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병장 허원영/060117) 
 
 
 
 
[……]삼 일 동안 저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고 합니다. 의사는 과실로 처리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유예해 주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중얼거린 헛소리는 집에 갈래, 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집이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는 당사자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그렇게 말하고는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 다자이 오사무,「인간실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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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종종, 내가 이곳에 속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건 톰 요크의 목소리로 "I don't belong here"이라고 말해야 더 적절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건 무슨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다.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을 때가, 나에게는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A라는 인간이 있다. 이곳의 말로 '우울함'에 젖어 있다. 심장은 잔뜩 수축되어 있고, 그 끝에 납추가 매달려 있다. 그는 점점 가라앉고 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이미 절반쯤은 땅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내보내는 '우울함'의 파형이 자꾸 나를 자극한다. 그의 몸에서 조용히 퍼져나오는 울림에 나도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한다. 웅- 웅-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어느새 그와 연결되어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그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볼까 하다가, 곧 쓸모없다는 걸 깨닫고 그만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단지 함께 공명하는 것 뿐이다.
  그때 B라는 인간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이곳'의 인간이다. 그는 '이곳'의 어법으로 A에게 말을 던진다.
  "인상 좀 펴라. 세상 짐은 혼자 다 짊어진 얼굴을 하고서는. 너만 힘드냐? 너보다 힘든 사람도 얼마든지 있어. 넌 편한 줄 알라고."
  툭, 하고 울림이 끊기는 걸 느낀다. 같이 공명하던 나의 몸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이곳'의 인간인 B는 이미 할 말을 다 하고 사라진 뒤다. A는 난자당한 몸으로 피를 흘리며 비틀비틀 걸어간다. 아마도 '이곳'에서 자기 몫으로 할당된 암굴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리라. 거기에서 지친 몸을 뉘인 채 고향을 떠올리겠지.

  이런 경우도 있다. 역시 전형적인 '이곳' 인간 C. 평소에는 '이곳'의 특산품인 가면을 잘 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걸 벗어던져 버리고 맨얼굴을 드러낸다. 이곳의 말로 '분노'와 '짜증'이 뒤섞인, 무섭도록 일그러진 표정이다. '이곳'에 살면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봐 온, 그러나 전혀 적응할 수 없었던 그 표정보다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놀란다. 그는 등 뒤에 잘 숨겨두었던 나이프를 꺼내어 내 등을 쿡, 하고 찌른다. 아프다. 아픈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순간 희박해지는 공기의 밀도가 나를 숨막히게 한다. 나이프로 찌르기는 커녕 박힌 나이프조차 빼지 못하는 내가 조금이라도 상대방을 건드렸다가는, 이 세상에 금이 가버릴 것만 같다. 움직일 수가 없다. 상대를, 밀어낼 수 없다.

  아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묻고 싶다. 다자이처럼, 외마디 비명처럼 물어보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 건가요. 저에게 화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내가 '이곳'의 인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능력. "화낼 수 있는 능력". '남을 밀쳐낼 수 있는 능력'. 어째서 '이곳'의 인간들은 잘도 그렇게 서로를 밀쳐내고 또 달라붙는 걸까. 어째서 그렇게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내 고향은 여기가 아니다. 내 집은 이곳이 아니다. 제기랄, 나는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마흔이 되기 전에 죽은 다자이는 행복했으리라. 그는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그의 "집". 그의 죽음을 애도할 필요는 없다. 그는 다만,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중얼거린", 엉엉 울면서 찾아 헤멘 바로 그 집으로 말이다. 그는, 행복했으리라.
  그러나 다자이 같은 용기가 없는 나는, 아직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자이처럼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라고 작은 목소리로 되풀이해 중얼거리듯이 노래하면서", '이곳'에서의 질긴 생을 이어간다. 그리고 가끔, "더럽혀지지 않은 눈을 양손으로 쓸어 담아 얼굴을 씻으면서" 운다. 그리고 말한다.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 





병장 허원영 (2006-01-17 23:34:37)  
순전히 <인간실격>을 읽은 분들을 위한 글. 갑자기 형진 님이 생각나서 그만.
참고로 큰따옴표(")로 묶인 문장들은 전부 <인간실격>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상병 박해성 (2006-01-18 02:01:06)  
다섯번의 시도, 서른 아홉에 찾아온 죽음.
하지만 그는 "집"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그에게 애초부터 "집"은 없었거든요.  

상병 엄보운 (2006-01-18 07:52:53)  
'creep'하며 살아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아야 하겠죠. 알고 계시고 놓치지 않으실 거잖아요.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상병 고계영 (2006-01-18 09:35:28)  
그래도 살아가길.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와 뛰어노는 것이 재미있기에.
싸우고 상처가나고 피가 흘러도 그 고통마저도 재미있기에.
'한번 더' 밖으로 나가길. 집은 나중에 천천히 갈 수도 있기때문에.  

병장 정준화 (2006-01-18 09:37:16)  
저 역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곳이 집으로부터 몇백리 떨어진 타향일지라도 이따금 원영님 같은 동향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위안삼아 버텨내 보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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