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독서후기] 난외각주, 『사람의 아들』 (2)  
상병 김태완   2009-06-10 162534, 조회 40, 추천0 

일단 전 독실한 종교인이라서 이러한 논리를 펼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을 전제로 하며 위의 글에 대한 반박을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난외각주 정도가 아닌걸요 여태까지 책마을에서 논란이 되었던 근대성, 종교, 소통 등의 말들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지금까지 책마을에서 이야기 되어지고 있던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서의 해석을 추구하셨군요. 즉, 예수를 믿는 것을 예찬님과 같이 막수주의적 관점으로 다가가 '외부성'의 측면으로써 소통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날 때부터 원죄가 있음을 전제하여 민요섭과 같은 보편적 환원에 대한 주장을 단지 죽음으로의 도피로 보고 이를 '폭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종교를 믿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모두 '몰지각'으로 밀어 넣으셨군요. 읽으면서 참 섬뜻섬뜻 했습니다. 명규님은 지금 이 순간이 삶을 이끌어가는 질서가 상실되어 이제는 기존의 것들이 모두 무너져야할 시기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보수주의적이라서 그런지 평화주의적이라서 그런지 전 기존의 것을 그렇게 현재를 정지시키면서까지 개혁되었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보편적 환원을 열렬하게 믿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어느정도 폭력이라고 인정됩니다. 하지만 전세계 50%가 넘는 가톨릭과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폭력 행사의 피해자로 치부해야 하나요.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동일성 신화에 의한 폭력임을 인정하라는 것 자체 또한 폭력 아닌가요. 그리고 폭력으로 인정한다 쳐도 현재를 정지시키는 사건, 불화의 결과물. 메시아적인 혁명, 가상적 예술에서 얻어질 수 있는 희망 같은 것들이 과연 존재할까요. 회의적일 수 밖에 없군요. 너무 허상적이예요. 차라리 진보와 물질주의, 합리주의적 세태의 조류의 영향으로 내 안에서 신으로의 회귀나 신 지향적 사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차라리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여 어떠한 유일신을 믿기보다 주변인과의 관계 즉, 소통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원불교를 믿어야 한다는 말이 더 진실적으로 다가오네요.

전 지금 믿고있는 유일신 종교들을 경전의 폭력성에 의해 파생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 종교들에 대한 대안책으로 주위 사람과의 소통을 제시하며 이를 위대한 지혜라고 말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 판단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믿음이 적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대는 이미 합리주의적 사고를 요하고 그 합리주의적 사고에 경전들의 복음은 배합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합리주의적 사고는 근대성을 따라 소통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인지시켜줄 것입니다. 정지에 의한 급작스런 변화가 아닌 자연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거죠. 이런 화해가 진정한 화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아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딴지를 걸어 마구 싸우고나서 바로 화해를 청하여 그 아이의 생각을 돌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미 바뀌고 있는 생각에 대해 딴지를 걸지않고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폭력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내 생각과 맞지 않으므로 무조건적으로 배척한다는 식의 태도로 마음이 바뀌려 하다가도 오히려 반발심에 의해 미움을 사기보다 바뀌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며 그들의 생각을 인정해 주는 것이 어떨까요.

이 것은 논외 이야기입니다만 종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좀 더 덧붙이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에 종교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각박한 사회 안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종교를 가지는 것입니다. 즉, 소통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서 종교를 가지는 것입니다. 각박한 사회가 아닌 인간미 넘치는 곳에 소속되려 합니다. 현재 철저히 합리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고가 박힌 청년들이 종교를 가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것입니다.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 종교를 가집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 종교활동을 합니다. 소통을 위해 종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소통을 하려합니다. 종교가 없어지면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줄 대안책이 딱히 없습니다. 사회에서 종교의 배제 또한 신추종자들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배제와 마찬가지입니다. 히키코모리들의 소통의 돌파구로 작용하던 종교가 없어지면 소외로 가득한 이 사회는 결국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소통의 장과 방법이 명시되지 않으면 자살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고 범죄가 난무할 것입니다. 


근시안적으로 보았을 때 종교인들은 어찌보면 사이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시안적으로 보면 비로서 종교가 존재하는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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