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Report] 보론 : 내가 정말 하고싶은 말. (준엽님께)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공동체 안의 기업은 홀로 떨어져 이윤을 추구할 수 없고, 그들이 내세우는 주주중심주의는 그 정의대로라면 이해당사자 중심 주의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 요지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즉, 기업이 져야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필연성을 '공동체 속의 기업'과 '편협한 주주 중심주의의 배격의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이야기한 것이지요.

계약된 노동 이상을 제공하는 고용인에 대한 책임, 소비하는 것 이상을 제공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책임, 성문화된 법 이상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공동체 안에서 기업이 따로 떨어질 수 없음을 근거로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물음은 기업의 경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에 - 편협한 주주 중심주의의 배격이라는 지적만큼 날카롭고 설득력있지 않지만 - 더 중요하지 않은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자와 기업과의 관계'라는 주제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요지와 논점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그치고, 질문에 대한 나름의 변을 펼쳐보겠습니다.



2. n, n-1, n+1 
본문에서 여러 번 밝혔고 준엽님 또한 글의 말미에 언급하셨다 싶이, 이러한 도식적 구분(n 등)은 '기업이 궁극적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신화성에 대한 공격을 위해 설정된 것들입니다. 즉, 앞과 뒤를 모두 자른 뒤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이윤 발생 전 단계와 이윤 발생의 후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준엽님께서 지적해 주신 n과 n+1의 모호성 - 이윤인지, 수입인지 - 은 분명 오해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n+1) 발생된 이윤은 분배되고 재투자된다.의 n+1과 즉, 목적으로의 이윤이 달성된 후(n+1)에 노동자들과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윤이) 작용하는 것이다. 의 n+1이 의미상 모순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윤이 달성된 후'라는 말도 빼야겠네요. 두번째 n+1은 준엽님 지적대로 n의 단계로 포함되야 옳은 표현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설정한 n+1 - (*) - 은 진정한 목적에 닿아 있는, 즉 이윤 추구의 목적이 되는 부분으로 언급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졌습니다. 비용을 빼고 나온 순(net)이익이 목적이 된다는 건 제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적 지옥에 가깝습니다.


3. 주주중심주의의 수호자들 
변호사와 회계사는 금융 자본의 수호자들이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로 그들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논리로 글을 쓰신 것이라 받아들이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제학 또한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만의 성벽에 쌓여있는 한무더기의 돌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전공에 적을 두고 경제학의 여러 분야를 접해본 결과  그것은 지나친 비관주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개에도 언급했다시피 경제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학문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경제학을 피해서 그들 자신의 학문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이나 넓고 포괄적인 학문의 경제학을 지금 언급하신 주주중심주의의 수호신 격으로만 한정하여 보시는 건 너무 좁은 시야가 아닌가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최초로 '경제철학'을 이유로 수상한 아마티아 센은 그의 주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경제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전'이고 그것은 '자유의 확장'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권, 평등, 기회, 인간다운 삶 등을 모두 포괄하는 아주 넓은 개념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제 성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경제학은 세계를 포용할 만큼 넓습니다.
기계적으로 학문을 학습하여 지배 패러다임에 봉사하는 전문 지식인이 되려는 안일한 생각은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의 학문을 펼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고된 길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비관주의는 버려두고 우리의 길을 걸어가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이윤추구가 목적이 될 수 없는 이유. 
예.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이라 맨 뒤로 물렸습니다. 답변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스럽지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저의 주장을 재분석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주 -> 이해당사자
           (고용인 -> 소비자 -> 공동체)

즉, 주주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이해당사자 모두를 아우르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염두해둔 경영이 자리 잡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논조였습니다. 주주에서 공동체로 가는 길에서 분명 힘은 약해지겠지만 그것을 염두해둔 경영이 필요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글이었습니다. 이해당사자의 첫단계 '고용인'을 다음 칼럼으로 넘기려 하다보니 논의의 맥이 끊기고 결국 주주중심주의와 이해당사자중심주의 간의 논점으로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생각해볼수록 좋은 지적입니다. 다음 번에 글을 쓸 때는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

궁극적인 목표가 이윤이 아니라는 주장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에는 첨예한 문제다. 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을 넘어 제 생각에 동의하신다는 준엽님의 주장과 그 근거가 펼쳐지지 않아 답변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맥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날카롭고 중요한 지적인지라 제 주장을 조금 펼쳐보겠습니다.

본문의 답글에서도 추가로 밝혔지만, 이윤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수단화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돈만 주면 노동을 살 수 있고, 소비자는 물품을 구매하는 자에 불과하고, 주변 환경은 이윤과 법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파괴하면 된다는 생각을 너무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돈의 노예, 경영의 노예가 되는 첫단추는 이윤이 궁극적 목표로 설정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윤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중요한 수단이지만, 목적 그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4. 하고 싶은 말. 
주주 중심주의와 이해당사자 중심주의 간의 극명한 대비는 후자에 많은 힘을 실어줍니다. B/S(대차대조표)가 지고지순한 성경으로 받들어지는 주주 중심주의는 단기이익을 위해 장기이익을 매몰시키기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를 경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일희일비하는 그런 주주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입김을 받아가며 회사를 꾸려나가는 경영자에게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건 그로기 상태의 상대에게 하이퍼드래곤피니쉬 블로우를 먹이는 것 만큼 참담해보이고 설득력 없어 보입니다. 지금 내 앞가림 하기도 바뻐 죽겠는데, 뭣도 모르는 녀석들이 말만 나불거린다고 생각하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경제 발전 또한 작은 생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나 기업문화와 기업윤리 등은 생각의 전환이 모든 걸 바꿉니다.
저 역시 당장에 현실로 뛰어든다면 이런 주장을 목소리 높혀서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이 정말 중요한 건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제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것을 최대한 - 물론 점진적이겠지만 -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실은 쓰디쓰고 냉혹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를 아는 건 중요합니다. 현실이 복잡하고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왜 우리가 정신까지 그런 괴물에게 내어주어야 합니까? 저는 정신만큼이라도 지키고 그걸  제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현실에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젊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쌓아야 하는 덕목은,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아니라. 사점몇몇 하는 학점 따위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그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저의 의지를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칼럼을 통해서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주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