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단편소설] 자연사박물관
일병 홍명교 [Homepage] 2008-10-13 16:27:59, 조회: 149, 추천:0
변
제7회 병영문학상 작품공모전 단편소설 부문 응모작입니다. 간신히 입선작에 뽑혔네요. 덕분에 슈가 하나 챙겼구요. (웃음) 제 생각엔 대체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무난한 면이 강해서 꼽힌 것 같아요. 이야기 전개에서 이것저것 다 흘리고 다니지만, 다행히 큰 거 하나는 지키고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다 쓴 다음에 수정을 여러번 했습니다. 프린트한 다음에 예전에 이곳 책마을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친구 강세희와 몇몇 학교 동기, 그리고 아빠한테도 보내서 피칭을 받았구요. 아빠 피칭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됐네요. 그런데 귀찮아서 크게 손보질 못하겠더라구요. 엄두가 안난다고 해야하나... 역시 소설가들은 참 대단해요... 전 귀차니즘이 너무 강해서...
처음 쓰기 시작할땐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었으나, 처음 쓰는 소설이라서 그런지 쓰다가 필력이 후달림을 뼈저리게 느꼈고, 결말부에 가서는 열흘내내 고민하다가 마감 시간에 쫓겨, 후다닥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사건적 단서들이 억지스러운 면도 눈에 띄게 보이고, 또 여자의 캐릭터가 붕뜬 느낌이 강합니다. 어떻게 마무릴 못하겠네요.
저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때 비관적이고 씨니컬하며, 반항적인 분위기가 항상 물씬 풍기는데, 이 소설은 왠지 갈팡질팡해요. 왠지 너무 비관적이고 씨니컬하며 반항적으로 쓰면 입상 포기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저 역시 이런 식의 서사성이 뚜렷한 이야기보다는 카프카나 뒤라스 같은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건 아예 엄두도 내지 않았답니다. 괜히 겁없이 시작했다가 책임도 못질 것 같더라구요.
많이 부족합니다. 아무튼 나름 7월 한달간, 특히 7월중순~말경에 열정 불태운 소설입니다. 잘 읽어주시고, 신랄한 피칭 해주세요. 아이고. 이런 표현 죄송하지만, 떵 하나 오래참았다가 싼 느낌이예요. (웃음) 후련하네요.
자연사박물관
1.
파리, 런던, 뉴욕, 모스크바, 오타와, 부다페스트, 로마, 프라하, 바르셀로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유명 도시에 간다면 이곳을 찾는 걸 잊지 않기를. 울란바토르나 나이로비처럼 드넓은 초원 위에 세워진 도시에도 이것은 장엄하고 고매한 자태를 제며 솟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히 단언한다. 이것은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의 증거물이며, 생명사의 집적체임을!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 29개 회원국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거든요. 과학기술강국을 부르짖는 우리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 하나 없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들의 거대 도시 서울에도 자연사박물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며 저명한 재야학계 인사와 모 시민단체 간부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한 8년 전 텔레비전 뉴스 꼭지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느 지질학 교수는 제법 철학적 명제까지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문명사보다 수만배 더 긴 자연사를 망각한다는 건 결국 시공간이라는 주제를 영원히 짊어져야할 우리 인간의 책임 방기가 아닌가 싶어요. 화석이란 그냥 돌맹이가 아닙니다. 시간 그 자체의 증거물이고, 오늘날 문명이란 것도 결국……”
시간, 인생, 미래, 과거. 그리고 어느 뉴스 꼭지의 자연사박물관.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되든 그때 우리만큼 시간과 인생, 과거에 대해 고민했던 이, 누가 있었으랴. 그날 밤 후방의 모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던 우리들은 생활관 안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었는데, 점호시간이었지만 뉴스를 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여긴 당직사령 덕분에 텔레비전을 켜 ‘9시뉴스’를 보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팔팔한 시절에는 도무지 누구도 세상사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으나, 간혹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에 대한 놀랄만한 소식이 나오지는 않을까, 아니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처럼 무언가가 풍덩하고 푹 꺼져버리거나 남대문이나 대구지하철처럼 홀랑 재로 사라져버리는 대사건이 터지지는 않았을까, 하며 시간의 그 잔인한 승부에 목을 길게 내빼고 지리멸렬한 삶의 죄목에 대한 형벌 따위를 기다리듯, 뉴스 밖 세상사의 쉴 새 없는 변화들에 맞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항상 똑같았던 일상의 반복과 반복 속에서, 불변과 응고의 모든 것들에 대한 제의를 보내는 생명비의의 무당들처럼, 시공간적으로 상이한 증험(證驗)을 우리 나름대로는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관절 자연사박물관이란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까마득해 뵈지도 않는 전역일의 대미래 앞에서, ‘이태백’이나 ‘취업대란’이라는 말들로 대표되는 20대 청년백수들의 앞날에 대해 먹먹해 하며, 안개 속에 서있는 방랑자처럼 우리의 희뿌연 미래의 어름을 유일무이한 관심사로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한 녀석만이 그 자연사박물관의 설립 요구에 관한 뉴스 꼭지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대뜸 흥분하며, 이러다가는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될 그 공룡과 삼엽충, 박테리아 따위의 화석들은 몇 백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세상에 그런 변하지 않는 것들을 모아두는 곳이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흥분하여 떠들고 있었다. 그래? 그런가? 정말 세상의 모든 건 변해버리고, 또 변하다 못해 결국에는 썩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지만 진리가 무엇이건, 또는 진리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돌아가는 것만 같은 저 벽걸이 시계와 달력만으로 족했고, 그때 우린 어서 어른이 되고 어서 저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가고만 싶었으니, 말 그대로 “말 다한 것” 아닌가! 다만 그때나 지금 이 순간에나, 놀랍게도 단순하고 묵직하게 살아가는 그 녀석 영석이만은 우리들과 다르게 생각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2.
결코 넘겨지지 않을 것만 같던 달력들도 모두 갈진되었다. 우리는 개구리 마크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고,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우리가 다시 모였을 때,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두들 예상과는 다른 몸짓과 억양, 외양으로 서로를 맞이하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은석이가 특히 심한 경우였는데, 녀석은 우리들의 군복무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고 과묵하게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 우릴 놀라게 했다. 항상 생활관 한 쪽 구석 제 자리에 앉아서 사시사철 빼놓지 않고 온갖 소란의 주역이 되며 중대장의 꾸지람을 독차지하곤 했었기에, 우리는 은석이 요란법석하게 양 팔을 벌리며 호프집 안으로 들어설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은석은 희번드르르한 검정색 정장차림에 번쩍거리는 은색 타이를 메고 나타났다. 짧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머리에는 기름칠이 듬뿍 되어있었고, 껄렁거리던 그 특유의 발걸음도 자못 당당했다. 그것은 분명 애널리스트나 인기 학원강사정도는 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어학 공부 같은 ‘자기계발’과는 담 쌓고 지내던 그가 뻔지르르하고 잘 나가는 스펙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술자리가 농익어 노골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 전까지는 궁금증에 시달려야 했다.
현창은 또 어떤가. 깡마른 체구로 훈련 때마다 저체중으로 인한 체력저하 현상에 시달렸던 그 녀석은 온몸에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어깨도 제법 벌어져있었다. 말끔한 정장차림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평범한 은행원이나 자동차 영업사원 쯤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아우라를 풍기었다. 우리 중 절반은 그가 어떤 조직의 행동대원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모두들 자못 긴장해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잦은 포상휴가에 외박까지 독차지하던 얄미운 정훈도, 축구경기 때마다 현란한 드리블로 연병장을 휘젓던 경태도, 말없이 멍하니 창문 밖만 쳐다보다가도 자율 시간만 되면 침상에 엎어져서 자던 재형이도 모두 조금씩은 변해있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8년 전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녀석은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우리들도 변했다. 하지만 항상 엉뚱하기 짝이 없는 소리만 하며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던 ‘송영석’, 그 딸보 녀석도 변했을까?
약속시간보다 30분정도 늦은 그는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까지의 ‘등장들’로부터 쌓인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영석의 등장에 우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십년 전 그때의 얇은 츄리닝 바지에 낡은 러닝화 차림이나, 상의로는 요상한 기념티셔츠 하나 걸치고 온 것까지 어느 하나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는 퍽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으며, 푹 눌러쓴, 챙이 길게 달린 곤색 모자 밖으로 감지 않은 듯 푸석푸석하고 이리저리 꼬인 머리카락이 삐죽빼죽 삐져나와 있었다. “이야. 영석이 넌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츄리닝 바지에 다 헐어빠진 러닝화하며, 모자까지!” 하나같이 똑같은 인사말에 영석은 무슨 소리냐며 발뺌했다. 6년 전엔 이런 헐렁한 츄리닝은 입은 적도 없으며, 이런 신발, 모자까지 군대에서와는 정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당사자가 펄쩍뛰며 부정해도, 우리들의 약속된 기억에 따르면 그는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영석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꼽아가며 얘기했지만, 도통 재미없는 그의 이야기 덕에 영석의 지지자는 단 한명도 생기지 않았다. 자리가 무르익어 취기가 조금씩 올랐을 때, 돈 꽤나 버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이 영석에게 신발 하나 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제안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도 곧 있으면 어느덧 서른이었고, 서른이라면 친구건 부모이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통념이 모두의 머릿속에 가득 차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석은 제법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들이라면 대뜸 화부터 냈을 것이다. 영석은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의 배 속 깊은 곳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소리로 울렸을 것이다. 밑창이 다 나가서 벌어진 낡은 러닝화도, 헐렁거리는 ‘2001 부산국제영화제’ 기념티셔츠도 6년 만에 만나는 군대 선후임, 동기들과의 모임에 입고 나올만한 차림새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우리 중 절반 이상은 애인이나 와이프와 동석했었는데, 반면 영석은 역시 혼자였다. 우리들이 2차로 간 술자리에서 결혼과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영석은 잠자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몇몇이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며 무심코 그가 앉았던 자릴 보았을 때 그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먼저 가보겠다는 그의 말에 아무도 말리거나 붙잡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혼자서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고 있어서 거북하고 불편하기도 한데다 더 이상 술값을 낼만한 여력이 다 떨어졌나보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보, 놀라울 정도로 한심한 놈! 지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칫, 그런 녀석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해. 영석이 가버리자 모두들 그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아직 20대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변변찮은 직업도 없었고, 가난했으며, 패션은 꾀죄죄했고, 데리고 올만한 여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석은 외모 같은 건 아무래도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었고, 그것을 거추장스러운 껍데기 따위로 취급해 버리기까지 했다. 벌써 칠년째 그는 오로지 영화 하나에 미쳐 영화관만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으며, 그럼 연애라도 좀 해보지 않았을까, 싶지 않겠냐마는 결코 그렇지도 않았다. 영석은 ‘한심한 청춘’의 표본, 절멸한 아날로그 시대의 화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3.
영석이 회기동 경희대 후문 앞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 거리에는 무척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먼지 가득한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고, 언덕길 2차선 도로 위로 이따금 트럭과 택시가 지나갔다. 이놈의 서울이란 도시에는 먼지가 왜 이리도 많은 걸까? 희미하고 몽연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세상만큼이나 이 도시의 공기는 뿌옇고 쾌쾌한 냄새마저 났다. 거리 양옆으로 두세층짜리 가게들이 옴닥옴닥 붙어 쭉 늘어서 있었고 이 심항(深巷)의 맨 끝 어귀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아니 ‘깊숙하다’고 자랑하는 중고 비디오가게가 있었다. 그곳은 온갖 진귀한 비디오테잎 수만개가 모여 있었는데, 사장의 말에 따르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여느 영화 수입사의 아카이브도 부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한국영상자료원에 없는 “십년에 한 작품을 만드는 과작의 현인” 빅토르 에리세나 “이미지 시인” 알렉산드르 도브첸코의 비디오들도 이 가게에는 버젓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추루(醜陋)한 비디오가게에 누가 찾아오겠는가. 더군다나 인터넷에서 거의 모든 최신영화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옛날 비디오들 따위는 대중의 관심사항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만인이 8차선 고속도로를 따라 줄줄이 움직일 때 세상의 비뚤어진 틈새만을 쫓아다녀온 미치광이 여행자들이 고불고불 휘어진 시골 논길 위를 따라 걸어서 어디론가 향하듯, 2002월드컵으로 세상이 떠들썩하게 뒤흔들린 그때나 2008년 오늘이나 영석이 변함없이 먼지 날리는 회기동 거리에 처연하게 서있듯, 세상 모든 취향과 유행, 취미들이 변하는 동안에도 옛날영화에 미친 영화광들의 취향은 고귀한 화석처럼 변할 수 없기에, 영석은 수년째 이 가게를 찾았다. 게다가 그는, [이 허름한 가게의 사장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화광들만이 찾는다는, “미래영상”의 알바생 아닌 알바생이었다. 요컨대 월급은 한푼도 없이, 일주일에 세 번씩 밤을 새며 사장 대신 가게를 봐주는 대가로 원하는 영화는 뭐든 공짜로 빌려가는 식이었다.
오늘도 사장은 버릇처럼,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며 곧 가게를 닫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제는 말이야, 사람들이 옛날영화를 볼 생각이 없어. 다들 할리우드 최신영화만 찾아보는데, 이런 화질도 좋지 않은 옛날 영화 비디오는 왜 찾아보겠어. 목요일마다 되풀이되는 너무도 뻔하고 당연하기 짝이 없는 신세한탄이다. 그럼에도, 당장에 영석은 몇 해째 일을 쉬고 있다는 모 영화감독이 몇 주간의 연체 끝에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반납한 허우샤오시엔 영화 비디오 세개를 집어 들면 그걸로 대만족이었다. 디지털의 시대에 이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무장한 비디오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사장의 신세타령이 왠지 모르게 영석을 슬프게 만들긴 했지만, 결국에는, 좀처럼 찾기 힘든 보물 같은 영화들을 건지고야 말았기에 잠자코 가만히 있을 뿐이다. 어쩌면 영석도 영화예술이 사멸하는 복제와 변동의 시대에서 비겁한 수혜자나 익명의 가해자쯤이 된 것만 같아서 썩 마뜩찮은 기분이긴 했다.
거듭되는 쓸모없는 생각에 빠져들고 있을 때, 복층 다락방 사다리 끝에 선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저씨! 밑으로 던질게요! 받으세요!” 그리고 비디오테잎 몇 개가 암흑 속에서 떨어졌다. 영석은 비디오를 받으려고 낼름 몸을 날렸지만 우박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비디오테잎들을 모두 받아낼 재간이 없었다. 먼지 그득한 비디오테잎 한 권이 영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쿵!!!” 먼지가 폴폴 날렸다. 아야! 하늘에서 왠 날벼락, 아니, 비디오? “어머머! 괜찮아요?”, 컴컴한 다락방 위의 여자가 유난히도 높은 톤의 목소리로 외친다. 엄살 심한 영석이 머리를 부여잡고는 계속 아파 죽겠다는 시늉이다. 여자가 허겁지겁, 그러나 삐걱거리는 사다리 때문에 헛디딜까 조심하며 주춤주춤 사다리 아래로 내려왔을 때 영석은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며 비디오에 부딪힌 머리 부분을 비비며 쓰다듬고 있었다. 흑. 어디가 그렇게 아픈지 연신 죽상이다. 그러면서 입은 벌어지지 않는다.
“미안해요. 미안해서 어쩌지? 정말 미안해요. 아래가 안보여서 바로 밑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자는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머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영석의 손을 떼고는 테잎이 정통으로 추락한 그의 머리 뒤통수를 살핀다. 아아, 아퍼. 신음 소리 따로, 말똥말똥 멀쩡한 눈 따로, 영석이 여자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과장된 통성만치는 아니다.
“에이. 아저씨 엄살이죠? 괜찮아 보이는데?” 여자가 히쭉 웃으며 정곡을 찌르자 영석의 표정은 갑자기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민망한지 종종 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다. 오래된 필름의 습기와 먼지 냄새 가득한 진열장 너머로, 마치 화석의 껍데기 위로 공룡들이 사라지듯이.
“어라? 화났어요? 아무튼, 미안해요. 괜찮죠?” 여자는 가게 안 어둠 속으로 사라진 영석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가 낡은 비디오테잎 위에서 사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미안해요. 농담이었는데... 괜히 뻔뻔한 사람 됐네.” 대답이 없다. 가게 깊숙하게 나란히 진열된 비디오테잎들이 생동을 꿈꾸는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움쭉거렸다.
왜일까? 영석에게 이런 만남은 돌덩이처럼 부담스러운데다 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게서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영석은 그런 사소한 예의조차 낯간지러워하는 소심하고 연약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얼얼한 그 두 귀만큼 그의 입도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밖으로 꺼낼 줄 몰랐다. 그러면서 사후에 돌아서서는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이건 엄마 때문이야.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잡지의 한 평론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접한 뒤부터는 죽 그렇게 간주하게 되었다. 아니, 그 알 수 없는 폐쇄적 성격의 근원을 있지도 않은 엄마에 대한 소회 따위로 미뤄두었던 것이다. “프로이드란 정말 편한 것이로구나.”
아니 어쩌면 그의 강한 자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느껴지는 그 정체모를 정조(情調)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누군가의 구경꺼리가 된 기분이랄까? 주체에서 객체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전도된 느낌이 몸의 거처(居處)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별안간 여자는 당황스러워 멍하니 영석의 뒷모습만 쳐다봤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일 뿐인데! 게다가 살갑게 사과까지 했는데 저렇게 까지 뿔다귀 나서 사라져버리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정체모를 남자의 행동은 여자를 혼란스럽고 어지럽게 하기 충분했다. 가슴은 먹먹해졌고 두 눈의 동공은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치 톡하고 건드리면 하늘로 날아 가버릴 것만 같은 하얀 염소 같았어. 궁금했다. 그리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잔뜩 뿔난 흰 염소 같은 남자라니!
여자는 많은 남자들을 만나왔다. 무척이나 쾌활한데다 타인에게 살갑기만 했던 여자는 뭇 남성들에게 있어서 어색하지만 우연히 획득한 마초적 자신감으로 접근하기에 손쉬운 상대였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섯 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진 다음이었다. 남자들이란 참 우습고 유치해. 조금만 예의를 갖춰 미소를 지어주면 자기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안다니까. 여자가 남몰래 흘린 눈물들을 그들은 보지 못했다. 볼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무척이나 헐겁게 “너 그거 알아? 나 사실 너 별로야. 엉뚱한 상상이나 하고…. 우리 끝내자!”라고 내뱉으면 그만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참 운도 없지. 어쩜 이렇게 성질 더러운 남자들만 만났을까? 나와 꼭 맞는 남잔 세상에 없는 걸까? 저렇게 쉽게 멋대로 내뱉은 말들로, 알량한 자존심 하나 챙기고, 유쾌한 기억들마저 모두 팔아버리다니. 아이큐 5짜리 사이팍티누스도 이렇게 천치 같진 않을 거야.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이란, 적어도 여자에게만큼은 가공된 결말과 표면만으로 판가름 낼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겹겹이 쌓인, 백악기로부터 딱딱하게 굳은 채 원시의 공기만이 꿈틀대는 2억년간 응고된 화석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엄청 화가 났다고 생각할 거야. 누구라도 그렇게 결론지어 버릴걸? 이렇게 뒤도 안보고 그냥 후다닥 사라져버렸잖아.” 먼지처럼 흩어질 태세로 오래된 골동품 냄새를 풍기는 어둡고 습한 비디오 진열장 옆에 숨은 영석은 홀로 상심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자신과 마주쳤던 이 희귀동물 같은 남자가 미안하다는 말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극한의 청초함을 지닌 성격의 소유자라고 짐작하고는 짐짓 영석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삭막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어도, 때때로 만명 중 다섯명 정도는 이해심이 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영석은 어쩌면 그녀가 자신의 엉뚱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배려깊은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흔치 않겠지만 이 도시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적어도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사려도 깊고, 낯가림이 심한 자신에 대해 감지할 만한 멋진, 누군가가 말이다.
“왜냐면 난 알 것 같거든. 이해할 수 있어. 정말 느껴져. 말이 없는 할머니의 닫힌 입술이 이야기하는 일상을, 표정 없는 대머리 아저씨의 미소를. 척추측만증 때문에 걷기가 어려워 산책을 싫어하는 아래층 남자의 욕망을, 그의 속마음을!”
정말 여자도 알까?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있어왔던 유사한 마주침들 중에서 단 한 번도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혹시 아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사실은…, 미안하다는 말 듣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뭐가 미안해요.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보 같은 말이다. 아마 하나같이 바보천치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느 때처럼 상상의 나래는 그곳까지 펼쳐졌고, 영석은 이내, 다시, 슬퍼졌다. ‘미래영상’에서 마주친 그녀 역시 영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넓은 도시에서 그녀와 다시 만날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처럼 혹여나 여자가 품었을지도 모를 의아심은 결코 풀리지 않을 테니까…. 그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항상 우연한 인연의 가능성을 바라며 망상에 잠기지만 그때마다 그 미련한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상상 속에서나 이뤄질 영화 같은 인연을 기대하는 것 따윈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짓임이 틀림없었다.
잠에 들었다. 한밤중 아버지가 귀가하는 문소리에 잠깐 깨어났지만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그냥 모른 척하며 계속 자야할지, 이불 안에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곧 잠에 들고 말았다. 부엌에서 부시럭거리며 찬밥을 꺼내 먹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도 이제 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어느덧 예순을 넘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광포한 세상의 무게는 그의 녹록한 자유조차 허용치 않았다. 귀와 목덜미까지 덮은 긴 백발에 깡마른 얼굴로 유난히 더 초로의 노인처럼 보였으며, 입가에선 일말의 미소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웃는 걸 발견하는 것은 영석이 누군가에게 정감 있게 인사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체 변하질 않던 아버지의 표정은 세월의 무게가 압착해 굳은 암모나이트 화석과도 같았다. 왜 웃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는 항상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풀리지 않은 난제로 남겨지고 말았으며, 으레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웃게 하고 싶다는 정언적 압박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영석이 아버지에게 무관심하거나 냉대한, 극단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아들은 아니었다. 그는 버릇처럼 매일 밤 아버지에게 안부 묻는 것을 빼먹지 않을 정도로 일관성 있게 아버지를 대했다. 요컨대, 아버지 오늘은 일 잘 끝나셨어요?, 라거나, 아버지 저녁 드셨어요?, 처럼 형식적인 인사말을 꺼내는 걸 잊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진정 아버지의 무엇이 궁금해서 묻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근근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안심할 만큼의 제스츄어를 던지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심이 사라진 시니피앙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4.
우리에게 새벽은 빙하기처럼 느껴졌다. 절멸의 언덕으로 내닫는 아크로칸토사우르스의 발자국처럼 8차선 도로를 웅거하는 새벽 버스가 어두운 공기를 뚫고 지나간다. 영석의 아버지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물론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캄캄한 골목길 사이를 밝히던 붉은 네온싸인들도 하나둘 차가운 어둠의 종극을 향한다. 지하철 첫 차는 기점을 출발하기도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영석 아버지는 오래되고 낡은 싸구려 스쿠터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의 첫 번째 목적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위동 큰길가의 어느 인력시장이었다. 새벽 다섯시가 되면 이곳에 마흔 명 남짓의 남자들이 모여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제 몸을 내놓으러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영석 아버지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개중에는 30대 초반의 몽골 남자나 21살의 네팔청년도 있었고,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형제 셋은 가장 일거리를 잘 따는 일꾼들 중 하나였다. 예전 같으면 경험과 노련미, 의사소통에서 우위에 있는 점을 높이 쳐줘서 나이가 많아도 내국인을 먼저 데려갔다지만, 요즘엔 영석 아버지같은 중년 구직자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밀리는 축에 속했다. 인건비가 같아도 기골이 쇠한 노년 일꾼은 이제 별로 매력적인 ‘상품’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 형제들은 어느덧 술술 한국어에 능란해졌고, 몽골에서 왔다는 그 순박하게 생긴 남자는 굵은 두 팔뚝에 힘입어 무척이나 일을 빨리 배웠으니까.
“형씨 어쩌지? 오늘은 일 나가기 어려우시겠네.”
어느덧 도로에 버스가 줄줄이 다니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10년째 이 자그마한 인력회사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서른셋먹은 젊은 사장이 측은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을 구하지 못했다. 시외로 나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어느 인력시장을 가도 계속 허탕이기 일쑤였다. 어디로 갈까. 구멍가게에나 가서 소주나 한잔 마실까. 아니면 지난 주말처럼 공원 벤치에 누워 잠이나 자고 일광욕이나 할까. 이제는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바지 주머니에 소주 한 병 살만큼의 동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녀석은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똑같은 비디오테잎을 꽂아놓고 알아먹기도 힘든 난해한 영화를 보며 삼매경에 빠져 있을 것이고, 일도 못하고 돌아온 아비를 보면 공연히 어색하고 난처한 긴장만 가득 채워 서로 불편하기만 할테니 말이다.
하릴없이 공원으로 향했다. 오백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어느 옛 왕의 무덤을 지나, 좁은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우지락한 고목들이 퍽 무성하게 우거져서 햇빛도 잘 막아주었고, 수풀 그림자 안에 바람도 솔솔, 영석아비에겐 썩 괜찮은 휴식처다. 버릇처럼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올라와, 버릇처럼 눕던 잣나무 아래 그 벤치 위에 버릇처럼 앉았다. 제기랄. 그러고 보니 그의 일상의 모든 행위들은 바다 위를 흐르는 해류가 항상 그곳으로 흐르듯, 버릇처럼, 알류(斡流)하는 것들뿐이었다. 우울한 기운이 새벽의 한기처럼 휘감겼다. 어쩌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을 이어가는 것도 버릇처럼 숨 쉬고 버릇처럼 밥알을 씹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녀석은 어찌 살려고 저러는지 알 수가 없고, 그렇다고 꾸지람 따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딜 봐도 잘난 것 하나 없는 인생을 살아온 팔자에 잔소리 따위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치기 아버지의 꾸지람 따위로 제 인생 유일한 취향을 버릴 아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항상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언젠가 영석과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긴 침묵을 깨고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더랬다. 생전 없던 말문을 트고 질문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 영석아……. 거… 니 난중에 뭐할 생각이니? 니도 생각이 있으니 만날 비디오만 보지는 않을꺼구…….”
아들은 입 안 한가득 밥알을 물고는 한동안 멍하니 아비를 쳐다보았다. 그저 비디오만 보며 살 작정이냐는 식의 핀잔 섞인 뉘앙스가 섞은 것은 자못 후회되었다. 하지만 변한 것 없이 느릿느릿하게 살아온 지난 삶처럼 이미 뱉어버린 말도 돌이킬 수 없는 법이었다. 아들은 퍽 놀란 표정으로 밥알을 오물오물 씹으며 제 아비를 계속 쳐다보다가, 짧고 싱겁게 대답했다.
“영화감독이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아비처럼 일하러 나갈까 생각중이라고 말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는, 아비랑 같이 기술 배우러 다니자, 고 호기롭게 제안할 참이었던 것이다. 영석아비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들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작은 밥상 사이를 채운 그 어색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기를 견뎌내기 힘들었다.
그래, 영화감독한다니까는 뭘 하긴 하겠지. 적어도 아무것도 꿈꾸지 못하던 자신보단 낫지 않은가. 보태준 것 하나 없이 키운 아들이 자못 기특하게 느껴졌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는 혼자 벌어서 혼자 커온 영석이었다. 대학도 군대에서 제대하고서 입학하여 제 돈으로 벌어 다니던 처지였다. 대학 등록금이 하도 비싸다고들 하니까 비싸겠거니, 하긴 했지만 언젠가 고작 1년을 다니고는 등록금이 부족해서 휴학하고 돈 좀 벌겠다는 아들의 말을 들었을 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그마저도 염치가 없어 목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아니면 무슨 말이든 들을 말이 없다고 생각해버려서 그런지, 영석은 어느새 제 방 구석에 들어가 비디오테잎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었을까? 생전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미안하다는 말을 영석아비 자신도 모르게 꺼낸 것이었다. 마치 감정의 최후보루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와 반사적으로 뱉은 소리였지만, 입술이 얼음처럼 굳어 ‘ㅁ’ 소리도, 목이 턱, 하고 막혀 ‘다’의 ‘ㄷ’소리도 입 안에서만 잠류했다가 사그라졌다. 온몸이 엉기고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석은 못들은 모양이다. 그래, 아마 못 들었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만약 아들녀석이 염치만 남은 소리를 들었다면 견디기 힘든 적막만 흘러 오랜만에 차려진 밥상은 지리멸렬됐을 것이다. 설령 미안하다는 말을 한들, 아들놈이 아비의 그 미안한 마음을 알아준들, 그놈의 등록금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릇 책임질 수도 없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다는 건 얼치기나 사기꾼들의 말과도 같으니까. 그러니 차라리 버릇처럼 하는 말들 따윈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가만 보면 무척이나 ‘실용’적인 선택이다. 그리 생각하고 말면 이도 참 편한 일이다.
십오년쯤 됐을까? 정확히 기억도 안난다. 벤치 위에 누워있던 영석아버지는 햇수 세는 일은 뭐가 그리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는 손가락을 들어 하나둘셋넷 세월의 두께를 세어본다. 영석이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으니 아마 그쯤 됐을 것이다. 어느 날은 갑자기 숟가락도 잡지 않은 채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더니, 또박또박, 슬픈 눈으로 대뜸 묻는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렇게 과묵해?”
입 한가득 밥을 오물거리다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부러 밥을 빨리 씹지 않고 느적느적 씹으며 삼키지도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과묵하냐니. 그저 평생 무거운 입술을 천명으로 알고 살아왔으니 입을 좀체 열지 않을 뿐이다.
“아버지는 안 심심해? 아버지는 왜 텔레비전만 봐?”
당연히 심심하지. 인생이란 게 원래 지루하고 허무한 것이니까. 영석아버지는 이미 열아홉에 이 사막같은 세상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그건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만큼이나 무거운 전언(傳言)이었다.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아버지는 딱히 할 게 없어서 텔레비전을 보는 거야, 라는 말 정도는 하려고 했지만 이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술씩 먹는 영석을 보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영석은 뭐가 그리 맘에 안차는지 찬도 없이 밥만 퍼먹었다. 미안하다. 그러나 공연한 감정이나 시니피에 따위는 쉽게 잊혀졌다.
어느새 밤나무 잎사귀 사이로 햇발이 비춰온다. 정오가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텅 비어 있던 공원에도 하나둘씩 방문자들이 나타났다. 걸음걸이마다 팔동작이 씩씩한 할머니와 그녀와 쏙 빼닮은 젊은 여자도 보였다. 팔동작의 기세가 놀랍게도 똑같군. 할머니는 이곳에 올 때면 꼭 기묘한 포즈의 운동을 하고 있던 바로 그 노인네였다. 허리는 꼿꼿해서 그녀의 원기 왕성함이 느껴졌고, 길고 흰 생머리는 여느 노인들에게선 볼 수 없는 스타일이어서 그녀만의 자존감을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손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노인과 손을 꾹 잡고 천장산 정상께의 그 공원까지 올라오더니 팔다리를 쭉쭉 뻗는다. 참으로 괴상한 포즈로 체조를 하는군. 영석아버지는 그 젊은 여자의 체조에 자꾸 눈이 갔다. 아무도 하지 않는 유형들이었다. 다리 스트레칭을 할 땐 다리를 뻗는 것에 열중하기보단 목을 돌리는 것에 집중하는가하면, 허리를 돌릴 땐 허리보다 훨씬 아래 부분에 힘을 주고 골반을 돌리는 식이었다. 괴상한 체조로 눈길을 끄는 여자의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까지 내려와 산공기에 살랑거렸다. 눈동자는 까맣고 또랑또랑해 일체의 깜빡거림도 없었으며, 넓은 이마와 오똑한 콧등은 유독 빛나보였다. 정말 오래간만이다. 오늘 아침 공기는 뭔가 다른 날과는 달랐다.
5.
아까부터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왜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걸 까?! 아침부터 소주병을 옆에 두고 앉아있는 저 중년의 고루한 남자가 자꾸 신경 쓰였다. 매일같이 박물관을 지키다 오랜만의 휴가를 만끽하려던 참이었다. 산 아래 동네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는 매일같이 이 작은 산에 오른다고 했다. 산 아래에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진 옛 왕의 무덤이 외롭게 버티고 있고, 사람들은 무덤을 뒷동산 오르듯 밟고 다녔다. 요컨대 이 무덤은 유적지보다는 오래된 화석처럼 느껴졌다. 무덤 안에 뭔가 있진 않을까? 괘씸한 도굴꾼처럼 왕의 거처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주위를 빙둘러 돌아 그 500년짜리 고독이 풍기는 이 쾌쾌하기 짝이 없는, 아름다운 향훈을 만지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너는 이런 풀만 잔뜩 덮인 무덤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만날 할무니집에만 오면 가자고 하니?
“할머니, 이 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왕이 되자마자 어린 나이에 죽었데….”
조금 전 아침, 왕릉을 지나다 느닷없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노인은 그게 알게 뭐냐는 듯 눈썹을 치올린다. 이럴 땐 어린 손녀를 참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이 스물아홉이 다 되도록 이상한 소리만 해대고 말이다. 할머니는 그게 누구든 간에 죽을 나이가 다 된 이 할미가 죽으면 저기 웅크려있는 저 불쌍한 어린 왕처럼 무덤 안에 쑤셔 넣지 말고 바다 너머로 훨훨 날려달라며 찌무룩한 소릴 했다. 미안해요, 할머니. 부질없이 할머니에게 멜랑꼴리한 역정을 내게 한 것 같아 후회된다.
아무래도 여자의 의심에 가득 찬 시선을 감지한 모양이다. 소주병을 든 저 이상한 아저씨는 이내 고개를 돌려 앉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다 벤치 위에 홀랑 누워버린다. 여자는 킥킥대며 웃었다. 이상하고 재밌는 아저씨구나. 그런데 왜 저렇게 외로워 보일까.
그런데 부랑자로 보이는 저 남자는 왠지 몸 둘 데를 몰라 한다. 벤치에서 이내 주춤주춤 일어나더니 소주병을 들고 자리를 뜬다. “아저씨 괜찮아요. 계속 쉬세요. 저 때문에 그러세요?” 그런데 부랑자는 여자의 낯 두꺼운 친절이 고맙기보다는 어딘가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듯하다. 여자를 멍하니 보다가는 이내 서둘러 공원을 떠난다. 한 손에는 소주병을, 다른 한 손에는 엉덩이 밑에 깔아두었던 ‘벼룩시장’을 들고 말이다.
친절을 어색해 하는 사람이구나. 왠지 이상해. 아침부터 왠 이상한 남자람? 유심하게, 그러나 순박해 보이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기분이 나쁘거나 치한처럼 보여서는 아니다. 다만, 저건 익명의 도시인들이 내뿜는 꺼림찍한 시선들과는 뭔가 다르다. 호기심에 휩싸인 남자들은 저런 눈빛을 하지 않는다. 저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의 눈빛이라기보다는 어린 아이의 그것과 더 흡사해보였다. 게다가 옆에는 소주병에 벤치 위에 혼자 쓸쓸하게 앉아있는 꼴이라니. 부빌Bouville의 로캉탱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니, 박민규 소설 속의 너구리에 더 가까운가? 그는 그저 아침 공원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너구리같은 아저씨다. 무슨 일일까. 화석 덩어리처럼 쉬이 해석되지 않는, 난해한 남자들을 만났다. 저녁에는 하얀 염소, 아침에는 술에 취한 늙은 너구리라니.
다시 아침이다.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여자의 직장은 몇 년 전 시의 지원으로 불쑥하고 소리소문 없이 세워진 ‘시립자연사박물관’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간간히 드나드는 방문객들에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베이징원인같은 저 멀리 선사시대에 살았다던 원시인들의 밀랍인형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몇 가지 화석들, 그리고 거대한 공룡 뼈조각들을 형상화시킨 가짜 공룡들을 보여주며 친절하고 상냥하게 설명해주는 일을 한다. 말이 좋아 큐레이터지, 실은 시끌벅적한 유치원 단체방문객들의 베이비시터 노릇이나 다름없다.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 안내 코스의 막바지, 자그마한 설명에도 소리가 웅웅 울리는 넓은 중앙홀에 이르면, 웬만한 어른 키의 세 배 정도에 달하는 거대한 공룡 형상들이 1미터20센티도 안되는 작은 꼬마들을 위압적으로 맞이한다. 이 작은 방문객들의 무리 중 한 명은 꼭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우는 아이에게 이 수천만년전에 살았다는 공룡의 화석이나 원시인 모형은 가짜가 아니라 실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럼 여자는 다정하게 아이를 달래주느라 산만하게 설명을 가까스로 끝내면서도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 죽어있는 것들도 아이에겐 살아있는 것으로 존재하는 걸까? 저 작은 방문객은 원시인 모형과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그저 공룡이 좋아 지방에 있는 국립대의 지질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여자는 지질학과에만 가면 둥근 탐험모자를 쓰고 전세계 어디든 화석과 공룡 발자국을 찾아 떠나버릴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5년 내내―여자는 몇 번의 학사경고로 인해 학업미달로 1년을 더 다녀야 했다.―단 한번도 공룡 발자국이나 수백만년 된 화석 따위를 발견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남들이 오래전에 발견한 것들을 다시 찾아가 보고, 또 볼 뿐이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택할 것은 별로 없었다. 몇몇은 가장 안정적이라는 교수차기 위한 안전코스로 유학을 떠났고, 대다수는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출판사나 인터넷쇼핑업체의 사무직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시험 수험생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는 절대 집중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는 예닐곱살짜리 꼬마아이들을 달래주기에 바쁜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아니, 차라리 유치원선생님에 가깝지 않을까? 꿈은 뜨끈뜨끈한 스프 위로 오르는 김처럼 허무하고, 인생은 참 부질없어라.
한 무리의 작은 방문객들이 떠났다. 이제 점심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유치원에서 단체 관람할 예정이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야. 유치원생들에게는 소풍 명소가 하나 더 늘은 것이니까. 우리들이 어릴 적에는 어린이대공원이나 63빌딩이 아니면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잖아. 게다가 세월이 흐르고 그 작은 방문객들도 나이가 들어 우리들처럼 흉측한 어른이 되면 어렴풋하고 희미하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험악한 표정과 공룡 뼈다귀들을 어설프게 이어붙인 기괴한 모형을 꿈속에서 떠올릴 것이니까. 그리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악몽을 꾸었다고 여기고 말겠지?
한 남자가 그 광활한 원시들판 위에 혼자 폴폴거리며 거닐고 있다. 그는 크로마뇽인의 밀랍인형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러다가 밀랍인형이랑 껴안기라도 하려나. 마치 자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일천번쯤 거슬러 올라가는 할아버지의 얼굴이라도 기억하는 걸까? 모자를 푹 눌러쓴 그 남자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손님, 크로마뇽인말고도 신기한 원시인 모형이 많거든요. 네안데르탈인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맘에 안 드세요? 여자는 괜히 시비를 걸고 싶다. 여자는 큐레이터를 위한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쉬다가 불쑥 일어나더니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누굴까? 저기 저 공룡 앞에 초매(草昧)한 눈빛으로 서서 만연한 고독으로 무장한 저 남자,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다.
6.
“어? 손님 저 모르세요? 비디오 가게 그 아저씨 맞죠?”
깜짝 놀란 영석이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본다. 틀림없다. 비디오가게에서 마주친 그 이토록 난처하고 부끄러운 상황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다. 도망갈 수도, 모른 채 돌아설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가 그토록 상큼하게 찰랑거리는 머릿결의 소유자일건 또 뭐람? 그녀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비브르사비』속에서 안나 까리나가 분한 극중인물 나나처럼 너무도 호기심어려보이고 매력적인 모습이다.
“마, 맞는데요...”
떨리는 목청. 그녀도 나나처럼 반복되는 삶의 필연에 대해 생각할까?
“왜 도망갔었어요? 지난 번엔 미안했어요. 많이 아펐죠?”
영석의 막연한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여자의 머릿결과 표정마저도 껍데기나 허영의 허울처럼 느껴졌다. 저 여자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거야. 왜 난 공연히 기대를 해서 이렇게나 실망감에 빠져들도록 내 자신을 내버려둔 걸까? 저 찰랑거리는 생머리 때문이었을까? 역시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영석의 순수한 마음을. 절망의 백척간두으로의 일보 앞, 오늘도 어김없이 밀물 다음은 썰물이 내리고, 적빛 석양은 서쪽으로 지리라. 어쩌면, 혹시, 만에 하나, 만약에, 라는 설렌 말들로 시작되는 몽상들로 그녀와 마음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영석의 기대는 주춤거리며 추락했다.
“근데 아저씨, 낯을 좀 많이 가리나 봐요. 원래 말이 없으세요?”
정말 지겨운 질문이다. 그렇다고 멀쭉한 표정으로 정색하며 묻는 여자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도 말 잘해요. 에릭 로메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처럼 말예요. 질투는 나의 힘에 나오는 박해일처럼 말예요. 지금은, 그냥, 말이 낯설고 어색할 뿐이에요.
“무슨 소리예요! 이렇게 꼼짝도 않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크로마뇽인을 보고 있는데…. 그리고 저 아저씨 아니거든요!”
아저씨라는 말 때문에 화난 건 아니었는데, 멍청한 말만 내뱉고 말았다.
“아… 그래요, 미안해요.”
그녀가 귀엽게 웃는다. 갑작스런 미안하다는 말에 영석은 다시, 지레 움츠려든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티라노사우르스가 노려보고 마멘치사우르스의 웅장한 그림자가 드리운 그 우람한 홀 안에서 숨을 곳을 찾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래도 여자는 그 불안한 감정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소 짓다가,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 또 해서.”
점점 무뎌진다.
“아. 또 했네요. 미안...”
여자는 계면쩍게 웃는다. 영석은 무치하게 반복된 말들이 이내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짐짓 숨 막힐 듯 움츠렸던 가슴과 어깨를 편다. 2억년전 너른 초원을 가로지르며 뛰었다는 공룡들이 마셨을 것만 같은 콸콸 뿜어지는 원시의 공기가 만져졌다.
“괜찮아요.”
그로써는 놀라운 진전이었다. 미지의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역시 흰 염소같아. 여자는 반갑게 웃는다.
영석과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다. 여자의 이름은 뭘까? 영석은 갑작스레 궁금증을 느꼈다. 하지만 물어 뭐 하겠어. 어쩐지 이름을 물어볼 것만 같은 찰나였지만 여자는 입을 꾹 다물고 홀 안을 미적이 걷기만 했다. 어느새 영석도 여자를 따라 함께 걷고 있었고, 둘이 걷는 홀 가운데에는 티라노사우르스의 거대한 모형이 으르렁거리며 서있었다. 다시는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원시의 시간이 느껴졌다. 거칠고 거대한 활엽 나무들 사이로, 너른 언덕의 수풀 위로, 크고 작은 공룡들이 뛰어다녔고, 저 강 너머에 있는 푸른 산 아래 동굴에는 인류의 조상들이 그들만의 언어만으로 미래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기 저 티라노사우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백만갑년의 침묵을 깨고 여자가 물었다. 침묵과 함께 어느새 들판 위를 뛰어가던 공룡도, 하늘을 나는 익룡조차도 먼지처럼 사그라져 없어지고 박물관의 대형홀 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만이 남았다.
어떤 생각이라니. 공룡 따위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렴풋이 화석 같이 굳어있던 침묵의 시간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요…. 아버지가 생각나요.”
아버지라니. 여자는 의아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왜 저토록 무섭게 생긴 가짜 공룡을 보고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걸까. 그의 아버지는 신생대의 화석 같은 오랜 시간 전에 죽은 걸까? 공연히 그의 침묵 속에 숨겨져있던 슬픔을 건드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아니,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저 거대한 파충류 생물처럼 무섭고 험악한 사람일까? 그렇다면 남자가 이렇게 조용하고 낯가림을 하는 건 그 험악한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온갖 추측들이 가지에 가지를 타고 이어졌다.
“아버지는 저 공룡처럼 말이 없거든요. 마치 아무도 모르는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진 화석 같다고 해야 할까요.” 나이로비와 가까운 초원 어느 곳에 숨겨진 폭포수처럼 말문이 트였다. 고고한 대기 사이로 가젤 떼가 지나갔다.
“그렇구나... 어제 할머니랑 조깅도 하고 약수물도 떠오려고 뒷산 공원엘 갔어요. 근데 거기서 어떤 이상한 아저씰 봤거든요. 한 손엔 소주병을 들고 있는데다 술까지 취해 있었고요…. 왜 그런 분들 있잖아요.”
영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댕이가 태어난 곳조차 궁금하던 호기심으로 가득한 중학생 시절, 우연히 스치곤 했던 아버지의 과묵한 입술이 자꾸 떠올랐다. 영석에겐 그때 그 표정이 만고불변의 아버지 얼굴이었다. 그 후론 아버지와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았던 부자지간의 뻔한 안부를 묻는 대신 그 두꺼운 입술을 굳게 다물곤 했더랬다.
“근데 참 이상하지. 아저씨는 덩치 큰 초식공룡처럼 보였어요.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요? 마치 술에 취한 산짐승 같았거든요. 이상하죠? 어쩌면 저 공룡 모형처럼 깊은 산 속 원시림의 화석같았어요.”
여자는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뒷동산의 부랑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기억 속의 부랑자는 야생너구리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시간이란 참 이상하지. 어제 밤의 공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2억년전, 저기 서있는 공룡이 이 자리에서 마시고 내뿜었을 그 공기는 온 몸 깊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마법사 멀린의 주문이라도 있었던 걸까. 지난 십여년동안 동이 트기 무섭게 말없이 밖으로 나간 아버지의 표정은 쉬이 잊고도 십년 전에 스친 그 부끄럼 가득한 두꺼운 입술만은 기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걸까?
꼬마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한 무리의 작은 방문객들이 나타난 것이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공룡 이야기해주러 가야한다며, 비디오가게에 또 가면 좋은 영화 많이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꼭이요! 또 몰래 도망가는 거 아니죠?”
7.
며칠 후, 여느 때와 같이 영석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 다시 인력시장으로 출근했다. 영석아버지가 인력시장을 나설 때 영석이 조용히 그를 따라왔다. 그의 한 쪽 어깨에는 작은 캠코더 한 대가 걸려있다. 빨간색 ‘REC’버튼을 누르고 빨간불이 들어오자, 화면 안에는 아버지의 묵직한 뒷모습이 나타난다.
“아버지, 지금 찍고 있어요. 자연스럽게만 하시면 돼요, 자연스럽게요. 아시죠? 평소처럼!”
아버지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영석아버지의 등 뒤로 영석과 영석의 어깨에 걸린 카메라가 따라간다. 쇠뿔도 단 김에 빼야겠다는 태세다. 촬영 첫날이라 그런지, 영석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아버지의 일상을 따라가며 아버지 자신이 보잘것없다고만 말하는 그 생에 대해 지리 건조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브레송적 영상미학의 작품이 되리라! 그가 말이 없으면 무언(無言)의 무성영화로, 소주를 마시며 눈물지으면 비리비리하고 너구리같은 어느 중년 남자의 눈물이 질감 그 자체로 살아있는 로셀리니의 그것과 같은 리얼리즘의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못 어제와 같기도 하면서 다르다. 영석은 너른 등판부터 조심스럽게 감정의 능선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작정이다. 감각적으로 어깨를 들쑥이며 제 아비의 등과 까맣게 탄 목덜미에 앵글을 맞춘다. 그것도 모르고 영석아버지는 히쭉히쭉 열심히, 카메라가 비추는 등판 너머의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공룡처럼 멈춰있던 아버지가 웃는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유유하게 흘러간다. 영석의 어깨에 걸쳐진 오래 된 8mm필름 카메라의 렌즈 초점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이 거친 세상의 공기들을 마주하고, 석계동 고가도로너머의 언덕 위 재개발예정지의 낡은 아파트의 헐은 벽 틈에서부터 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위로 태양보다 더 커다란 트리케라톱스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의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은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가 흘러가듯 반복적으로, 아지랑이의 울림으로 고요하게 고동칠 뿐이다. 생명을 쟁취하는 화석들은 새벽 곳곳에서 요동치며 흔들렸다.
카메라의 빨간 램프가 깜빡거렸다. 반짝거리는 골동품 기계는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침묵이 생명처럼 움틀거리는, 대기로 가득 찬 자연사박물관으로 가자고. 그곳에는 이 적막한 세상을 깨우는 화석들이 생명의 꿈을 꾸며 가득히 제 자릴 차고 꿈틀대고 있을 것이며, 마멘치사우르스의 웅장한 그림자는 2억년의 침묵을 깨우고 숨 쉴 것이다. 그리고 대형 홀에서 작은 관람객들을 거느리고 있는 찰랑거리는 생머리의 그녀는, 바로크 도시의 나나처럼 청량하고 희미하게 서있겠지?
겁 없이 달리는 우리들의 청춘에도 언젠가 위기는 올 것이다. 어느 날 밤 은석은 만취한 모습으로 빌딩 사이 골목에 비틀거리며 쓰러질지도 모르며, 경태는 잘 다니던 직장을 옮겨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런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재형이 녀석은 내년 공무원 시험에서도 낙방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젊은날의 위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좌절들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만들어내기라도 한단 말인가. 시간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차라리 우리들이 작은 방문객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분명히도 그때 우리는 발터 벤야민의 어린 시절처럼 말썽꾸러기였지만 카프카의 꿈에서처럼 정직하게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말은 얼마 알지 못했지만 세상의 온갖 사물들과 대화할 수 있었으며, 대기의 고동이 전하는 소식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다.
이른 새벽녘의 두 부자는 골목길을 따라 그늘진 고가도로 아래 철길을 향해 우뚝우뚝 걸어갔다. 아무 울림도 없는 적막한 철길의 반대편에서도 열차는 달리고 있다. 기찻길 노변의 낡은 재개발 아파트가 미동을 울리며 흔들렸다.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발자국들이 진앙을 울리며 땅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거대한 세계는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20:31
병장 이동석
따끈 따끈, 2008-10-13
19:53:07
상병 이동열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모니터로 장문의 글을 본다는게 쉽지가 않네요(울음)
역시 종이 넘기는 맛이 있어야하나 봅니다- 조만간 병영문학상작품집이 나오겠죠??? 2008-10-14
09:44:08
병장 황인준
모니터로 이런 장문의 글을 읽으려니 힘들긴 힘들군요.
그래도 재미가 있는 지라 잘 읽었어요(웃음). 2008-10-14
13:43:36
상병 김무준
잘 읽었습니다. 2008-10-25
16:4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