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내글내생각] ?  
병장 김무준   2009-04-02 00:51:18, 조회: 160, 추천:0 

사월이 왔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기 위해 잡기장을 폈다. 지나온 하루들이 담겨있는 달력.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명사들의 잠언. 넘치는 메모와 사색들. 잡다한 정보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변들. 짤막한 독후감과 영화감상. 영감을 얻었던 잡지 화보들과 사진들로 절반 쯤 채워진 잡기장을 보면서 지난 세 달을 열람했다. 아아, 기왕이면 작년에 쓰던 잡기장도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보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를 괴롭히던 기록에 대한 강박관념은 죽어라 정신을 긁어댔다. 잡기장을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라 시월부터 주 기록매체를 디지털 텍스트로 바꿨다. 일일이 다 기억하지도 못할 대화들을 나누고 잡설을 늘어놓았다. 잠시 쉬고 있는 요즘 그 때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잡기장을 펼쳐보면 여전히 강박관념은 사라지지 않은듯하다.

어린 시절 쓰던 일기는 반강제적인 것이었지만, 철이 들면서도 텍스트를 생산해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죽어라 손가락을 놀려댔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자신에게 왜 문자를 빌어 무언가를 기록하는지 묻지 않았다. 스물 두해가 지난 지금에서야 판단해 보건데,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기록은 곧 남김이다. 기억이나 지식 따위를 문자로 남기는 행위다. 나라는 존재가 사유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나의 일부이자 조각이다. 이 조각을 문자로 바꾸고 기록했으니, 남겨진 텍스트도 오롯한 나의 조각들이다. 이를 소유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보여줌은, 나에게 나를 또한 타인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렇게 기록하며 나를, 내가 살아있음을 소리친다.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마치 누군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도 모를 명사들의 잠언을 메모하는 마냥, 자신과 타인에게 존재의 증명을 역설하기 위하여 기록했음이 분명하다.

그래 나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텍스트를 남기지만 과연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살아있는가. 사고하는, 이 보잘것없는 우주 속 먼지덩이가 살아있다 증명할 논거가 타당한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시 반문한다. 그럼 나는 살아있지 않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사고하다 사유하고 사색하며 사변하는 나라는 존재가 복합적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존재하는가. 쳇바퀴 구르듯 머리를 굴려도 답은 없다.

책을 읽는다. 타인이 남겨놓은 텍스트를 열람한다. 마음이 병든 이가 책을 읽는다면, 병이 든다는 용어의 정의는 무엇인가. 나 자신의 존재의 유무에 대해 질문하는 병신이라 해서 마음이 병들어 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과정을 고통이라 치부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대체 고통은 뭐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물음만이 가득 찬다.

누구도 명쾌히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이다.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변증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위해 책을 읽고 나를 기록하며, 존재의 증명이 가능한가에 대해 나와 타인에게 물음을 던진다. 나는 살아있습니까. 나는 존재합니까. 나는 이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내가 실존함을 확신합니까. 당신이 가진 믿음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괴테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알게 되면 나는 도망쳐버릴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루소는 삶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하는 것이라 했으며 발라디르는 개인은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성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생성시킬 수 있노라 말했다. 나는 나를 아는가. 나는 기록이라는 행위로 무엇을 추구하는가. 존재와 관련한 정체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나. 잡기장을 거울삼아 나를 비추고 텍스트 앞에 서서 변화를 확인한다. 답은,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 타인의 조각을 찰람하며 타인 역시 나와 같은 물음을 가졌음에 안도하고, 타인이 남겨놓은 존재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나 자신의 존재유무에 답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다. 여전히 답은 없다. 지나간 나의 조각과, 흘러간 타인의 조각을 바라보며 나와 당신이 얼마만큼 변화했으며, 무엇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답으로의 길인지 고뇌해본다. 

사월이 왔다. 만우절은 지났다. 마치 거짓처럼 흘러가는 삶의 모순된 모습을, 보잘것없는 내 자신의 역설을,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물음을 뒤로하고 다시 책을 읽으며 또 손가락을 놀린다. 

존재의 유무를 확인하고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