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시]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 외 3편
상병 강수식 2008-10-09 13:47:21, 조회: 179, 추천:0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
1.
후회와 상처
아련한 것들이 중력을 잃고
헤매이는 어둠 속
침전하는 그리움이 뒤척일 때에
지나간 시간들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외로움이 되는
세 평 남짓한 어두운 방 안은
우주가 된다.
닿을 수 없는 추억들
성운처럼 붉게 타오르고
침묵 속에 가득찬 기억
잔잔히 떨리는 은회색 빛으로
반짝이는
2.
그리하여 소리쳐 불러보는 것들
파동을 잃은 의미없는 몸짓이 되고
나는 우주를 헤매다
외롭게 죽어간 강아지가 되어
가파른 추억 속을 항해할 때
멀리 새벽을 알리는 기차소리 들려오고
두 귀를 통과하는 기억이
그리움의 터널을 지나
나를 태우고 멀리 떠나가는 시간이 되면
우주가 된 사각의 방 안에서
나는 먼지가 되고
외로움이 먼지가 되고
그리움도 하이얀 먼지가 된다
철새에게 묻다
갈 곳을 찾는 철새
낮달 하나 내 눈동자에
물어다 놓고 가는
청춘의 어느 가을 하루
새파란 하늘 아래
빨갛던 여름
아릿했던 기억
나풀거리며 떨구어내고
빈 두 팔 벌린 저 나무처럼
태양 아래 쓰라리고 아팠던 기억들
말끔히 털어내고
나도 두 팔을 벌려 볼까
그러면 오늘을 지나
내 빈 가슴 가득 무엇이 맺히려나
하이얀 낮달 피어오르는 눈동자 속
갈 곳을 찾는 고독한 철새들은
알 수 없다며
날개를 파닥이는데
스물 두 해
꼭 그만큼의 고독과
내 삶의 물음표 하나로
가을은 깊어만 간다
호 통
그리하여 찬란한 십대가 가고
이십대가 왔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
꿈에 대한 열망
빛 바랜 달력이 되고
칸칸이 들어찬 숫자 위로 그려진
타성에 젖은 하루와
짙게 드리워진 지루함의 그늘 속에서
끝내 길을 찾지 못한 발걸음이
다시 찾은 모교
어느 위인의 동상은 이런 나에게
어떤 젊음은 독립을 위해 살았고
어떤 젊음은 민주를 위해 살았는데
너의 젊음은 무엇이냐 물었다.
뜨끔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걸어나오는 길
엉클어져버린 실타래를 안은 채
나무 위에 걸려 시들해져가는 연처럼
어떤이의 꿈은
바람을 타고 쓸쓸한 웃음이 되어
어둑한 운동장에 흔들거리는데
호통소리 귓가에 매달려
영, 떠나질 않는다.
그리하여 십대가 가고
찬란한 이십대가 왔는데
너의 청춘과 젊음 무엇이냐 하는
PM 07:00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번호들
되감을 수 없는 필름이 되어
지나간 추억을 현상하는 시간
잘라낼 수 없는 기억들
수화기 속에 흐르는 멜로디와 함께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 전신주를 따라
오선지를 그리며 가로지르는
지금은 그리움의 시간
몸에 밴 담배연기처럼
눅눅한 그리움
툭툭 털어내는 시간
몇 초의 기계음을 지나
끝내 닿지 못한 내 그리움
호출을 묻는 목소리 들려오고
별 빛처럼 떨리는
발신의 전파
닿을 곳을 찾지 못해 진동하는
무한 고독의 시간
그림자만 쓸쓸히 길어지는 저녁
바람과 이슬이 풀잎에 내려앉아
그리운 냄새를 퍼트리고
나는 창을 열고 앉아
차가운 가을 밤의 공기를
아주 가슴 깊-이 들이마셔보는
지금은 그리움을 호출하는 시간
입선한 작품은 '그리움은 먼지가 되는 시간' 입니다.
저는 사실 '철새에게 묻다' 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죠(웃음)
그나저나 이거 너무 부끄럽네요. 부족한 글이지만 잘봐주세요.
아, 그리고
오늘 점심먹고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선빵 맞으려고 얼굴 빤딱빤딱 하게 닦고 왔습니다.
사정없이 물어주세요(어흥!)
내년에는 우리 책마을에서 꼭!
최우수상이 나와서 등단하시는 분이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더불어 참가하신 다른 분들의 글도 궁금하네요.(웃음웃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21:08
상병 최광준
"~멀리 새벽을 알리는 기차소리 들려오고
두 귀를 통과하는 기억이
그리움의 터널을 지나
나를 태우고 멀리 떠나가는 시간이 되면~"
"~갈 곳을 찾는 철새
낮달 하나 내 눈동자에
물어다 놓고 가는~"
아... 좋네요~ 입선 축하드립니다! 2008-10-09
14:47:22
병장 이동석
전 진짜 책마을에서 나올줄 알았는데, 응모를 안한분들도 많은 모양이에요.
그래도 자그마치 입선도 나오고, 가작도 나오고, 이게 어딥니다. 허허. 2008-10-09
17:23:24
상병 이동열
저도 철새에게 묻다가 좋네요-
다시한번 입선 축하드립니다(웃음) 2008-10-10
12:06:52
병장 이동석
음, 다시 읽어보니
표제작인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이
나머지 세편의 성격까지 규정해주는 타이틀곡같은 느낌이네요.
전체적인 구조까지 생각하신거에요? 2008-10-10
19:42:01
병장 이현승
그리움은 아득합니다. 아득한 것들은 중력을 잃고, 우주를 부유하는 시간들이 되어
화자를 외롭게 찾아옵니다. 그리움 가운데는 ‘성운처럼 붉게 타오‘르는 후회의 기억도
있고,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추억들도 어깨를 나란히 해 비록 ’파동을 잃은 의미 없는
몸짓이라도‘ 하여 소리쳐 붙잡고 싶습니다. 그렇게 외롭게 죽은 강아지는 가파른 항해를
하고 시간은 흘러 갑니다. 마침내 새벽은 다가와 나를 외롭게 했던 기억들 모두와 ‘나’를
데리고 터널을 지나 저 멀리 떠나보내고, 그것들은 방 안ㅡ아니 이미 우주로 변해버린ㅡ
에서 하이얀 먼지가 됩니다. (왠지 김광석씨의 노래 ‘먼지가 되어’가 생각나는 군요)
허허. 이거 수식님 펀치 하나 날릴 수 없는 튼튼한 가드네요. 짝짝짝.
창작물도 이름 따라 간다고, 알맞은 수식어(!)가 돋보여요.
시어 선택도 탁월하시고(특히 성운!) 통일성을 의식하신 듯한 주제어 반복도 좋네요.
반복은 너무 물릴지도 모르니 적절한 변용에다가, 묘사도 덧붙인 것이 완성도도
높여주고요.
저는 위에서 쓴 것 같이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 이 가장 좋았어요.
아쉬운 점이라면 ‘강아지’라는 시어인데요. 우주를 헤매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시어이긴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항해’와의 조응이 조금 아쉽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어떤 ‘난파선’ 과 같은 이미지를 활용하셨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거 어쩌다 보니 상까지 탄 시에다가 제가 평가를 하게 됐지만 저는 순수하게 청자에
입장에서 감상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흐흐. (펀치 날렸다 발뺌.)
다시 한번 당선 축하드려요. 2008-10-13
09:09:11
상병 강수식
이현승 병장님 좋은 감상평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강아지란 시어를 쓴 이유는 으, 그 있잖아요.
러시아에서 쏘아올린 강아지. 라이카라고 하죠?
그 강아지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시작은(애초에 처음 생각했던 것은)
사각의 방안이 아니라 컴컴한 생활관이었고
침낭을 뒤집어쓴 내 모습이 마치 우주선안에 있는것 같다는 발상에서
시작해 대충 끄적여놓은 몇 줄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를 쓰다보니 좀처럼 어울리는 시어들이 떠오르지를 않아
변형시켜보다보니 좀 다르게 분위기가 가더군요(웃음)
그런데도 라이카,라는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빼지말자고
욕심부리다보니까 전체적인 구도랑 어울리지 않는 시어가 되고 말아버렸네요
하하.
지금보니까 조금 더 다른 시어로 했으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맞아떨어졌을 것 같단 아쉬움이 드네요.
다시 한 번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웃음) 2008-10-13
09:33:51
상병 강수식
동석/
애초에는 맨처음이
철새에게 묻다 --> 호통 --> PM07:00 -->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
순의 구조를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철새에게 묻다'를 나머지 시들을 묶는 성격의 시로 생각했던거죠.
외로움과, 이러한 외로움과 뜻모를 쓸쓸함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젊음에게 주는
따가운 호통과 또 다가오는 외로움속에서의 헤메임이 반복하는
이십대 중반을 향해가는 젊음이
시뻘건 여름과도 같은 시기이지만 언젠가 열매를 맺기위한 순간들이므로
잘 참고 견디어내는 젊음이 되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체적인 구도를 잡았습니다.
어찌보면
스물을 넘어서 서른을 향해 가는 젊음,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꿰뚫는 그 시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방황과 고독 또는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하하)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 더 많이 갈고 닦고 그래서 (가을이오면)
언젠가는
모두들 쉽게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통해서
이 시간의 젊음을 함께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시를 쓰자,
요게 제 목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들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2008-10-13
09:41:35
병장 이현승
아하-
저는 갑자기 왠 강아지라고 생각했는 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과연.
차라리 그렇다면 '라이카*처럼' 이렇게 하셨어도 괜찮을 듯 싶은데
*해서 '주'도 달고요. (막상 그렇게 써보니 더 어색해지는군요)
암튼 답글 감사합니다. 이해가 더 잘 獰楮. 2008-10-13
10:16:38
상병 강수식
아닙니다. 좋은 지적에 제가 감사하죠.
지금 생각으로는 저 시의 제목을
'그리움이 먼지가 되는 시간' 이 아니라
스푸트니크 2호 이런식으로 지어서
각주를 다는 것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가 탔던 우주선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움의 먼지가 되는 시간의 가제이기도 했구요)
각주란 방법을 생각 못해봤네요.
각주.
아하, 그런 방법이(크흑) 2008-10-13
10:3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