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le Park] 바벨화에 대처하는 자세. 
 
 
 
 
2002년 우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이 붐에 편승하여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자발적 응원단 붉은 악마는 CU@K리그 라는 카드 섹션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축구붐을 K리그로 옮기려는 시도를 했었다. 월드컵 붐으로 한껏 비대해진 K리그는 K-2리그라는 2부리그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했고 마침내 개막식까지 가졌고 K-2리그는 아직까지도 가동중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K-2리그는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고, 축구 열기는 파도의 거품처럼 금세 꺼져버렸다. 4년이 지난 지금 월드컵 시즌. 다시 우리는 열광적인 축구붐에 휩싸였다. 그러나, K리그는 여전한 관객부족 현상을 겪고있다. 대중들은 축구로 할수있는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궁극적 축제인 월드컵에만 관심이 있지, 그 근간과 기초를 이루는 K리그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다양화될 가능성을 잃은 우리나라의 국내리그는 거대한 월드컵의 바벨화에 바짝 주눅들었다. 월드컵이 시작점이 되지 못한채 K리그는 아직도 맥을 못추고 있다.

바벨화란 구약시대에 등장했던 신에게 닿기위해 언어가 하나인 인간들이 인간만의 힘을 모아 신에게 다가가려다 무너진 바벨탑에서 따온 말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구촌 통폐합이 가속되고 국가간의 장벽이 무너짐으로 오게되는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작고 다양한 이견들이 깡그리 무시되어 지지자가 많고 힘이 강한 하나의 논리로 종속되어버리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바벨화는 바벨탑이 무너지게 된 원인 중 하나인 언어의 바벨화에서 시작하여 사회 전반적인 부분으로 침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언어의 위기를 겪고 있다. 2주에 한개꼴로 제각기 역사를 가진 소수의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이면엔 1억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가 무려 11개나 된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양극화요, 사라진다는 점에 있어서 언어의 바벨화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의 신 자본주의에서 무의식적으로 강요된 세계 공통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를 배워 세계의 기득권으로 편입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나라들. 그들 중에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열은 열풍 그 자체다.

아이들이 한글을 떼기도 전에 영어를 떼고, 생각도 영어로 하며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진다.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 사는 한국땅에 한국어를 쓰면 벌금을 내거나 자체 구치소로 잡혀가는 영어마을이라는 이상한 마을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초등학교붙터 영어의무 교육을 확대실시하고, 대학교에선 이공계열의 전공과목 수업에서, 영어와 관련없는 과목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팍스 차이나가 제시된지 얼마 안되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차이나)가 새로운 미국의 대체제로 떠오르더니 얼마전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된 친디아(China+India)가 제시되고, 요즈음은 그린스펀 회장 이후 FRB의 의회장 직을 맡은 버냉키 회장보다 일본의 중앙은행장이 더 실세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어, 러시아어, 인도어, 포르투칼어에 이어 일본어까지. 시장경제체제를 살아가는 우리의 언어 또한 거대 자본에 의해, 규모의 경제에 의해 좌우되는 자본주의에 매여버린다. 소수의 언어는 보호받지 못하고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삭제되고 제거당한다.

이러다 한국어를 못쓰는 한국인이 나올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자신의 책 <랄랄라 하우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든 영어로 씌여진 한국문학도 곧 나올거고, TV에선 영어로 대화하고 밑에 한국어 자막을 넣은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것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벨화는 언어 분야 외에 경제분야에서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FTA라는 빛좋은 개살?명분아래 거대자본의 폭력은 심화되고 소수의 나라들은 고유의 힘과 특산물을 잃고있다. 지금 시대를 배경으로 대항해시대를 하면 미국에 거점을 두지않은 세력은 곧 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내 영화계의 바벨화는 그나마 나았다. 스크린쿼터제 라는 좋은 방호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반동강이 나면서 헐리우드의 거대자본의 배급폭격은 시작되었고,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바닥을 향해 끊임없이 떨어졌다.

언어적, 경제적, 영화적, 스포츠적 바벨화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쿼터제가 없는 소수의 약자들은 무너지고 강자들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에서 기득권과 거대자본은 바벨이라는 커다란 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자가 강자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있으니. 원래 강자가 약자에게 눈을 맞춰야하는게 아닌가? 더 높은 자리에 있다면 더 수그리라고 올려준 것일 터인데 오히려 자신의 논리를 강요한다. 강자는 절대 몸을 굽히지 않고, 약자들에게 자신의 바벨탑을 쌓아올리는데 보탬이 되라고 설득하고 바벨화 작업에 억지로 동참시킨다. 쿼터제가 없는 것들은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

약자들이여, 소수들이여. 고집을 피워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키를 키우느니, 차라리 자신의 문화를 특화시키고 개별화시켜라. 철저히 맘대로 살아버리고, 제멋대로 자신을 추구하여라. 바벨화에 대응하여 파편화를, 컬트화를 유도하여라. UN에서도 인준한 다양성을, 억제하는 바벨화에 철저히 대항하라.

대중들이여, 바벨화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다수의 대중들이여. 당신들이 보고 즐기는 국가대표선수의 처음은 K리그 선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K리그가 없다면 한국 축구 선수도 없고, 한국 축구 선수도 없다면 한국 축구 대표팀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바벨화는 그 기초가 되는 제각기의 소수문화에서부터 출발하기에 K리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전체적인 면에서 봤을때 궁극의 지향점인 월드컵 또한 풍성해지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작지만 근본이자 시작점인 컬트적 요소를 잊지 말길 바란다. 

바벨탑은 멋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무너질 그런 녀석이다. 

  
 
 
 
상병 송희석 (2006/06/18 17:01:47)

불이 붙었네요. 이글은 동석님 스타일과 비슷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병장 김강록 (2006/06/20 10:07:24)

개인적으로 평소 축구에 무심한 만큼이나 월드컵에도 대체로 무심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축구는 마초적이라느니, 하는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어서 무작정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저도 옆에서 틀어놓으면 스스럼없이 같이 봅니다만, 월드컵 원리주의의 광기가 떠오를 때면 골이 아파서, 자칫 저까지 동류항으로 묶일까봐 그냥 돌아눕습니다. 

평소엔 전혀 축구와 무관하던 사람이 월드컵 되니까 마치 자신은 처음부터 축구광이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좀 씁쓸합니다. 저는 굉장히 현명해서 월드컵의 이면을 간파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고, 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 축제는 잘 노는 것도 능력으로 취급되는 세상─즉, 잘 노는 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남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벌이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왜냐하면 나는 축구를 좋아하니까'라는 광고 문구를 볼 때가 가장 성질 납니다. 그건, 완전히 무기력한 굴복이 아닙니까.    
 
 
병장 엄보운 (2006/06/20 12:20:33)

글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본주의는 문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투기성 자본을 널덜머리나게 증오하는 저이지만, 그들 또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들이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몸부림치고 있는 체제의 노예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네요. 

하나의 강력한 힘이 다수의 다양한 힘을 억누르고 짓밟고 하는 거라면야 얼마나 대항하기 쉽겠습니까만은. 그 하나의 거대한 힘마저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챗바퀴에 놀아나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물론 이것이 그들에게 면죄부로 작용한다고 여기면 안되겠지요.) 

뚜렷한 적이 있었던 과거 세대에 대한 부러움은, 이런 의미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