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완전무결한 정답 같은 건 없다.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덜 틀릴 것 같은 것, 혹은 조금 더 나아 보이는 것을 더듬어 고를 뿐이다.

물론 아무렇게나 찍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식도 있어야 하고 경험도 있어야 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지식과 경험이 쌓여 있다고 해서 매번 올바른 선택이 자동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으니까. 결국 어느 순간에는 계산이 아니라 감각에 기대게 된다. 지금 풀고 있는 문제, 우리가 가진 제약, 내가 속한 조직의 상태, 로드맵, 운영 환경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걸 교과서식으로 정렬하기도 전에 뭔가 이쪽이 낫겠다는 느낌이 먼저 올 때가 있다. 말로 풀어내려면 한참 걸리지만 손은 이미 그쪽을 가리키고 있는 상태. 나는 그런 게 taste 에서 나오는 직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AI 가 콘텐츠를 만들고 요약하는 일을 잘한다는 사실은 이제 딱히 놀랍지도 않다. 나도 하루에도 몇 번씩 도움을 받는다. 대충 던져도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고, 긴 글을 짧게 접고, 표준적인 패턴 안에서는 꽤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taste 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조금 멈칫하게 된다. AI 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는 식의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미 꽤 많은 것을 만들고 있으니까.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고르는 게 좋은지, 더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좋은 것으로 치고 싶은지의 문제로 들어가면 아직 사람이 끼어들 자리가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물론 taste 조차 AI 로 대체될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어떤 종류의 taste 는 이미 기계가 더 잘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여기를 이렇게 구성하면 데이터 흐름에 병목이 생길 것이다” 같은 감각은 사실 통계와 패턴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런 것은 기계가 사람보다 훨씬 촘촘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부르던 것 중 꽤 많은 부분이 사실은 반복해서 본 패턴의 압축본이었을 테고, 그런 싸움에서 기계가 강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우리 팀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으면 하는지, 우리 프로덕트가 어디까지 욕심을 내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같은 문제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이건 성능 좋은 추천 모델이 “이쪽이 효율적입니다"라고 말해준다고 해서 그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효율적인 선택이 꼭 좋은 선택도 아니고, 좋은 선택이라고 해서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결국에는 “나는 / 우리는 무엇을 원하나"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은 어쩐지 끝까지 사람 쪽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어려운 선택 앞에 서면 사람은 뭔가를 찾는다. 과거 사례를 뒤지고, 데이터를 보고, 주변 사람에게 묻고, 요즘 같으면 AI 에게도 물어본다. 조금 더 절박해지면 점집에 있는 선녀님에게도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웃긴 일인데, 그렇게까지 다 물어보고 나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골라야 한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는 한참 뒤에나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때 가서도 끝내 모를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taste 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이라기보다는 쌓이는 감각에 가깝다고 본다. 수많은 선택을 하고, 잘못 고른 뒤에 민망해하고, 어쩌다 잘 풀린 일을 나중에 복기하고, 그 과정이 몸에 조금씩 남는다.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종류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날이 갈리는 성질의 것. 물론 그 날이 늘 예리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엉뚱한 방향으로 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그 taste 라는 것은 사람마다 모양도 다르다. 딱딱한 구두를 신고 몇 달을 뛰어다니다 보면 밑창이 각자의 걸음걸이에 맞게 닳아간다. 누군가는 바깥쪽이 먼저 닳고, 누군가는 뒤꿈치가 이상하게 깎인다. taste 도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안정성 쪽으로 감각이 닳고, 어떤 사람은 속도 쪽으로 닳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먼저 본다. 어느 쪽이 더 고급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냥 그렇게 닳아온 것이다.

개발자가 다루는 세상은 비교적 친절한 편이다. 모든 데이터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고, 로직은 적어도 내가 작성한 만큼은 눈으로 읽을 수 있다. 버그가 나면 원인이 있을 것이고, 로그를 보고, 재현을 하고, 하나씩 좁혀가면 언젠가는 잡힌다는 믿음이 있다. 변수가 정해져 있고 인과가 비교적 선명한 닫힌 세계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발을 딛고 사는 곳은 그렇게 닫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직의 분위기, 사람의 감정, 시장의 타이밍, 말로 다 쓰기 어려운 찜찜함 같은 것들이 계속 끼어든다. 그런 곳에서 어느 순간 “이게 맞는 것 같다"는 감각에 기대야 할 때가 오면 나는 아직도 좀 부담스럽다. 나조차도 이 감각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아서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나. 열린 세계에서 닫힌 세계의 해답만 찾고 있을 수는 없으니, 결국 내가 닳아온 모양을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