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과자에 대하여 (병장 허원영/051228)
[……]어린아이들이란 스스로 무엇인가 원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박식한 교사들이나 사부(師傅)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도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정처없이 비틀거리고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이렇다 할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과자나 흰자작나무 회초리에게 지배당하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일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내게는 아주 명백한 사실 같아보인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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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의 괴테가 저런 말을 했던 걸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3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예전에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숙명 아니던가. 어떤 초월적인 목표나 이상을 향해 행동하는 인간보다는 "과자나 흰자작나무 회초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이 훨씬 더 많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초시대적이고 초공간적인 문제다.
우리시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저런 초월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끔찍한 건 따로 있다. 그것은 모두의 "과자"와 "흰자작나무 회초리"가 동일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과를 먹어도 좋고 쿠키를 먹어도 좋을텐데, 그리고 가끔은 빵이나 떡을 먹어도 좋을텐데, 모두 하나의 과자만을 원한다. 마치 돋보기에 태양빛이 모여 먹지를 불태우듯이,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만을 원한다. 모두 그 과자에 의해 움직이고, 그 과자를 빼앗길 경우의 두려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내게 더 끔찍한 일은, "스스로 무엇인가 원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는 현상이 우리시대에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들 과자에 매달리고, 과자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과자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는 것처럼 과자 속에 코를 처박고 안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원하는 과자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 행복을 위한 과자가, 결국에는 과자를 위한 과자가 되고야 말았다.
내게 있어서 더더욱 끔찍한 일은(자꾸 끔찍해해서 미안하지만), 이런 '과자로 만들어진 세계'에 젊은이들이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을 빛내며 뛰어다녀도 괜찮을 젊은이들이, 자꾸 과자에만 매달린다. 개가 자기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사료만 먹고 있듯이, 오로지 과자에만 정신이 팔려 주위에 펼쳐진 것들을 보지 못한다. 주인이 매달아준 헐렁했던 개목걸이는 그 사이에 점점 목을 조여오고 있다. 나중에는 벗어나지 못할 게 뻔한데도, 아무도 그 목걸이를 벗고 자유롭게 달려나가려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밥그릇의 과자가 부족해질까봐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내게는 아주 명백한 사실 같아보인다
병장 김지환 (2005-12-29 07:02:55)
좋아하는 작가분의 글에서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생존은 현 시대에도 여전히 진지한 화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과자가 필요하지요. 아마 특별한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 과자를 위해 그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헌납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불가지론이 될 수밖에 없고, 인간의 의의는 이 사회 안에서 과자를 획득하는 과정 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체 게바라 같은 위대한 특별한 소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나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병장 허원영 (2005-12-29 07:20:04)
지환 님 / 생존은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진지한 화두였습니다. 아니 화두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였죠. 그리고 그건 말 그대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생존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게 "과자=인생 대부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의의는 이 사회 안에서 과자를 획득하는 과정 내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건, 정말 무섭군요. 아찔할 따름입니다.
병장 김동환 (2005-12-29 08:03:29)
제목보고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도 못했는데 과자라..
원영님 동감이에요. 잘읽었습니다.(웃음)
병장 김지환 (2005-12-29 08:09:22)
원영님/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가 단순한 유기체 덩어리와 차별되는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보통 생각하는 인간의 의의또한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미숙하지만, 과학의 길에 몸을 담고 있는 저로서는 인간의 영성에 대한 근거를 대는데 상당한 난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물질의 화학적 반응에 의한다는 것이 실제적인 매커니즘이고 인간의 행복은 이 매커니즘과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란 소설이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실적 욕구의 충족을 제외하면 행복이란 문제를 온전히 논의하는데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인간의 영성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객관적 시각을 갖고 의미를 재부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병 박광식 (2005-12-29 08:35:46)
예전의 캠퍼스에서 깡소주를 마시면서 시대에 대해 울분을 토하던 때는 지나갔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한 우리세대들이 안타깝네요.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며 언젠간 그 과자를 가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죠. 스스로 과자를 만들어 낼 생각은 하지않고.
병장 허원영 (2005-12-29 08:40:18)
지환 님 / 지환 님의 영성이 종교에서 말하는 그 '영성'은 아니겠지요. 어떤 형이상학적인 것을 향한 의지나 홀로 고고한 이성 같은 것들을 뭉뚱그려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지환 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조건과, 인간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욕구의 충족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것들이 인간을 이루고 있고, 그 '영성'이라는 것은 허구일 뿐이지 않은가, 라는 말씀이시겠죠(갑자기 성주 님이 떠오르는군요).
사실 저는 영성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고, 그런 것이 있든 없든 인간의 존재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모든 문제와 대체되고 그것이 전부가 되는 이 상황이 뭔가 좀 잘못되어 있다는 겁니다. 생존이야 물론 중요하죠. 먹고 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른 일들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육체적 욕구나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의 충족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전부가 되야 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상병 이정수 (2005-12-29 09:37:50)
지환님/저도 인간이 영성씩이나 가지고 있는 존재라곤 생각치 않으나, 인간이 단순히 식욕, 성욕등과 같은 기본적 욕구의 충족만으로 행복을 느끼긴 힘들다고 생각되는데요. 보편 인간이 과자를 욕구하는 것이 명백한 것만큼이나 각 개별자들이 각자에게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것도 명백합니다.
저는 애초부터 인간에게 존재가치씩이나 있을 정도로 위대한 생물이라곤 생각치 않았는데요. 사회가 개별자들의 다양한 욕망을 억압하고 삶의 한계를 제한해도 대다수의 피억압자들은 '이런 일을 믿으려 하지 않'을 정도의,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생물이기 때문이죠.
윗 글은 '과자를 먹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자만을 강요하고 과자로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는 사회와 결국, 그것'만'을 쫓다 생을 마감하는,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의 비극을 얘기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의지인가, 이 과자 공장같은 세계는 누구의 의지인가 질문해 볼 수도 있겠네요.
병장 이강현 (2005-12-29 11:43:27)
과자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과자에 매달릴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도 생각만은 원영님과 같겠지만...
훗...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같을수 없는거겠죠
정수님 말씀처럼 과자만 쫓다 생을 마감할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해야만 한다면
문제겠네요. 허나 지적사회생명체인 인간과 과자는 불가분의 관계겠지요
일병 주지훈 (2005-12-29 12:53:39)
글을 적을시 '과자'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밝히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럼 좀 더 좋은 토론이 될 것 같네요.
병장 김형진 (2005-12-29 13:01:21)
결국, 빨간약을 택하느냐, 파란약을 택하느냐는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 시대는 '빨간약은 좌약, 파란약은 내복약, 자 무엇을 선택할텐가?' 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약을 선택하고 'real world'로 간 사람은 존재해왔습니다.
상병 김강록 (2005-12-29 13:30:39)
형진님 / 이건 순전히 짐작인데, 혹시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인지 매트릭스로 철학 읽기인지 아무튼 공저자 여럿 중에 한명이 슬라보예 지젝인 책 근래에 앞부분 읽으셨거나 읽고 계시지 않아요?
설령 "나는 여전히 과자를 원한다!"라고 할지라도, 더 나은 과자를 꿈꿀 수는 있는 거겠죠.
병장 허원영 (2005-12-29 13:38:46)
지훈 님 / 좋은 지적입니다. 지환 님이 의미하려고 했던 '과자'와 저의 '과자'가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잘 소통이 안 되는 것 같군요.
제가 원래 글에서 말하려고 했던 '과자'는 '돈'입니다. 그 의미로 지환 님이 맨 처음에 달아주신 답글을 읽으면 정말 오싹하기 그지없더군요. 물론 지환 님의 의도는 그게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런데 비유했던 걸 이렇게 스스로 설명을 하려니 왠지 비참한 기분이 드는군요.
병장 이재용 (2005-12-29 13:51:14)
형진님//좌약은 싫은데요.(울음) 아프잖아요.
지훈님//원영씨가 말하고자 하는 과자의 기본성질은 먹는 거니까 물질적인 것이겠지요. 또한 먹는 것이니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겠구요. 또또, 먹길 원하는 것이니까 일종의 소망같은 것이 아닐까요.
종합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소망이라고 생각되는데,
원영씨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제 생각엔
"슈퍼마켓에 진열되어있는 건 오직 '새우깡' 200봉지뿐'이었을때의 그 획일적이지만 먹을 수 밖에 없는 '스넥'을 말하는 거 아닐까요? (아니면 낭팬데요.하하하)
원영씨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 글의 '과자'라는 비유는 그렇게 살갑게 느껴지진 않은 거 같아요.
굳이 원영씨의 글을 발췌하자면
"한과를 먹어도 좋고 쿠키를 먹어도 좋을텐데, 그리고 가끔은 빵이나 떡을 먹어도 좋을텐데, 모두 하나의 과자만을 원한다." 이 부분이랄까요?
원영씨가 인정한 다양성은 과자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사람들도 죄는 없잖아요. 단지 비교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 뿐이잖아요.(아닌가요?)
꿈을 잃은 젊은이 처럼 재미없는 것도 없다는 건 근래들어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게 생겨서 이해하지만, 그사람들을 개목걸이에 매달린 강아지로 표현하는 건 독자들에게 너무나 '관대한 포용'을 강요하는 것 같아요. 원영씨 말대로 점점 잔인해지잖아요. (웃음)
그리고 과자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드리자면, 과자란 건 내가 '선택'해서 먹고 싶을 '때'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같은 것을, 혹은 나만 다른 것을 선택해서 먹는 것을 이해가 안되는 건 내가 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그거라면 내가 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만약 난 하기 싫다면, 그건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해되지 않을 거 같아요. 무엇이든지 경험해보는 게 가장 오래걸리면서도 정확한 거 같아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기엔...
항상 글 잘 읽고 있어요. 제가 잘 알지도 못하고 단 이파리에 기분상해하지 않으셨으면해요.
병장 김형진 (2005-12-29 14:16:37)
강록님 // 음, 아직 그 책은 읽지 못했어요. '그래24'의 위시리스트에 추가한게 꽤 오래전 일인데, 문학위주로 읽다보니, 구입기회가 없네요.
혹, 그 책을 읽으셨다면 어떤지 제게도 좀 알려주세요(쪽지로라도)
'성관계는 없다'란 책을 읽은 후, 지젝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이래저래 알아보는 중이니, 잘 아시면 도움을 주세요(웃음)
상병 김강록 (2005-12-29 14:27:45)
헉. 과자가 돈이었다니, 제가 헛짚었군요. 헤헤헤 (애교모드!)
형진님 / 그책에 "빨간약과 파란약이 있다. 정답은 빨간약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형진님께서 혹시 그 책을 읽으셨나 찍어본거죠. 하핫.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지금 남아있는 인상─정도밖에 안남았어요 정말─으로는 여러명의 공저자 중에 얼굴마담으로 슬라보예 지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외엔 의외로 별 내용 없었던 듯 하네요. (물론 나머지 공저자들도 자신의 조국에선 얼마나 날고 기는 분들이셨겠냐만.) 빵빵한 저자들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당시 매트릭스 특수라는 시류를 타고 급조된 기획이라는 혐의가 짙은.
병장 김형진 (2005-12-29 14:33:43)
강록 // 한번쯤 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 내용 없었다고 하시니, 위시리스트에서 삭제할래요. 훗훗
그리고, 빨간약은 만병통치약이죠!(아까진끼라고도 하던가)
병장 허원영 (2005-12-29 14:57:22)
아아, 허술한 글로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군요. "주마다 써 갈겨대니 제대로 된 게 나올 리가 있나!"라는 비난은 시트콤 작가들이나 여타 개그 프로그램 작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나봅니다. 차라리 2주마다 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드는군요.
강록 님 / 어떻게 읽으셨던 건지 궁금하군요. 저는 "과자" 말고도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진 세계를 만나고 싶어요. 이를테면 당구라던가.
형진 님 / 좌약은 전부 빨간약인 곳이 예전에는 참 흔했는데 말이에요. 아직도 그런 곳이 많이 있겠지요.
병장 김지환 (2005-12-29 15:46:30)
원영님 / 일과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쓴다고 요점을 제대로 못적은 것 같네요. 앞서 영성을 언급했는데 그건 차라리 종교에서 말하는 그것에 가깝습니다. 사람에게 뭔가 목적이 주어져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그것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무언가의 욕구를 느끼고 그 것을 해소하기 위해 움직이는 생명으로서 스스로를 보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대 육체적 욕구로 제한하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개인은 스스로의 욕구와 사회의 욕구 사이에 일종의 타협을 봐야 하고 그에 따른 일련의 활동(예를들어 노동)을 함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일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고 살아가고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원영님이 말씀하시는 개목걸이는 실제하는 어떤 구속이라기보다는 각박한 세상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핵심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네요. 써본적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너무 오랜만이라...
상병 안대섭 (2005-12-29 16:52:20)
지환님이, 너무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불행하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하시는 느낌은 알겠네요...
하지만 처벌이 두려워 죄짓지 않는 삶, '고통'으로써의 노동을 (아마도) 평생 감내해야만 하는 숙명 같은 것들을 언제까지 지고 살아야만 하는가? 에 대한 고민도 그냥 지나쳐버릴만한 주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병장 김형진 (2005-12-29 17:06:46)
원영님 // 허술한 글이라뇨. 겸손은 독이에요. 좀 거만해지셔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쓴 글을 살펴보았는데, 전 항상 외로움과 허무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항상 그런 것을 담고 살아서인지, 글을 읽는 순간 돈 혹은 자본주의에 대해 말씀하시는구나, 그렇게 짐작했지요.
근래 북클럽의 트렌드가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그에 관한 논의가 많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결론은, 매주 글 써주세요(웃음)
병장 이재용 (2005-12-29 17:29:02)
그러니까 저도 매주 글 써주세요(웃음)
병장 정준화 (2005-12-30 10:59:32)
원영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