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를 다시 생각하며. 양제열>
요즘 책마을에 ‘88만원 세대’ 이야기가 대세인 듯 같다. 기간으로는 2주가 넘도록, 페이지 수로는 2페이지가 넘어가도록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물론 ‘세대 담론’이나 ‘88만원 세대’는 책마을의 단골 떡밥이긴 했지만, 한 가지 사안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이 담론은 여기저기 가지를 쳐서 ‘공동생활전선’이나 ‘스포츠권의 재조형’이라는 또다른 뜨거운 토론거리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내가 글을 보태는 것은, ‘88만원 세대’ 담론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고, 궁극적으로 책마을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 세대 담론으로서의 ‘88만원 세대’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읽기 전에는 내 또래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들과 같은 세대라는 동류의식도 없었다. 4.19세대, 386세대, X세대처럼 눈에 띄는 ‘나이대’가 긴 했지만 그런 관점에서 내 또래를 하나로 묶을 생각은 해 보지 않은 것이다. 물론, 마케팅의 차원에서 나와 내 또래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n세대니 ting세대니 하는 자기규정을 강요받곤 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제품의 수명주기만큼이나 짧고 허망해서 이제는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지도 않다. 결국 내가 나와 내 주변 또래를 심각하게 둘러 본 것은 [88만원 세대]라는 책 때문이었다.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대게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알에서 깨어난 거위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자신의 어미로 인식한다. 최초로 20대 세대담론을 의미 있게 제기한 것이 ‘88만원 세대’였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 ‘20대 이야기’, ‘세대 담론’은 ‘88만원 세대’와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마치 네이버 검색창에 ‘소녀시대’를 치면 태연, 제시카, 유리가 자동으로 뜨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 동안 88만원 세대 담론을 접한 이들의 피드백이나, 책마을에 올라온 리뷰를 보면서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이 과연 적절한 인식틀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우선 그 동안의 세대 구분과는 달리 88만원 세대는 경제학적, 기술(記述)적 분류이지 공통된 경험에 의거한 분류가 아니다. X세대에게는 서태지가 있었고, 386세대에게는 독재정권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다. 하지만 88만원이라는 한달 예상 소득이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구심점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일전에 준우씨가 <88만원 세대를 전혀 위하지 않는 88만원 세대>라는 글에서 제대로 공감을 못 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의 리플 중 일부를 옮겨 보겠다.
[우리들만의 그런 게 어떤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88만원 세대라는 하나의 코드로 20대를 묶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대다수라는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의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 지적인 게으름 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전혀 체감할 수 없는 코드’인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체감도, 동의도 할 수 없으면서 88만원 세대로 묶이게 된다는 것이 88만원 세대라는 코드에 대한 저의 불만입니다.]
게다가, ‘88만원’이라는 너무나 구체적인 숫자는 [88만원 세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88만원 세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대다수의 20대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고, 20대 대다수의 비정규직화는 그들의 삶 전체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 아니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문제이기 때문에 각개격파는 불가능하며, 사회적 연대로 풀어야 한다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꺼내면, 내 경험상 절반은 ‘알바를 해도 88만원보다는 더 벌겠다!’였다. 88만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오독인 것은 맞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슬프게도 정말 88만원 세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88만원 세대 담론에 주로 참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보통 한 사회의 경제적 위기는 그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위협한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는 어떤 것일까? 대강 생각나는대로 열거해보자면, 여성/지방 출신/낮은 학력/장애 등을 뽑을 수 있다. 위의 항목만으로 대강 소득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위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소득 분배에 있어서 불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면,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이 낮고, 지방 출신은 서울 출신보다 적게 번다. 저학력자는 고학력자보다 적게 벌며,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경제활동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다. 우석훈씨의 제안대로 ‘지방 출신에 상고를 졸업한 여성 장애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면,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지옥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역경을 이뤄내고 꿋꿋히 사는 감동 스토리도 물론 기대해 볼만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그런 스토리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는 사회이다.)
어쩌면, 책마을에서 이 88만원 세대 담론에 참여하는 이들이 이런 약한 고리와 상당히 거리가 멀기에, 88만원이라는 숫자가 피부에 안 와 닿는 것이 아닐까. 내가 책마을 주민분들을 일일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마을의 특성 상 주민분들은 남성 비장애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웃음) 게다가 책마을에 소위 ‘명문대생’들 역시 꽤 많은 것 같다. 정확한 수치가 없어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두 번째로는, ‘88만원’이라는 수치 자체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나치게 낮게 잡은 숫자인 것 같다. 우석훈과 박권일이 어떻게 88만원이란 수치를 냈는지 상기해보자.
[먼저 저는 20대의 평균 소득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대학생이나 군인도 있어서(한국은 징병제이기 때문에) 통계로 산출한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평균 소득이 월급으로 119만원 정도이고, 20대의 평균 소득이 위 세대의 대략 73퍼센트라는 데서 ‘88만원’이라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20대에 취직해 있는 사람, 그중의 90퍼센트 정도가 비정규직인데, 그 젊은이들의 평균적인 수입이 88만원이라서 ‘88만원 세대’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아마미야 카린 + 우석훈, [성난서울] 중에서
한 번 계산해보자.
119 x 0.73 = 86.87...
얼추 88만원이 나오긴 한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119만원에 0.73을 곱한 것이 조금 이상하다. 20대 평균 소득이 위 세대의 73퍼센트밖에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20대의 90퍼센트가 같은 노동을 해도 월급을 적게 받는 비정규직이기 때문 아니었는가? 즉, 윗 세대 소득 대비 73%라는 수치에는, 이미 20대의 비정규직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한 달 내내 벌어도 평균 88만원밖에 못 번다.’라는 말을 ‘비정규직으로 한 달 내내 벌어도 평균 120만원밖에 못 번다.’라고 바꾸어 보자. 이 쪽이 훨씬 더 현실감 있지 않는가. 게다가 비정규직 시장은 20대가 윗 세대보다 경쟁력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이다. 비정규직인데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특별히 돈을 덜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특성상 특별한 숙련기술이 필요 없고, 따라서 연륜이나 경험이 주는 이익이 없다. 좋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젊다는 특징 때문에 오히려 20대에게만 열리는 비정규직이 몇 개 있기도 하다. 일례로 백화점 주차장에서 차가 드나들 때마다 죄의식이 들 정도로 공손히 인사하는 여성들이 그렇다. 그녀들은 분명 정직원은 아니지만 시급은 굉장히 세다고 들었다. 물론 그에 따른 육체적, 감정적 노동이 얼마나 격렬한지, 그리고 20대 여성들에게 그런 행위를 시키는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저열한지는 나중에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20대들이 비정규직의 삶을 선택한다고(혹은 강요당한다) 해도 한 달에 120만원은 벌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에 88만원을 벌든, 120만원을 벌든 살기에 빠듯한 것은 마찬가지고, 불안한 고용 때문에 삶이 힘겨운 것은 변하지 않지만...
둘, 우석훈을 위한 변명 : 시리즈의 1권으로서의 [88만원 세대]
나는 우석훈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88만원 세대] 이후의 책들도 같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8만원 세대] 이후의 책들이라고? 그렇다. [88만원 세대]는 우석훈씨가 ‘한국 대안경제 시리즈’로 펴낸 4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이다! 즉, 그가 제기한 세대분배 문제는 서론에 불과하며 그가 한국경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더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안경제 시리즈는 다음과 같다.
1. 88만원 세대
2. 조직의 재구성(‘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개정판)
3. 촌놈들의 제국주의
4. 괴물의 탄생
우석훈은 한국 대안경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위기 이후에 더 큰 위기가 온다’는 구성을 취했다고 밝혔으며, 딴지일보는 그의 이런 작업을 ‘공포 경제학’이라고 불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우선, 한국 사회의 20대는 승자독식의 법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1번째권, [88만원 세대]) 그렇다면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이긴 소수의 20대는 행복할 수 있을까? 2번째권 [조직의 재구성]에서 우석훈은 경제학의 신생분야인 조직론을 바탕으로 이들의 앞날이 밝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 기업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지방 출신/20대/중소기업과 상생하며 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자독식 게임에서 당당히 승리한 20대도, 4,50대 남성에 딱 맞춰 진화한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피곤한 일일뿐더러, 그런 기업이 소수자들과 일하는 방법을 배운 외국기업과 경쟁하여 살아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3번재권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경제구조를 분석한 후, 이 세 나라가 대외로 팽창하는 경제구조를 고집할 경우 30년 이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번째권 [괴물의 탄생]에서는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다시 한 번 짚어내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내셔널리즘과 경제 위기가 결합하면 파시즘이 도래할 거라는 예측을 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협’으로 대표되는 ‘제3부문’이다. ‘제3부분’은 국가와 시장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인데, 이 제3부분이 튼튼하다는 것은 시민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며, 국가와 시장(자본)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국가-시장-제3부문의 천하삼분지계인 셈이다.
따라서, 88만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20대와 이미 사회에 안착한 그 윗 세대들 역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가망은 없다. 심지어 30년후에 전쟁이 일어나고, 파시즘 사회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데야 할 말이 없지 않은가.
3. 책마을에 제안함 : 스스로 88만원 세대라고 부르기 전에...
돌이켜보면, 나는 우석훈의 팬이었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무지한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로부터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아름다울 수 있고, 내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며,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글쓰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의 글을 수용하는 나의 자세 역시 올바르지 않았던 것 같다. 20대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 되고, 한국기업이 처한 위기가 조직의 문제이며, 향후 30년 이내에 한중일 3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제학적 예측은, 이렇게 3줄 요약을 해 놓으면, 흡사 음모론처럼 들린다. 이렇게 과감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근거가 필수적인데, 그의 책들은 그가 어떤 이론을, 어떤 분석틀을, 어떤 논문이나 데이터를 참조했는지에 대한 각주가 거의 없다. 이것은 한 사람의 저자로서 큰 결격사유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누군가 말했듯이 경제학이란 오늘 예언한 것이 내일 틀렸음을 확인하는 학문이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가 이 책을 쓸 당시와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사이에는 2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주체적으로 읽는다면, 그의 주장을 처음부터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20대, 구체적으로 책마을의 역량으로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잠시 보류해 두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가 어떤 분석틀을 쓰고,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여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점검하고, 차분히 그의 예측에 대해 성적표를 매겨보자. 20대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경제학적으로 진단한 글이 출판이 된다면, 그래서 그 텍스트가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와 동급으로 인용되고 토의된다면, 그것이 책마을에서 종종 나왔던 ‘지적 평등’의 실현일 것이다.
20대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 자유민주주의와 파시즘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답니다.(웃음) 역사적으로 봐도, 나치가 집권하기 전의 바에에르 공화국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였고, 히틀러도 아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집권에 성공하거든요. 파시즘에 대한 분석은 책마을의 지난 글들을 찾아보시면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전 우석훈씨의 책들의 기본적인 논조나, 주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다만, 그의 주장에 대한 중간점검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그의 책 4권에 대해 짧게나마 내용요약을 해서 책마을에 올리고 싶긴 한데, 책도 없고(지인들한테 다 줘버려서) 애로사항이 좀 많네요. 큭.
덧. 우석훈씨 블로그를 가끔 들르는데, 12권짜리 책을 쓰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 이후에 8권이 더 나온다는 얘기 같은데 아직 출판된 것은 없네요. 원고는 출판사에 다 넘겼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