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라는 단편집을 읽었다. 그 중에서 눈을 끄는 소설이 있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라는 짤막한 글이었다. 

성형외과 의사인 동호와 전업주부인 미애에게는 고등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다. 정재와 정화다. 정재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아이다. 반에서도 3~4위 안에 꼬박꼬박 들어간다. 그래도 미애는 만족하지 못한다. 소수정예반을 운영하는 논술학원의 설명회에서 날렵한 몸매의 강사는  “입시는, 심리학이에요” 라고 하고, 루이비통 수첩을 꺼내는 아줌마는 “내신관리 안 하셨네요. 이 라인 넘어가면 어려운데” 라고 한다. 정재는 소문난 단과반에서 뺑뺑이를 돌고 돌아오면 과외를 하고 이승엽이 웃고 있는 스포츠면 대신 사설면을 읽는다. 
정재는 기말고사를 보았다. 문득 내다본 창 밖으로 커다랗고 검은 독수리가 스치듯 급강하하는 것을 보았다. 위 층에서 시험을 보던 장우가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했다. 쉬는 시간은 신경질적으로 점멸하는 형광등처럼 깜빡였다. 일부는 다음 시험시간의 교과서를 들여다보거나 더러는 경쟁자가 사라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영어시험을 얌전히 치뤘다. 침묵을 침식하는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에는 인간미가 없었고, 정재는 다만 무서웠다. 
정재는 방으로 들어갔다. 미애의 부름에도 정재는 나오지 않았다. 미애는 지난번보다는 좀 올랐어야 하는데 하며 기말고사 점수 걱정을 했다. 방 앞에서 정재야 정재야 하고 불렀다. 나 좀 내버려 둬요 ? 정재는 말했다. 정재의 방은 거대한 골방처럼 빛을 차단하고, 소리를 차단하고, 차원을 차단해 이계가 되었다. 정재는 힛키가 되고, 집안은 게임 종료 직전의 테트리스 블록처럼 어긋나게 쌓여간다. 슬픔과 불안이 집안에 도열했다. 동호는 “문 열어, 문 열어” 하면서 식칼로 문을 찍었다. 문틈에서는 랩이 흘러 나오고 동호는 일그러진 얼굴로 문을 찍었다. 푹 하고 자신의 가슴에 그리고 정재의 가슴에 칼날이 박혔다. 정화는 독서실을 핑계로 나와서 대원과 함께 나이트를 간다. 학교는 지옥이고 집안은 빙판이니 정화가 스트레스를 해소 할 건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뿐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전장에 나가지 않는 법 ? 이라 생각하며. 미애는 정재가 자신의 동굴로부터 나오지 않게 된 이후로 끔찍한 우울과 절망에 절어있다. 밤 늦게 나간 정화의 옷차림에 독서실에 전화를 해본다. 정화 안 왔어요. 라는 말에 속이 타 밤 거리로 나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정화와 부축하는 낯선 남자애를 발견한다. 바래다 준다는 남자친구에게 정화는 괜찮다며 엄마한테 걸리면 죽어 ? 라며 손을 내두른다. 화가 치밀어 오른 미애는 정화를 슬리퍼로 몇번이고 내리치지만 정화는 얌전히 맞기만 한다. 흰 블라우스에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무너지듯 주저 앉은 미애에게 정화는 천천히 말한다.
“…. 우리 어릴 때 엄마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했잖아. 그래놓고는, 그렇게 길들여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 탁월하고 맹목적인 어떤 괴물로 변신하기를 기대하기 시작했어. 오빠는, 나는, 그 사랑이 끔찍하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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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하고 맹목적인 괴물이라고 하니까 문득 L이 떠올랐다. 데스노트라는 만화책에 나오는 L이다. 부스스하고 제멋대로인 머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웅크리듯 앉아 있는 그는 탁월하고 천재적인 능력으로 키라와 목숨을 건 두뇌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그런 L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을 양성하는 기관이 있다. 그곳에서는 니어와 멜로가 차기 L을 꿈꾸며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지. 흐응.

나의 고교 시절 이야기를 해보겠다. 서울과학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다. 혜화동과 성북동 사이의 언덕에 걸터앉듯 위치한 그 학교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보성고교의 옛터전에 오롯이 세워져 있다. 그야 오롯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학교 부지는 왠만한 학교 서너 개를 합친 크기인데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300명 남짓하다. 선생과 교직원을 합해봐야 400명 가량. 한 학년에 500명씩 들어 앉아 있는 학교에 비하면 작디 작은 규모다.  이른바 소수정예라는 거다. 

입학조건은 꽤 까다롭다. 원서를 내기 위해서는 수학과 과학이 10% 상위 이내에 들어야 하고 전교등수 또한 10% 이내에 들어야 한다. 중학교 경시대회 수상경력이 있다면 수시 지원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상부터 내신이 좋은 동상까지가 해당되고, 그 밑으로는 합격이 안 된다. 면접은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일반전형으로는 내신 조건을 만족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가 있다. 물론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해야 한다. 대충 전교 10위 권 내의 성적이라면 서류 면접은 무리 없이 통과한다. 혹은 장려상이라도 좋으니 경시대회 성적이 있다거나 하면 내신이 조금 안 좋아도 뽑아 준다. 아무튼 과학고니까. 1차 전형 이후에는 면접 시험이 있다. 3~4 문제를 10분 동안 푼 다음 면접관 앞에서 문제의 풀이 과정과 해를 말하면 된다. 나는 수시 합격자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합격한 120명 가량의 인원이 서울과학고에 신입생으로써 들어가게 된다. 굳이 말하자면 리틀 L 이랄까. 아니면 L을 꿈꾸는 아이들 이라고나 할까.


중학교 시절 나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최소한 정재보다는 잘했던 것 같다. 아무튼 전교 2등 밑으로도 그다지 내려간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라이벌이자 지기인 S군에게 지는 것이 죽기 보다 싫었기 때문에 공부했을 뿐이다. 그다지 나는 이 학교에서 1등이 될꺼야! 라고 상큼발랄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저 S가 전교 1,2등을 왔다리 갔다리 했을 뿐이다. 어느샌가 2학년 때부터 S와 나는 전교 1,2등을 사이 좋게 나눠 먹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게 만족스러우면서도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셨다. 전교 1등은 만족스럽되 나눠 먹는 것에서 고개를 갸우뚱 하셨다. 이야. 무서운 세상이다. 중학교 때 1등이건 2등이건 글쎄 나는 별 상관 없다고 보는데. 아무튼 시험이 끝날 때 마다 S와 나는 집에 가면서 그날 성적을 교환했고, - 주로 98 이상이었다. 가끔 95 밑으로 내려 갈때면 얼굴이 푸르죽죽해져서 병든 닭마냥 고개를 쳐박았다 ? 집에 도착하는 순간 어머니는 뛰쳐 나와서 물으셨다. S보다 잘봤니? 대답에 따라서 어머니가 먼저 S집에 전화를 걸거나, 혹은 S 어머니께서 먼저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그래도 원수지간이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길을 가는 동지와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 어머니와 S의 어머니는 쇼핑을 해도 항상 같이하셨고, 학원을 알아 볼 때도, 입시 설명회에 갈 때도 함께였다. 언젠가는 회색 후드티를 사오셔서 기쁘게 입었는데, 다음날 S가 완벽히 똑같은 티를 입고 온 적도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인가 우리들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적당히 동네 근처의 고등학교를 가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내 중학교 2년의 여름에 깨지게 된다. 레전드로 불리우는 M 선배가 있었다.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7년 선배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막역한 친구의 아들이기도 하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컴공과를 한창 다니던 중이었다. 

우리 중학교는 그다지 명문은 아니었기 때문에 7년 전에 M선배가 서울과학고를 입학한 이후로 한 명도 과학고를 들어가지 못했다. 간혹 외고에는 들어가곤 했다. 그 레전드 M 선배가 여름 방학때 나와 S의 과외선생으로 채용되면서 과학고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들께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아무튼 내신 적인 면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 여름부터 어머니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기 시작하셨다. 과학고 입시설명회를 비롯하여 유명하다는 학원들의 설명회는 전부 휩쓸고 다니셨다. 그 결과 어머니들의 검색창에 걸려든 1순위 학원은 강남 대치동에 있는 베스트라는 학원이었다. 그런데 너무 멀어서 제외되고 차선책으로 종로 학원이 선택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시대회 상장이었다. 


그 후로부터 뺑뺑이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교과서는 내팽겨치고 나와 S는 갑자기 물리 2의 세계에 퐁당 빠져들었다. 그 세계는 조금 깊었다. 아니 솔직히 좀 많이 깊었다. 평일 중 3일 7시부터 11시까지, 토,일요일에는 풀타임으로 뛰었다.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정재보다 하드코어 한 것 같다. 아무튼 집, 학교 빼면 학원에서 살았다. 그 당시 피카츄 빵에서 나오는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게 유행이었는데, 하도 학원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150가지의 스티커를 모두 수집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함께 공부했던 S를 비롯한 십 수명의 소년들도 함께였다. 그렇게 무려 1년을 보냈다. 어머니는 수업이 끝날 때 즈음 자가용을 몰고 학원 앞에서 대기하고 계셨는데, 그걸 1년이나 하셨으니 정말 대단하신 열정이다. 모성애는 환상이 없는 사랑이고, 환상이 없기에 모성애는 영원할 수 있다는데 정말 그런가?


아무튼 그렇게 중학교를 살았다. 도중에 서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재캠프인지 뭐시기에 생뚱맞게도 생물로 합격해서 매주 토요일마다 관악구에 출퇴근하기도 하고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삶의 터전은 종로학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을 나는 아무 불만 없이 따라갔다. 그다지 싫지도 않았다. 아무튼 S한테 지는 것도 싫었을 뿐더러, 과학고라는 장소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S와 나는 중학교 서울시 과학경시대회에 참가했고 나란히 동상을 수상했다. 정말이지 질긴 인연이다. 그리고 나는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지원하려고 생각했다. M선배도 서울과학고였고 위치적으로도 좋았고, 그냥 왠지 끌렸으니까. 그런데 S는 나와는 조금 생각이 다른 듯 했다. 그는 한성과학고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절친하게 지냈는데 여기서 갈라져야 하나. 그래서 슬쩍 운을 띄워보았다. 그래? 그럼 나도 한성쓸까? S는 피식 웃더니 榮鳴 했다 뭘 중학교 3년 내내 엎치락 뒤치락 했으면 瑩 고교 3년 동안 그걸 또 할 생각이냐 라며. 말투는 장난스러웠고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눈이, 눈동자가 웃고 있지 않았다. 

‘이제 너와의 관계는 솔직히 말해 진저리가 나. 더 싸우기 힘들다. 헤어지자’

나는 말없이 수긍했다. 그리고 내가 말없이 서울과학고에 원서를 지원한 날 결과적으로 나는 가장 절친했던 친구를 잃어버렸다. 왠지 모를 가슴의 허함을 어찌해야 할지도 모른채 나는 새로운 환경에 몸을 디밀었다. 


입학 후 수업 첫날, 교실의 분위기는 끝도 없이 냉랭했다.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메스 끝으로 환부를 겨누듯, 아이들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주변 환경을 바라보고, 라이벌들을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 반에는 남자가 18명이, 여자가 6명이 있었다. 누군가가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서 일반화학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23명이 일제히 움직였다. 말소리는 나지 않았다. 

각자 책을 꺼내 들었다. 일반 물리학책, 세포 생물학책, 기초 전자기학책 ? 하나 같이 대학 전공서적들이었다. 우리들은 스스로가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일반화학책을 꺼내들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척 했다. 솔직히 말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화학도 배우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 대학교 전공서적을 붙잡고 배겨내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일반화학책을 들고 있던 것은, 학교측에서 반드시 이 책을 살 것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침묵에 빠진 반은 각자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처럼 활자와 활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음절,음절 설기설기 읽는 아이는 없어보였다. 
이 순간 어렴풋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은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닐지도 몰라.’

시간이 지나고, 처음의 경직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아무리 날고 기는 아이들이라고 한들, 처음부터 대학 전공 서적을 읽어낼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갖춘 아이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 긴장해서 그랬어. 다들 뭔가 읽길래. 혼자 안 읽으면 바보같잖아?’

우리는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조금씩 인간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도했다.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구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나는 점차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어디까지나 적응했던 것은 ‘생활’뿐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매우 성실했다. 기본적으로 방임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기숙사는 밤늦게 까지 게임을 하건, 공부를 하건, 심지어 야동을 보건(물론 걸리면 안 된다. 또한 물론 나는 보지 않았다. 정말이다!) 선생님들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오면 그것은 결코 방임이 아니었다. 학생들에 대하여 완전히 손을 떼고, 그들의 방임에 맡김으로써 자신의 생활과 성적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언가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며 매일 새벽 2시까지는 공부했다. K는 그런 내방에 가끔씩 얼굴을 비추곤 했다. 

‘뭐하니?’
‘어. 일반 물리학 공부해’
‘오. 독학으로 하는거야? 대단하네’
‘아…아니. 그런건…’

솔직히 말해 나는 거의 반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먹는 걸 포기하고, 거의 매달리듯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그만한 만족감조차 내 손을 떠나버리고 말 테니까. K는 슬슬 걸어와서 내 침대에 누워선 뒹굴거리며 내가 공부하는 걸 구경했다. 나와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K는 어느새 사라져서 다른 방에 가서 뒹굴거리곤 했다.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소문이 돌았다. 

‘K가 돌아다니면서 남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자기 라이벌이 될 만한 사람은 누가 있는지 체크한다더라.’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K가 정도가 심했다뿐, 수 많은 아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은연중에 상대방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날 무슨 공부를 하는지, 몇 시까지 공부를 하는지 130명 밖에 안 되는 소규모 사회는 정보의 순환을 가속화 시켰다. 이성관계와 같은 핫 토픽이면 정말로 채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전교생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정말로 선생이 필요없었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빅 브라더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여, 어디에서도 누군가를 감시했고,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 자신이 빅 브라더이기 조차 하였다. 

심지어는 상대방에게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 칼침하는 척 11시 30분에 바로 잠들었다가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느날 나는 기숙사 로비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물리 레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벅차고 힘든 일이라, 새벽 2시가 넘도록 나는 레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A4 용지에 연필로 열심히 적었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적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물벼락이 쏟아졌다. 커다란 막처럼 펼쳐진 물은 일제히 내려와 내가 쓰고 있던 레포트를 적셨다. 흑연이 종이를 타고 번졌다. 펼쳐놓은 책이 젖었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K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주먹을 들었다. 
  그가 그런 악의적 행동을 한것은 나마저도 배제해야 할 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장난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중간고사가 치러줬다. 결과는 비참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학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했다. 시간은 60분 문제는 11문제가 출제되었다. 객관식은 없었다. 단답형 6문제와 서술형 5문제가 나왔다. 그 중 간단한 문제조차 나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중학교 시절 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프라이드는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중간고사 종료 이후, 나는 바로 수학 열등반과 토플 열등반에 편성되었다. 열등반에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있었다. 

이곳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며, 겁 없이 발을 디밀었던 나름 전교 1등 출신들이 말이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으나, 학교에서는 우리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L을 꿈꾸는 아이들. 무슨 대회를 나가도 금상 정도는 휩쓸어 오는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는 분야별로 5~6명씩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을 더 성장시켜서 세계 대회에 나가 골드 메달을 따오는 것. 그것이 학교의 지상 과제였다. 따라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부추겼다. 이른바 1진들은 자신의 주력 과목의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듣질 않았다. 그들은 맨 뒤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은 채, 전공 서적을 휙휙 넘기고 있었다. 

그 시절 학교 붕괴현상이 이슈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학교 붕괴현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선생님에게 가서 묻느니 그들에게 물었다. 학우들로부터 수도 없는 질문 공세를 받아도 전부 스매쉬로 되갚아주는 그들은 우리들의 우상이며 목표였다. 너무나 잔혹했던 것은, 목표가 너무나 많았다. 나는 내 자신이 저네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해야 했다. 


사실 애초에 왜 그것으로 고민해야 조차 우리는 알지 못했다. 환경이 사회가 그것을 부추겼다. 우리는 누구라도 일등이 되어나기 위한 인재인양 취급을 받았다. 자본이 투입되었고, 환경이 조작되었고, 우리는 끝없이 세뇌되었다. 시키는 과정을 소화해라. 그러면 넌 최고가 될 수 있어. 

You are the best. Best of best. 

우리는 경쟁의 의미를, 이긴다라는 명제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숫자 놀음과 나이에 맞지 않은 심도 있는 지식을 주입 받을 것을 강요받았다. 친구들은 동료라기 보다는 적, 혹은 라이벌로 인지되어졌다. 

부모들도, 학생들도 L을 꿈꾸었다. 어째서 L이 되어야 하는 지. 애초에 L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가 1등과 상장이라는 일종의 광기에 시달렸고, 우리는 모두 달려갔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에서 화학으로 넘버 10안에 든다는 칭호를 받으며, 서울대 의대에 갔고, 물리로 금메달을 따내며 서울대 치의대에 갔으며, 세계에서 프로그래밍을 가장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연세대 의대에 갔다.

언젠가 우리들도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겠지. 그때 당신은 자식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아직 그가 L이 되어주길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