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베스트선정-독서후기] 그 술집의 사랑  
상병 조현식   2008-07-04 14:56:49, 조회: 537, 추천:2 

처음부터 그녀의 글을 주목했던 것은 아니다. 

자칭 얕은 독자인 나는 작년의 이상문학상에서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다. 『약콩이 끓는동안』. 문학을 배우다 보면 종종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많은 글을 접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이 제목은 매우 신선한 축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흔히 제목만 보고, 표지만 보고 책장에서 책을 집어 드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무대가 농촌이나 어디 한적한 시골풍경을 배경으로 허허히 약콩이 끓는 동안 느적느적 시간을 굼뜨게 쓰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거나, 예전 농자천하지대본의 생각이 살아 있던 시적의 이야기이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약콩은 내 등 뒤, 저 아파트에서 끓고 있었고 예전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즐겨보는 추리소설들과는 비견될만한 섬뜩함마저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 현대로 오며 시작된 지독한 냄새 풍기며 썩어가는 소통의 단절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아파트의 상관관계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프고 늙어 남은 것이라고는 그 겔겔거리는 탁한 목소리와 아집밖에 남지 않은 불쌍한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는 서영을 좋다고 끝없이 구애하는 두 아들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목에서는, 이제 웃음도 다 사라져 버리고 이 인간 화상들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또 나는 어떻게 사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계속 덮어씌워 나가면서 한 없이 어두워지는 소설을 재기발랄한 위트로 막아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러한 면모는 오히려 가리지 않는 것보다 못한 씁쓸한 위트로, 해학과 풍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웃음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인해 약콩이 끓는 동안은 내가 대상 수상작보다도 더 좋은 감정을 가지고 몇 번 씩 되새김질하며 읽고 또 읽은 작품이 되었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실 나는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의 바닥을 저인망 어선으로 훑고 또 훑어야 피래미만한 작가 이름 석자가 매가리 없이 비실 딸려 나오는 식이다. 때문에 나는 나의 선배와 후배들과의 문학 논쟁에서 한 번도 좋은 쪽으로 토의를 이끌어 나간 적이 없다. 그들의 완벽한 이름외우기는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작품은 나의 기억 속에 있어도 도통 작가가 생각나지 않는 평균 이하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단점이다. 비단 작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곁을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아주 친하고 거의 매일같이 붙어 다녔음에도 기억 안 나는 이름이 한보루가 넘는 것을 보면 내가 의도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 듯싶다. 이 이야기는 왜 하냐며는, 사실 매 해마다 반 의무적으로 구입하고 있는 이상문학집 작품의 최신판 -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 -을 꺼내 들었을때, 부끄럽게도 작년 그렇게 좋은 감정으로 읽었던 권여선의 이름이 아주 대문짝만하게,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도저히 회피할 수 없게 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작년의 그녀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믿다를 다 읽고서야, 뒤늦게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나가며 글을 썼던 새로운 작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먼지가 쌓일락 말락한 내 책장을 뒤져서야, 비로소 그 때서야 나는 그녀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하나만 더 해보자면 대상 수상작으로 찍혀 비스듬한 각도로 먼 곳을 쳐다보는 그녀의 사진과, 작년의 한강 둔치에서 찍은 듯해 보이는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표정의 그녀의 사진은 동일인물이라고 판정하기에는 꽤나 애매모호한 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그녀의 사진만큼이나, 사랑을 믿다는 애매모호하다. 간결한 제목에 비해서, 작품에 나오는 그의 태도는 믿는다기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만든 ‘쏘맥’의 정체성만큼이나 애매모호하다. 소주도 아니고 맥주도 아니고, 양주가 섞이지 않았으니 폭탄주라고 말하기도 계면쩍은 면이 있는 쏘맥은 작품 속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도 닮았다. 남자의 말을 들어보면 둘은 분명 사귄 적이 있지만, 사귀고 있을 때만 분출되는 호르몬 특유의 뜨거움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징어제육볶음을 느끼는 혀의 돌기가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고, 쏘맥의 알싸함을 느끼자마자 한잔 들이키는 냉수의 얼얼한 느낌이 그들의 이별을 대신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시린 진리이지만, 각오하고 받아들이는 시리움이기에 슬픔을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된다. 그 뜨거운 술이 내 몸을 달구고 녹여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수가 있냐’ 고 친구가 물을 때, 말없이 부딪히는 유리잔의 청명한 챙 소리에서, 숨을 쉬고 사랑을 잊고 스며들 듯 사랑을 믿어감을 느낀다.

소설의 독특함은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와 비슷하게, 우리가 일상 속의 사물과 장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소설처럼 완벽한 판타지의 세상 속도 아니고, 흔히 사랑을 나타내기 좋은 도발적인 소재와 장소는 더더욱 아니다. 남자는 시종일관 단골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을 따름이며, 거기서 감정의 선은 수위를 넘어서지 않고 물결 아래에서 잔잔하게 이어진다. 사랑한다고 크게 소리치지 않는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주욱 옛날의 일을 회상하기만 하던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의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는 순간. 이 때 사랑은 식어버린 빛을 내 뿜고 이야기는 종착역에 멈춰 선다. 이러한 과정을 풀어나가는 것은 역시 전작에서도 보였던 작가의 소소한 사물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이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되풀이해서 말한다. 단골 술집의 이유가 되는 스끼다시의 푸짐함과 - 비싼 안주여서 반반씩 시켜 5천원을 깎고서야 맛 볼 수 있는 그 독특한 맛이 사랑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닌 여자.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 그런 여자와 사랑을 하지만, 사랑 부분은 통째로 떼어먹고 기껏해야 남은 시시한 기억의 편린이 남자의 사랑을 보잘것없이 만들어버린다. 그래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쿨하지도, So hot 하지도 않은 사랑이 요즘의 트렌드는 아니지만, 아지랑이 흔들리듯 흐릿한 사랑의 감정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 무대에서 내려와 텅 빈 그 시간의 추억들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이 시릿함으로 다가올 때. 그 미묘한 온도의 가운데에서 우리는 사랑을 이해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뒤늦게 2008년의 연례행사를 읽고.  2008.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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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4:56 

 

병장 이태형 
  아, 대체 왜 이럴까. 

세 번째 문단인 "애매모호한 그녀의 사진만큼이나, 사랑을 믿다는~" 여기서부터 무려 3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음에도 도저히 머릿속으로 내용이 들어오지를 않네요. 
집중력의 한계에 다다른건가. 
그 전까지는 쏙쏙 잘 들어왔는데, 캬오... 

잘 읽었다는 말은 두 번째 문단까지만 하도록 할게요.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이따가 와서 다시 봐야겠네요.(웃음) 

매가리는 속어로군요. 
맥+아리 같은데 아리라는 접미사(?)는 존재하지 않고, 맥은 존재하고, 음, 뭘까. 2008-07-04
16:09:09
  

 

병장 이동석 
  권여선이라, 꼭 기억해둬야겠어요. 2008-07-04
17:33:42
 

 

병장 주해성 
  가지로. 2008-07-07
10:56:18
  

 

병장 이태형 
  다시 읽었습니다. 
<가지로> 외칩니다. 2008-08-14
20:5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