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맹강님께 : 벡터와 스칼라. 
 
 
 
 


/부정적 외부효과라 할지라도,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후생과 경제적 후생이 외부효과에 의한 경제적 후생수준을 뛰어넘는다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요. 틀리셨습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후생 총합과 외부효과의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그 후생과 손실이 각각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합니다. 강 님은 벡터(vector)를 스칼라(scalar)로 보는 오류를 범하셨습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용은 특정 사람들에게 이익을 줍니다. 절대로 사회 일반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경제적 외부 효과는 기업이 주는 혜택과는 다르게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줍니다. 둘 모두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이익을 보지 못하는 동시에 피해를 보는 경우), 외부효과를 보다 사회적 후생이 더 크게 증가했다 해도 책임지지 않을 정당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발언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행위가 되겠지요. 수량적인 크기 비교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관계 없는 사람에게 손실을 전가시키고 자신은 이익만을 빼먹겠다는 태도는 아주 많이 잘못된 입장입니다. 

그리고 <외부효과에 의한 경제적 후생수준을 뛰어넘는다면>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경제적 외부효과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면> 이라고 말해야 옳겠죠. 아. 물론 이렇게 표현을 고쳐도 책임 질 필요는 여전히 있습니다. 후생(厚生)이란 단어는 사회적 손실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외부성에 대한 직접/간접(A.C.Pigou) 규제는 강 님께서 사용하신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반박 논거가 아닙니다. 반대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말이 높아지자 정부에서 피구의 조세를 채택한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말이 나오기도 전에 척척 알아서 시장의 실패를 바로 잡은게 아니라 제대로 굴러가질 않고 외부성에 대한 공론화가 나오자 기존의 틀을 수정한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장의 결과물을 갖고 다시 사회적 책임을 공격할 수는 없겠지요. 또한 외부성에 대한 문제가 이러한 예의 규제들로 완벽히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외부성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회적 책임이 낳은 이러한 규제들이 되돌아 부모를 공격하려면, 사회적 책임이 구시대적 유물이 될 쯤에서야 옳은 공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아직까지 아니죠. 한참 멀었습니다.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글을 거론하긴 했지만 그것은 제 머리 속에서 정리되어 다시 저의 언어로 나온 글입니다. 그리고 본문보다 긴 답글을 통해 저의 논리를 충분히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되물어 보겠습니다. 강 님께서는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언어로 말하시나요?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영향 속에 언어 체계를 구성하고 논리를 세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자신의 언어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논문에 존재하는 수많은 발췌를 표시한 각주와 무수히 많은 참고문헌들의 목록은 그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받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포섭했다는 점과 논문의 정확성을 다각도에게 관찰했다는 점을 들어 높히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설령 한 글에서 유명한 텍스트의 일부를 통째로 발췌한다 해도 그것이 진리를 담고 있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 '유명인의 글이라 반박할 수 없음'이라는 이유로 배척받지 않아야 합니다. 진리는 진리로서 기능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배척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글도 충분히 다른 입장에서 잘못을 지적할 수 있고 논리적 결함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권위에 호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권위자의 글이라 해서 '수긍하거나 다른 권위를 빌려 공격하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챔피언이라해도 연습생이 때려눕힐 방법이 분명 존재합니다. 실재 권투에서도 그렇고 이곳 책마을 검도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주 아주 힘들긴 하겠지만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야 애로우든, 크루그먼이든 때려눕힐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연습생이라 생각하여 겸손한 덕목을 지니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한계를 그렇게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정보를 외우는 것이 유능한 사람의 덕목이었던 과거에서, 사방에 널린 정보를 선택적으로 가져와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것이 현대에 이르러 실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언어로만 말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보는 건 어떠실런지요. (제가 경험하기로는 비문학의, 특히나 학문적 글에서 "자기만의" 언어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보자면. 어떤 것이 자기의 언어고, 어떤 것이 타인의 언어입니까? 강록씨의 당구 사랑을 감명 깊게 받아들여 제가 끌어치기와 밀어치기에 대해 비유로 경제학적 설명을 해나간다면 그건 강록씨의 언어일까요? 크루그먼이 감행한 공급 중시 경제학자들을 비판한 틀을 받아들여 같은 논리로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주자는 논리를 격파한다면  그건 누구의 언어입니까? 칸트와 니체의 신의 죽음과 또다시 찾아온 선험 철학의 절대화를 비판한 이 아름다운 논리를 받아들여 멈춰있지 않음을 제가 설파한다면, 제 이야기는 누구의 언어입니까? 답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의 이익(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면,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잘 돌아간다는것은 아시리라 봅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이것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고요. 강 님께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나치게 맹신하시는 경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시장은 분명 개인의 창의력과 경쟁력을 높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장치를 갖고 있지만, 그것이 원만하게 기능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거대해진 현대 기업의 경우는 그 시장실패의 빈도가 잦아지고 그 피해규모 또한 엄청나졌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거대한 기업과 대치한 개인의 도구화를 막기 위한 일환으로 기업 윤리가 나타난겁니다. 




기업 윤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른 것으로 간주하셨는데, 전 본문에서 밝혔다싶이 기업 윤리 안에 사회적 책임을 한 요소로 설명했습니다. 저와른 다른 정의를 내리신 것 같은데, 그것이 어떻게 나누어질 수 있는 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문제의 경우에는 다른 분들에 대한 답글에 중첩되는 내용이라 생각되어 또 첨언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보인신다면 다시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장 맹강 (2006/03/21 18:12:59)

제 부족한 글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시고, 부연설명까지 곁들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역시 학문이란 어렵다는 생각과 더불어, 난 아직도 많이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드네요. 
역시,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이시라 그런지, 확실히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네요. 
많은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의 요지완 약간 다른 질문이지만, 궁금해진 이상 질문을 드려봅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관계 없는 사람에게 손실을 전가시키고 자신은 이익만을 빼먹겠다는 태도는 아주 많이 잘못된 입장입니다. > 

이건 올바른 생각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경제학에서는 도덕이나 윤리에 대해서가 아닌, 오로지 경제적인 입장으로만 바라보지 않나요? 그렇기에 전 글을 쓰기에 앞서 <철저하게 경제학> 이라고 했었는데.. 
오로지 경제적인 입장으로만 본다면, 손실을 전가시키거나, 이익만을 빼먹는 부분은 배제해두는걸로 알고 있는데..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마지막으로, 기업윤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논리적인 이론으로 판단할게 아닌, 
제가 직접 기업을 운영해보면서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웃음)    
 
 
상병 엄보운 (2006/03/21 18:19:20)

제 정신없이 긴 글을 차분하게 읽어주시니 제가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 님과 대화하며 글을 쓰며 놓쳤던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이 더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경제학은 냉혈한 학문이긴 하지만 워낙 그 학문적 넓이가 거대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하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규범경제학과 같은 경우는 경제 철학과 역사 경제학이 포함되어 있어 일반적인 기술적 경제학과는 그 논조가 많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기술 경제학이라 하더라도 특정 개인에게 손해가 몰리거나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의 손해를 최대화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사회적 규칙을 지켜가며 그 속에서 어떠한 원칙들을 배워나가는 학문입니다. 물론 저도 짧은 공부 기간을 두고 이렇게 말하려니 쑥쓰러워지는군요. 결론은!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 염두해두지는 않지만 늘 공동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고 각 이론마다 그림자처럼 그 이론의 전제를 이룹니다. 뭐- 거의 있으나마나한 존재상의 정의지만 말이예요. 

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병장 맹강 (2006/03/21 18:34:41)

와우, 빠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웃음) 

죄송하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엄보운님의 꿈과 목표에 대해서 살며시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벌써 물어봐버린건가요?)    
 
 
 병장 고선준 (2006/03/21 18:42:36)

이런 경영 윤리 에 대해서 모럴해저드를 언급하면서 CEO에 대해 써놓은 글이 최근자 매경에 있네요. 
언제나 순수한 " 한 " 학문에 도덕 철학적 개념이 들어 가면 판단이 어려워지죠.. 
그리고 아담스미스를 좋아 하는 저로서는 그의 이론을 완벽하게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들이 있기 때문에.. 완벽히 실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네요. 
그의 이론으로 격차는 생기 겠지만 어찌됐건간에 그의 이론 대로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과거 보다 현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낳다는 것이지요. 
여기다가 댓글 할 처지는 아니지만 쭉 읽으면서 기업 윤리에 대해 한번더 생각 할수 있어서..좋았 
습니다.예전에는 상신씨와 이야기 했었는데...그도 결국 세상이 않되니 나라도 해야지.. 
(자선사업쪽으로 나왔었죠.)실제로 꿈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생각도 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경제학과 경영학을 배운 사람끼리 이야기 했는데..좀더 철학적 도덕적 으로 깊게 배우 
신 분과 이야기 했다면 좀더 저희들이 알지 못한 부분까지 마음깊이 새길수 있었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잼있는 대화 였습니다.    
 
 
상병 박종민 (2006/03/21 20:37:47)

바로 출력들어갑니다. 
대만족입니다 대만족. 
이런 토론이 계속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어요- 와. 너무 좋습니다(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