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사상의 유행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1027) 
 
 
 
 
[……]사상에도 흐름이 있고 유행이 있다. 대학의 지식인들도 그것을 많이 뒤좇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세상이 바뀌었다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도 바뀌겠지만 세상은 그대로이고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인데, 이론만 바뀐다는 게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 강유원,「몸으로 하는 공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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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월 전에 교보문고 대구점을 들렀다. 거기서 나는「존재와 무」라는 책을 찾기 위해 철학 코너로 갔다. 책장 두 세 개 정도가 '철학'을 위해 할당된 자리였는데, 거기에 있는「존재와 무」는 상(上)권 하나 뿐이었고, 하(下)권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있는 상권도 들춰보니 1980년대 후반에 출판된 책이었다. 하권이 있는지 물어보려고도 했지만, 책을 관리한 상태를 보니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대형 서점에서 책 관리가 이 정도로 허술한 것에 놀랄 지경이었다. 어쩌면 철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받는 대접이 현실적으로 이 정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책을 살피다가(실존주의 철학은 거의 바닥칸에 있었다) 허리를 펴고 일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건 니체, 푸코, 들뢰즈/가타리, 슬라보예 지젝 등등의 책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해', '교양인을 위한 포스트 모더니즘' 같은 종류의 책들도 잔뜩 꽂혀 있었다. 역시 사상에도 흐름이 있고 유행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도 좀 이상해 하고 싶었다. 분명히 세상은 하나 뿐이다. 철학과 사상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이자 도구라면, 하나 뿐인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철학'이라는 책장에는 다종다양한 도구들이 비슷한 비율로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새로운 철학이 이전의 철학을 완전히 뛰어넘은 적은 없다. 그것이 한 일은 기껏해야 이전의 철학에 비해 좀 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철학이 이전의 것을 모든 면에서 완전히 뛰어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세상은 그대로이고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인데, 이론은 바뀐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좀 더 새로운 관점을 획득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관점도 유용하지만, 이전의 관점 역시 그대로 유용하다. 그것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얼마든지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좇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다. 그건 모델이나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만을 뒤좇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보 같은 짓이다. 낡은 스웨터가 더 따뜻한 것처럼, 낡은 철학이 우리의 인식과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병장 서명수 (2005-10-27 22:52:17)  
대구 사시나봐요?? 
저도 대구 교보문고 좋아 합니다..좋은 곳이죠  

상병 허원영 (2005-10-27 23:15:01)  
사는 곳은 대구가 아니고, 먹고 자고 일하는 곳이 대구에요.

덧붙여서 / 사실 얼개에도 썼지만 일주일마다 한 번씩 [Ex-Libris]를 올리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필진으로 뽑힌 이상 책마을에 읽을 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고, 괜히 [공지]로 올려주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좀 힘들었죠. 매주 수요일마다 올렸는데 이번에는 제때에 못 올렸습니다. 저 혼자만의 약속이었지만 지키지 못하니 괜히 자책하게 되는군요.

가끔, 저 혼자만 자주 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필진분들, 어디서 뭐하고 있으십니까? 글 솜씨 좀 보여주세요!  

병장 임현우 (2005-10-28 07:12:16)  
대구 교보문고 저도 자주 갑니다. 분위기는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래도 서비스 면에서는 좀 떨어지더라구요. 가장 기본적인 책을 배치하는 문제부터 직원들의 자세까지 서울에 비해서는 확실히 좀 둔한 느낌입니다.  

병장 한상천 (2005-10-28 07:43:45)  
세상은 바뀌고 이론은 바뀌어 하는데 오히려 세상은 역행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간혹 있습니다.  

병장 김대순 (2005-10-28 08:00:52)  
제 생각에 대부분의 철학의 변화는 좀 더 세련되어지는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도 마치 폴로 매장에 매년 색상만 미세하게 바뀌어 들어오는 셔츠 같다고나 할까?  

상병 주영준 (2005-10-28 09:27:54)  
쓸데없이 떠오르는 Thesis on feurbach No. 11
해석은 쉽사리 바뀌는 법.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상병 고계영 (2005-10-28 09:51:44)  
사람이란 존재는 변하지 않고 그 사람간의 공간이나 인생이라는 길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지켜야하고 알아야 하는 것들은 흔히 말하는 '진리'는 그대론데.
정답은 간단한 '하나'인데 그 문제에 대해 답하는 수많은 복잡한 다수가 있어서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세상을 살아가는지 헷갈리게 만들어 버리는 세상.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하는 세상이라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은 모르고 지나가 버리는 그런 세상.  

상병 전한수 (2005-10-28 15:17:06)  
존재와 무. 이 책을 사려고 서울에 잇는 교보문고 종로점, 반디 앤 루니스, 영풍문고 센트럴시티점 3군데를 뒤졌느데 없더군요... 사르트르에 대한 해설서는 많이 보이든데.  

상병 박종환 (2005-10-31 10:50:43)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주관적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사람이 좋아하는 사상가가 다르고, 세상을 보는 방식 또한 다르고 그가 좋아하는 사상가가와 그 사람의 사상 또한 다릅니다. 뭐 각자 유행하는 사상이 있고 세상을 바꿔가는 주류를 이루는 사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계층들과 집단들이 존재하고 이들 대부분은 이해를 달리 합니다. 바꿔 말하면 모두 윈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세상의 대부분은 변증법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론은 바뀌는 데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는 쉽게 동의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겉 껍데기와 속의 알맹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껍데기가 바뀌는 걸 몹시도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껍데기는 그대로 둔채 알맹이만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뭐 지금도 자본주의의 형식을 빌어서 국가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닌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유행하는 사상이 바뀌었다는 말은 많은 사람이 이전의 것보다 그것에 더 공감을 하고있다는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있고, 그 순간 알맹이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확실한 말은 아닙니다. 그저 제 주장이고 생각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