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이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병장 허원영/051208) 
 
 
 
 
자본론


맑시즘이 있기 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_
최영미


--------------------

  노암 촘스키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이론은 무조건 의심하고 봐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맑시즘이 그렇고 트로츠키주의가 그렇다. 헤겔주의나 니체주의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우선적으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자세 없이 어떤 사상을 대하면 그건 사상을 신봉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상을 대하면서 필요한 것은 지성인의 자세이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상을 신봉하고 이념에 경도되어 광적인 믿음을 보이면 안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종교화 된 사상 속에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이념이 인간을 속박한다. 이념 따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인간이 이념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다. 생각이 삶을 잡아챈다. 고문을 하고 자살을 강요한다. 목 매달고 불태워 죽인다. 거기에는 한 줌의 재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무엇을 위해 사상과 이념이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념 이전에 인간을 생각해야 한다. 이념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지, 인간이 이념을 위해 어떤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를 고민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먼저고, 이념은 나중이다. 이 둘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산문으로는 이렇게 긴 글을, 시는 단 네 줄로 압축한다. 거기에는 이념이 들어있고, 인간이 들어있고, 삶이 들어있다. 시가 숨을 쉬며 산문을 살며시 감싸안는다. 그 안에서 산문은 눈을 감는다. 이런 상황에서 산문은 시의 주석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시는 영원할 것이다. 시가 사라지고 묻혀, 인간의 가슴을 때리지 못하게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병장 김동환 (2005-12-08 07:44:57)  
우와. 정말 마음에 꽃혀오는 시네요.
이번 수요일도 역시. 잘읽었습니다.(웃음)  

상병 김성엽 (2005-12-08 07:52:58)  
우리가 사상을 대하면서 필요한 것은 지성인의 자세이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말인것 같아요. 인간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의 이념을 먼저 앞세워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하고, 그것이 잘못됐다라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으니...  

병장 임경훈 (2005-12-08 09:47:43)  
시의 출처가 어디죠?  

병장 김대현 (2005-12-08 11:43:24)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집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병장 임경훈 (2005-12-08 15:27:18)  
헉.. 2000년에 샀던 책..에라, 문학점 불감증!  

병장 이준오 (2005-12-08 18:29:35)  
분명히 주객은 지금도 전도되고 있죠. 사이비 종교들이 그래요. 종교는 분명히 주객이 전도되었죠. 그렇지만 필요 없지는 않다고 봐요. 그리고 그 종교의 가르침은 분명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죠. 좋은 글이네요  

일병 김동민 (2005-12-08 19:18:55)  
옳습니다. 이념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상병 주영준 (2005-12-09 11:13:01)  
-무제-


아나키즘이 있기 전에 아E네들이 있었고
엠마 골드먼을 추앙하기 전에 나는 그녀를 사랑하였고
다마가 다이에 구르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 붉음을 사랑하리라
사각 다이로 폭주하는 다마의 무질서를, 무한의 가능성을.


-이강준  

상병 박형주 (2005-12-11 00:48:45)  
그런데 왜 하필 맨체스터일까요?
런던 근교에 살지 않았었나.  

상병 김강록 (2005-12-11 14:29:46)  
이강준. 하하하  

상병 김강록 (2005-12-11 15:07:39)  
형주님 / 혹시 유나이트! 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하하.  

병장 손영청 (2005-12-12 06:20:02)  
정말 마음에 꽂히는 시인걸요..
이념이라는 것도 인간이 더 나은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 만들어져야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이념이 인간을 속박해버리면 안 되구요..
이념이 생기기 이전 인간이 있으니까요..  

일병 최요환 (2005-12-12 22:20:51)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