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문학적 인플레이션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1117) 
 
 
 
 
[……]하기야 영화의 덕분으로 작품이 수천 권이나 팔리는 일이 있었지만, 이 새로운 독자들의 눈에는, 작품이 다소간을 막론하고 영화의 충실한 주석(註釋)처럼 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더 많은 독자를 획득함에 따라서, 독자와의 접촉은 도리어 더 엷어진다. 작가는 그가 행사하는 영향이 제 본뜻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생각은 다르게 수용되고, 왜곡되고 속화(俗化)되고, 권태와 실의에 잠긴 사람들에 의해서 더욱더 무관심하게, 그리고 더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사람들은 작가가 그들의 <고향의 말>로 이야기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문학을 아직도 심심풀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남는 것은 다만 이름에 붙어다니는 상투적인 구절들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평판은 우리의 책보다, 다시 말해서 크고 작은 가치보다 한결 더 멀리 퍼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구체적 보편자의 각성(覺醒)의 징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리어 문학적 인플레이션의 징조일 따름이다.[……]

- 장폴 사르트르,「문학이란 무엇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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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지적한 '문학적 인플레이션' - 이 얼마나 적절한 조어인가 - 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이제는 '평판'만이 전적으로 퍼져버리는 세상이 되고야 말았다.
  우리는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수많은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다. 온갖 문학상의 수상작품들, '고전'이라 일컬어지며 새로운 판본과 새로운 주석과 새로운 평을 달고 나타나는 책들. 우리들은 모두 그 '이름'만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붙어다니는" 평판들 또한 알고 있다. 세르반테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돈 키호테라는 것도, 그리고 그 소설이 근대문학을 여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평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책을 '진짜로'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요약된 줄거리와 단편적인 경구, 그리고 틀에 박힌 평판 뿐이다. 더 이상 '책'이나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문학적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적 인플레이션'의 경우, 그것은 '화폐'라는 상품의 가치가 턱없이 떨어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상품의 수를 줄여 희소성을 갖게 하던가, 아니면 수요를 늘려 상품이 충분히 유통될 수 있도록 하던가.
  그러나 불행히도, 책은 화폐같은 상품이 아니다. 책은 화폐처럼 그 수를 줄인다고 해서 그 가치가 늘어나는 상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책은 '독자에게 읽힐 때' 진정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조건 수요를 늘린다고 해서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상품도 아니다. 더 많은 "권태와 실의에 잠긴 사람들"이 "더욱더 무관심하게, 그리고 더 회의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인플레이션의 확대를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학적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말하자면 '상품 본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독자가 '상품 본래의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는 일이다. 읽는 이가 '평판'만을 받아들이고, 손으로 직접 책을 집어들어 눈으로 샅샅이 훑어나가면서 그 책과 '맞서 싸우는' 일을 포기한다면, 문학적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일은 영원히 요원할 것이다.





상병 허원영 (2005-11-17 23:10:01)  
이전 북클럽이 날아가 예전에 쓴 글들을 구할 수 없었는데 어찌어찌하여 구하게 되었습니다. 재탕은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 'Ex-Libris'는 머릿속에서 나와주지를 않고(그래봤자 혼자만의 약속인데!), 요일은 자꾸 바뀌고, 쓸 시간도 별로 없고 하여 예전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사실 손봐야 할 글이긴 한데, 고치려니 아예 다시 쓰는 게 낫지 싶어 그대로 씁니다.  

병장 한상원 (2005-11-18 01:13:58)  
답글이 왠지 시트콤 작가의 고민을 연상케하는군요. 그래도 저의 경우, 오늘까지 원영씨 칼럼이 올라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이미 혼자만의 약속이 아닐지도 몰라요. 제가 더 걱정이 되는군요. 그 약속의 무게에. 흑.

우리는 독서라는 행위가 가치 절하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있죠. <블루오션전략>이나 <10년 후 한국>을 읽어야만 이 시대의 교양인이 되고, 코엘료는 기본 양서에 해리포터 영문판 꼭 읽어주는 센스가 필요하죠.

그러나 톨스토이나 세르반테스는 왠지 고지식한 시대의 유물처럼 생각되고. 그러다보니 고전을 읽다가도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각자에게 유도되고. 도서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가치전도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거기다 보너스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기준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생산되는게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주어지고 결국은 책들이 새로운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소비만 되는 그런 모습. 그게 책과 '맞서 싸우는 일'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윽. 모두들 힘냅시다.  

병장 한상천 (2005-11-18 08:42:18)  
개인적으로 원영씨의 글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이라 저의 수첩에 스크랩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책중에 양서의 기준이 무엇이며, 나에게 필여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군요..  

상병 엄보운 (2005-11-18 13:06:24)  
'문학적 인플레이션' 정말 멋진 표현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은 기분이예요 허원영 상병님 글 읽으면요.



사족으로,
'..그것은 '화폐'라는 상품의 가치가 턱없이 떨어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 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모두들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을 염두해둔다면 [상품들 중 하나인 화폐]가 역시 ['상품들 중 하나인 특정 상품'들의 전체]와 비교했을 때 그 가치의 대폭 하락을 뜻한다고 보기에는 '전체 상품'의 뜻을 파악하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뭐. 너무 저 혼자 어렵게 생각했나요?

경제적 인플레이션을 문학적 그것과 비교한 것은 멋진 전개이지만, 경제에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인플레이션 속의 부작용의 최소화와 문학적으로 처음부터 악(惡)으로 정의된 인플레이션은 논의 전개상 발판으로 삼기에 조금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너무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려 해서 본래의 좋은 뜻을 왜곡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