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프레임을 만든다.

근래 몇 차례 면접관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감상이다. 이력서는 단순히 지원자의 이력을 요약한 문서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이력서는 면접의 방향과 구조를 사실상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면접관은 주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력서가 만들어놓은 프레임 내에서 질문하고 평가하기 십상이다. 특히 경력을 주요 검증 대상으로 삼는 경력직의 면접이 그렇다. 경력 면접이 가진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면접관은 인지 편향에 휩쓸리지 않는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다. 반대로 지원자도 이러한 구조적 편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적 대응을 하는 것이 영리한 전술일 것이다.


이력서는 인지 편향을 만든다.

이력서가 눈 앞에 놓이면 면접관은 무심코 그 내용을 중심으로 질문을 조립한다. 눈에 띄는 프로젝트나 기술 이력에서 질문을 발굴하여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이 좋으면 지원자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생긴다. 그 결과로 함께 검증해야 하지만 이력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적은 비중으로 구성된 항목은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다. 결국 면접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력서에 적힌 내용 만으로 질문 범위를 한정하기 쉽고, 그 내용을 강화하거나 반박하는 식으로 판단하기 쉽다.

면접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이러한 인지 편향이 일어나기 쉬운 전장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데 이력서가 가진 “선제적 정보 제공 역할”, 그리고 면접관의 “제한된 시간 내 효율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기인한다.

먼저 지원자는 이력서를 통해 스스로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이를 통해 면접의 무대를 사전에 세팅할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경험, 프로젝트, 스킬셋 등을 강조하고, 불리한 항목은 비중을 줄이거나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이력서는 본래 정보의 출발점이지만 평가의 방향타로서도 기능하기 시작한다.

면접관은 자연스레 지원자가 이력서를 통해 의도한 방향대로 정보를 소비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면접은 한시간 남짓, 길어야 두 시간. 그 제한된 시간 내에 면접관은 기술 역량과 문제 해결 능력을 검증하고, 지원자의 경험과 이력이 우리 팀에서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지원자의 대답을 평가하고 추가 질문을 이어나가야 한다. 당연히 사전에 이력서를 받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겠지만 면접 준비 외에도 일상적인 실무를 놓을 수는 없으니 그 준비 시간 마저 넉넉하다고 할 수 없겠다.

자연히 이 과정에서 전체를 일일히 뜯어보는 것 보다는 빨리 판단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경향을 띄게 된다. 이는 인간의 인지 자원의 절약 본능과 맞물리는 현상이다. 바로 이 시점에 과거 경험, 유사 사례, ‘느낌’에 기반하여 빠른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직관 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한다. 직관은 빠르고 강력하지만 동시에 편향의 문을 열어주는 기제가 되기도 하며, 실질적인 평가 왜곡을 유발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직관이 항상 부정확하고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면접관의 직관은 그동안의 사례 축적에서 비롯된 암묵적 지식이다. 직관을 통해 때때로 문장 너머의 의도를 읽어내고, 겉으로 보이게만 좋은 말과 실제 능력 간의 간극을 빠르게 감지해내는 강력한 신호 체계가 된다. 문제는 이 직관이 검증되지 않은 채 진실처럼 작동할 때다.

구조적으로 편향을 유도하는 면접에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력서가 강조한 경험 및 기술 영역은 과도하게 주목되고 검증되는 반면, 그 외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간과되거나 평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특정 영역이 반복적으로 질문되고 집중 조명되는 이유가 정말 중요해서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것이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더불어 일부 역량이나 경험이 지원자의 전체 능력을 대표하게 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쉽다.


그래서 면접관은,

이력서가 유도하는 프레임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게 사전에 팀 기반으로 우리 만의 질문 프레임을 설계해야 한다. 이력서를 보기 전에 미리 “우리가 검증하고 싶은 항목 리스트"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항목 별로 사전 질문 템플릿를 준비해야 한다. 다수의 지원자를 봐야 하는 경우 이것이 공통 질문 세트가 될 것이다. 이 때 면접관 별로 전담 검증 영역을 분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질문 별 답변에 대한 척도표를 만들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특정 질문에 대해 답변의 내용이나 키워드 별로 평가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은 척도표가 항목 별 평가를 위한 단순 고려 요소이자 편향 방지 장치로만 작용해야 하며, 척도표에 의한 단순 점수 합산으로 평가를 만들어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정성적 판단과 맥락의 해석이 필요한 과정이고, 때로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직관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공통 질문 세트를 정의하고 나면 이력서를 보면서 지원자 별 맞춤 질문을 발굴해야 한다. 이 때에도 “이 질문이 정말 직무의 핵심인가, 아니면 단순히 이력서에서 눈에 띈 것인가” 하는 자가 진단 질문을 통해 의식적으로 편향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더불어 이력서에 제시되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질문을 만들어 탐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평가 시에도 단순한 감상이나 추상적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과 그에 대한 면접관의 판단을 함께 기재하는 것 좋다. “~처럼 느껴졌다"가 아니라 “~한 질문에 ~라고 답변했고, 이에 대해 ~라고 판단했다"가 핵심이다. 추상적 표현은 주관적이며 면접관마다 기준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구체적 근거와 이에 대한 객관적 판단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대로 지원자는,

면접이라는 전장이 이력서 중심, 제한된 시간, 구조적 편향이 고정된 판이라면, 지원자 입장에서는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영리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선제적으로 이력서를 통한 프레임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면접은 면접관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이다. 지원자는 자신의 역량과 수 년 간의 경험을 몇 장의 문서와 짧은 대화를 통해 전달하고 설득해야 한다. 면접은 시스템으로써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직관과 순간 판단으로 굴러가기 십상이다. 이 구조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과소 평가될 수 밖에 없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지원자가 표현력이 부족하고, 프레임을 잘못 설정하여 좋은 평가를 얻어내지 못하는 일은 지원자에게도, 면접관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략을 고민하지 않은 채 면접에 나가는 것은 정면 승부가 아니라 무장 해제 상태로 전장에 들어서는 일이다.

이력서 프레이밍 설계 일견 비도덕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프레이밍을 통한 전략은 거짓말이 아닌 사실 배치의 형식이다. 없던 경험을 허위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책임감 있게 고민하는 설계 행위다. 면접은 본질적으로 설득의 장이고, 그 자리에서 지원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셀링하기 위해 일종의 마케팅 요소를 곁들여야 한다.

지원자는 이력서를 설계하기 전에 미리 자신의 어떤 영역을 강조하고, 또 덜어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력서에서 강조하지 않은 부분은 질문 대상에서 비껴나가기 쉽고, 따라서 약하다 싶은 영역은 애초에 굳이 넓게 쓰지 않는 것도 영리한 판단이다. ‘무엇을 강조하느냐’는 동시에 ‘무엇을 은근히 감추냐’ 를 의미하기도 한다.

강조하고 싶은 영역이 명확하게 식별되었다면, 그 영역에 질문을 의도하는 키워드, 구조, 문장을 전략적으로 심어야 한다. 물론 어떤 표현이 면접관의 질문을 쉽사리 이끌어내는지는 실제 면접관 역할을 경험해봐야 비로소 감각적으로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왜”, “어떻게”, “고려한 부분” 등을 질문을 유도하는 단서로써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kafka consumer 의 partition assignment strategy 를 커스텀하여 구현한 경험이 있다고 해보자. 이를 사실 그대로 적기보다는 아래와 같이 풀어놓으면 면접간의 관심을 더 끌어낼 수 있다.

  • 테넌트 간 트래픽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fka consumer group 의 partition assignment strategy 커스터마이징하여 설계 및 구현함. 파티션 별 트래픽 양을 추적하고 비중을 계산하여 각 consumer group 에 균형있게 트래픽이 분배되도록 구성.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이 디테일을 생략함으로써 추가적인 질문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

  • kafka consumer group 의 트래픽 편중 이슈 해결을 위해, 커스터마이징된 partition assignment strategy 설계 및 구현.

일부러 partition assignment strategy 를 어떤 식으로 구현했는지를 생략했다. 일단 kafka 의 기본 strategy 를 사용하지 않고 커스터마이징했다고 하는 부분은 면접관의 관심을 끌기 쉽다. 면접관은 해당 내용에 밑줄을 치며 질문을 발굴하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정보가 주어져있다면 질문을 구성하기가 애매해진다. 이 때 의도적으로 디테일을 생략한다면 면접관으로부터 “어떤 식으로 커스터마이징 하셨나요?” 라는 질문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일단 지원자가 의도한 부분에 면접관의 질문이 나온다면 반 이상은 성공한 셈이다. 잇따라 “기본 strategy 로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혹시 다른 방법은 고려해보신 부분이 있을까요?” 같은 질문까지 끌어낼 수 없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면접관과 다르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위에서 풀어낸 이력은 단순히 “무엇을 했다"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왜 했고, 어떤 판단이었으며, 어떤 결과를 기대했는가” 에 대한 일종의 ‘맥락’을 담아낸 것이다. 맥락은 문제 인식 -> 대안 탐색 -> 개선의 사이클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이다. 질의응답의 흐름이 맥락의 영역으로 흐르면 면접관은 자연스레 지원자 사고 흐름을 평가하게 된다. 단순히 기술 검증을 넘어서 이 사람이 어떤 식으로 사고했는지에 대한 탐색으로 포커스가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가 제시한 맥락에 면접관이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초에 맥락에 정답은 없다. 오히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한 대안은 고려하지 않았는지” 등의 꼬리를 잇는 질문이 들어오면 애초에 지원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영역의 비중이 높아지는 셈이다. 물론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지원자의 전문성과 논리적 사고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이력서를 설계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지 않는 것이다. 면접관은 단순히 질의응답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해당 기술 영역의 문제를 많이 해결해본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지원자가 말하는 경험이 실제 업무에서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는지, 사용했다는 기술이 실무에선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하는 것들을 면접관은 한 두 마디만 들어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면접관에게 있어 면접은 질의응답을 통해 지원자를 탐색하는 과정이고, 일부 영역에서 신뢰를 잃으면 나머지 영역에서도 신뢰를 받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과장된 서술은 영리한 전략이 아닌 무모한 도박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력서의 전략적 프레이밍은 사실을 설득력있게 드러내는 수단이어야지, 사실을 가리는 기교가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