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열전 ① SBS 특별기획 <사랑과 야망> 
 
 
 
 
승민이의 TV 드라마 열전 ① SBS 특별기획 <사랑과 야망>


서울방송∥토,일∥ 21: 45∥작가 김 수현  연출 곽 영범
출연 : 정애리, 이승연, 한고은, 조민기, 이경실, 추상미, 이훈



언제나 그 곳에는 자전거를 타며 학교에 출근하는 동네 어르신이 있고, 홀로 키운 딸의 시집가는 날을 앞두고 작은 방 구석에서 죽은 부인의 사진을 껴안고 있는 아비의 마음이 있다. 또 늙어간다는 것이 단지 육체의 소멸을 향한 불가피한 연소과정이 아니라 그림자과자처럼 과거라는 시간속에 자신의 실존을 남기고 걸어가는 순환의 길이라는 깨달음이 존재한다. 
이건 세계 영화감독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존경을 표하는 감독, 프랑스 <카이에 드 시네마>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오즈 야스지로가 만든 영화들의 공통된 배경이다. 지금 오즈는 세계 영화인들의 거룩한 선배이자 극복해야 할 신경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과는 달리 정작 오즈의 영화들은 그다지 특별하다거나 관객들의 눈길을 자극할만한 플롯구성과 소재가 없다. 세계10대 영화에 포함되는 <동경 이야기(1958)>의 내용은 출가한 자식들을 찾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이고, 허우 샤오시엔이 최고로 뽑은 <만춘>은 딸을 시집보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사실 내용만 보면 그다지 새롭지도 못하다. 출세와 결혼에 대한 체념은 지금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오프닝에서 길떠나던 노부부와 밤길을 배회하던 소녀가 마지막엔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두 노인네로, 마을 유지에게 시집가는 새댁으로 변해버린 걸 알았을 때 주는 감동은 이루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할만큼 '극적'이다. 
오즈는 영화라는, 그러니깐 이미 주어진 전부로써의 그의 세계를 가족을 중심으로 사유한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같은 공간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부식되고 보수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위대한 오즈를 불멸의 드라마 작가 김수현과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그 두사람이 어느 한쪽은 위대하고 어느 한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빨아도 냅킨이 되지 못하는 떼타올의 습성을 지닌 영화와, 방 한구석에 놓여져 필요로 할 때 딱여지는 걸레의 습성을 지닌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메체를 두 사람이 달리 선택했기 문이다. 그럼에도 둘은 같은 이유에서 위대하다. 그들은 걸레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고급 도화지와 켄버스에서 탄생된다고 믿을 때였지만, 그 누구도 걸레에 <천지창조>를 그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김수현의 걸작 <사랑과 야망>도 오즈의 영화들처럼 중심이 되는 특정 가족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즈가 영화라는 기계문명을 가지고 롱 숏과 롱 테이크, 안정된 씬 전개라는 영화미학으로 그것을 사유했을 때 김수현은 드라마는 '대사빨'이라는 그녀의 신념을 가지고 파란만장한 태수가족의 일대기를 풀어해친다. 여기에 김수현은 세壤뵉퓸楮 도스토예프스키를 본격적으로 차용한다. 또 이번 드라마에선 지금까지 그녀가 만든 드라마의 모든 알레고리들과 소재를 농축해서 등장시킨다. 스크루불 코메디 같던 <사랑은 못 말려><목욕탕집 남자들>에서의 남과 여의 성역할은 폭풍속의 돛단배와같은 가정의 든든한 가장역할을 하는 어머니로 변해있고(정애리와 이승연), 옛 애인의 복수를 위해 그의 약혼자의 오빠와 결혼하는, 그러나 그 죄의식을 언제나 구원받고 싶어하는 <청춘의 덫>(기억하는가? 심은하가 무섭게 노려보며 '당신 부숴버릴꺼야' 하고 쏘아붙이던 그 모습을..!) 의 인물들은 각자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세계속의 단자들처럼 부딪히는 모습으로 치환되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때는 바야흐로 이승만 정권 말기, 잡것들이 설치는 춘추전국 시대의 남쪽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태수(조민기)와 미자(한고은)는 어릴때부터 시골마을에서 자라나며 미래를 약속한 연인사이였다. 태수는 한 때 난봉꾼이었지만 군 제대후 사람되어(?) 돌아온 동생 태준(이훈)과 사고로 다리를 저는 여동생(이유리), 그리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지만 올곧은 신념을 지닌 아버지와 억척스럽고 드세지만 태수 가족을 무겁게 지키고 있는 어머니(정애리)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그러는 한편 미자는 집나간 어머니와 한국전쟁때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며 매일 술로 날을 지세우는 어버지(맹상훈)만을 두고 있다. 태수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고시준비를 하고 있는 전도유망한(그러니깐 자수성가한 아들래미) 청년인 반면, 미자는 춘향이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이쁜 외모를 지녔으나 번번한 기술도 그렇다고 적당한 길이의 가방끈도 지니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 생활을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영위해 나간다. 태수의 아버지는 무너저가는 가정을 위해 사채꾼에게 돈을 빌렸지만 갚지못해 결국 낚시터에서 쓰려져 돌아가시고 빼앗긴 집문서를 되O기 위해 어머니는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마지막 노력으로 미자는 태수가족몰래 사채꾼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술한잔 권해 준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치마까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오해로 태수 어머니는 미자가 태수 아버지를 죽인 원흉으로 오해하게 되고 이야기는 태수 가족의 상경과 미자의 배우로서의 성공으로 이어져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간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막갈려면 한없이 막가면서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대리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이야기를 끊어야 할때와 이어야 할때를 절재해서 보여준다. <청춘의 덫>의 형이상학적 복수극은 후에 <친절한 금자씨>처럼 포기의 윤리학을 자청한다. <볼꽃>에서 이영애와 이경영의 불륜은 주변관계로 그 죄의식이 분산되어 중화되고, 마침내 <사랑과 야망>에선 같은 이야기를 모든 인물들이 돌아가면서 끝말잇기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드라마를 단1분도 못보고 채널을 돌려버린다. 이해한다. 드라마는 대중의 실존적 공백을 매우는 환상의 역할을 하고 그것이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다는 고다르의 말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김수현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러니깐 누가 누구랑 사귀다가 헤어지고, 가난에 쪼들리며, 무시무시하고 자극적인 음모에 핍박을 당해도 홍길동처럼 느닷없이 구원자가 생기는 말랑말랑한 상상계적 자폐증에서 그러한 환상의 3인칭 시점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여백을 드러내게 한다. 

사실 <사랑과 야망>의 위대함은 이런 거대담론격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 만듦새의 예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1회에서 미자와 태수는 헤질래(헤어질래) 말래를 두고 다리위에서 말싸움을 한다. 그 때 그 말싸움을 지켜보기 전 브라운관에서는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영화도 아닌 것이, 그 두사람을 정확히 10초이상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래서 과연 이장면이 작가 스스로가 의도해서 만든것인지를 알기위해 나는 드라마 1회대본을 찾아 보았다. 거기에는 

...(마치 가련하고 가난한 연인에게 자존심이 그들을 구원시킬 마지막 유리구두처럼,
빡빡 떼를 쓰고 싸울 때 우주의 한 점처럼 무상한 그들의 존재를 보여주지 않고서야....)

라고 나와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관은 인본주의로 넘쳐난다. 씬(scene)별로 난잡하게 모두 주인공을 위해 받들어 총 되는 요즘 드라마와는 달리(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드라마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으면(예를 들면 미자가 태수네 집으로 와 결혼 시켜달라고 무냅 꿇었을 때) 보통의 드라마였으면 미자와 어머니의 대결로 선정적인 화면을 꾸몄겠지만 여기선 모든 가족들에게 공통으로 시간과 여유를 주며 미자가 무릎을 꿇은 일에 대해 저마다의 논평을 한다. 그리고 '철의 여인'인 태수의 어머니는 태수가 집을 나가자 방에서 쓰러진다. 이때 어머니의 방으로 모여든 가족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누운 어머니를 두고 한 방에 모두 모인 가족들은 선정적으로 한 곳에 몰러 감정을 폭발하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성격과 개성에 맞게 골고루 분산되어 앉아있(거나 서있)다. 뿐만 아니라 각자 서로 다른 시선과 표정은 어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애정, 측은함, 분노, 무관심을 한 프레임(장면)에서 보여준다. 어느 누구도 놓치는 법이 없다. <하류인생>에서 다른 학교 동급생을 칼로 찌른 조승우가 그 아이의 집으로 사과하러 갈 때 왜 조승우의 발만 찍은 숏(shot)이 있냐는 평론가 정성일의 말에 '어떻게 부끄러워서 전신을 영화에 나오게 할 수 있어요? 나같으면 여간 부끄러워"라고 대답하던 임권택 감독의 삶과 예술에 대한 예의에 비할만 하다. 게다가 치밀한 복선과 아귀춤까지 생각하면 무릎을 탁하고 칠 수 밖에 없다(과장된 용비어천가가 아니다!) 
그녀는 드라마를 찍을 때 꼼꼼하게 촬영장에서 간섭하고 야단치기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70년대 만들어진 <청춘의 덫>에서 지금의 심은하 역할을 맡은 배우 이효춘에게 '질질짜지말고 울어..제발 울어.."라고 호통쳤던 일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은 그녀와 같이 작품을 하는 것을 꺼리기도 하는 반면 단 한 장면이라도 나오기 위해 출연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그녀와 드라마를 찍은 후 놀랍도록 성장한 연기력을 스스로 보기 때문이다. 
배우 선택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극찬을 받은 연기자는 주로 여자였고, 소수였으며(차인표가 드물게 남자로서는 유일하다) 심은하, 김희애, 이승연, 배종옥, 이유리 등은 그녀의 단골 손님이다. 특히 그녀는 개인적으로 여러움에 처했던 배우들에게 관대한 케스팅을 한다. 이태란과 이승연, 배종옥, 윤여정, 이경실, 하유미 등은 그녀의 베스트 케스팅 수첩에 언제나 들어있다고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저서 <삐딱하게 보기>에서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와-를 적절히 중화시키는 0도 지점의 달인, 영화계의 신사라고 표현한다. 히치콕은 실재로 그의 모든 영화에서 주관적 시점 다음에는 그것을 객관화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해서 서스팬스를 내면화시켰다. 
얼마전 종영된 노희경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보면서 나는 문득 지젝의 히치콕에 대한 헌사가 생각났다. 노희경의 드라마가 처음 지닌(그러니깐 <거짓말><바보같은 사랑>때의 마음가짐)모던하고 정갈한 만듦새는 어느새 갈수록 모든 등장인물들이 눈물의 바다에 빠져야만이 카타르시스가 해소되는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너도 나도 다 불쌍한 인간이고 사람은 다 불쌍하니 이리와서 함께 울자..라고 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지젝은 이를 두고 아마 주관만을 밀어붙이는(옛 소비에트 영화와 같은)포르노그라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김수현은 한국 드라마계의 신사라고 생각한다. 사실 깐깐한 그녀와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그러나 어쩌랴, 보는 시청자들은 그것 때문에 양질의 드라마를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정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고양시킬 권리가 있다! 


 

  
 
 
 
상병 송희석 (2006/05/29 17:13:35)

우옷! 정말 잘 읽었습니다. 내심 다들 '사랑과 야망'을 재미없게 보지만, 전 정말 재미있게 보기 때문입니다. 혹시 드라마열전을 계속 하신다면 '서울 1945'를 다뤄주실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아! 요즘 진심으로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중 하나가 '서울 1945'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정말 잘 읽고갑니다. 역시 계급이 달라지니 무엇인가 달라져보이는군요. 훗훗.    
 
 
 병장 김동환 (2006/05/29 17:20:57)

흑흑. 원래 제가 일등이었는데. 
승민님글 오랜만에 읽게되서 기뻐요. 흐흐.    
 
 
상병 조주현 (2006/05/30 09:20:50)

봤던 드라마가 하나도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전달되는 무엇이 있군요. 
그나저나, 저는 갈수록 영상매체와는 멀어지고 있다는..쿨럭    
 
 
병장 강승민 (2006/05/30 09:27:00)

음...사실 이 글 올릴까 말까 굉장히 고민했었어요. 실은 여러가지 글들을 생각해두고 있었는데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때라(웃음) 이미 쓴 글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고혈압증세에 있는 책마을에 혈관하나 더 만드는 셈치고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쌩글쌩글) 사실 단숨에 쓴글이라 오타가 많지만요...    
 
 
일병 이건룡 (2006/05/30 10:30:05)

승민 분의 글을 읽다 보니 영화 이론중 (아직은 주로 지젝 한분 뿐이지만) 용어를 어려워 했던 부분들, 만족의 영도zero degree 등등이 명쾌하게만 느꼈지는 군요. 여담이지만 용어들에 대해서 어려워해서 말입니다. 
혈액순환이 잘되는 개운함이 (웃음)이런고로 정말 잘 읽었습니다.    
 
 
 병장 노지훈 (2006/05/31 13:32:27)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좌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