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베스트선정-내글내생각] 시뮬라크르 - '짝퉁'이 세상을 지배한다.  
병장 박준연   2008-07-16 10:57:29, 조회: 410, 추천:1 

그럴싸한 '짝퉁'을 만드는 데에는 진품만큼이나 돈과 정성이 든다. 심지어 어떤 짝퉁은 오리지널보다 품질이 더 좋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졌어도 짝퉁은 짝퉁일 뿐이다. 복제품은 결코 진품의 가치를 넘지 못한다. '진짜는 좋고 가짜는 나쁘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가늠하는 기본 틀이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당연한 이 짧은 명제를 뒤흔든다. 어느덧 '가짜가 좋고 진짜는 나쁜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사진 잘 나왔다"는 칭찬은 생긴 그대로 정확하게 찍혔다는 말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사진이 원래 얼굴보다 더 근사하게 나왔을 때 "잘 나왔다"고 한다. 사진술은 점점 사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화장발', '조명발', '포샵' 등 현란한 기술이 예사로 동원된다. 심지어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서라면 현실 자체를 왜곡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부케를 몇 번씩 던지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미신대로라면 신부는 앞으로 결혼과 이혼을 수없이 반복해야 할 텐데도 말이다! 시상식, 수여식 등에서 사진을 찍을 시간을 주기 위해 상 주는 이와 받는 사람이 수초간 어색한 미소를 띠고 '정지 화면'을 연출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제대로 된 가짜를 얻기 위해서 진짜 사건이 기꺼이 희생돼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는 연예인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평가 기준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화면에 보이는가다. 연예계에서는 머리 작고 비쩍 마른 몸매의 소유자가 균형 잡힌 건강미인보다 더 환영받는다. '가짜가 멋있어야 진짜도 대접받는다.' 영상 매체에서 이 말은 이미 진리가 되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지금의 가짜는 단순히 진짜의 모방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진짜 없이 원래부터 가짜였던 사건들이 넘쳐나고 있다. 매일같이 듣는 음악을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연주자들의 공연을 직접 녹음하여 음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음반들 대부분에는, 가수만 있을 뿐 연주자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음향은 실제 현악기가 아니라 기계로 합성한 소리다. 이제 녹음실에는 더 이상 연주자가 없다. 가수는 가짜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유일하게 '진짜'인 그의 목소리조차도 조작에 조작을 거듭한 끝에 '아름다운 가짜'로 거듭난다. 오늘날 훌륭한 음반이란 완벽하게 가짜를 실현해낸 작품이 되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디자인 작업실에는 붓도 캠퍼스도 없다. 붓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해서 붓질의 효과를 내고 페인트 형상의 단추를 이용해 색을 칠한다. 가짜 도구로 가짜를 만들어낼 뿐 원본은 어디에도 없다. 원본 없는 가짜, 시뮬라크르는 이제 더 이상 공허한 철학 용어만이 아닌 세상을 지배하는 주요 코드가 되었다. 

원본이 사라진 가짜들의 세상에서는 '원작자'란 개념도 흐려진다. 예전에 책의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독자는 읽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도 쓰고 작가도 읽는다. 인터넷 신문을 보라. 기사마다 '리플'이 달릴 뿐더러, 독자의 의견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사가 되기도 한다. 이때 독자는 과연 '독자'인가 '작가'인가? 그렇게 모아진 의견을 기사로 쓰는 기자는 '독자'인가 '작가'인가? 더구나 웹 공간을 떠도는 수많은 패러디들에서 원작자를 따지기란 무의미하다. 누군가의 작업을 다른 사람이 비틀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이 또다시 변형한다. 원래 무엇이었던 간에 결과물은 전혀 다르고 새롭다. 과연 누가 원작자이며 누구에게 저작권이 있을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저작권 논쟁은 현대 문명의 본질에까지 맞닿아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원작과 복제품의 품질 차이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저작권 논쟁의 근원은 오히려 원본과 복제품의 관계에 있다. 유명 브랜드를 그대로 복제한 '짝퉁'에 대해서라면 저작권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창작의 경우에 '원작'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흔히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고유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예컨대 누군가가 임요환의 드랍쉽 컨트럴 기술을 분석한 글을 썼다면, 여기서 진정한 창조자는 누구일까?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만들어진 음악이 있다면, 기계의 색다른 소리 하나하나를 만든 사람도 음악의 창작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원본을 가리고 원조를 따지기 시작하면 저작권 논쟁은 끝이 없다.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돈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점에 있다. 독특한 발상 및 남다른 노력의 대가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누구도 어려운 창작의 작업에 뛰어들 리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작권은 창조의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사진 한 장을 쓰는 데도 돈을 지불해야 하고 글 몇 페이지, 노래 가사 몇 줄을 인용하기 위해 일일이 원작자를 찾아가 동의를 구하고 대가를 치르는 지난한 과정을 겪다 보면, 창작의 노력보다 행정 작업의 노력이 더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봉착한다. 때로는 '핵심 내용'에 대한 승낙을 얻지 못해 김빠진 사이다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더구나 돈을 벌기 위한 창작이란 대중의 입맛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과정은 욕망의 복제일 뿐 창조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문명을 이끌어왔던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창조를 이끌어냈던 돈의 힘은 이제 다시금 상상력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원본과 복제품의 위계가 분명한 시절에는 오리지널이 부와 명예를 독점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뮬라크르의 시대다. 복제품이 원본보다 못할 것이 없고 심지어 원본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시대, 우리에게는 문화 창조를 이끌어갈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는 손에 쥐어진 돌멩이가 왕자와 공주일 수도 있고 싸우는 전사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상하고 꿈을 키운다. 이처럼 인간의 창조력은 원천적으로 돈이 아닌 놀이하는 정신에서 나온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 호모 루덴스다. 진짜에 대한 집념은 인간 본성인 창조의 힘을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끌어내린다. 창조를 다시 놀이의 세계로 되돌려주자. 이미 우리는 대가 없이도 끝없이 복제와 개작을 반복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네티즌들의 무한한 창조력 앞에서 자본을 대체할 새로운 문명의 서막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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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8-12-08
10:38:12 

 

상병 최광준 
  뜬금없지만.. 
진퉁과 짭퉁의 차이는 창의성의 차이겠죠? 2008-07-16
11:18:29
  

 

병장 어영조 
  자본만이 창조력의 원동력이 될거라는 미디어의 의견에 그 동안 속았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창조력은 동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동인이 될 수 있겠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담// 저번주 제 동기 임요환이 나와서 에이스 결정전을 말아먹었습니다. 
박대만이 나왔어야 했는데.... 2008-07-16
11:30:48
  

 

병장 정영목 
  사실 먹고 살 만큼의 돈만 있으면 창작만큼 즐거운 것도 없죠. 현재의 보상 시스템은 그와 반대로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이라서 창작 활동을 하려면 무슨 구국의 결단 같은 게 필요하지만요. 

제 보기엔 일자리 나누기만 제대로 실현되어도 아주 풍요로운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을 거 같아요. 2008-07-16
12:16:25
  

 

일병 김세현 
  진짜없이 원래부터 가짜라는 말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데요.....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 늘어난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단지 어디서부터 진짜냐 가짜냐가 이야기거리가 되었고 되겠네요 히히 그 수단과 접근성의 용이함덕택에 창작이 발현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음에 우리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 저작권과 관련된 논의는 어떻게든 기준을 마련해야겠지만..그 애매모호함만큼이나 어려운 사안인 듯 합니다 2008-07-16
13:06:00
  

 

병장 이동석 
  요새 뮤비볼때마다 드러내놓고 베껴대서 여간 난감합니다. 
이를테면 블루문인가 하는 프로젝트 모여라 짜투리 그룹의 뮤비를 보면 
왕가위 중경삼림을 그냥 옮겨놓았더군요. 
실연후 운동장 뛰는 남자는 이젠 클리셰죠. 
뮤비만 나오면 몇가지 방법으로 죽어대는 주인공들마냥. 

심지어는 중경삼림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기시감을 느낄정도로 복제는 만연하고 복제는 또 복제되고. 중경삼림은 사라지고 비슷비슷한 뮤비들만 그득합니다.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건 어디서 본듯한걸 베끼건 보상에 별 차이가 없다면 
보상하나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창조는 사멸할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겠죠. 그런데 보상받거나 굶거나하는 상황에선 창작노동이란 집에 돈이 많거나 결혼을 잘했거나 안 먹어도 살수있는 사이보그가 아니라면 정말이지 번지점프대에 줄없이 선것처럼 무서운일일수 밖에 없습니다. 사이보그라도 괜찮거나 일자리 얻기가 똥이라도 먹을 각오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 아니거나 하는수밖에 없겠지요. 


(써놓고 올리려고 다시보니 위의 댓글들과 중뵉이로군요. 흑) 2008-07-16
13:19:32
 

 

일병 이동열 
  놀이하는 정신으로부터 비롯하기에 경쟁사회가 심화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저희가 창조력을 발한다는게 참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이(땀) 
틀에 박혀 살아가기도 급급하지요... 사이버공간이라는 대안적 공간이 있긴하지만 

쓰고나니 무슨말이지(근무자 취침후 잠이 덜깬것같습니다, 웃음) 2008-07-16
13:36:24
  

 

병장 이태형 
  이런걸 두고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요지경 세상이 오고야 말았군요. 
짝퉁이 세상을 지배한다니(웃음) 

저작권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생각조차 섣불리 할 수 없어.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있나, 쯧쯧. 

잘 봤습니다, 역시 준연님. 2008-07-16
14:38:29
  

 

상병 박찬걸 
  글 정말 잘봤어요. 
아 뭐랄까 그러고 보면 요즘은 순수혈통이라고나 할까 
그런게 정말 많이 사라졌죠. 

뭐 그게 악용되면 민족주의나 전체주의로 커져서 나치즘, 파시즘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너무 적어져서 이게 진짜야 가짜야 이런 구분 자체를 하기가 힘들정도니(에휴) 

거기다 저작권 같은ㅡ이른바 Copyrightㅡ것들이 너무 설쳐대서 
요즘은 뭐 하나 하기가 힘들더군요. 그렇다고 Copyleft가 좋은건 아니지만. 2008-07-16
15: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