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필독서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0929) 
 
 
 
 
[……]1970년대 말, 당시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던 셋째 형이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아니었다.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 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나는 곧바로 형의 이 말을 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없는 자기연찬 自己硏鑽 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서경식,「소년의 눈물」중에서


--------------------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모든 명제에 대해 반명제를 내세우는 것이 시대적 습관이 된 오늘날, 이 글은 많은 이들이 비판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모든 책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책이든 읽고서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읽어야 할 책'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질문들로 시작하여 결국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책들 사이에 기존 사회의 '권력구조'를 대입시켜 '층위'를 짓고 다른 책들을 어느 한 책 밑에 '종속'시키며 동일한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책들을 '노예화'하는, 보수적이고 파시즘적이며 책을 당사자와는 무관한 질서 속에 편입시켜 남성적 정복욕을 채우려는 변태적 인간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난 이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말하는 필독서는 '세계 명작 100선'이라든가 어떤 대학이 추천한 몇 권의 고전 같은 것이 아니다. 먼저 이것부터 분명해 해두자.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어느 누구나 예외없이' 꼭 읽어야 할 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공통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류 공통의 필독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꼭 읽어야 할 책'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명제가 한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인식이라는 중요한 작용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식함으로써 '꼭 읽어야 할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통을 인식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배고픔을 인식함으로써 영양을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경식은 자신이 '재일 조선인'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사회과학 방면으로 자신이 '꼭 읽어야 할 책'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란츠 파농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체 게바라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그의 눈 앞에는 '꼭 읽어야 할 책'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남은 일은 하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 존재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끈질기게 추적해야 한다. 부딪치고, 생각하고, 경험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읽은 책들이 존재의 인식과 추구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상병 김동환 (2005-09-29 11:38:36)  
동감 한표!  

병장 양용구 (2005-09-29 13:28:34)  
전적으로 동감합니다(웃음)  

병장 박요한 (2005-09-29 13:30:53)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 존재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끈질기게 추적해야 한다. 부딪치고, 생각하고, 경험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나아가야 한다.

전적으로 저도 동감!  

상병 박성욱 (2005-09-29 13:59:19)  
서경식님의 글을 읽고 꼭 읽어야 할 책을 스스로 발견 하는 것 보단 책을 꼭 읽어야 겠다는 
느낌이 더 드네요  

병장 이두원 (2005-09-29 14:35:18)  
책을 읽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건가요? 그냥.. 문득 생각이 드네요(웃음)  

병장 박윤철 (2005-09-29 18:22:12)  
공감합니다. 스스로에게 '꼭 읽어야 할 책' 은 반드시 있는 것 같아요. 왠지 비장한 느낌이 드는데요?  

상병 박종환 (2005-09-30 08:22:24)  
우연찮게 알게 된 이 곳에서 참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글을 읽고 나니 사명감이란 말이 떠오르는 군요. 각자에게는 필독서가 있다. 모두들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또 각자 처해있는 특정한 상황이 있으니, 각 개인마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읽어야할 필독서는 있지만, 일반적 의미의 바이블은 없다. 좋은 글 입니다. 동감합니다.  

상병 함대식 (2005-09-30 08:42:57)  
좋은 내용입니다. 공감입니다.  

병장 한상천 (2005-09-30 09:21:00)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읽찍 읽어 봤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꼭 읽어야 한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지만 가슴 깊이 남아 누군가에게 진짜 이책은 읽어야 해라고 말할수
있는 그런 책이 있으신지요??

전 신영복교수님의 감옥으로서의 사색을 말하고 싶습니다..  

일병 강승민 (2005-09-30 09:45:54)  
100Q% 동감입니다!!!!  

상병 손재선 (2005-09-30 10:54:04)  
"'꼭 읽어야 될 책'이라는 개념은 그릇된 것이다"에 대한 짧막한 반론.

좋은 점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책 선정에 있어서 객관적인 요소보다는 주관적인 요소가 더 많이 대입되는 것은 인간이기에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일 것입니다. 마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기자들과 방송사에서 뉴스거리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극히 주관적임이 명확할 때 책 선정 과정에도 이러한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선정이라는 것은 초기부터 정치적인 혹은 자국 중심적인 목적으로 가지고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읽어보는 것이 좋아'라는 문장은 결론만 따져보면 '타인의 주관 주입'으로 이어지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살펴보면 그 책들은 태초부터 만인에게 읽히도록 씌어진 것들이 아닌 수년,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기법, 문체, 묘사능력 등 작가의 여러 요소들을 평가하여 "뛰어나다"라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결코 짧지 않은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만약 A, B와 같은 부류의 책들이 알고보면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일반 대중은 그 책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맹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근대에 들어서 대중의식은 계속 날카로워지고 있어 더 이상 추천 및 선정된 서적이라는 테두리로 대중을 묶어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병 최정호 (2005-09-30 12:07:50)  
저도 동감합니다. 한상천님 처럼... 꼭 일어야 할 책이 아니라...
좀 더 읽찍 읽었으면 하는 아쉬운 책이 간혹 보이더군요.  

상병 박종환 (2005-09-30 12:17:41)  
손재선님 의견도 맞는 말 입니다. 빈껍데기 뿐인 책은 아마 가만 놔 뒀을 겁니다... 점점 사라져가지 않을까... 주위의 많은 무협소설들과 뭐 그런 것들이 있겠죠. 사회에선 그들의 질서와 가치관을 무차별하게 해치는 그런 책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의 안정을 깨는 것들이겠죠. 예를들면 뭐 김일성을 찬양하거나, 맹목적으로 자살을 권유한다던가 찬양한다던가 하는식의 내용들 말 입니다.  

상병 오철수 (2005-09-30 13:36:28)  
'언제나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은 존재 할 수 없고
'언제 누구에게 ' 도움이 되는 책만 존재 할 뿐이다.  

상병 임승일 (2005-09-30 16:29:55)  
꼭 읽어야 될 책. 그 앞에 "그 때에"라고 수식어 하나 붙이고 싶군요. 
독서 역시 시간적 요소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와서 좋은글 보고 가는군요. (웃음)  

일병 박민수 (2005-09-30 17:01:57)  
제 입장에서 흔히 말하는 '세계 명작 100선'과 같은 필독서는 정말 고마운 대상으로 느껴지네요. 읽어 나갈 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것은 물론, 전혀 알고 있지도 못했던 부분에의 양서-이것 또한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읽어봄직한 책으로 알려진 것으로 규정하여 말한다면-를 쉽게 집어들 수 있게도 해주니까요. 갑자기 논외의 말을 꺼낸 거 같아서 살짝 쑥스럽네요. 호호.  

상병 이승준 (2005-09-30 22:41:51)  
나에게 꼭 읽어야 될 책은 뭐란 말인가.. 고민해 봐야 겠다.  

상병 엄보운 (2005-10-02 15:02:45)  
흡인력 있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논의와는 조금 옆으로 나가서.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 손이 먼저 닿는 법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대중을 상대로 만든 '권장도서'는 분명 유익하다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아무리 유명했고 명작이라고 추앙받았던 책이라 하더라도 고전의 성격상 까다로운 독해 능력을 요구하기에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책들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 재미없지만 유익한 책을 선정하여 추천하거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의 접근은 맞음을 넘어 옳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필독하여 읽을만한 책은 분명 없을 지는 몰라도 누구에게나 권장할만한 책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장 김경근 (2005-10-04 11:12:06)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이 필독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