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가상과 실재의 구분 
 병장 이승일 04-04 01:01 | HIT : 147 





 태식씨의 의견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살펴보는 것도 유용할 것같습니다.  

[1]
 태식씨는 대체로 "개개인이 가진 믿음이 결국 사실이다." 라고 말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태식씨는 이런 말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쪽에 더 매력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태식씨의 의견은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음은 태식씨가 유념하셔야하는 부분이며, 실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때문에 태식씨가 설사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태식씨의 의견 중  일부로 간주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세요.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의 믿음'과 '사실'을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A:  비가 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이 표현은 "비가 오고있다." 는 사실과 함께, 발화자가 그것을 믿지 않고 있음을 동시에 연접(and)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아닙니다. -p and q 의 형태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것이 매우 괴이하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한편 다음과 같은 문장은 아무 문제가 없음에 주목해보십시오. 

B :  비가 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지않았다. 

' 믿는다' 를 현재형에서 과거형으로 바꾸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신의 현재 믿음' 과 '사실' 을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장 A 는 -p and p 와 거의 근접하게 해석되어 마치 모순처럼 여겨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자신의 현재 믿음" 이라는 말에서  "현재" 란 항상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현재란 항상 사라져버리는 것이기에, 우리가 고정적으로, 실체로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현재의 믿음" 역시 고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갱신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의 현재 믿음은 곧 사실이다" 와 같은 명제가 의미 있게 성립할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매 순간 갱신되므로 발화자는 그것의 내용을 기술적으로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순간, 그것은 과거의 믿음이 되어버릴테니까요. 반면 <사실>은 시간의 변화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문장 A가 완전한 모순이라고 느끼지는 않는 것입니다. "믿는다" 에서 표현된 시제는 사실 완벽한 현재가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과거를 지시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게 되며, 따라서 A 는 B와 유사한 형태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A 가 완전한 논리적 모순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현재 나의 믿음이 곧 사실이다" 와 같은 말을 받아드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2]
 내 눈앞의 모니터가 실제 모니터인지 3D영상 모니터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저는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 그가 제 말을 들어준다면) 그는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고, 만져보는 행위 등을 통해 그것이 허상인지, 물리적 실체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모니터는 촉감까지 제공하는 고도로 발달된 홀로그램이어서, 만져보는 것만으로 구분이 안 될지도 모르지요. 그는 더 심도있는 측정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해해보고, 질량을 측정해보고, 관성 가속도를 측정해보고, 부품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심지어 전자현미경을 통해 구성입자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결국 그는 그 모니터의 각 부분을 입자가속기에 넣고 소립자로 충돌시켜서 아원자 수준까지 분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측정의 종류는 많으며 실제로 <무한히> 많습니다. 때문에 "더 자세히 살펴보라" 는 저의 요구는 그 모니터가 실재하는지 가상인지 구분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할 때까지 무한히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네요.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1> 만약 그 모니터가 실재하는지 가상인지 구분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면, <관찰>은 종료되고 우리는 어떠한 결론을 얻습니다. 
2> 만약 그 모니터가 실재하는지 가상인지 구분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관찰> 은 계속됩니다. 
3> 우리는 <관찰> 이 종료될지 영원히 계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3> 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 모니터가 실재하는지 판가름해줄 증거를 발견 할지 못할지 조차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만약 적정한 수준에서 <관찰>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단지 게으름의 결과이며 결코 완전한 결론을 얻은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사실" 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잠정적 사실" 을 알게 된 것 뿐입니다. 
 태식씨의 의견은 '잠정적 사실'과 '사실'을 등치시킴으로써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실을 무한히 알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 자체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중도 도착에 불과한 것이며, 인식론적 한계를 존재론적 한계로 탈바꿈 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나 자신, 혹은 인간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뒤바꾼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충분히 받아드릴 수 있는 의견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결코 잠정적 사실을 확인하고 그만두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논의는 애초에 시작될 필요도 없었거나, 최소한 아무 때나 필요한 때에 마음대로 끝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잠정적 사실과 완전한 사실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며, 그것이 결국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똑같다거나, '완전한 사실'이라는 개념을 아예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에 반하는 것이며, 우리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병 구본성 
 대단들 하십니다. 논리학을 공부하면 이런 글을 쓸수 있을까요? 04-04   

 병장 성태식 
 아주 좋습니다. 이제 하나의 주제는 사실상 끝난 것과 다름이 없군요. 
 특히나 이 글의 후반부는 다음번 주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으윽. 또 글을 쓰러 가야겠군요. (웃음) 
 이번에는 1주일 내로 끝내 볼게요. (.........) 04-04   

 병장 홍연택 
 아...흥미진진해. 04-04   

 병장 한승호 
 인식의 한계는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04-04   

 병장 성태식 
 엇. 이런. 하나 빠졌네요.(...) 
' 인식론적 한계를 존재론적 한계로 탈바꿈 시킨' 이 부분에 이의 있어요. 
 인식론적 한계 때문에 존재론적 문제를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식론적 한계와 존재론적 한계가 정의의 측면에서는 구분되지만, 
 우리가 존재론적 한계를 지각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뭐. 사실 제 생각에 이 논쟁을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지금은 현재 알려진 사실에 대한 활용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04-04   

 병장 이승일 
 승호 / 물론입니다. 문제는 그 한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확장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축 위에서 확장되고 있는 한계는 엄밀히 말해 유한성과는 분명 다른 어떤 것입니다. 04-05 * 

 상병 박수영 
 승일씨는 정말이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