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병장 허기민   2008-07-22 16:58:42, 조회: 433, 추천:4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중략)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내용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을 중략한 것이다. 두 갈래 길 중에 한 갈래 길 밖에 갈 수 없었던 나그네는 나중에 한숨을 쉬면서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사냥꾼이 좌우로 도망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삶에 있어서도 외롭고 고독한 선택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나그네는 알고 있었다. 

  허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나그네의 아쉬움을 듣는다면 그는 말 그대로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는 한번 선택했던 길을 어렵지만 되돌아와서 시작점에서 다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이오’ 라며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작품 해설에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광기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자아실현의 욕망이라고 보았다―때문에 그는 아름다운 부인과 2명의 자식, 그리고 40대 증권중개인이란 사회적인 지위를 한순간에 던져버린다. 

  그 후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가족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함께 살아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잃게 되었으며, 경제의 꽃이라 불리우는 금융업을 더 이상 업으로 삼지 않으면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모두 잃게 되었다. 그는 흔히 우리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거지’ 가 되었으며 파리 어느 허름하고 쾨쾨한 여관에서 그림만 그리며 살아간다. 

  또한 그는 철저하게도 냉혈한이었다. 17년 동안 함께 해온 가족들을 버렸으니 그 성격 오죽 하겠나. 홀홀단신으로 온 파리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화가 스트로브의 아내와 눈이 맞아 불륜 행각을 저지르고, 스트로브의 화실까지 얻어 거기서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고, 자신에게 육체적인 욕망만을 채우고자 했던 찰스에게 배신감을 느낀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을 기도하였다가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이름에 붙일 수 있는 최대의 오명일 것이다. 말년의 그는 타히티로 가서 원주민과 동거를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비극적으로 죽게 된다. 마지막으로 살던 집과 사후에 길이 남았을 역작은 그의 원주민 아내가 불태워버렸다. 비극적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에 일말의 동정이라도 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과연 찰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엔 다시금 우리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어떤 이의 삶을 쉽사리 가위로 재단할 수는 없다. 앞서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비열한 인간을 철저히 6펜스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이 책의 제목의 한부분이기도 하는 ‘6펜스’는 자아실현, 예술혼이라 볼 수 있는 ‘달’과 대조되어 세속적인 행태, 현실의 제약, 찰스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자아실현을 억누르는 인습을 뜻한다. 6펜스의 관점에선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은 절대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허나 ‘달’의 관점에서 봤을 땐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자신을 옭아매던 틀을 부수고 나온 인물이다. 자기가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살아간 게 잘못된 것일까? 성공한 인생, 흠 잡을 데 없는 인생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스트릭랜드는 ‘예술’이라는 자신의 업을 억누르고 금융업을 계속 했어야 되는 것인가. 연수입이 보장되고 아름다운 아내와 2명의 자식과 오순도순 사는 것만이 인생에 있어서의 성공인가. 꼭 그렇지 만을 않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를 더 옹호하자면,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스트릭랜드가 떠난 뒤에 오히려 더 성공하였다. 아들은 군인이 되어 무공훈장을 추천받았으며 딸은 군인과 결혼하여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자식들은 찰스가 죽자 ‘하느님의 연자매는 느리게 돌지만 가루는 곱지요’ 라며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위선적인 태도를 함께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남편이 외면했던 아내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찰스와 같이 있을때보다 더 부유해졌다. 남편이 떠나자, 끝까지 증오하겠다던 그의 아내는 찰스가 사후에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자, 생전에 그의 훌륭한 아내였으며 그의 예술 세계를 존중한다고 밝힌다. 어쩌면 이런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현실에서 찰스는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는 그를 억압하고 있던 현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실현―그가 마지막으로 살던 집에 남긴 기이하고 정교하게 구성하여 자연의 심연을 파헤친 작품을 통해―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테다.

  인생엔 정답이란 없다. ‘달’의 관점, ‘6펜스’의 관점에서 각각 본 찰스 스트릭랜드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관점에는 그에 대한 완벽한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저울의 양쪽 추가 평행이 되지 못한 채, 각각 한 쪽으로 기울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내 삶에 임하는데 있어서 ‘가지 않은 길’의 나그네가 시도하지 못한 방법을 한번 써볼까 한다. 두 갈래 길의 가운데를 취하는 것이다. 저울의 양쪽 추가 평행이 될 수 있도록 각각의 관점의 장점만을 따오려고 노력해보려는 것이다. 

  이는 현재 ‘6펜스’에 치우쳐 있는 내 삶에 대한 반성을 해봄으로서 시도해 볼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 자신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여러 제약들―무기력함, 현재의 조건, 사회가 정의내린 직업―로 인해 내 자신의 벽을 부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좀 더 ‘달’의 측면에 더 접근해 볼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표출한 ‘예술적 광기’가 아닌 ‘자아실현’ 이라는 측면에 열중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보고 있다. 폴 고갱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며

  막상 글을 올릴려고 하니, 남 앞에서 발가벗는 기분 같아서 망설였습니다. 허나 부족한 제 글을 읽고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이 책에 대해서 알게 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립니다. 
작성완료를 클릭하는 건 정말 떨리는 일인거 같습니다(웃음). 저한테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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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5:52 

 

병장 어영조 
  저도 고3때 참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항상 궁금하게 여겼었는데 6펜스가 뭐죠? 2008-07-22
17:25:40
  

 

병장 이동석 
  프랑의 동전 단위 화폐 아닌가요? 
(이거 물어보시는거 아닌가?) 2008-07-22
17:29:12
 

 

병장 이동석 
  그리고 보니 루팡시리즈에서 펜스를 썼던거 같음. 프랑의 동전 맞겠네요. 
간만에 독서후기 잘 읽었네요. 추천입니다. 크크. 2008-07-22
18:55:56
 

 

병장 이현승 
  서머싯몸 소설 정말 좋아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얼마전 에드워드 노튼 주연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 

'인생의 베일' 추천합니다. 2008-07-22
21:28:20
  

 

일병 김세현 
  좌우로 도망치는 토끼가 만나게 될 지점에서 대기!..죄송해요 히히 2008-07-23
06:58:31
  

 

상병 고동기 
  덕분에 좋은 책 하나 알고 갑니다. 감사해요 2008-07-23
08:16:30
  

 

병장 허기민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현승 병장님//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에드워드 노튼은 제가 좋아하는 배우 중에 한 분입니다(프라이멀 피어의 충격). 아직 그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밖에 있을 때 꼭 봐야겠습니다(웃음). 

어영조 병장님 질문에 이미 부촌장님이 답을 하셨지만, <달과 6펜스> 해설을 참고하여 첨언을 하겠습니다. 출처는 <달과 6펜스>(학원사, 1995년) p.244 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에 들어 있는 '6펜스'는 1펜스가 여섯개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화폐 단위를 쓰는 나라여서, 6펜스짜리 동전이 따로 있다. 이 동전은 1946년까지는 은화였으나 1947년부터는 백동화로 발행되고 있는데, 비유적으로는 '흔해빠진 것' '값어치 없는 것'을 뜻한다. 상대적으로 '달'은 우리들이 만져 볼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손에 닿지 않는 것'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두 개의 동그라미(달과 6펜스)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세계'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세계', 또는 '비범성'과 '범속성', '고귀한 예술적인 삶'과 '보잘것없는 현실적인 삶'을 상징한다고 보겠고, 또 그런 견해가 일반적이며 상식화되어 있다." 

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2008-07-23
08:38:36
  

 

병장 어영조 
  허기민//제 지평을 넓혀 주셨습니다. 2008-07-23
10:30:55
  

 

병장 어영조 
  그런 의미에서 추천 한 방 2008-07-23
10:31:16
  

 

병장 이동석 
  컥 
파운드의 동전 단위였군요. (아 창피해. 웃음) 

기민님, 
애프터서비스까지 확실하시네요. 
그러나 전 부촌장님이 아니라 이동슥이랍니다. 크크. 2008-07-23
10:35:08
 

 

일병 이동열 
  화폐단위인줄은 알았지만 '6펜스' 동전이 따로있을 줄이야 

새로운 지식 잘 얻어갑니다(와아~) 2008-07-23
10:48:19
  

 

병장 허기민 
  동슥(감히 부촌장님을 이렇게 불러도 될런지)// 

음..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한 건, 제가 한가해서 그런가봐요(퍽!). 2008-07-23
13:06:39
  

 

병장 강문석 
  저도 그 소설을 읽고 나서도 제목이 이게 뭔소린가 싶어 한동안 헤맸었습니다. 
아무리 내용을 다시 뒤져봐도 '달'과 '6펜스'가 동시에 등장하는 대목이 없는겁니다(...). 
사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것도 제목이 뭔소린지 알기 위해 오기로 읽어낸 부분이 상당한..(...) 2008-09-04
16:4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