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외부성의 위치'를 생각하기
상병 김예찬 2009-06-08 16:45:22, 조회: 91, 추천:0
"바우만은 근대성이란 질서에의 강박인 동시에 '풍토적 미완성,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의 지향'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근대성의 본질은 '아직 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향해 달려가는 근대성은 매사에 '질서'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양한 질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그 질서를 제외한 모든 것들'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발상은 질서에 대한 강박을 낳고, 정해져 있는 질서가 아닌 다른 것들을 '무질서'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질서로 편입시키려고 강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근대성이란 '미완성'의 것입니다. 아무리 무질서를 질서의 공간으로 편입시켜도 그 미완성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근대성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내재된 무질서를 발견하고, 발명하고, 다시 질서의 공간으로 편입시키는 순환 구조를 띠게 됩니다. 달리 말해서, 근대의 질서는 필연적으로 무질서를 내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김예찬, [독서후기] <홀로코스트와 근대성> 中
'근대성'은 질서 지향적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속성은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그 질서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나누고, '정해져 있는 질서가 아닌 다른 것들을 '무질서'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질서로 편입시키려고 강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헤겔의 세계사에 대한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헤겔은 세계사를 기본적인 '동일성'(=질서) 속에서 이야기하며, 각각의 이질적인 세계(='무질서')를 그 동일성 안의 한 단계로 편입합니다. 즉, '외부성 또는 차이성'(='무질서')을 내부의 모순으로 내재화하고, 그럼으로써 가장 적극적으로 '외부'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헤겔의 세계사적 '정신'이란, 본래적으로 다방향적이고 다중심적인 것들을 하나의 방향과 중심에 기초한 질서로 통일해 놓는 것입니다. 이 것은 헤겔 고유의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서양의 19세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헤겔 역시 자신이 살아가던 19세기의 질서(=근대성)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겠죠.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가지 면모를 가진 '근대'의 사상들 역시 헤겔의 세계사 인식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외부성'을 사유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방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막수주의의 그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막수 자체는 강고한 19세기적 질서의 '외부'를 사유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수의 '외부성'은 막수의 아이디어가 막수'주의'로 확산되는 순간 바로 상실 되고, 어느샌가 '외부성'이었던 것은 이미 '당연한' 것처럼 간주 되고 맙니다.
조악한 비유를 들어봅시다. 강고한 '짬' 질서가 지배하는 생활관을 가정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종의 계기로 '짬' 질서가 마치 사회에서처럼 '나이' 질서로 바뀐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것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일이죠. 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구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신병 때부터 '나이' 질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활관의 대다수가 될 무렵엔, '나이' 질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충격'적인 일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당연한 일이 되겠죠. 그리고 '나이' 질서는 마치 지금 '짬' 질서가 불만을 낳는 것 처럼 또 다른 불만을 가져 오겠죠.
'외부성'을 상실한 막수주의 역시 막수-엥겔지수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활동하게 되었던 사람들 위주로 승계됩니다. 물론 서로 서로 수많은 차이와 갈등을 낳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레밍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당시 혁명을 생각할 수 있었던 국가들 - 이를테면, 독일 / 프랑스 / 영국 처럼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어, 막수가 말했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조건이 되어보였던 - 이 아닌 러시아에서 '개입'을 결단했고, 뿐만 아니라 레밍은 당시의 '정통 막수 이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무리 '해방'적인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완결(=자폐적)로 빠지게 된다면 그 '해방'은 '억압'의 이면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혁명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한 없이 새로워야 한다!) 레밍은 이러한 '외부성의 위치'에서 본질적인 막수적 아이디어를 되살릴 수 있었죠.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레밍은 또 하나의 자폐증으로 빠지게 되는 '소연의 신격 레밍'과는 또 다른 레밍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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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6:06:14
상병 김태완
잘 읽었습니다. 2009-06-09
13:04:51
상병 진수유
예찬님, 새로 글 작성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