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꽃은 시들기에 아름다우니.
병장 이승일 03-26 18:26 | HIT : 11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 저로써는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점만 추가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고 몇글자 주절거려봅니다.
우리가 사물들의 순간적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의 동정심, 그리고 안도감에서 비롯할 것입니다. 동정심이란 분명 근본적으로 사랑의 일종이므로,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옳을 것입니다 . 한편, 우리는 우리 자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비극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그 순간성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한시간 후에 죽을것이라고 말이죠. 우리는 우리자신조차 하나의 대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처럼 여기면서 나름대로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만끽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자살은 이러한 상상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저 역시 그러한 상상의 소유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나 우리는 그 상상 조차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그 역시 우리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음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든 것은,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든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은 살아있기 때문이며, 그것의 아름다움은 근본적으로 꽃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반사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비극과 무상성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영원한 기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도망치고 싶기 떄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말 자주 느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을 감상하고 있을 때, 저는 제가 그것을 계속 보고있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무상성, 그 순간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게 되었고, 기쁨을 경멸하며 우울함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간적인 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것을 사랑했던 사람이며 지금도 같은 정도로 그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단지 영원한 것은, 정말로 그것이 있음을 안다면, 더 아름다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인정한다면, 유한한 우리 자신의 운명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해질텐데 우리는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지요. 순간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실 우리는 영원함을 제대로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실제로는 거의 모릅니다. 단지 희미한 관념의 불빛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 결코 그 실체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각해낼 수는 없습니다.
예, 분명히 순간적인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우리는 거부할 이유도 없고, 맘껏 즐기고 또 받아드려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아름다운 것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히려 영원성에 대한 우리의 희미한 지각의 반작용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
그보다 한없이 더 아름다운 것이 정말로 있습니다. 그것을 아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저의 미약한 글은 그것의 무한한 파편조차 담고 있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상병 김병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승일님의 글을 참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웃음. 특히 [완전성과 세계]라는 글은 거의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고백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