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의 달에게 소원을 
 병장 김지민 04-04 10:23 | HIT : 243 





 한가위에는 보통 달구경을 나가 달에게 소원을 빈다고 한다. 달님 달님 저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하고 말이다. 언제부터 지켜져 온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큰 보름달이 인자하도록 온 어둠의 대지를 비추고 있는 모양을 보자면 그럴법도 하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달은 그토록 큰 존재다. 태양처럼 눈부시지는 않지만, 오히려 모양이 뚜렷하기에 소원을 빌 수 있는 실존적 신의 형태로 드러나는 셈인가보다.
 이번 한가위를 맞아, 부대안에서 그 연휴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소원이라도 빌지 않으면 억울하겠다 싶어 동기녀석 한명과 함께 달구경 하자고 소대 밖을 비져 나와 달을 보고 있었다. 달은 인자한 금색으로 은은하게 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치스럽지 않을 정도로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아. 완전한 보름달이다. 이토록 큰 보름달. 완전한 형태를 드러난 그 보름달 앞에 소원을 빌어야지. 하고 감흥을 잡던 찰나. 고참 한명이 다가왔다.

"와 달 진짜 큽니다. 보름달이다 보름달"
"임마 이거 보름달 아니야 98%야 98%"
"...?"

 어리둥절한 내가 98%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고 있을 즈음, 그는 자신이 작전상황병임을 인지시키며, 일석상황보고시 언제나 월광의 퍼센테이지를 보고서 양식으로 종합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수치로 오늘의 달은 완전한 보름달이 아니었구나. 98%라고? 그렇다면 오늘의 보름달은 거짓인가보다.
 나와 내 동기는 고참의 말에 웃었다.

"아 너무 낭만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할 수 없어 무슨 낭만이 개뿔. 니네가 작전상황병 해봐라. 나처럼 안 되나"
"하하하..."

2% 로 부족한 달이구나. 그럼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하여간 나는 동기녀석과 함께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간절한 소원. 구태여 여기다 그 소원을 적지는 않겠다. 또 염장질이니 어쩌니 구박을 면치 못할테니까. 

 포인트는 2% 부족한 달에 있다. 98%라니. 이 얼마나 정확하고도 과학적인 수치인가. 꼭 절대적인 미신론자가 아니더라도, 왠지 100%가 아닌 달에다 소원을 비는 것은 왠지 모르게 찜찜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100%인 달에다가, 100%인 한가위의 달에다 소원을 빌어야 이루어질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니 이것참 기분이 묘하군. 그러나 낭만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다.
 설령 98%라고 하더라도 낭만에게는 98%를 200%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낭만이란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힘이랄까. 뭐 그런거. 속아주면서 또 믿어주는 힘이라는 것. 그것이 일종의 낭만이라면 낭만일 수 있는 것이겠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하여 낭만이다. 어떤 것에 대한 실재 보다는 그럴 것이라고 믿는 믿음. 실재를 배반하는 낭만이라는 것. 그것이 진짜배기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건 신앙이건. 그것은 인간만의 로망이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가장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일컫는 인간이란 존재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며 자신을 속이고 최면을 걸어 그러려니 하면서 확실치도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다는 것이. 그래서 로망은, 낭만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98%를 200%로 만드는 힘. 2%따위는 눈 딱 감고 없는 셈 칠 수 있는 사기꾼 같은 속성.

 그래서, 실상 나는 98%의 달에다가 소원을 빌었지만서두, 나의 소원은 200%의 달에 도착한 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200%냐고? 아마 저기 달까지 쏘아올린 나의 소원이 굳이 태양빛에 반사되지 않은 면면을 온통 휘감았을 테니까. 앞뒤로 아주 온통.

 이따금은 한가위의 98% 보름달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무식하게, 이성적이지 않은 로망을 품고 말이다. 어찌아는가, 정말로 실재는 98%인 어떤 일이 200%의 효과로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인간사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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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탕입니다. 작년 추석때 쓴 글이네요. (후다닥)  


 병장 박효승 
2% 부족할때...에 많은 것을 생각하셨군요... 04-04   

 병장 진규언 
 그래도.. 실화라면 낭만을 즐길줄 아시네요. 그 동기녀석님(?)도 포함해서요. 척박한 현실에서도 낭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참 다행이겠지요. 04-04   

 일병 윤여송 
 오늘도 98%;; 04-04   

 병장 신정운 
 월광이 98%일때 재탕해주시는 센스...캬.. 04-04   

 일병 구본성 
 하하 정말 오늘 달이 참 이쁘더군요. 04-04   

 병장 심승보 
'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하여 낭만이다.' - 당당하고 멋진 구절이네요. 지민씨, 잘 읽었어요. 04-05   

 병장 윤대근 
 어쩌면, 그 믿음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면까지 밝혔을지도 몰라요. 

 꼭 이뤄지시기를, - 낭만적이예요,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