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쭌교수의 경제학강의
상병 김동욱 2008-08-25 23:16:31, 조회: 787, 추천:4
경제학자 쭌과의 첫 만남은 대학 1학년 시절, 경제학 입문 수업의 과제를 위해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교수가 선정해준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순했다. 마침 구내서점에서 할인행사 대상서적이었고 다른 책들에 비해 매우 얇았다는 것. 거기다가 대담집이었기 때문에 읽는 데 부담도 덜할 것 같아서. ‘장하준과 정승일, 한국경제를 말하다!’ 누구야 이 사람들이. 새내기다운 자신감으로 그런 말들을 뇌까렸던 것 같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 경제학자라고 해봐야 조순이나 정운찬, 정갑영 같이 개론서의 저자들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름 우연한 기회에 접한 이 책은 뭔가 새로웠다. 경제성장에 있어 재벌의 역할을 중요시할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식의 경제모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니. 꼴에 대학생이라고 경제정의니 하는 것들을 운운하던 나는 용납할 수 없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쉽게 설득당한 것이다, 젠장.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집어든 책이 『사다리 걷어차기』.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던 의심의 감정들이 경외비스무리 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쭌이라는 경제학자에게 매료되어 있을 때 출간된 책이 바로 『국가의 역할』(원제 : 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이다. 당연히 광고를 보는 순간 바로 질렀다. 그 후 2년 동안, 이 책은 주인이 휴학을 하고 군대에서 상병을 달 때까지 나의 책장을 꿋꿋하게 지켜주었다. 표지도 깔끔해서 그런지 집에 들러 책장에 꼽힌 이 책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아직까지 책장을 지키고 있는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와 함께. (이건 언제 읽지, 후……)
잡설이었다.
그에게 뮈르달 상을 안겨준 『사다리 걷어차기』는 선진국 경제발전과정의 고찰을 통해서 현재 그들이 개도국에게 경제성장을 위해 제시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위선인지를 밝힌다. 자유무역, 민주주의, 특허권 도입 등등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발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경제발전의 결과’라는 사실을 구체적 자료를 통해 적나라하게 밝힌다. 그와 같은 행동은 결국 후발주자들의 경제성장을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인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생각을 심화시켜 신자유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과 이론적 결함들을 낱낱이 파헤치며, 신자유주의가 제기한 구체적인 쟁점들―지적재산권 확립, 규제철폐 등등―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인지를 실제 자료들을 통해 검증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평등이나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대 등 수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음에도 이전에 비해서 그리 나을 것 없는, 그리고 많은 나라들에 있어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에 이 책은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구축하기 위해 시도한 결과”물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1편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둘러싼 역사적․이론적 배경을 살펴보며 신자유주의의 내적 모순을 지적한다. 2편에서는 세계화에 따라 직면하게 되는 초국가기업, 지적재산권, 선별적 산업정책 등 ‘대외 경제정책 이슈점검’을, 3편에서는 규제와 개도국의 공기업의 효율성 등 ‘국내 경제정책’등을 논한다.
― 신자유주의의 태생?! : 신고전학파 경제학와 오스트리아 자유주의의 정략결혼
‘지극히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신자유주의의 태생을 지적하며 이 사상이 얼마나 모순적 기반위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지적한 부분이다. 꼴에 경제학과이며 경제학설사 수업을 자랑스럽게 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어디쯤에 어떤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사실 몰랐다라고 하는 게 맞다.) 학교를 다니며 ‘신자유주의’는 귀가 박히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험기간이면 부여잡고 씨름해야 했던, 이준구니 정운찬이니 하는 교과서들에는 사실 시장만이 제일이라는 주장은 없다. 물론 수입을 감소시켜 순수출 개선에 도움을 주는, 관세와 보조금은 화폐가치를 증가시켜 수출은 감소시킴으로써 결국 실질적인 순수출에는 변화가 없다는 그래프는 기억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시장만이 선이다’라는 주장을 정당화시킬 만한 수준은 아니다. 거기다가 미시경제 교과서에는 시장실패가 떡하니 중요한 파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 신고전파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랑 관계없는 것인가? 라며 그 범위를 좁혀 의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시카고 대학에 자리 잡고 루카스로 이어지는 이 학파가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하며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이 솔깃했다. 또한 아옌데의 정권을 무너뜨리며 집권한 피노체트가 불러들인, 시카고 대학에서 프리드먼에게 사사받은 한 무리의 유학생들― 소위 ‘시카고 군단’ ―고국으로 돌아가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시행했다는 사실도. 하지만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신자유주의를 말할 때면 빠지지 않는, 미제스에서 하이에크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학파와는 다르다는 사실. 하이에크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열렬한 비판가였다. 이건 뭐야. 결국, 학설사 수업을 통해 얻은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던 저학년 경제학도의 호기로운 도전은 거기 어디쯤에서 그치고 말았다. 아아, 난 ‘김치’와 ‘볶음밥’을 섞어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내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에는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쭌은 말한다. 신자유주의란 “신고전학파와 오스트리아 자유주의 간의 수상한 정략결혼”이라고. 어쩌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나의 반감은 김치 볶음밥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정략결혼’ 결과 탄생한 사생아가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과학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대중들에 대한 호소력이 부족했고(“그 누가 파레토 최적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오스트리아 자유주의는 ‘자유’나 ‘기업가 정신’등의 구호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존경받을 만한 집단‘으로부터 지적 전통을 승인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둘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김치 볶음밥‘이 되어버리면 ’김치‘의 샹콤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신고전학파는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에 담긴 개입주의적 색채를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등학교 경제에서 배운 ‘시장실패’의 사례 중 ‘외부효과’를 떠올려보자. 흔히 나오는 예는 양봉업자-과수원업자, 자동차-대기오염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적 이득/비용과 개인적 이득/비용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제 3자, 즉 주로 국가가 개입해서 보조금을 지급하고/세금을 매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두 주체간의 직접적인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개 상당한 거래비용을 수반한다. 거래비용이 무시할 정도로 작다고 하더라도 재산권의 확립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대학교재를 비롯해 어떤 교과서도 “‘산업 정책’처럼 정치적으로 매우 논쟁적인 주제에는 외부효과론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산업 정책’도 이론적으로 쉽게 정당화될 수 있는데 말이다.” 신고전학파가 자신들의 개입주의적 색채를 지우는 방식 중에 하나가 시장실패는 인정하지만, 이것을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는 확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신고전학파 내에서도 국가의 개입에 대해서 일관된 이론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적절한 국가의 역할’를 둘러싸고 심각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자가 개입주의자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이론이라기 보다는 그의 정치적 선호이다. 결국 어떤 개입이 좋은 것이고 또 나쁜 것인지를 가리는 과학적인 경제이론이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일관된 내용과 명백한 결론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모순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일관성 없는 지적 독트린일 뿐이다.”
이러한 논의는 ‘도대체 자유시장이 무엇이냐?’,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고?’ 등의 신자유주의 이론에 대한 본격적 비판으로 전개된다.
― 국가의 역할; 기업가적 비전제시와 사회적 갈등조정
다음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국가의 역할을 논하며,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 모델을 비교한 장이다.
일관된 논지로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최소국가관점을 비판한다. ‘시장의 우선성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만이 자연적 질서이며 이에 대한 ‘인위적’ 정부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인식의 오류를 꼬집는다. 즉, 처음부터 시장이라는 ‘부문’ 역시 국가에 의해서 창출되어 왔고, “잘 작동하는 국가 없이 잘 작동하는 시장은 없다.” 는 것. 미국 역시 초기 산업화가 성공할 수 있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소유권 확립, 주요 사회간접시설의 건설, 농업연구에 대한 자금공급을 통한 국가개입”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시장만을 위시하는 ‘빅 뱅’ 개혁을 실시한 수많은 구 공산권 국가들이 지난 몇 년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 역시 시장 창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중국의 발전을 생각해보라!)
산업구조 변동의 시대. 저자가 이 상황에서 제시하는 국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업가적 비전의 제시이다. 국가는 “정의상 전 사회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이러한 국가는 구조변동의 상황에서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낭비(조절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국가의 능력을 과도하게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국가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할 만한 주체가 국가밖에 없고, 포기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적 갈등의 조정이다. 시장에만 맡긴다면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까? 늘어난 인센티브에 따라 이해당사자간의 합의가 증가할까? 노동부문만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노동유연화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고용불안정을 심화시켜왔다. 이들을 단순한 시장매커니즘에만 맡겨놓을 경우 예상되는 결과는 ‘저항적 정치행위’를 통한 사회적 비용의 증대뿐이다. 사회적 갈등을 함축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처음부터 중재와 조정하고, 제도를 완비하는 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역할에 부합하는 실제 부합하는 모델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동아시아 발전모델인 ‘산업정책 국가’와 서유럽의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이다. 각각 전자는 기업가적 역할에, 후자는 갈등 조정자의 역할에 탁월한 성취를 보여줬다.
저자는 두 모델을 동등하게 중요하게 평가하지만, 나는 산업정책 국가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고 자라서 그런지 좀 더 민주적이며 장기적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 쪽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물론 산업정책국가의 모델이 다른 선진 국가들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비판처럼 그와 같은 발전을 위해서는 관료적 전통과 같은 ‘제도적 선결조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저자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처럼― 이 모델이 대개 권위주의적인 제도나 정치체제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산업정책의 시행에 있어서 “관료-경영자 조직의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이 갈등조정의 역할에서도 “감탄할 만한 성취”를 거뒀다고 말한다. 어떻게? “구조변동으로 인한 피해 집단의 저항을 국가의 강력한 힘으로 진압함으로써” 말이다. 어떤 점에서 ‘감탄할 만한’지는 이해가 안가지만, 이 모델은 제대로 사회적 갈등을 푸는 것이 아니라 갈등 자체를 억압했을 뿐이다. 언제까지 ‘피해 집단의 저항’을 억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모델이 갖는 한계가 드러난다. 한 부문의 배제 없이 사회적 갈등과 균열이 제대로 표출되어 일정한 틀 속에서 논의되어야 사회적 통합과 합의가 가능하다. 이와 같은 민주적 과정 없이 권위주의적 억압을 통해서 갈등을 회피하려 한다면 피해 집단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경제성장을 잠식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탁월한 성취를 달성해 온 모델이 바로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이다. 이 국가들은 고도로 집중화된 노동-자본 간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중재ㆍ개입하여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냈다. 이는 한 부문만의 절대적 희생이 아니라 상호간의 양보를 통해서 사회통합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계속되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들 국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는, 광범위한 공감대 없는 제도의 도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우리의 몸과 맞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언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우리 쭌교수님이 이런 점을 모르고 있진 않을 것이다.)
경제학 서적을 끄적일 때마다 수식과 그래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리고 매 장 만나게 되는 연습문제들. 이 쯤 되면 내가 경제학 책을 보고 있는 건지, 수학책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물론 그 수학적 과정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뭔가 설명되지 않는 답답함을 부정할 수가 없다. 깔끔하게 미분되고 정확한 수치로 답이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그 답답함 내지는 찝찝함. 이론 정합성이야 완벽하겠지만 현실 설명력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불편한 완전성의 가정들’ (물론 완전성의 가정을 통한 현실 설명력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래도 뭔가 답답하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들은 균형 속에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진실인 이유는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가정 그 자체가 균형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라는 하이에크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합리적 인간을 가정할 바에야 아예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라”라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완전성의 가정과 현실 사이에는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계속 집어 드는지 모르겠다. 그 ‘구멍’을 메워줄 만한,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구멍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어떤 이상적 상황과 완전함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에 발을 담그고 불완전함을 주시하는 책들. 똑똑하고, 잘생기고, 노래 잘 부르고, 운동도 잘하는 아해들보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어리 버리하고, 늘 실수하는 이들이 더 인간적인 것 같은 거랑 비슷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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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20:52
병장 이동석
훗, 전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로군요.
어쨌거나 동욱씨 이러실줄 알았어요. 자 이제 댓글 들어갑니다.
무시무시한 책마을 경제학도, 사회학도 분들이 물어뜯어주실겁니다.
혹은 침을 바를수도 있겠군요.
(전 너무 졸려서 이만...)
어쨌거나, 경제학서적 전반에 대한 감상(?)에 지나친 공감을 표하며,
차라리 세상에 김태희 얼굴에 전지현 몸매에 문소리 연기력에 김선아 액션연기를 갖춘 여배우들만 있다고 해라라고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제가 댓글달때 절대 안쓰는 말이 있는데,
잘 읽었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써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결코 졸려서 그러는거...?) 2008-08-26
05:56:39
병장 윤형주
저는 그 구멍에 질려서 명상하고 있다는...
흐물흐물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잡힐듯 잡히지 않는 경제- 흑흑 2008-08-26
08:47:51
상병 이동열
저도 쭌교수(?)님 좋아라 합니다(웃음)
그분 저서 다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갈길이 멀군요...
그리고 Y*s24에 보시면 쭌교수(?)님과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듯 하네요... 2008-08-26
08:52:32
일병 조우신
ceteris paribus..경제학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해주는 멋진 단어이지요 2008-08-26
11:53:34
병장 노요셉
쾌도난마 한국경제, 한번 읽어보려 했던 책인데 말이죠~
생각난김에 도서관에 가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흐 2008-08-26
13:59:36
병장 이재민
이미 시장의 완전성에 대한 가정은 많이 무너졌지요
스티글리츠 교수가 information asymmetry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순간에요
물론 아직 교과서에 반영될 만하게 딱 정리된 이론이라기보다는 90년대에 새로 발견되어 가장 논의가 활발한 분야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주로 경제학을 배우던 3년 전에는요..(후) 2008-08-27
09:39:41
병장 이재민
참 추천합니다
이 글을 보고 결국 국가의 역할 질렀습니다
그것도 원서로요
이번에 알았는데 사이트별로 같은 책을 파는 가격이 꽤 차이나더군요. 특히 원서인 경우에요
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만 해도 한 7,8천원 차이나더군요. 같은 국내사이트에서도요 2008-08-27
09:41:04
병장 이재민
그리고 준교수야 말로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핫한 피플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경제에서 준교수 초청 2시간 강의료로 저같은 꼬꼬마에게 10마넌을 불렀던 것 같은데
최근에 2,30마넌대로 뛰었다더군요 2008-08-27
09:49:22
병장 이재민
개인적으로 이 분야에 대해서 저도 혼란스러운지라 말이 많아지는군요
McKinsey, Bain, BCG같은 '앵글로색슨족' 컨설팅 펌들과 JPM, GS 같은 '핫 머니' 유통사들이 한국에서 그 세를 확장해가고 있는데요. 게다가 요즘은 핫머니의 대명사인 PEF들이 한국에서 대 히트중이라지요.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후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되어 있고, 제 친구들도 현재 몇명 프로세스 진행중입니다. 저도 RA과정으로 두루두루 거쳐본 분야구요. 쩝.
궁입대 전 가장 인상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은 수업이 M.Porter가 만든 체계를 시스템을 도입한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의 요지는 크게 2가지죠. Free market, Clustering. 케이스 스터디식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에서 많이 언급된 나라들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Porter의 수업을 듣고 나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된 칠레 등 중남미가 대부분이었죠. 반대로 준교수와 스티글리츠 교수는 실패사례로 들더군요. 2008-08-27
09:58:24
병장 이재민
또 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에 동아리활동(학회라고 봐도 무방한 동아리입니다)에서 국내 유력 경제일간지 편집장 한분을 초청해 비슷한 말씀을 들은 적 있었는데(그때 아마 재벌기업구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인상깊은 것이 자본에도 국적성이 있다고, 자기가 편집장이랍시고 앉아 있지만 자기네 신문 펼쳐보면 6,70%는 거짓말이라고.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며 내는 내용들이 있다고. 흔히 접할 수 있는 경제관련 서적만 믿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알고보니 선배라서 술이나 한잔 하라며 돈좀 쥐어주시면서)
그 때 기분이 묘해서 술 찐하게 마신 기억이 있는데....
속고사는 기분 있잖아요?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이 거짓부렁같고,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 기분 머같죠. 2008-08-27
10:03:47
상병 김동욱
재민님, 원서를 지르셨다니!~ 멋집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참 재미나죠? 사실 장하준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한국인이 영어로 쓴 책을 다른 한국인이 한글로 번역한다라, 뭔가 아이러니? 중국인 작가 하진의 영어 책들로 중국인에 의해 중국어로 번역되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은 낯선 풍경인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신이 옮기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을 '개입'을 막기 위해서 였을까요? 흠,
잡설이었습니다.(땀) 제 주위에도 외국계 컨설팅펌이나 투자은행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물론 노려보고만 있어요) 언제부턴가 상경계열의 학생들에겐, 특히나 여학생들의 경우에 좀더 그런 것 같은데, 그 곳들이 최고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봄이면 BCG니 베인이니 설명회를 하면 더 없이 붐비고, 누군가는 그 포스터를 떼어 하숙집에 붙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요, 저 역시 누군가 거기 입사했다고 하면 우와~라는 말부터 나오니까. 흠, 이건 왜 그렇게 된거지? 우리나라 직장들에 보다 좀더 개방적이고, 보수도 나쁘지 않고, 나름의 후광때문인가.
이런, 글을 쓰다가 저 혼자만의 의문 속으로 자꾸 빠져들면서 샛길로 들어가네요. 그 신문사 편집장 분.... 편집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유력 경제일간지라야 한두개 뿐인데, 얼마전까지 그 신문들을 꼬박꼬박 찾아보던 제 모습이 바보 같아지는군요. 대체 이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뭐가 어떤지, 어떤 자리에 포지셔닝 해야하는지. 저 같은 꼬꼬마는 방황할 뿐. 저는 술 한잔도 못 얻어먹었는데. 흑흑
그건 그렇고, 재민님의 학회도 궁금해지는군요. 뭔가 빠방해보여요. 크크
그리고 제가 이야기한 부분은 주로 책의 1장입니다. 나머지 장에서는 구체적 이슈들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한다는.
동석님! 졸려보여요, 이미. 크크크크.
동열님! 응24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2008-08-27
23:33:06
병장 이재민
옮길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요? 흐흐
이미 쭌교수님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이니...
예전에 한국에서야 유력교수의 말안듣는 사촌동생 쯤으로 여겨졌으니까요
컨설팅 펌과 투자은행이야 철저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메리트가 많아요
보수차이가 엄청나고, 이직 시 받아주는 곳이 많죠
아무리 못해도 투자은행의 경우 '영어', 컨설팅 펌은 '논리력' 측면에서 다른 인재보다 낫다는 검증이 되니까요
사실 일은 너무 힘들고 고되도 재미있기도 해요.
하지만 그네들이 하는 일들이 '옳은' 일인지,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 봐야죠
학회라... 은근 방송도 몇번 탔는데 다 취업동아리 식으로 잘못 인지되었습니다
적어도 저희는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올바른' 경영자가 되자는 모토인데, 항상 다른 동아리들이랑 싸잡아, 지네가 원하는 식으로 호도해 보도하더군요 (몇번 기자들 상대하며 악감정이 많습니다). 2008-08-28
08:49:50
상병 손정우
댓글을 한참 쓰다가 글쓰기 버튼을 눌럿더니 글이 날아가 버렷네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사다리 걷어차기' 도 그렇고 그 후속격인 문제의 '뜨뜨미지근한' 놈 역시 어떻게 구해서 읽어보고 있는데 아직은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네요.
지나치게 지금까지의 수식과 그래프로 이뤄진 깔끔한 결론도출에 익숙해진 것인지, 쭌교수의 역사적 논증법에는 이상하게도 묘한 찝찝함과 거부감이 느껴지네요.(그의 의견이 오히려 제 본능적 의견에 가까운데도 말이죠...반복된 학습이 이래서 무서운가 봅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과거로는 마셜의 경제학 기사도를, 현재로는 폴 크루그먼의 '저임금의 고된 일용직 생활이 쓰레기 산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는 것 보다는 낫다'라는 류의 주장에 많은 동의를 하고 있었는데, 쭌교수의 저서들을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어쩌면 제가 그 잘난 '뜨거운 가슴,차가운 머리' 운운하며 생각하고 동의해온 이론들이 결국 강대국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쾌도난마 한국경제, 언젠가 읽어봐야겟다고 벼르면서도 계속 미루던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읽어봐야겟군요. 2008-09-11
02:21:51
병장 정병문
쭌교수님의 '나쁜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 불온서적이라죠..
이유가 반정부,반미라나? 씁쓸합니다. 2008-10-13
16:2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