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이직 면접을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혼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글쎄, 내 경우에 비추어보면 조금 과장되다 싶게 느껴지는 이야기긴 하지만, 그만치 감당해야 할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하게 된다. 면접이 거듭될 때마다 자존감이 손바닥 위 모래처럼 사그러들고,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아왔나 하는 인생 전반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이거 오래 준비하다간 내 명에 못살지 싶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심플하게 충원하려는 자리에 맞지 않아서 퇴짜를 놓았다지만 지원자는 난 역시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봤을 때, 긴장이 풀리면 면접이 잘 풀렸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금 면접관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서 사라지고, “말빨"이 터져 진짜 내가 누군지를 여실히 떠들고나면 면접관들 입가에서 만족스런 미소를 여볼 수 있었다. 반대로 시작부터 긴장된 상태로 면접에 돌입하고, 지금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하며 긴장은 더욱 더 증폭이 되고, 이쯤되면 면접관의 간단한 질문도 도저히 한국말로는 안들리게 되는 것이다. 질문을 듣고 고심하는 척 미간을 찌푸리지만 이미 머릿속은 백지다. 그리고 “지금 머릿속이 백지구나"라고 한번 더 되뇌이는 순간 사고는 정지되고 등 뒤로는 식은 땀이 흐른다.
그래도 면접은 내게 대부분 즐거운 경험이었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뭔가 위험천만한 스릴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렇게 이런걸 쌓아왔어. 난 괜찮은 놈이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면접 당일에는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시간에서 두시간 가량 마음껏 늘어놓을 수 있으니 두려움만 떨치면 이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자기 표현에 대한 욕구는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살아왔구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고 떠들고 있다 보면 오랜 친구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인생이 어쩌고 하는 개똥철학을 주고 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쉬운 것은, 신입으로 경력을 쌓고 경력직으로 면접을 준비하게 되면 더이상 내 자신에 대한 의야기 보다는 내가 쌓아온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이, 신입 시절 운좋게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직무를 맡게 되면서 즐겁게 공부하고 경험해온 것들을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면접 준비를 하고 면접에 떨어지고 나면 내가 가야할 길들이 좀 더 명확하게 느껴지곤 한다. 내가 가고싶은 회사, 가고싶은 직무의 구직공고에 붙어 있는 기본 요건과 우대 사항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공부해 나가야 될 청사진들을 대략적으로 잡을 수 있었고, 면접을 거친 후 내가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과,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다시 헤아리며 내가 지금 서있는 위치와 부족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면접 준비와 면접 과정을 거쳐 지금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꽤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고 싶은 회사, 하고 싶은 직무를 맡을 수 있었고, 원하는 조직 문화를 체험하게 됐으며, 똑똑한 사람들과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회사에 평생 몸담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만 나는 아마 또 이직 준비를 해야 할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직을 준비하고 이직을 하게 되는 경험들이 크게 보면 나를 계속해서 채찍질하여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