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수필] 삶의 길목, 그 어디에선가
상병 강수식 2008-10-09 13:51:05, 조회: 161, 추천:1
속이 메슥거린다. 목안으로는 낙지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듯 구토가 밀려오고 손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머리는 딱따구리 두 마리가 앉아 부리로 쉴 새 없이 쪼아대는 듯 지끈거린다. 황당해서 어찌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나는 아무리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달려도 멀미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떠난다는 즐거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한없이 기쁘고 설레기만 했었다. 그러나 오늘 갑작스럽게 찾아온 멀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나서게 된 즐거운 여행인 만큼 낯선 동반자라도 반갑게 맞아줄 생각이었지만, 멀미로 인한 신체적 고통만큼은 도저히 참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예상하지도 못하게 동행하게된 고통에 진저리를 치며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고통 때문에 눈물이 맺혀 가는 눈동자에 버스 운전기사가 보이고, 운전기사가 바라보고 있는 앞 유리창 위에 큼지막한 전자시계가 보인다. 전자시계 속에서는 이 버스가 도착하기까지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아있음을 알리는 초록색의 조그만 전구들이 야속스럽게 깜빡거린다. 한시간 넘게 멀미를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큼함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덕분에 나는 몸을 움찔거리면서 헉, 소리를 내고 가까스로 입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순간 옆자리에 앉아있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가 무엇인가 눈치챈 듯 흐음, 하고 불만스러운 헛기침을 해댄다. 나는 아저씨를 향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만 사용해 살짝 찡그리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미소가 고통에 못 이겨 포기한 것으로 보인걸까. 무엇인가 불안한 듯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반듯하게 다려진 아저씨의 양복주름이 보인다.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왔는데, 행선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옆자리 아저씨의 양복주름이나 쳐다보면서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신세라니... 갑자기 억울해져 소리라도 치고 싶어진다. 아저씨, 나도 고통스럽다구요. 왜 한 번도 겪어 본적 없는 고통을 갑작스럽게 겪어야 하는 거냐구요! 아저씨의 그 뻣뻣한 양복에 피해가 가지는 않게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나는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려는 그 마음 속 외침과 고통스러운 비명을 멀미와 함께 간신히 눌러버리고 창 밖을 바라봤다.
얕게 진동하는 차창 밖으로는 내가 갑작스럽게 겪고 있는 고통과 상관없다는 듯 쉴 새 없이 풍경들이 지나간다. 그 낯선 풍경들과 함께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검정색의 아스팔트도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문득 지금 나를 태우고 달리는 이 버스와 나와의 약속이라고는 차표에 적혀진 행선지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굵은 고딕체로 인쇄되어 있는 ‘강릉’이라는 글자가 갑자기 우스워 보였다. 만약 이 버스가 행선지를 잊은 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면? 멀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태운채 계속 달려나간다면 어디에 멈춰설까? 어쩌면 버스는 멈추지 않고 여행은 계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생이라는 여정의 끝에서 멈추어 설지도. 아마 멀미 또한 들쑥날쑥한 고통의 그래프를 그리며 그 긴 여정과 함께 할 것이다. 그 때였다. 낯선 풍경들과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길이 어느새 두려움으로 변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한 것은. 그러자 멀미가 더욱 고통스럽게 나를 헤집기 시작한다. 고통을 그래프로 그릴 수만 있다면, 지금 그래프는 최고점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가고 있으리라. 순간 놀랍게도, 정점을 향해 치닫는 고통의 그래프와 시큼한 멀미의 느낌 뒤에서 삶의 어떤 비밀을 엿 본 것만 같아졌다. 지금 나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생이라는 여정 어딘가에서 오늘처럼 멀미가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비밀을.
아직 나의 인생은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는 것, 대학을 졸업하는 것, 취업, 결혼과 주택마련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긴 여정들을. 그리고 그 여정의 갈림길 어디에선가 꼭꼭 숨어있던 멀미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나를 곤욕스럽게 만들 것이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주택 융자금과 전기세와 수도세와 내 아이들의 학비와 싸워야 할 때, 대출금과 카드값 고지서와 씨름하고 있을 때....... 어느 날인가 문득 잠에서 깨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게 뭐였더라?’ 라고 한숨처럼 중얼거리게 될 때, 시간이 할퀴고 지나간 청춘의 꿈과 열정이 그리워져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될 때에도. 멀미는 갑작스럽게 찾아와 오랜 여행의 익숙한 동반자처럼 나의 손목을 잡는 것이다. 더욱 혹독하고 집요하게 나를 고통 속으로 잡아끌기 위해. 그 때 느끼게되는 멀미는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오는 지독한 여독, 쉴새없이 앞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가속에 대한 거부감, 삶에 대해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피로감이나 권태감과 같은 어마어마한 삶의 무게를 더해 멀미는 더욱 강력해져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나는 덜컹거리는 버스의 진동을 느끼며 굳게 다짐했다. 오늘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멀미를 꼭 이겨내야겠다고. 마찬가지로 어느 날 삶의 길목, 그 어디에선가 만나게 될 멀미 또한 이겨낼 것이라고.
그러자 마음이 느긋해졌다. 덩달아 고통의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모든게 참을만해졌다. 목 뒤로 느껴지는 불쾌한 이물감도, 손바닥으로 축축히 흐르는 땀도, 지끈거리는 머리의 두통까지도. 이내 못마땅하기만 했던 옆자리 아저씨의 빳빳한 양복주름까지도 정겨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차창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위로 내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묻고 싶어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 어디쯤에선가 삶의 무게가 주는 멀미와 마주해야 할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그 때 마주하게 된 멀미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알아가는 것, 그렇게 멀미를 이겨내고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을 인생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지 않느냐고. 아직 내가 삶을 다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 무게를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아마도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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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분 낙방한 작품입니다.
역시 많이 부족하네요(웃음웃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21:37
병장 이동석
저, 작년에 입선하신 작품도 궁금해요.
그건그렇고, 수필들은 2편이상씩 응모하지 않나요?
(아주 뽕을 빼는군. 하하) 2008-10-09
17:24:12
병장 이동석
멀미가 너무 스리슬쩍 사라지는군요. (수식님이 원하신데로 선빵입니다)
아마 책마을 게시판에 이 글이 올라왔다면
그렇게 가지로 가고 싶었단 말인가라는 혼잣말을 되네었겠네요.
수식님의 글은 이게 아니지 않나요?
작년에 입선한글의 연장선상에서 너무 입상만을 노리고
수식님 본연의 글보단 심사위원 입맛에 맞추려고 한게 오히려 이런 결과를 나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수식님은 글을 완성해냈으니까요. 선빵을 날리려니 굳이 선빵을 날린것이고, 충분히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여기 글도 가지로 보낼수 있다는거 아시나요?
가지로 2008-10-09
17:47:29
상병 김동욱
다세포 소녀였나요, 그 알수없게 생긴 '가난'을 계속 등에 업고 있는 소녀가 주인공이었던 게.
그처럼 '멀미'를 등에 업고 있는, 아니 머리에 이고 있는 저는 사시사철 울렁울렁이랍니다. 그래서 제가 잠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제게도 알려주세요, 그 '지혜'를. '다짐'만으로는 이 놈이 사라지지가 않아요, 2008-10-09
23:20:53
상병 강수식
수편은 2편 응모죠.
한 편은 그냥 편수 채우려고 대충 쓴거라서(하하)
기회가 된다면 까보이겠습니다.
작년에 입선한 작품은 '갈고리를 든 노인' 이라는 수필이었습니다.
책마을 주민분들의 병영문학상 진입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꺼내보이겠습니다(하하) 2008-10-10
08:31:06
상병 강수식
아, 그리고 저는 쓰고나서
(누구나 그러겠지만) 몇번이나 고치고 했기때문에 오히려
자신만만했는데 너무 제가 제 글에 빠져있었던 것 같네요.
지금 읽어보니 아닌게 아니라, 멀미가 너무 스리슬쩍 사라졌네요.
그렇게 괴롭게 만들던 것인데.
전 이상하게 글을 쓰면 글에 높낮이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내심
이 정도면 심사위원이 읽어볼만 하겠지? 좋아할꺼야.
라는 생각으로 썼는데 그걸 동석님께 들켜버렸군요
흠칫, 했습니다. 하하.
좀 눈이 트이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2008-10-10
08:36:11
상병 강수식
동욱/
멀미는 아무리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봐도 힘들더라구요.
저같은 경우는 선글라스도 써보고 손을 눌러서 지압도 해보고
별짓을 다해봤는데도..
그래도 딱 하나 방법이 있다면..
사랑하는 어여쁜 여인네의 손을 꼭 잡고
(혹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 좋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때리지는 말아주세요, 동욱님.. 2008-10-10
08:38:49
상병 이동열
작년 병영문학상 수상집을 훑어보며 수식님 성함이 있길래
책마을의 수식님인가 했는데- 맞았군요... 왠지 뿌듯(웃음) 2008-10-10
12:07:58
상병 김동욱
수식/
아마 그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고, 사실 지금 제가 가장 갈구하는 것이
바로 그 존재입니다!!
정곡을 찌르셨어요!
저에게는 '소냐!'가 필요합니다.
수식님,
수식 수식 하다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일본영화가 번뜩 떠오릅니다.
멍,
죄송합니다 때리지는 말아주세요 2008-10-10
22:21:20
병장 이동석
멍- 저도 그 말장난했었는데,
동욱님 저랑 뭔가 통하시는군요. 허허. 크크. 2008-10-11
01:10:22
병장 이동석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신가요? 뭐 이렇게 물어봤다 죽빵맞은듯. 크크. 2008-10-11
01:10:41
상병 강수식
크크.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군요.
뭐, 관련은 없습니다.
수식의 그 수식이 아니고
먹는 물의 수식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 수식도 아닙니다(땀땀)
樹植 입니다. 나무 수자에 심을 식자요.
뜻풀이 하면 나무를 심다 입니다. 제 이름은 말이죠.
생일이 식목일이냐고 물어보시면 대략 낭패입니다. 2008-10-13
09:2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