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이병 홍명교 2008-07-15 15:23:22, 조회: 306, 추천:1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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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여러가지 이견들이 있지만) 월러스틴에 의하면 몇차례 헤게모니적 국면들(15~16세기 제네바체제, 17세기 네덜란드 헤게모니, 18~19세기 영국 헤게모니)의 전환 이후에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전세계에 안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기술적 계기들 중 가장 특기할만한 '복제'기술은 대량생산체제를 성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중세적 의미마저 변화시킨 것입니다. 다름아닌, '사진'이 등장한 것입니다.
사진예술은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상부구조(예술과 미학)은 그보다 더 오래 뒤에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1920년대초에 벤야민은 이제 더이상 지식전달과 글쓰기의 수단으로서 '책'이란 낡은 형식이 되고 말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구텐베르크'의 시대가 끝나리라는 것입니다. 수직적 읽기 대신 수평적 읽기가 대체되며, 읽기라는 행위는 이미지적이고 촉각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임을 통찰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 의미의 예술론과 미학은 퇴각하고, '매체미학'으로서 재구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어느 한가지가 퇴각한다고 해서 새로운 무엇이 그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사유가 아닙니다. 요컨대 대중이 예술작품이나 텍스트를 접할때의 태도가 관조적이고 집중적인 것에서 즉각적으로, 정신분산적이며 산만하고 촉각적인 것으로 대체될 순 없다는 것이죠. 이 징검다리에는 일종의 '판독'의 과정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긍정적이라고 할수도 없는 지점은 너무도 많습니다. 사진이 예술로 진입하는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죠. 사진을 즉물적 관찰의 매개물로만 볼때 사진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이 되기보다는 일종의 상업적 소비물이 되고말기 때문입니다.
1.
벤야민은 이 지점에서 "아우라"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아우라"란 (제 기억에 따르면) 가까이 다다갈수록 멀어지면서도 한없이 거대해보이는 공기와 시간의 직조물같은 것입니다. 요컨대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을 볼때 어떤 거대한 아우라같은 것을 느낀다고들 하죠. 또 우리는 흔히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아우라"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 2년차이던 시절에 마씨 할아버지책 꽤나 읽었다는 사학과 선배는 종종, "요즘 학생회장들은 아우라가 없어. 옛날에는 아우라 장난 아니었는데... 이제 아우라같은건 있을 수가 없는거 같아" 이렇게 말했더랬습니다. 비슷한 말로 "포스"가 있을까요? 물론 "아우라"에는 좀 더 심층적이고 신비주의적 의미가 심어져있습니다. 텍스트로 명확히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죠. "시공간의 직조물"이라니...
여하튼, 이제 더 이상 예술작품 속에서 그런 식의 아우라는 존재하지 않는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무엇도 아닌 '사진'이 예술의 경계 안으로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이제 그 어떤 회화보다 더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풍경 또는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진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대중화되었던 19세기의 예술비평가들 대다수는 사진의 출현이 예술에게 죽음을 가져올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미술은 고전주의의 전성기였고 화가라면 정확하고 화려하게 그리는 것이 유일한 미덕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는데, 사진으로 인해 고전주의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많은 고전주의 경향의 화가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진촬영사'로 전향하기도 했다고 하니, 실제 당시 고전주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귀족들의 일상과 가족의 단체 인물화를 주문받아 그려주는 정도의 '장인'들의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얘기가 샛길로 빠지긴 하지만, 그러니까 예술이 아니라, 귀족들의 가족사를 기록해주는 직업이 필요했던 것이겠죠. 따라서 미술사에서 이 시기에는 이제 더이상 예술가들이 풍경이나 인물을 정확하게만 그리려는 것에서 아예 거리를 두고 급진적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듭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미술이 출현하고 고갱, 피카소, 세잔느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술의 전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다시 벤야민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사진에 달린 표제가 사진에게 구성적, 정치적 함의를 넓혀주듯, 영화가 지닌 기술적인 특성들(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몽타쥬와 데꾸빠쥬)은 영화에게 정치성을 부여해줍니다. 요컨대 영화의 이어진 숏과 숏은 이미지의 관찰자에게 연상의 흐름을 계속해서 중단시키고, 또 동시에 충격효과를 유발하여 각성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몽타쥬 미학에 대해서는 더 무수하고 많은 논지를 필요로 합니다. <국가의 탄생>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20년대 영화들과 러시아 몽타쥬 영화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그리고 고다르에게까지 이어지는... 그리고 몽타쥬 미학에 대한 많은 논쟁들까지.)
벤야민은 영화가 오늘날 사람들이 처한, 증대된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형식이라며 과제로서 일상에서 증가하는 어떤 도구를 다루는 일이 조건짓는 지각과 반응양식에 인간을 적응시키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영화는 자본주의라는 시대에 가장 적합한 시대적 산물인 동시에 적응의 매개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제의적 기능'은 이제 정치와 실천으로 옮겨집니다. 복제가능성이라는 형식은 이제 예술의 성격마저 변화시킵니다. 따라서 영화나 사진을 전통적 의미의 예술에 비춰 바라보는 태도는 혼란만 가져오는 것입니다.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필연성을 지니며, 또 복제의 복제의 복제물이기 때문에 일회적이지 않은데다 형식적으로는 몽타쥬적이고 가장 리얼리즘적 매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대중을 대상으로한 "집단"의 "동시적" 수용을 목표로 합니다. 이런 점들은 영화에게 무수한 가능성을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일뿐 자본주의 시대에서 영화가 시장주의, 소비주의와 동떨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벤야민은 상기한 바와 같은, (요컨대, '아우라의 붕괴'내지 '기술복제시대'로 언명될 수 있는.) 예술사적, 미학적 논지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에 기초한 사회적,역사적 조건과 의미도 추론합니다. 그는 여기에 '웃음', '집단웃음', 사디즘-마조히즘'등을 거론하며 영화의 촉각적 충격효과와 현대사회의 조건을 비교분석합니다. 이때문에 찰리 채플린과 디즈니 만화 등은 벤야민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했으며, 벤야민이 채플린과 코미디 영화에 관한 글들을 쓰게 하기도 했습니다.
3.
벤야민의 위와 같은 논지는 기술적 낙관주의 쯤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벤야민 역시 영화가 반드시 대중'진보'의 역사에 낙관적인 매체가 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영화산업'을 전세계적으로 펼쳐놓은 자본의 힘이나 스타 숭배에 따른 사이비-아우라, 그리고 정치적으로 파시즘이 대두한 정세는 예술로서의 영화에게 무수한 위기를 던져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예견은 결코 틀리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뛰어난 여류 감독은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심미안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히틀러 찬양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만들어냈으며, 오늘날 무수한 '영화들'은 산업과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자본(할리우드!)에 의해 쉽게 무너집니다. 게다가 스타 숭배라는 사이비 아우라는 대중들에게 영화-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왜곡시켜오고 있기도 하구요.) 슬픈 현실이죠.
벤야민의 낙관주의 이후의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오늘날 영화예술은 다른 차원의 위기를 경과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MTV'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런 것들의 극복과 대안을 위해 도전하는 영화예술의 첨병들이 있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동굴의 안티고네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무수한 영화대가들... 켄 로치, 다르덴 형제, 지아장커, 홍상수..., 이름없는 수많은 독립영화인들. 영화노동자들... 그리고 이제는 70을 훌쩍 넘은 고다르나 로메르, 리베트 같은 노장들 등.)
4.
끝으로, 그밖에 외재적 의미에서 본 판본(<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제3판>)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번역되어 널리 읽혔던 판본은 제3판으로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빵 호크하이머에 의해 독촉되어 축약-편집된 판본이었습니다. 나치 체제하 더 이상 독일에서의 원만한 활동이 어려워진 프랑크푸르트학파, 이른바 사회과학연구소(맞나요?)가 미국으로 이전한 이후 받은 발터 벤야민의 원고는 '반체제적' 성향이 짙었고, 이를 있는그대로 싣는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겐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발터 벤야민에게 거시기한 내용을 제거하라고 요구했죠. 그래서 아도르노에게 보냈던 제1판을 보충하여 완성한 제2판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던 벤야민은 다시 이것을 수정/축약해 제3판을 냈습니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학계에 소개되었죠. 이후 이 제3판이 마치 벤야민 연구의 가장 대표적 논문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수입'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정치가 제거된 것처럼 정치성이 제거되어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미학자, 영상학자들이 벤야민의 제3판 원고를 교과서적 텍스트로 삼아 학문적 전개의 바탕으로 삼았지만, 80년대 이후 계속해서 미국에서 재구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을 그렇게 차용했듯, 정치없는 벤야민으로만 수용해왔을 뿐입니다.
당시 벤야민이 왜 학자적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논문을 수정했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아도르노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당시 벤야민이 브레히트와 가깝게 지내며 사상적 지평을 왼쪽으로 넓혀왔던 점으로 미뤄볼때 그가 제2판 논문 원고에 더 애정을 갖고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여담이지만, 호르크하이머에게는 정부(?)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나 아렌트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주문받아,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영문 번역본의 서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글은 벤야민을 오독할 여지가 많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쉽게, 벤야민을 우편향적으로 왜곡-평가하는데에 악용되기 때문이죠.)
5.
벤야민은 예술작품에 대해 "어떠한 측면으로든 영역적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한 시대의 종교, 형이상학, 정치, 경제적 활동들의 총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문학비평부터 철학, 도시비평, 매체미학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전방위적 전개로 나아갑니다. 이 논문은 그러한 벤야민의 사유 속에서 '유물론'의 개입이 도래된 계기로서의 논문으로 지금껏 가장 많은 논쟁을 낳은 미학 논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요컨대 벤야민은 예술을 어떤 특정 영역에 묶여있는 대상으로 보는 사유에 대한 논쟁적 태도를 계속 견지해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1940년 나치의 위협을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어서다 쫓아오는 나치군이 곧 당도하고말것임을 직시, 비관하여 자살하고난 그날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도 계속 유효합니다. 벤야민은 필생의 저작 '파사쥬 프로젝트'를 미완으로 남기고 죽었는데, 보들레르와 건축, 파리, 역사철학, 유물론, 매체미학 등을 모두 아우르는, 19세기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근원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흔적들이 그 미완의 프로젝트들 안에 남겨져있습니다.
위 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에는 두 논문 뿐만 아니라, 채플린과 미키마우스, 라디오와 연극, 러시아 몽타쥬 영화에 대한 소논문, 메모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번역자들이 그의 주요 매체미학 연구 논문/메모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합니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두서없이 마구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필력과 學이 딸려서 정리가 안되네요. 자포자기의 심정입니다. (웃음) 매체미학이나 벤야민, 영화에 대한 '소통'에 나름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27 13:39)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5:24
일병 이동열
명교님 덕분에 새로운 곳에 눈이 떠진 것 같습니다
사실 아래의 글에서는 왠지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이 메워지는 것같습니다(웃음)
잘 읽었습니다(꾸벅) 2008-07-15
15:30:42
이병 홍명교
길고 난삽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웃음) 2008-07-15
15:48:28
병장 김준호
영화가 저항적 매체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고 싶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묶이는 사람들의 문예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겠죠. 저는 독립영화가 어떻게 저항적 메세지를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지, 그것들은 진정 유효한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사람들의 저서를 읽으려고 한답니다.
그나저나 한동안 책을 안 읽었는데, 이제 다시 읽을 때가 된 듯 하네요. 2008-07-15
15:54:31
이병 홍명교
김준호/
매체의 차원에서 영화'매체'가 저항적 매체가 되려면 형식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쿠제나 하버마스가 형식이 아닌 내용의 면모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순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체의 생산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형식선상에서 미치는 도움은 미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고민고민하다가 그 형식에 대한 학습을 위해 '영화공부' 그 자체를 택했습니다. 모든 거장들에겐 얻어갈 것이 꼭 있더라구요. 브레송이든 르누아르든, 하워드 훅스든 히치콕이든... 그리고 문화연구서적들은 그냥 소금이나 설탕같은 양념의 역할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뭐...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소쿠로프는 문화연구 서적들을 읽었을까요?
그런데 만약 고유의 '영화매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저항적 매체"가 되는건 산업과 시스템 안에서의 운동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그걸 고민하던 사람들이 독립영화배급이나 노뉴단같은걸 해왔고, 또 시장 밖에서의 영화생산을 도모해왔죠. 근데 영화자본이란게 참 무서워서 개별적 생산자들이 뭔짓을 해도 그 자체로는 끄떡이 없네요.
항상 고민하는 것이지만, 계속 직업적으로 영화를 하려고 하는 저로써도 제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마르쿠제에게도 답은 없을겁니다. 결국 답은 일거리 없어서 굶고 바닥긁는 영화인들의 "현장"이라는 현실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졸업하면 뭐할꺼야? 충무로?" 이렇게 누가 물으면 전 항상 농담처럼 이렇게 말해요.
"아니, 난 충무로 안가. 을지로나 퇴계로?"
주류 시스템 안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시장의 주체인 자본의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필요로 하거든요. 그럼 '돈'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럼 자꾸 타협하게 되고... 그러니까요. 그 안에서는 영화가 결코 저항적인 무엇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기덕이나 홍상수 같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길을 찾아나섰죠. 김기덕은 '김기덕프로덕션'이라는 자기 회사를 만들어서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고 생존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홍상수는 무조건 해외 영화제 나가서 상받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문화애호가 자본으로부터 투자받고 다음 영화 근근히 만드는 식으로. 하지만 그건 소수에게만 가능하니까요... 참 어려워요. 결국 저 앞에 펼쳐진 광장과 현실을 우회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2008-07-15
16:33:25
병장 어영조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좀 더 정진해야겠다는 의무아닌 의무감에 불타게
되는 듯 하네요.(웃음) 2008-07-15
16:34:33
병장 이동석
끙, 명교님 고민이 아프게 와닿는데요.
어쨌거나 전 심지어는 광주에서 영화찍을겁니다.
주변을 아주 파고드는거지요. 껄껄. 2008-07-15
18:26:04
일병 김세현
흐흐 아직 어려워요 2008-07-15
20:20:22
병장 정영목
제 경우엔 영화는 인간적 규모의 기술, 즉 적정 기술이 아닌 거 같아 다소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복잡도도 높고 덩치도 커서 변화를 즐기기엔 부적합하다랄까요? 물론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끔 보긴 합니다만.
그래도 영화계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기 좋습니다. 일례로, 덩치가 엇비슷한 게임계에선 그런 노력마저 거의 보이지 않지요. 영화계가 그만큼 성숙되어 있다는 반증일 겝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8-07-16
08:54:05
병장 김준호
명교/ 영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이론의 유효함과 한계를 몸소 경험하고 계시겠지요. 예전에 독립영화제 자원활동을 했던 친분으로 독립영화계 분들을 가끔 만나곤 하는데, 그분들을 보며 많은 감동과 안타까움을 느낀답니다. 2008-07-16
09:17:22
병장 박준연
예술작품이 새로운 예술의 매체인 사진의 무한한 복제 가능성으로 인해 본래의 마술적인 기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벗어나 좀더 현대사회의 특성과 개념에 알맞은 정치적인 성격을 획득한다는 점은 미술이 이미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닌 다수의 대중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벤야민이 사진이라는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예술양식을 빌려 복제성에 대해 설명하지만, 사진 매체에 대한 그의 설명은 현대 미디어 아트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즉 미디어 아트에도 '다수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예술'이라는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보드리야르는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의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디지털의 특성을 시뮬레이션으로 규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원본 없는 실제'라 정의하지요. 디지털 기술의 생산물은 원본과 복제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원본이 예전의 전통미술 양식에서 가지고 있던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지 않을테고 그러므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아트에서 예술의 대사회적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예술작품의 존재론적인 정당성이 원본의 존재에서가 아니라 작품이 관객들에게 주는 영향력과 관객들의 반응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미디어 아트가 관객에게 주는 정서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미디어 아트의 역할이 강조되고, 이런 현상은 예술의 진정한 대중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2008-07-16
10:2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