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하여 
 
 
 
 

[……]철학 공부를 베끼기에서 시작하라니 의아해할 수도 있다. 철학사 따위는 무시하고 <내 철학>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베끼기 없이 <내 철학> 해봤자 남는 건 처치할 길 없는 거만과 아무런 맥락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란한 단어들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한 사람조차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지껄이기 마련이고 남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자신의 철학이 그만큼 심오하기 때문이라는 도취에 빠지며 급기야는 도사가 된다. 이런 도사들은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접하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읽은 몇 안 되는 책 속에 나온 말로만 설명할 뿐이며,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기가 좋아하는 학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려 한다. 이런 도사는 철학 공부하는 사람 중에만 있는 건 아니다.[……]

- 강유원,「몸으로 하는 공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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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왜 읽는가? 물론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누구 말대로 "조금이라도 할 일이 있다면" 절대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있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도 있다.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많지만,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인생의 목적이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건 전적으로 책 읽는 이에게 달린 문제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이유에는 책 읽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수의 이유가 존재한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식의 체계적인 습득'이다. 인간은 책을 통하지 않고서 체계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영상 강의를 백 번 듣는 것보다 교과서를 한 번 정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영상은 스쳐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지만, 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녹음된 강의 테이프도 마찬가지다. 강사와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강의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책처럼 고정된 형태가 아니고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체계적인' 학습에는 큰 효율성이 없다.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강의'보다 '책 읽어오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체계적으로 쌓인 밑바탕이 없으면, 아무리 명강사의 강의를 많이 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으면서도 책을 '체계적으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인용문에서 강유원이 말한 '도사'들이다.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1) 단어와 인물, 책 제목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는 점, 2) 인용된 문장/단어/책과 글쓴이 본인이 말하려는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는 점, 3) 그렇게 됨으로써 결국 무얼 말하려는지 잘 모르게 된다는 점,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 본인은 자신의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강유원은 이런 '도사'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베끼기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 생각에 이런 '도사'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책을 읽되 글자만 읽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더라도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모두 헛일이다. 독서를 할 때, 특히 학문의 영역에 해당하는 책을 읽을 때는 책의 논리구조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책장만 넘기면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다, 라는 자세로 책을 보아도 "내가 이 두꺼운/유명한/훌륭한 책을 다 읽었구나!"라는 포만감은 남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헛배부른 것이며, 막상 "니가 읽은 책은 무슨 내용이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려 하면 머릿속에는 단어나 어구만이 둥둥 떠다닌다. '인상비평'이 아니라 '인상독서'를 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수박 껍데기만 열심히 핥은 격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제대로 쌓인 '체계적인' 지식이 없기에 뭘 써도 부정확하고 오류가 있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대충 읽기는 읽었어도 '많이는' 읽었기에 자신의 잘못을 쉽사리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글 내용의 오류를 지적해도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며, 논의와는 다른 맥락의 것들 - 역시 수박 껍데기들 - 을 가져와 논의를 헝클어뜨린다. 사람들이 맥락 없는 논의에 혼란을 일으키면, 그들은 자기의 생각이 고차원적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악순환이다.

  이런 '도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왜 책을 읽는가?'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은 집착의 동물이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돈을 많이 모으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식이 많아보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무서운 덫이다. 왜냐하면 돈은 많이 모으면 쓸 데라도 있지만, 이리저리 줏어모은 잡다하고 비체계적인 지식은 처치곤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오만과 결합하여 쓰려 해도 쓸 곳이 없어진다. 이것은 바로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명확한 해답 없이 그저 읽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책을 지식 축적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사실 책이란 물건 자체가 '지식을 고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 지식이 신화든, 곡물의 수확량이든 말이다. 핵심은 그 지식을 '올바로',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흩어진 지식의 파편을 그러모으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듯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축적한 지식'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지식'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도리를 갓난아이의 정수리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치에 협력해 생화학 무기를 만든 화학자 하버의 예가 그렇고, 백인종의 우월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누이트의 뼈를 발라내며 연구한 인류학자들 역시 그렇다. '어디에 쓸 것인가'를 모른 채 휘두르는 무기는 누구 하나 다치게 하고 끝나면 다행일 정도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지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지식은, 언젠가 그 사람에게 날카로운 비수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증거를 대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상병 배준환 (2006/02/15 17:37:00)

우엇.. 그렇군요.(털썩.)    
 
 
 병장 박준응 (2006/02/15 18:22:53)

'알면 알수록 말수는 줄어들고 쓰는 것은 조심스러워지는 법' 
원영님의 글을 읽고 위와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도 한 번 반성해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원영님의 시각은 날카롭군요. 마치 앞뒤를 꿰뚫어 버린 날이 잘 선 칼날 같달까? 
꿰뚫리면 가슴이 휑하고, 그 고통은 오래 갈 것 같은 무서움.(웃음)    
 
 
 병장 한상천 (2006/02/15 18:43:02)

예전에 쓰신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것과 연관해서 보면 좋기도 할꺼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병장 김형진 (2006/02/15 18:43:02)

잘 읽었어요, 준응님 말씀대로, 이거 너무 날카로워서, 숨이 턱 막히는데요. 
큰 벽을 마주하고 글을 읽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서, 그만. 
저 역시 책을 늘 '체계적으로' 읽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별다른 이견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병장 김대현 (2006/02/15 20:57:29)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지식은, 언젠가 그 사람에게 날카로운 비수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증거를 대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왜 추천기능이 없는 겁니까!    
 
 
상병 엄보운 (2006/02/15 22:12:17)

십년 묵은 체증이 가신다는 것은 이런 글을 보고 말하죠. 작은 세계에서 본인의 의무를 방기하지 않고 타인의 양심 또한 커버해주시려는 원영님의 이 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신이 진정한 책마을의 챔피언입니다. 

원영님의 지금까지의 어떤 글보다 날카로움이 돋보였습니다.    
 
 
상병 박민수 (2006/02/15 22:28:35)

멋진 글이네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이미 위에 있는 댓글에서도 여러번 쓰였지만- 칼날이 되어 제 가슴이 꽂혀 버리는군요. 하. 
「 핵심은 그 지식을 '올바로',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흩어진 지식의 파편을 그러모으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듯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간 헛된 허영심과 오만함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해왔던 그러모으기에서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구슬을 꿰어야겠습니다. 아아.    
 
 
병장 김태경 (2006/02/16 09:00:56)

읽히기에 어렵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며,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무섭도록 멋있는 글이네요. 
저 이제 책읽는 권수가 화-악 줄어들어버릴것 같애요.    
 
 
 일병 홍지욱 (2006/02/16 09:24:19)

" 베끼기 없이 <내 철학> 해봤자 남는 건 처치할 길 없는 거만과 아무런 맥락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란한 단어들뿐이다. " 이 문장이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가끔씩 어떤 책을 읽을 때, 그걸 지도해 줄만한 선생님이 있었으면 하지마는, 또한 그럴 수 없는 게 지금 현실이고, 이후의 저의 삶이겠네요. 저 역시 책 읽는 방법을 다시금 생각해 보네요. 여전히 어렵네요.    
 
 
상병 김강록 (2006/02/16 10:51:20)

글 하나하나의 날카로움보다도 우리를 사로잡는 건, 지금 허원영이라는 한 청년이 그 자신의 열정과 의지로 세계의 미로와 칡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입니다. 물론 허원영씨야 처음부터 대단했지만, 요새 들어 더더욱 날이 서고 그야말로 '한창 물이 오른 듯' 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래 너는 나의 길을 가라,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하고 넘기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서라도 원영님이 곧 이루게 되실 어떤 성취를 꼭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병장 김형진 (2006/02/16 12:41:34)

저어, 강록씨. 멋져요. 
근데, '너는 나의 길을 가라,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이거 오타 맞죠? 
니껀 내꺼, 내껀 내꺼. 그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푸핫.    
 
 
상병 김강록 (2006/02/16 13:12:49)

형진 / 으악. 하필이면 이런 오타를!    
 
 
병장 육이은 (2006/02/16 13:16:40)

강록 / 사실 저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형진씨처럼 강록씨 답글 아래 또 답글을 달아버리면, 강록님이 수정을 하실 기회를 박탈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아서... 쪽지를 드릴까하다가, 나보다 연상인 강록씨가 너무 어려워서. 일찍 발견하시길 기도했는데.    
 
 
병장 김석윤 (2006/02/16 13:19:08)

엔젠가 원영씨가 내는 칼럼집을 보며 고객를 끄덕이고 있을 제가 보이는 글이군요.. 
책 내시면 제가 꼭 팬이 되어 드릴께요..(웃음)    
 
 
상병 엄보운 (2006/02/16 16:12:10)

앗. 저는 그 부분을 진심으로 감명 깊게 받아들였는데, 오타였던 거예요? 제 생각에 강록씨의 사상이라면 좀 더 심오한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걸요. 유희 아래 감추어진 그 만의 진심!    
 
 
상병 이기영 (2006/02/16 16:58:34)

이런이런.... 정말 제가 책을 왜 읽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저에게 있어서 책은 돈과 같다고 생각했었던거 같아요 
많으면 좋고 없으면 않좋은 돈처럼 
책도 많이 읽으면 좋고 많이 읽지 않으면 안좋은것인양..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걸알게 돼었어요... 
읽었던 책을 또 읽어보고 또 읽어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알거 같아요...    
 
 
상병 김강록 (2006/02/16 17:22:57)

보운 / 아니 그렇다면. 보운님께는 저의 오타가 마치 '장미의 이름'에서의 요한묵시록과 같은 역할을 했던 거로군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한 이 처절한 몸부림!) 

하하, 아니에요. 정말 순수한 오타입니다. 다만 그리고 '유희 아래 뭔가를 감추기'라는 말씀에 대해 늘 반복하는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A를 '진지한 A'가 아니라 '웃기는 A'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지한 A'를 '쉽게' 전달하는 데도 목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왜냐하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표현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무리해서 억지로 친절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에), 'A를 웃기게 만드는 것' 자체에도 저는 큰 의미를 둡니다. 온갖 엄숙하고 진지한 것들에 대한 반감인 거죠. 

어릴 때부터 '너도 나중에 철들면' '너도 자식 낳아봐라' 따위의 말들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물론, 저만 유독 그랬다, 는 투정으로 받아들이시진 말아주세요.) 그건 화자가 자신의 어떤 존재론적 우위를 가지고서 저를 억압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철학을 어깨너머로 주워듣고 이것저것 흉내내보려 하는 것은, 어린시절의 반항심을 '이론화'시키려는 터무니없는 고집에서 나온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극복할 더욱 강력한 존재론을 꿈꾸게 된 것인데, 그걸 어디서 발견했냐면, 바로 당구장이었습니다……. 가만, 이건 여기서 말할 게 아니라. 지금은 비록 잊혀졌지만 제 '농땡이 예찬 3부작' 계획의 마지막 3편이 이런 내용이 될 예정이었입니다. 따로 얘기하도록 하죠. 흐흐 

...그게 그러니까 본의아니게 광고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원영님! 하지만 잘 끼워맞추면(?) 원영님의 글에 대한 답글도 됩니다. 김강록은 이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려고 한다, 라는.    
 
 
병장 송자영 (2006/02/17 01:31:05)

저는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서 생각 해보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병장 손동철 (2006/02/17 06:05:48)

음, 찔리는군요. 제가 책을 읽어온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신의 멋'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말빨과 글빨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어째 책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이 성공하더라구요. 빌게이츠, 노 대통령, 안철수, 처칠, 모택동, 나폴레옹 등등. 단순한 이유로 읽어서 그런지 어째 제 지식은 피상적이고 현학적이며 산만하더군요. 심하게 덜익은 지식이죠. 말과 글은 자기도 모르게 곧장 지적자만에 물들고 그러다 원영 씨 같은 분들 만나면 일주일이 우울해 집니다(웃음). 어쨌든 뭘 위해서 읽는지는 몰라도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당장이라도 뭔가가 될 것 같은 그 느낌이.    
 
 
병장 정광훈 (2006/02/17 10:36:58)

흑 멋진글입니다.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글입니다. 
찔리는군요.(푹)    
 
 
일병 이건룡 (2006/02/17 17:08:03)

책의 '손쉬운 소통'에, 더구나 나의 지적능력을 고려하지 않은체 무분별하게 읽는 데는데 그치지 않는 저의 고집적 독서방법에 매료된 저로써는 ... 
쓰레기에서도 무언가를 찾아가는 고고학의 무분별한 매력이 없는 님의 글에 대한 반감이 ...    
 
 
 병장 김동환 (2006/02/20 10:16:27)

育棘向楮. 원영님. 
당장 신문에 올라가도 괜찮겠는걸요.(웃음)    
 
 
병장 주현탁 (2006/02/20 23:07:30)

빌린 책이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언제까지 반납해야 되는데.'라고 생각을 해버리면 재반납이라는 방법이 있음에도 조바심을 느끼고 글을 읽는게 아니라 그저 글자를 읽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 자신에게 남기면서 읽어야 할텐데. 
어쩔때보면 책을 그저 누군가에게 읽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읽고 있는 것 같기도하고.    
 
 
병장 전성표 (2006/02/21 21:19:22)

아, 알고싶다. 이런 생각에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읽는 경향이 많습니다. 
허나, 아직 방법을 몰라 그런지 열심히 읽어도 제것이 되는 경험을 하기 힘들군요. 

읽는 것들이 족족 나의 것이 되는 그날이 기다려 집니다.    
 
 
일병 김현동 (2006/02/23 16:38:04)

선행되어야 할 것은 “어떤 책”을 읽는 거냐를 정하는 건데, 원영님이 이야기하시는 책은 문학이 아니라서 그렇겠죠. 지식 축적을 위한 수단, 그것이 독서라는 건 글쎄요. 물론 지식 축적도 책 읽는 아주 큰 이유 중 하나일 거고 그래서 책을 체계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도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읽지 않아도, 혹은 ‘그렇게 읽지 않아야 더’ 좋은 책이 있을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저는 책을 읽었을 때(비문학은 거의 안 읽어서 그런 거겠지만) 가장 고맙게 여기는 게 이미지이거든요. 뭔가 그려지는 것. “폭풍의 언덕”을 읽고나서 남은 건 이미지 밖에 없어요. 플롯이 어떻고 주제가 어떻고(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지만 이런 것들은 형편없는 것 같아요)를 따지는 게 그리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냥 그 우울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만이 이 소설이 가지는 유일한 것인 것 같거든요. “책”이 시집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이미지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미지는 수능 공부할 때처럼 체계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요? 그냥 이건 제 생각.    
 
 
상병 오승원 (2006/02/24 10:59:59)

체계적으로 읽는 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각자 자기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십시요. 
한번 베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