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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영훈 05-03 14:40 | HIT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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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익명성
이곳에 처음으로 작성하는 글이군요.
오늘 오후 전 화장실에 일을 보다, 오래된 신문 한장을 발견했습니다.
요염한 연예인의 매력적인 자태가 눅눅한 냄새와 함께 어울어진 회색 종이였지요.
헌데, 뒷면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성토의 글이 실려있더군요.
' 인터넷 실명제 합법화 추진'
제목을 보며, 한번 힘을 주었습니다.
' 쾌'한 기분과 함게 '묘'한 생각이 들더군요.
실명이란 무었일까?
나에게 있어, '김영훈'이란 무었일까?
전 이름은 하나의 객체가 그 객체를 둘러싼 환경속에서 다른 객체와
구분지어 질 수 있게 만들어진 지시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발명 된 것이지, 결코 발견 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결코 유일한 것 도 아닙니다.
이쯤에서 저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커다란 것을 밀어냈습니다.
헉. 생각보다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실명제란 무었인가요?
저는 기사를 읽어가며 인터넷 실명제의 숨은 폭력성을 보았습니다.
최근 횡횡하는 악플사례들을 나열하며,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들에 대해 질타합니다.
그리고 각종 전산사기 사례들 또한 익명성에 의해 양분공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실명제만이 이런 병폐들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실명제는 철저한 상업주의 계산에 의한, 하나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하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며 마지막 힘을 주어 봅니다.
익명성은 흔히 가면으로 비유됩니다.
우리는 그 가면을 쓰면서,
구속받고 있던 하나의 실명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면을 쓰고 악행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휴지를 준비합니다.
' 실명에서의 해방'이라 칭한 것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가진 힘이기도 합니다.
저는 '김영훈'에서 '홍길동'이 되어,
새로운 생각들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열이니, 소극적인 안여돼니 하는 말들로 비웃으실 진 모르지만,
전 이것이 '자기'에 가까워 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물론 이것은 건전한 방향성입니다.
하지만, 시도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익명성은 자아에게 치우친 객체를 자신에게로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조심 닦기 시작합니다.
아아 이런.. 지병이 활동하기 시작하는군요.
익명은 Persona에 비친 그림자로써,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병장 이승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을 없앤다고 똥을 안쌀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능한 똥통을 줄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인트라넷을 보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어요. 대부분의 인트라넷 사이트들은 실명제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회원들의 책임감과 진실성이 확실히 증대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여기서 (인터넷처럼) 아무말이나 막 하지 못한다고 크게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분명 우리에게는 그림자가 있고, 또 그것을 인정해야겠지만, 가능하다면 그것을 치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해요.
한편 저는 이름이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라고 믿는 편이에요. 물론 "이승일" 이런 구체적인 기호야, 저희 아버지께서 지어내신, 그냥 임의적인 기표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표로 표현되건, 개개인에 대한 이름의 존재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05-03 *
상병 김영훈
승일 / 이름이 표상하는 메타는 분명 발견 된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명제에서 오는 책임감, 진실성이 이곳의 소통에 힘을 실어 준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책임감,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조차 지켜져야 한다는
테제에는 의문이 든답니다.
양자를 따졌을때 저는 개인적인 자유가 더 우월한 값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05-04
병장 이승일
보이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진실성이 지켜져야하는 게 아닐까요? 보이는 공간이라면 구테여 그것을 문제삼지 않아도 알아서 지키려고 노력하겠죠.
이곳 역시 보이지 않는 곳이고, 실명제를 통해 책임감과 진실성이 증대되었다면, 인터넷도 그러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나요?
영훈씨가 말씀하신 '자유' 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나 타락이 아닐까 합니다. 악플러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부적절한 욕망의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05-04 *
상병 김영훈
승일 / 제가 말한 자유가 방종이고 타락이라 할지라도,
저는 책임감과 진실성보다는 그것이 더 우월하다 생각됩니다.
적어도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 의해서는요.
저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다른 것과 별개판단하고 싶습니다.
이것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제 변태적 경향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가끔 제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악플을 볼때 전 쾌감을 느끼곤 한답니다.
그 어떤 논리적인 반박 글보다 더 요.. 05-04
병장 이승일
영훈 /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방종과 타락이 책임감과 진실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이시군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유나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인 성향이라는 말씀이시구요.
그렇다면 결국 사람들의 동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데 세상의 여러 사회가 어찌되었건 사라지지않고 존속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성원들이 방종과 타락보다는 책임감과 진실성이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종과 타락을 원하는 구성원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 사회의 해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라져버리지 않고 현존하고 있는 사회가 영훈씨의 주장을 받아드리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사회 속에서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물론 이 경우 별로 도움은 안되겠지요. 05-04 *
상병 김영훈
승일 / 제 생각보다 좀 더 멀리 왔네요.
굳이, 말하자면 전 해체보다는 변화라는 것에 희망을 두고 싶네요.
제가 말한 것은 개인 안의 자유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술 혼 같은 것이지요.
그것을 인터넷이라는 특수 매체를 통해 교감 할 수 있는 건전한 장을 만들자는 것이 었는데.
역시 능력의 한계 인 것 같습니다. 05-04
병장 이승일
영훈 / 음 그런 것이라면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실명제 속에서 바로 그 자유를 추구할 수는 없을까요? 모두에게 모습이 드러난 상태에서 당당하게 할 수 있을 때에만 그것을 정말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05-04 *
병장 이승일
이 글의 엄청난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겠죠.
전 오늘 알았는데, 글쓴이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도저히 말할 수가 없군요.
.. 임금님귀는 당나귀귀다 ~
김영훈(?) 씨는 정말 천재십니다. 낚였어요. 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