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비난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1019) 
 
 
 
 
[……]그때부터 나는 내가 쓰는 작품들을 부끄러워하면서 꽤 오랜 - 너무 오랜 -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시든 소설이든 단 한 줄이라도 발표한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게서 하늘이 주신 재능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듣게 마련이라는 것을 내가 비로소 깨달은 것은 아마 마흔 살 때였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그림이나 무용이나 조각이나 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의 기분을 망쳐놓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 스티븐 킹,「유혹하는 글쓰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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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저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꽤 많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비평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작품의 평'이라는 것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거기에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비평이란 말똥이 가득 찬 창고와 같다'고 썼는데, 그리하여 결론은 '굳이 창고의 문을 열어 냄새를 맡지 말고 그냥 지나치라'였다.
  이들의 태도가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질 낮은 비난도 많지만, 반면에 작품에 빛을 비추는 비평도 있다. 적당한 양비론-양시론 옹호자라면 비평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귀 기울일 필요가 없는 내용은 잊어버리라는 현명한 충고를 해 줄 것이다. 이런 충고는 당연한 것이다. 너무 당연하기에 별 쓸모도 없다.
  사실 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창작이라는 부분에 있어 저런 사고방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창작이라는 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기 표현'인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감정의 표출이든, 고뇌의 표현이든, 인생관의 총체적 서술이든 차이가 없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누군가가 비난을 퍼붓는다고 해서, "예이 예이, 그게 그렇다면 이렇게 바꾸죠"라고 말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창작은 '나'를 걸고 '세계'와 싸우는 하나의 작업이고, 그 창작 속에는 '나의 눈'으로 본 '나의 세상'이 '나의 감각'과 '나의 재능'으로 펼쳐져 있다. 이것에 대해 퍼부어진 비난을 쉽게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너의 니체적인 삶의 방식은 너무 개인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라는 말에 인생관을 180도 전환시켜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토익을 공부하고 경영학을 이중전공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비난과 비평에 쉽게 바뀔 인생관이나 작품이라면, 그는 애초에 자신의 삶과 작품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이 틀림 없다. 그리고 그런 인생관과 작품에 별 대단한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아아, 그런 소리 안들려' 같은 태도가 조금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도, 그런 태도가 조금쯤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말이다.





병장 한상천 (2005-10-20 09:05:05)  
하지만 독자들 마음대로 헤쳐모여 한 지식에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창작자가 있을까요??
작가는 약간의 옹고집과 조금더 많은 똥고집을 적당히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병장 김도형 (2005-10-20 14:16:45)  
창작이란 것, 분명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며 당연히 뚝심이 있어야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 나름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어떤 악보를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려도 제 가족이나 친구 중 누군가가 일단 '어디서 많이 보던'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라는 말을 하면, 제 아무리 옹고집을 부려봐도 마음 한 구석에 '독창적이라고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앙금이 남습니다. 이걸 뛰어 넘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그렇다고 그 말들을 무시하려니, 그 사람들이 저에게 너무 가까워서 문제죠. 아예 얼굴 안 보고 사는 사람이 비판을 가한거라면 창작의욕이 꺾이거나 하는 일은 없을텐데요.  

병장 한상천 (2005-10-20 16:31:48)  
어디서 많이 보던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라고 사람들이 느낀다는 자체가 예전의 어떠한 것을 모방을
모태로 했기때문이 아닐까요?
정말로 자신이 생각했던것과 비슷하게 나올수도 있지만 많은 매체속에 자신이 순수창작했다 라고 정말로 
말하기에는 문제점이 있지 않나 합니다.
창작이냐 표절이냐는 작가의 양심에 위임해야 겠지만 말이죠...

또 한가지 말하자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무 비판적으로 진행되는 비판의 문화입니다.
예전 원영님의 칼럼에서 이야기 하셨듯이 칭찬은 책임을 수반하지 않지만 비평이나 비판은 책임을 수반해야
되지 않을까요??  

상병 안준원 (2005-10-20 20:25:01)  
칭찬도 책임을 수반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보면 비판보다 더.  

병장 강성주 (2005-10-21 09:50:21)  
촘스키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촘스키도 워낙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학자니까 그를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니까 이런 투로 대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요? 아마 맞는 말도 있을 거에요. 그런데 잘은 모르겠네요. 그런 책들은 아예 안 읽어보니까." 세상 모든 음식의 맛을 다 알아야하기 때문에 말똥도 먹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여간하면 말똥은 피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