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6월 결산  
이병 홍명교   2008-08-06 09:24:35, 조회: 669, 추천:5 

8월 6일에 와서야 6월 결산해봅니다.
6월에는 부대 적응하고 그러느라고 미처 독서후기를 쓸 시간이 없었네요.
우선 벤야민의 두 권은 일전에 글을 올렸어서 따로 쓰지 않겠습니다. 5월28일에 전입했고, 6월되자마자 유격을 뛰어서, 유격 뛰고 와서 6월 두번째주부터 6월30일까지 읽은 책들 목록입니다.


1.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도서출판 길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5&sn=on&ss=on&sc=off&keyword=홍명교&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90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발터 벤야민, 도서출판 길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5&sn=on&ss=on&sc=off&keyword=홍명교&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93

3.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 화장(김훈) 외>
김훈의 매력으로 빠져들어가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의 단편<화장>을 보고, 왜 김훈이 현재 한국의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불리는지 느꼈습니다. 그 사람의 정치적 견해에는 동의 못할지라도 그가 구현하는 글쓰기와 예술형식에는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4. <2004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 타인의 고독 (정이현) 외>
작년에 글쓰기 수업시간이면 열명남짓한 조형예술과, 영화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날카롭게 하나하나 찍어주며 글쓰기 피칭을 해주시던 정이현 선생님의 소설을 처음 봤습니다. 친구들이 다른 소설들이 재미없다고 그래서 예전엔 부러 읽지 않았는데, 단편<타인의 고독>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또박또박 지적해주던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찌릿찌릿하네요. 뭔가 거듭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타의 단편들도 꽤 재미있었고, 특히 박민규의 <너구리>는 정말 독특했습니다.

5. <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문학동네
수업시간이 졸립기로 악명 높은 백가흠 선생님의 단편소설집이라서 기대를 안했는데, 재밌는 소설들이 몇 편 있었습니다. ‘귀뚜라미가 온다’도 괜찮았지만, 섬에서 횟집을 하는 어느 연상연하 커플과 그 옆 구멍가게의 노모와 못난 아들의 이야기는 정말 섬뜩하리만치 신선했습니다. 마지막의 그 폭풍우의 이미지는 뭔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인간이란 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남성의 마초성에 대한 자조적인 공격들이 많은 자기비판적이며 메조키즘적 소설들이 많았는데, 이는 작가의 실험의 결과물들이라고 합니다. 수록된 작품 중에서 어느 소녀와 여장남자가 나오는 한 편은 정말 토할 것 같아서 못 읽을 정도였습니다.

6. <칼의 노래>, 김훈
‘조국의 영웅’이기만 했던 인간 이순신을 철저히 일인칭적인 시점에서 그의 삶을 재조명한 소설입니다. 모두들 잘 아시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이제야 읽었네요. 그의 명성의 근거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칼의 노래>는 벨기에의 리얼리즘 작가주의 영화감독인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처럼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카메라로 한 인물 이순신의 삶을 따라가는 작품으로 만들면 딱 어울릴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김훈의 문체는 담백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으며, 그 심리나 정서와 너무도 잘 어울린 듯 합니다.

7.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를 읽은 이유는 우선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기초 텍스트로서 너무도 많이 활용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읽은 것이기도 하고, 작년에 영화<300>과 그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비평, 그리고 지젝의 독특한 견해에 대한 무수한 논쟁들을 접한 이후에 ‘안티고네’를 꼭 한번은 봐야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지젝이 제기하는 안티고네적 삶, 안티고네적 저항이란 뭔가 고민하고 공부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리고 그에 앞서 이리가레가 주장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안티고네 옹호론,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가 제기한 안티고네를 둘러싼 함정들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었구요. 
모처럼 논쟁적인 텍스트로서 등장한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이 이렇게 공부의 꼬리를 물게 하네요. 아무튼 ‘안티고네’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다니던 학교의 ‘플롯구성워크샵’이라는 전공수업에서 이창동 교수가 그렇게 얘기하던, “모든 이야기의 출발은 그리스 비극이다.”라는 말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8. <안티고네의 주장>, 주디스 버틀러
이 책은 주디스 버틀러가 90년대 후반에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진행한 강의록을 엮은 것입니다. 그녀는 안티고네를 둘러싼 페미니즘, 정신분석연구의 논쟁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는데요, 이 강의는 라깡과 이리가레의 연구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라깡을 겉핥기로만 알지, 제대로 모르니까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리가레는 20대초반에 봐서 어렴풋이 기억을 살린다고 쳐도, 라깡도 좀 봐야하나요? 공부할 게 너무 많네요. 고작 영화<300>에서 시작했을 뿐인데... 예전에는 동아리 선배들이 다들 포스트모더니즘 매니아들이었는데, 저는 그게 대충 변명하고는 아무것도 안하는게 결론이라고 생각해서, 그게 너무 싫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라깡이나 들뢰즈, 네그리는 쳐다도 안보고 그랬거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9. <마담 보봐리>, 귀스타프 플로뵈르, 민음사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에서부터 시작되는 저의 소설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플로뵈르와 발자크, 스탕달이 그 출발점이랍니다. 우선 19세기 문학은 프랑스, 러시아, 영국의 주요 작가 소설들을 보고, 20세기로 넘어가서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일본, 중국 작품들을 보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일본 현대소설들이랑 한국 현대소설보구요. 이 여행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목표는 상병 달기전입니다.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생겨요. 부모님은 벌써부터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사냐고 꾸지람이십니다. 그치만 어쩌겠어요. 일단 우겨서 계속 보려구요.
<마담 보봐리>는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소설 문체에 있어서의 ‘시점’의 문제는 단순히 현학적이고 구구절절하며 자연과 인간 심리를 묘사하는 아름다운 문체의 귀족 소설이라는 이 당시 유럽 근대 소설에 대한 저의 편견을 산산조각 내주었습니다. 이 소설의 시점은 처음에는 샤를 보봐리씨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그가 어린 시절 교실에서 만났던 ‘우리’에 의해서 이 ‘우리’가 묘사하고 설명하는 보봐리씨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보봐리씨’에 대한 전지적 시점 및 일인칭 시점으로 점점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보봐리씨가 ‘보봐리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시퀀스에서 갑자기 보봐리 부인의 시점으로 시점이 변경되죠. 역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점은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결말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재치가 있었습니다. 인간사, 인간심리에 대한 묘사력이나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통찰 역시 엄청났습니다. 
플로뵈르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수년간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몇 개월간 쓴 것을 다 지우고 새로 쓰기도 하는가 하면, 특히 이 소설의 절정부분의 ‘축제’ 시퀀스을 쓰는 데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묘사에 딱 맞는 어휘를 찾기 위해 걸린 인내와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묘사와 어휘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으며, 그가 했던 이 말은 정말 유명하죠. “그 것을 묘사하는 데에는 오직 그에 맞는 한 단어가 있다.” 대충 이런 뉘앙스 맞죠?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의 정치적 견해가 어떠했건 간에 그가 발자크와 함께 현대적 소설의 출발점을 열고, 오늘날 예술에 무수한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10 11:1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21:50 

 

상병 강수식 
  와. 
정이현님과 수업을.. 
부럽부럽부럽부럽부럽습니다아아아아아(울음) 2008-08-06
09:27:47
  

 

상병 이동열 
  역시 명교님 대단하십니다(환호) 
저도 소설여행을 시작해야할텐데- 
지나치게 상업문학에 매몰되었던 지난 나날이 후회스럽네요(울음) 2008-08-06
09:37:46
  

 

병장 강호준 
  우와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잡으시고 독서 여행을 떠나시다니. 한수 배우고 갑니다. 무조건 흥미있는 책만 중구난방 식으로 읽던 저와는 천지 차이인것 같네요. 2008-08-06
09:59:18
  

 

병장 이태형 
  반성하게 됩니다. 
허허허. 2008-08-06
11:07:39
  

 

병장 황인준 
  허걱. 6월 한 달동안 9권이란.. 대단합십니다. 
전 5권 목표해놨는 데 그것도 힘들던 데 말입니다. 
허허허. 
좋은 결산 글 감사합니다. 2008-08-06
11:27:17
  

 

병장 허기민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교님의 독서결산, 역시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를 비롯한 2004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작품들은 전부다 대상 감인거 같은데, 어느 심사위원님 평대로 '화장'의 키가 너무 크더군요. 2008-08-06
15:03:06
  

 

병장 이동석 
  정이현씨와 함께 수업을. 
여억시 영상원 고고? 

그건 그렇고 유격도 다녀오시면서 이리 많은 독서량을 자랑하시다니, 
"하... 귀신 같은 사람" 

(장근석 미니홈피에서 인용) 2008-08-06
18:42:45
 

 

일병 김세현 
  병장 홍명교님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2008-08-06
21:11:52
  

 

이병 홍명교 
  허기민/ 
아 그게 <화장>이랑 같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있는거였군요. 읽은지 오래되어서 헷깔렸네요. 

이동석/ 
오세요! 고고! 2008-08-07
07:55:40
  

 

병장 임정훈 
  굉장한데요. 
전 달랑 한권 읽었는데. 휴. 자극 좀 받아야겠네요. 2008-08-07
10:08:44
  

 

병장 이현승 
  정이현님의 수업이라니. 왠지 강의도 문체처럼 콕콕 찝어 주실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데요.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카메라로 칼의 노래를 찍는다.. 굉장히 잘 어울릴듯 합니다. 2008-08-07
14:24:42
  

 

상병 김동욱 
  와우, 
잘 읽었습니다! 2008-08-07
23:12:55
  

 

일병 박재선 
  홍명교님, 혹시 싸이월드에 좌*사진작가들의 모임에서 뵈었던 분이 맞나요? 만약그렇다면 엄청 반갑네요.. 2008-10-10
15:4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