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끝자락에 대학에 입학했다. IMF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였고, 파견법이 제정된 다음해였으며, 학생운동이 소멸의 일로를 걷던 때였다. 그래도 아직은 취직걱정보다 대학생활의 낭만에 대한 환상이 강했던 때였고, 출석보다 결석이 많아도 B학점을 주는 수업만 골라 들으면서도 3점을 넘기는커녕 학사경고를 받는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서 적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대학생이니까’라며 객기에 가까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때였다.
자신보다 젊은 세대에 대한 낯설음, 멸시 혹은 두려움은 몇 천 년 전부터 인류가 가진 특성이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낀 2000년대 학번에 대한 낯설음은 예상보다 컸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반운동권을 표방한 이들이 총학생회를 잡았고, 학생운동은 소멸의 속도를 더했으며, 더 이상 대학생들은 결석의 자유를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명문대 나와도 취직하기 어렵다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너스레가 아니게 되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학점관리를 못해 3점조차 넘기지 못한 학생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푸념을 하자면, X세대-대략 90년대 중반 학번까지의 세대-는 졸업을 즈음하여 IMF사태를 겪었으나 벤처 붐을 만났고, 적당한 연줄과 학벌이 있다면 취직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88만원세대-이 책에서 다루는 지금의 20대-는 이미 대학 입학 전부터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었다. 청년실업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해질 정도가 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고시열풍은 여전하다지만 2,3학년때부터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지금의 20대부터 주류가 된 현상이다. 대학 5학년, 6학년까지 빡세게 운동하고 졸업기준을 간신히 넘은 학점으로도 대기업이나 벤처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던 96, 97학번들과, 운동을 하면서도 1학년때부터 철저한 학점관리와 고시공부를 시작해 선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경쟁력을 갖춘 01, 02학번들 사이에서, 내 주변의 99±1학번들은 망해가는 학생운동을 부여잡고 있느라 운동도,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도 학생운동을 하거나, 대학원에 있거나, 군대에 있거나, 고시공부를 하거나 하며 빌빌대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극히 소수의 경우일테고, 대부분의 내 또래들은 어떻게든 취업을 해서 근근이 먹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X세대와 88만원세대의 낀 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내의 1세대로서 같은 대학생활을 했던 90년대 중반 학번들과 자신들의 처지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 같다.

‘88만원 세대’는 지금의 20대에 대한 세대론적, 경제학적 고찰이다. 중,고등학교시절에 IMF사태를 겪고 벤처붐마저 사라진 이태백의 시대, 취업난을 돌파해봤자 신규취업자의 80% 이상이 비정규직인 시대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하는 세대,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과외금지조치가 해제된 이후에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개천에서 용나는’ 신화가 사라진 세대. ‘유신세대’인 50대와 ‘386세대’로 칭해지는 지금의 3,40대에 비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약하며 딱히 특징이랄 것도 없어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불우한 세대. 우석훈은 이들에게 ‘88만원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88만원은 비정규직 평균임금에 신규취업자의 평균임금비율을 곱해서 산정된 금액이다. 즉 신규취업자의 80%가 받게 될 초봉을 뜻한다. 이거 받고, 어디 먹고 살 수 있을까.
‘요즘 젊은 것들은...’이란 말은, 위에도 썼듯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의 20대에 대한 기성세대(특히 여기서는 386세대)의 걱정 혹은 비판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실리에 밝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고, 고시나 공무원시험 등 먹고 살길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 것이 기성세대이며, 그중에서도 386세대의 책임이 작지 않다. 유럽의 68세대가 혁명의 성과를 복지제도의 확충과 교육제도의 혁신으로 다음 세대에게 남겨주었다면, 386세대는 민주화의 성과를 후속세대에게 남겨주기는커녕, 자신들이 독식해버렸다. 386세대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도 되고 사장님도 되고 자기들이 지지하는 대통령도 만들었지만, 청소년기에 사교육에 시달리고 20대에 취업난 앞에서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승자독식의 시대를 살아온 88만원세대는 각자가 살아날 길을 모색하기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세대착취’를 자행하고 있는 386세대와 유신세대는 이러한 여건을 무시하고 20대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책은 쉽게 읽힌다. 쉽게 공감할 수 있을만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설명하는 경제학적 개념들이 적절하고 어렵지 않게 사용되며, 저자 특유의 발랄한 문체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갑갑했다. 88만원세대의 앞에 놓인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세대착취의 억압적 틀을 깨뜨릴 수 있을까. 게임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연대전략뿐이다. 파편화를 강요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욕하는 기성세대의 착취에 맞서기 위해, 20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88만원 세대는 자신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지며 연대해야 한다.

p.s. 제1보급창이 닫힌다. 최근의 인트라넷 사이트 폐쇄 물결에 동참한 것인지 모르겠다. 부적절한 인트라넷 사이트를 신고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포상을 주는 방식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케 한다. 포상을 받기 위해 다른 병사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행위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휴가에 대한 목마름은, 우리 모두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인 문제는 그 폐쇄된 인트라넷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 그것이 책마을과 같은 커뮤니티건, 노래가사건, 이성을 꼬시는 방법이건, 만화건, 게임이건 간에, 사회에선 아무렇지 않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보안위규가 되는 이곳의 현실이다. 카투사처럼 영내에 내 컴퓨터가 있었으면, 아니 하다못해 부대에 사지방만 있었어도, 내가 왜 연예인 사진 같은 걸 찾아다녔겠느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