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유리창1 : 김지민씨의 글을 읽고 
 병장 이승현 03-23 16:50 | HIT : 90 



# 막상 시 자체보다도 시를 둘러싼 이 토론의 장이 더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아서, 나름의 생각을 올려봅니다. 저는 현동씨의 생각을 지지하는 입장인데, 글을 쓰는 도중에도 논의가 한층 진행되고 있었군요. 저는 유리창1이라는 시에 대해 별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논의의 기저에 깔린 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민씨가 지적하신 대로 "폐혈관"이라는 어휘는 시의 내적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고 느낄만한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질감을 유발시키고 공감대 형성을 망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 따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좋은 시와 나쁜 시를 나눌 수 있다는 관점, 요컨대 포인트는 공감대 형성에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시의 내적 통일성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약간 진부한 이야기지만, 시가 시인의 내면을 떠나 하나의 완결된 (동시에 무수한 변용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유기체-텍스트로서 존재하며, 우리가 독자로서 그 텍스트를 대면하면서 각자의 접점과 공감대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시를 읽는다고 한다면  하나의 텍스트에 대하여 우리 각자는 서로 상이한 공감대, 즉 독자 고유의 내적 맥락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가 논의로 삼는 유리창1이라는 시에 대하여 우리는 부분적으로 "폐혈관"이라는 어휘가 부적절하다는 데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동의 또한 서로 다른 이해의 토대, 서로 다른 내적 통일성 위에서 성립되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부분적인 동의를 통해 좋은 시다 아니다 라고 결론 짓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습니다.

( 아마도 여기서 지민씨와 의견이 엇갈리게 되겠군요.) 단언컨대, 시인에게 독자를 배려해야 할 가시적인 의무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는 시인 자신의 내면에서 탄생하고 그 내면의 내밀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시는 공감 이전의 존재 자체에 목적이 있고, 공감은 말그대로 시의 2차적인 효과에 불과합니다. 유리창1이라는 시에 대하여 지민씨의 접근에 따라 "폐혈관"이라는 어휘가 그 이전에 제시된 새, 유리, 눈물 등의 어휘와 그 어휘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부조화를 일으킨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달리 이견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민씨 고유의 감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적으로 시인이 유리창1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을 때 달리 다른 표현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문제, 즉 시어의 선택과 표현에 있어서 우리의 이해와는 다른 시인 고유의 내적 통일성 위에서 이 유리창1이라는 시가 탄생했다는 문제를  검토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유리창1이라는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전혀 이질적이거나 생소한 것이 아닌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결 내지는 오히려 내적 필연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나아가 시의 표현은 시인의 내면적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오브제들의 필연적 연결성을 반영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초점이 되는 "폐혈관"이라는 어휘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 봅시다.

 폐혈관이라는 단어는 숨을 쉬는 기관으로서의 폐를 부각시킵니다. 숨은 생명을 상징하며, 시의 2행에 제시된 입김과도 암묵적인 연결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관과 생명으로서의 폐는 자기 자신 안에서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을 자연스럽게 이미지화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또한 폐가 공기가 교류하는 기관인 점에서 공기 안에서 날개짓하며 오가는 가벼운 이미지인 새들과 완전히 결부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 산새가 되어 날아갔다"라는 표현은 여리고 위태위태한 그리고 결국 곁을 떠나가 버린 어린 생명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데 지민씨가 지적하신 얼어죽을 만큼의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인의 아들의 죽음이 이 시를 읽는데 결정적인 기점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시의 풍부한 가능성을 제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시를 통해 표현된 시인의 내적 필연성보다 우선하는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작자인 동시에 제 1독자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태어난 시를 최초로 대면함과 동시에 독자로서의 새로운 이해를 처음으로 시작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세계에 대한 낯설고 생경한 느낌은 제1독자에게서부터 시작하며 그와 함께 수많은 다른 독자들이 그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충격 속에서 시가 상상력을 통해 비현실적인 것을 실재하게끔 만들 때 핵심적인 것은 이미지입니다. 그 이미지는 음악과 다르고 회화와도 다르며 단지 음악적인 것, 회화적인 것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뿐인 언어의 원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매번 새로움을 갈망하며 그에 따라 시인은 새로운 이미지를 갈망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시가 다른 예술장르들과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이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전적으로 제 주관에 불과합니다만) 어떤 시가 명시냐 아니냐에 있어서 주된 기준은 이 새로움, 익숙한 감정을 이미지로써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시인만의 새로움이 아닐까요? 지민씨가 말한 친절한 시쓰기(죄송합니다.) 또한 지민씨 고유의 내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다른 통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쓰기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3, 제4의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하지만 제1독자인 자기 자신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시인의 시쓰기를. 물론 제3, 제4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좋은 시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시인 자신에게 충실하고 투명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써놓고 보니 크게 어긋나는 것도 없군요. 그저 강조점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병 김지민 
 크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쌉싸름 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 감흥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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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공감대 형성이 잘되는 시를 무조건 '좋은 시'라고 칭하는 것이 아님을 승현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공감대 형성은 하나의 조건이며, 저는 이 '공감대'측면을 조금 높이 사는 것 뿐입니다. 굳이 설명드려서 죄송합니다. 

 시인이 독자들을 생각해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무릇 '명시'라는 칭호를 받기 위해서는 '공감대 형성'이 잘 이루어져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인이 독자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에게 좋은 시가 아니고, '명시'이려면 말이지요. 

 현동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승현님의 이 성실한 답글을 통해 '폐혈관'이 얼어죽을 만큼 어이없는 시어라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어에 비해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명백하게 명시를 '깐다'고 이야기 했던 만큼, 본문에서의 제 표현이 너무 곡해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있습니다. 시 감상에 있어서 저 또한 현동님이나 승현님 만큼 많은 감상의 갈래들을 열어두고 있으며, 시를 쓰는 사람 중에 하나로서 다른 누구의 독자보다도 저 스스로의 독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승현님께서 쓰신 마지막 문단에 크게 공감하고 있으며 저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시는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통된 분모로서, 시는 독자들이 수용하기 나름이기에, 제가 쓴 '명시 까기'역시 한사람의 독자로서 시를 읽고 수용한 결과물이므로 '나는 이랬는데 당신은 그랬군요' 정도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덧. 그 놈의 폐혈관은 본문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해 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먼길을 돌아가야 하므로 이성이 감성에 앞서나가 시적 감흥을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제가 시인이었어도 그 '폐혈관'이라는 시어를 포기 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거나 아쉽다는 겁니다. 03-23   

 병장 이희웅 
 지민님이 말한제로...'나는 이랬는데 당신은 그랬군요'정도로 끝나는것이 좋을듯합니다.... 

 이번 격론의 쟁점은 옆에서 보아온 결과 시를 보는 관점같은데... 
 그것도 그냥 시니깐 이런 각각의 관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시를 써 갈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저같은 풋내기도 있으니깐요... 03-23   

 병장 임정우 
 참 멋있는 사람들. 03-23   

 상병 이지훈 
 짝짝짝!! 조용히 눈팅하고 있었는데 너무 재밌네요. 
 참으로 생산적인 논쟁!!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