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베스트선정-내글내생각] 오늘 장례식의 후식은 뭐죠?  
병장 전승원  [Homepage]  2008-07-28 09:42:05, 조회: 458, 추천:0 

  5일만에 다시 출근을 하려니 꽤 적응이 안되는 오늘 아침이였다. TV에서는 오늘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웰-빙(Well-being)에 이은 웰-다잉까지 생각하는 시대라고 한다. 웰-다잉을 하는 사람들은 관에 들어가보는 것도 체험하고, 자신이 죽은 뒤와 죽는 과정에 대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공을 들인하고 한다. 예전부터 관에 들어가 자신의 임종을 겪어본다는 뉴스는 들어봤어도, 오늘만큼이나 낮설게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넘어서, 잘 죽는 법까지 배우고 익혀둬야 하는 것이다.

  죽음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식도, 기억도 없다. 당사자의 추억에 남을 수가 없고, 남들의 추억에 남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의 죽음도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어, 다른 사람에 기억에 남겨질 것인가? 과거에도 자신의 죽음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들어낸 사례가 있다. ( 임종보다는 자살이라고 봐야하지만 ) 한 남자는 자신의 파티에 많은 사람들을 초청한 뒤,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사자우리에 걸어들어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식의 행동은 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웰-다잉에 어울린다고 볼 수는 없다. 그걸 보고 밤잠을 설치게 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웰-다잉은 하나의 네크로라트리(necrolatry : 사자숭배)에 가깝다. 과거의 사자숭배는 대부분 우리의 조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였지만, 지금은 개인주의적 사고의 확장으로 인해서인지- 죽은 자가 바로 자신이며,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한 숭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가 사별(死別)에 의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공포 역시 죽음으로 인한 모든 것의 [ 상실 ] 이 아닐까 싶다. 남과의 사별과는 다른 것이다. 단순히 아는 이가 하나 주는 것이 아닌, 모든 이와의 단절을 의미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물에 대한 권한 박탈과도 같다.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소속에 대한 강제적인 연행이다. 자연에 의한 이런 갑작스런 구조조정을 공포 이외의 감정으로 맞이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거대한 공포를 미리미리 준비하기 위해 웰-다잉이란 용어도 만들어내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공포에 서서히 적응을 하며, 그것을 이꺼이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좀 더 색다른 시각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점에서 웰-다잉 이란 운동이 매우 훌륭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죽음을 준비한다 하여 모두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에 대해서도 문제이다. 이런 웰-다잉 분위기에 아무렇게나 휩쓸려 염세주의적 사고로 변질될 수 도 있다. 삶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역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없이는 웰-다잉 운동에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웰-다잉이라고 하여, 사실 모든 이가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음이란건 모두에게나 단 한번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웰-빙 식단으로 먹지만, 내일은 평소에 먹던 식단으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장례식을 평범하게 보내고, 다음의 장례식을 웰-다잉 형태로 치룬다고 할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이번 웰-다잉에 대한 보도로 인해서 많은 이가 그 것에 대해 참석할 지,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현재의 장례식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웰-다잉을 생각한다 해서 지금 당장 그런 모습이 들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40~50년 뒤라면 우리가 지금 준비한 웰-다잉을 계획대로 맞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 특이한 장례식에 참석해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 오늘 장례식의 후식은 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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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20:12:44 

 

병장 김준호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미리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어쩌면 죽음의 순간을 상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소유한 것과 경험한 것들의 가치를 고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막상 죽을 때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오면, 가치를 판단하기보단 소유의 시간을 연장하는 데에 급급할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구요. 2008-07-28
10:38:37
  

 

병장 전승원 
  지금도 몇몇 사람을 보면, 벌써부터 죽음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보이곤 합니다. 과연 그들이 정말 그런건지, 그런 척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ㅡ 뭐, 벌써부터 그 죽음이란게 점점 가벼워 지고 있음을 느낌니다. 언젠가는 장례식장에서 가볍게 웃으며 나서는 일도 있겠죠ㅡ 2008-07-28
11:14:33
  

 

상병 허학종 
  웰-다잉이라.. 잘 죽는 법까지 생각하게 된 마당에 문득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평소 생각하는 제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게 되네요. 어릴 적 "악몽과 귀신"을 워낙 두려워하던 지라 밤에는 잠자길 꺼려했고(어떻게 해서든 안자려고 레고 조립하던..) 자더라도 불을 꼭 켜놓고 침대에 누웠더랬죠. 그러다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두려움에 떠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결국엔 '죽음'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그 이유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악몽이든 귀신이든 종국엔 죽음에의 두려움 때문에 내가 움츠러들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에게는 어떠한 공포나 두려움이 오지 않겠구나..하고 생각하게되었죠.(헛소리 같지만, 초등학교 1학년때..)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언제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소 내 삶에는 순간순간 충실하되, 죽음으로 인해 당장 지금 이 모든 것들을 잃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 2008-07-28
11:14:53
  

 

병장 전승원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언제든 죽어도 좋다"는 [이성]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궁금하군요. 

[이성]이 이긴다면, 본능을 이성으로 통재한 진정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보여준 본보기로서 죽으실테고, 살아남으신다면 본능에 의해 이성의 패배해 버린 사람이 아닌, 가족들의 축하 속에서 계속 남은 삶을 누리실거니ㅡ 어쨌든 패배는 하지 않는군요. 

삶과 죽음, 모두에 대한 필승 전략이시군요ㅡ 2008-07-28
11:20:36
  

 

병장 이태형 
  신조어인가,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건가. 
웰다잉이라니, 웰다잉이라니!! 
전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군요,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확실히 소유에 대한 박탈...이라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저도 죽음 그 자체보다는 소유에 더 가치를 둘 것 같습니다. 2008-07-28
11:34:53
  

 

상병 양순호 
  급작스럽게 되지 않는 한..아직 웰-다잉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아니잖아요? 2008-07-28
11:40:55
  

 

병장 전승원 
  저 역시 웰다잉이니 뭐니 해서, 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없습니다. 
지금의 삶으로도 충분히 메모리가 딸립니다. 2008-07-28
12:14:54
  

 

병장 고성구 
  금일자 조선일보에도 웰-다잉을 다룬 기사가 나왔더군요.(웃음) 

평소같았으면 "뭐야 이게~"하고 대충 제목만 보고 넘어갔을 터지만 

이 글을 먼저 본 덕분에 그 기사도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하하 2008-07-28
13:03:10
  

 

병장 전승원 
  아ㅡ 그렇습니까? 저희 사무실은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데ㅡ 어떻게 구해봐야겠군요. 2008-07-28
13:23:11
  

 

일병 김수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8-07-28
21:55:59
  

 

상병 임광훈 
  지금 웰빙도 잘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월다잉이라.... 많이 생각해 봐야겠군요,., 2008-07-30
13:38:06
  

 

병장 이동석 
  고어 버빈스키였나, 니콜라스 케이지 나온 기상캐스터의 이야기를 다룬 <웨더맨>이라는 영화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유명 작가였던 아버지가 불치병을 선고 받고 나서 지인들을 불러모아 각기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식사를 한 다음 헤어지는 장례식이었죠. 자신의 장례식을 자기가 참석한다. 그 기묘함이 의외로 의미 있게 느껴지더군요. 2008-08-10
16:51:28
 

 

일병 이지환 
  웰 다잉.. 그런것 까지 있는건 정말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군요... 
사람이라는게 가진것 없이 와서 가진것 없이 가는 허무한 인생이긴한데.. 
그 과정이나마 중요시 여겨야 후회라는게 없지 않겟습니까.(씁슬) 
그러므로 과정을 잘 견뎌서 전 오랫동안 살아남고 싶습니다. 2008-09-23
09:0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