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le Park] 심리테스트 하나, 그리고 경계허물기.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너무 좋아 유후하고도 안녕한 날씨에 끝내주는 심리테스트 하나 해보자.

[질문]

당신이 2인승 차를 몰고 컴컴한 어둠이 내린 고향의 산길을 가던 중이었다. 흔한 가로등 빛조차 닿지 않는 아주 어둡고 깊은 그런 시골길이었다. 길을 가던 중 저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할머니와 고향친구와 아름다운 여인. 

세 명이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버스는 이미 끊겼고 할머니는 아까부터 어디가 아프신지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고향친구는 마을에 급한 업무가 있다며 얼굴 아는 사이는 자기밖에 없으니 자기를 태워달라고 했고, 아름다운 여인은 지금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포기할수 없는 이상형에 가까운, 운명과도 같은 여자였다.
여기서 질문. 당신은 당신의 2인승 차에 과연 누구를 태울 것인가?

1) 할머니를 태우고 응급실로 달려간 당신. 사회적 정의나 인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으로서 개인간의 관계보다 사회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볼수 있겠다. 
2) 고향 친구를 태우고 간 당신. 개인적 의리를 중요시 하는 사람으로서 주변에 친구는 많지만 줏대없다는 소리를 가끔 들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부르면 곧 달려가는 당신이야 말로 개인적 인정이 넘쳐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
3) 아름다운 여자를 데리고 떠난 당신. 사랑 우선 주의의 달콤한 로맨티스트. 하지만 여자한테 패가망신할수 있으니 인생을 올인하지 말길.

뭐, 이런 류의 답이 있겠지.

당신은 1번이든, 2번이든, 3번이든 누구를 선택하건, 그에 합당한 이유를 대며 선택하지 못한 길-기회비용-에 대한 변명을, 알리바이를 열심히 생산해내야 할것이다. 정당방위든, 명분이든, 개인적인 소신이든 간에 그것은 선택하지 못한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변명을 위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변명이라 하더라도, 좋은 변명으로 구축된 좋은 선택이라 하더라도, 선택하지 못한 길이 결국 옳은 길임을 알았을 때 당시에 최선이라고 여겼던 선택조차도 뒤집어져버린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질문이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독백이나.
밑의 잡담에도 있듯이, 공부냐? 독서냐? 라는 고민같은 것들.

아니, 꼭 굳이 그것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하냐는 말이다. 분명히 나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은데. 죽으면서도 사는 방법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법인데. 공부를 하면서도 독서를 할수있는 방법이 충분히 존재하는 데도. 우리는 항상 현실의 선택을 하려고만 한다. 무너진 하늘의 구멍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이 질문을 했던 한 여자 '친구' -물론, 지금도 '친구'다. 남녀사이에 친구는 존재한다.-는 나의 대답을 원했다. 그러나 나는 한가지를 선택하고 다른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말처럼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만한 무너진 하늘의 구멍을 원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런 대답을 했었다.

'굳이 그 셋중에 한명을 선택하기보다는 차를 고향친구에게 주고 할머니를 태워서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되잖아. 그러면 고향친구는 급한 약속을 해결할수도 있고, 할머니는 응급상황에서 벗어날수도 있는거고. 나는 남아서 이상형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아가고.'

어떤 한 진영에 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확고한 자아 정체성을 가질수도 있고, 그 진영에서 오랫동안 명분을 쌓아온 사람들의 주장을 토대 삼아, 온갖 반론과 논쟁을 이겨온 역사를 가진 오래된 근거를 자신의 것으로 삼을수도 있다. 또한 그렇게 자기만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멋져보이는 일이기도 하고, 유행에 민감한 세상에서 고집스럽지만 당당한 자신을 내세울수도 있다.

그러나 둘중에, 혹은 몇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꼭 그 자판기와도 같은 선택지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할까? 그게 사실은 강요된 강박관념이었다면 어떨까? 우리는 입시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선택지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당해왔고, 세뇌당해왔다. 오지선다형 문제에서 분명히 답은 존재했고, 오답 역시 존재했었고, 우리가 곧 경험할 세상 또한 무수한 선택지중에 하나의 답이 있을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경계가 불분명했고, 불분명한 경계속에 간신히 분류의 근거경계를 찾을라치면 다른 선이 있을 거라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가 얇아져 자신이 찾아낸 선을 포기하기도 했다. 무수한 선택지에 답은 없었고, 근거가 풍부한 것들이 답이 되는 세상이요, 다수가 택한 선택지가 답이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있었다.

하지만 사지선다형의 답안지에서 1번답과 3번답을 섞어서 만든 제 5의 답이 정답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면? 혹은 1,2,3,4를 적절하게 섞은 어중간한 답이 오히려 기존의 답안지보다 명쾌하게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라면? 자판기의 700원짜리 코코팜을 하나를 선택해서 친구를 줄까, 내가 먹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350원짜리 캔커피를 사서 둘이 사이좋게 먹는게 훨씬 좋았다면? 그렇다면 어떨까?

비단 심리테스트의 선택지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모든 것들의 경계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문학에선 이미 세계적으로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장르소설 작가가 순수문학 부분에서 인정을 받고 수상을 받는가 하면, 순수문학 작가가 장르소설을 쓰겠다고 천명하는 사례들 역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문학이 영화화되고, 영화가 소설화되고, 문학과 영화산업의 경계 또한 계속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정치에선 좌익과 우익의 구분이 애매한 계급적 평등을 요구하면서도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정치노선을 펼치는 세력들이 늘어나고 있고, 새로운 정치집단인 기든스가 제시한 제3의길의 입장을 옹호하는 정치세력도 늘어나고 있다. 각 개인들 조차도 입양을 옹호하는 좌익성향이면서도 지독한 민족주의자 같은 우익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는 모호한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IT 분야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시도되는 컨버젼스로 서로 다른 시장이라고 여겨졌던 휴대용 영상기기 시장과 휴대용 음악감상기기 시장이 PMP와 MP3의 결합으로 무너졌고, 디카와 MP3,PMP 기능을 합쳐놓은 삼성의 #11이 출시되었고, 휴대폰에 카메라와 MP3기능은 필수요, PMP기능까지 탑재한 스카이 IMP-U100, 네비게이션과 DMB를 컨버젼스한 제품등. 속속들이 각 기술들이 서로 결합하며 각자의 시장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음악 역시 장르들의 경계가 무너졌다. 재즈와 힙합이 현진영을 통해 만났고, 힙합과 락이 린킨파크를 통해 만났다. 모던락과 하드락이 만났고, 댄스와 발라드가 만났고, R&B와 힙합이 만났고, 팝과 오페라가 만났고, 클래식과 힙합이 만났고. 모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모호해지며 그러한 퓨전장르들이 분명한 인기를 끌고,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게임 분야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 게임의 경계가 무너지고, 비디오게임과 모바일 시장이 서로 합작을 맺기도 하고, 토종 게임 기업과 글로벌 게임 기업이 손을 잡고, 전혀 다른 작품들이 한꺼번에 모여 진정한 로망을 이룬 <슈퍼 로봇 대전>이라는 시리즈 게임이 발매할때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웃찾사의 유행어를 패러디하고 웃찾사 역시 개그 콘서트 출신의 개그맨이 과거 개콘에서 했던 개그를 하며 시청자들을 웃기고 있다.

이전에 박쥐라고 놀림을 받던 회색분자들이 인기를 얻는 세상. 확고한 입장 표명이 당당하고 멋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호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한 회색분자로 취급받던 개인주의의 모호성이 존중받을만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모호성은 이제 비겁함이 아니라 현실이다.’

모든 것을 구분하고 끊임없이 해체해 들어가며 자신들만의 선택지를 탄탄하게 구축하던 수많은 집단-혹은 장르-에 의해 규정되고 구분지어지던 시대는 끝났다. 인간은 각자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며 모든 선택지들을 혼합하고 뒤집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개인화로 만들어버린다. 불변할 것만 같았던 작품들은 패러디되고 2차적 창작물의 자원이 된다. 곧 시작될 Web 2.0 서비스같은 것으로 모든 콘텐츠는 개인화되고, 모든 회사들은 유저의 손아귀 아래로 떨어져 선택당해지는 운명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섞이고 혼재되어가고 해체되어 재구축되는 카오스에서 독단적인 선택지는 살아남기 힘들다. 전사회적, 전세계적인 분야에서 무수한 경계허물기가 점점 가속도를 붙여가는 요즈음, 수많은 자판기의 버튼 앞에서 한가지만을 누르는 사람은 완전 바보가 되어버린다.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버튼을 섞어서 나만의 버튼으로 만들어 누르는 것. 그렇게 독특하게 개인화된 사람들이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끌고 있다.

자, 이제 당신은 선택해야한다. (앞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잔뜩 해체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경계허물기가 범람하는 이 세대에서 똥고집을 피워가며 한가지 주장과 일관성에 나를 규격화시키고 그러한 관에 나의 몸을 맞출 것인가. 그 관을 깨부수고 차라리 다른 수많은 선택지에서 따온 재료를 가지고 나의 입맛에 맞게 철저한 개인주의의 모호성으로 무장한, 그러나 특별하게 유니크한 내게 맞는 관을 만들 것인가.





진정한 탈규격화와 개인화가 진행된 사람이라면 이 두가지 선택을 또 적절하게 섞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르겠지만.
*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5-30 17:20) 

  
 
 
 
상병 송희석 (2006/05/30 15:11:22)

제목만 보고 드디어 진우님이 푸코를 건드리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가 한방 먹었네요.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병장 박진우 (2006/05/30 15:18:20)

음...철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세속의 계시뿐... 으하하.    
 
 
상병 조주현 (2006/05/30 15:21:44)

그렇군요. 잘읽었습니다!    
 
 
병장 고계영 (2006/05/30 15:24:13)

브라보! 
정말 마음에 와닿고 저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획일적인 선택에서의 해방은 '퓨전'이라고 일컫는 현대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도 점점 그 기준-경계-라는 것이 저의 표현대로 한다면 '비틀어지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나누는 경계의 의미나 분류는 되겠지만 비틀어진 그 경계의 '틈'사이로 모든 것이 다른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이 기본이 된다면 우리의 경제나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전반과 문화전반에 편을 나누고 싸우는 그러한 움직임도 줄어들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천> 이 글은 책가지로 가서 두고두고 다른 분들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상병 송희석 (2006/05/30 15:24:37)

아참 저도 역시 <추천>    
 
 
상병 조주현 (2006/05/30 15:25:06)

아참 저도 역시<가지로>~    
 
 
병장 한상원 (2006/05/30 15:46:30)

이 이야기 얼마전에 <16블럭>에서 본거예요.와우.    
 
 
 병장 박진우 (2006/05/30 16:02:19)

계영, 희석, 주현/ 아닛...칼럼이라면 칼럼에 당당히 쓸거지만, 제가 왜 여기에 썼겠습니다. 으하하. 추천이 세개라 별수없이 넘어가게 생겼네. 
이건 또다른 유니크하고도 개별화된 나만의 똥고집이에요. 책가지엔 좀 더 재밌고, 즐거우면서도 나눌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예정이에요. 일단 쓰던 소설 마무리 짓고나서 써볼예정. 

상원/ 식스틴 블럭이라면 브루스 윌리스의 또다른 노땅파워를 느낄수 있는 최신작.!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병장 정석완 (2006/05/30 16:11:36)

제레냥...고스 밖에서도 말머리로 닉네임 써요?    
 
 
병장 김형진 (2006/05/30 16:40:29)

오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스템의 구별짓기에 대항하는 개체들의 반란, 이제 시작일 뿐이죠.    
 
 
 병장 박진우 (2006/05/30 17:30:24)

석완/ 음. 글의 말머리에 달린 [Zele Park]라는 것은....어떤 종류입니다. 곧 책가지용 칼럼을 쓰게되면 밝히게 될... 
형진/ 시작과 더불어 참전 선언! 

여기엔 없지만 지훈// 다행히도 칼럼으로 안넘어 가는 거였군요! 으히히. 왠지 모를 고마움?    
 
 
하사 윤석호 (2006/05/30 23:54:11)

하지만 제발 경계를 허물어 버렸으면 하는 것들. 
1. 노조와 사용자 
2. 장애우와 정상인 
3. 극단적인 빈과 부 
2번은 앞으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개선될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힘들겠죠? 그리고 1번은 몇몇 나라에서 혁신적인 사례가 있으나, 집단간의 이해와 관련된 문제이고, 특히나 집단의 이익에 민감한 우리나라는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3번은 인류가 사유재산을 사용할때부터 존재해 왔던 것이니 패스- 

-이런것들은 언제쯤이나 경계를 허물것인지.. 트렌드를 따라가주는 센스가 부족한 종목들입니다.(쯔쯔쯧)    
 
 
 병장 박진우 (2006/05/31 06:56:50)

양극화는 또다른 세계적인 문제. 흐흐.    
 
 
 병장 노지훈 (2006/05/31 16:45:04)

과연, 멋진 글. 첫번째 좋은글 당선 축하드려요.    
 
 
 병장 강계정 (2006/05/31 17:25:38)

석호님// 
음1번은 노조를 "주주" 로 만들어 버리면 될일이고... 
2번은 기술이 좀더 발달해야할거같아요..... 
3번의해결책은 우주개척이나 혹은 인구의 감소 밖에는 
현재 제시 할수있는 해결책이 없네요...    
 
 
병장 오해성 (2006/05/31 17:37:29)

이 문제 밖에서도 본 문제로 그때는 특정 대기업 면접시험 문제라고 나왔었습니다. 
그때 만점 받은 대답이 저 친구를 운전시키고 할머니를 병원으로 보낸 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였습니다.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만약에 정말로 이런 문제를 냈고 
그 답을 만점 처리 했다면 그 회사의 임원도 비슷한 생각에서 문제를 냈을거라 생각합니다.    
 
 
상병 김동민 (2006/06/03 11:39:31)

저는 다들 어떻게든 끼어 타는 쪽을 순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만..(땀) 
그나마 만만한 고향친구를 트렁크에. 
고민거리 중 하나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해부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병장 박진우 (2006/06/05 14:39:30)

상원// 와~~~우. 저 어제 식스틴 블럭 봤어요. 
문제 완전 똑같던데요... 크크. 저게 서양에서도 통하고 있을 줄이야. 

브루스 윌리스의 대사가 압권이었습니다. 
'그게 결국 모두에게 좋은거지.' 크으~    
 
 
상병 최숭규 (2006/06/06 16:19:15)

근데, 재즈와 힙합이 현진영을 통해 만났다는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