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일상이야기]헤퍼져야 겠다.  
일병 심현주   2009-06-16 112536, 조회 261, 추천3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난 영재반이었다. 어차피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 시골학교에서 그냥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지원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어쨌든 그 덕분에 방학 동안에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걸리는 학교로 수업을 받으러 다녔던 적이 있다. 버스는 30~40분마다 하나씩 다녔는데,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수업을 마치고 나서 정류장에 갈쯤 버스가 꼭 지나가서 30~40분을 꼬박 기다렸다. 그런데 유난히도 햇살이 뜨겁게 비추던 어느 날에 버스가 평소보다 더 늦게 왔다. 같이 수업을 들으러 온 친구들이 두어 명 있긴 했지만 더워서 말하기도 귀찮을 지경이라 다 같이 멍하니 서서 버스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 때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도로로 지나는 차가 있을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의 돌발행동에 친구들은 깔깔대며 무슨 짓이냐며 웃었지만 그 때의 난 이상하게도 진지했었다. 약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약 50분에서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웃으며 인사를 했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1. 200~300대 정도의 차에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다.

2. 도로에 딱 붙어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으므로 인사하는 것을 못 볼 확률은 아주 적다.

3. 인사를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약 4가지로 나뉜다.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는 경우를 ‘갑’이라고 한다.
웃지는 않고 인사를 받아주는 경우를 ‘을’이라고 한다.
인사를 하지는 않지만 눈길을 주는 경우를 ‘병’이라고 한다.
아예 무시하는 경우를 ‘정’이라고 한다.

4. ‘갑’, ‘을’, ‘병’, ‘정’ 모두 나이와 성별에 영향을 받는다.
1) 성향을 갑-을-병-정 순으로 볼 때
  (1) ‘갑’의 평균연령이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는 ‘을’, ‘병’, ‘정’ 이었다.
  (2) ‘갑’, ‘을’의 경우는 ‘여성’일 경우가 많았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왜 저런 현상이 생기느냐 물었다. 답은 대체적으로 이러했다.
- 중년인 경우 나름대로 여유가 있는 편이며, 여성의 경우는 아이에게 약하다. 그러므로 중년의 여성 - 중년의 남성 - 20~30대 초반 여성- 20~30대 초반 남성 순으로 인사하는 비율이 높다. 
답을 들은 나는 조금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여유가 없어서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다니.
그 때 ‘나는 커서 잘 웃고, 인사도 잘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난 웃음에 인색하고 인사가 헤프지 않다.
웃음과 인사에 헤퍼져야겠다.
당장 오늘부터 웃으며 인사해야지.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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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1218 

 

상병 이재원 
  어렸을때부터 저런 실험을 하셧다니! 놀라운데요. 저는 마냥 뛰댕겼는데 말이죠. 2009-06-16
113756
  

 

병장 홍도형 
  뭐랄까...(...) 진짜로 있었어, 천재라는 생명체...[털썩, 하고 쓰러지는 이모티콘과 의성어] 2009-06-16
113904
  

 

일병 심현주 
  이재원님  저도 처음부터 계획하에 한 건 아니었어요. 단지 심심함에 지쳐 계속 하다보니 그냥 결론이 저렇게 난거랍니다. 

홍도형님  천재라고 하기엔 건망증도 너무 심하고 회전수도 너무 낮답니다. 천재면 얼마나 좋겠어요. (울음) 2009-06-16
114320
  

 

일병 박준우 
  재미있는 실험이네요. 그런데 성별보다 나이가 더 가중치가 높은가 보군요. 

중년 남성이 20~30대 여성보다 인사하는 비율이 높군요. 2009-06-16
114715
  

 

상병 양동훈 
  아... 왠지 순수해지는 이 느낌..... 2009-06-16
132447
  

 

상병 오효섭 
  오호 괜찬은데요 
왠지 뭔가 저도 실험 의식이 불타오를려고 하는데요 흐음,. 2009-06-16
133505
  

 

일병 김현우 
  뭐랄까 어릴때부터 그런 행동력을 가지고 계시다니, 굉장하다고밖에 할 수 없군요. 
굉장해요! 
음, 멋있다. 멋있으세요! 
저도 헤퍼질게요! 2009-06-16
151817
  

 

병장 김동혁 
  시골학교 영재반 한명 추가요 .. 
초등학생 치고는 대단한 사회적 실험을 감행하신듯.. 
제가 초등학교때 한 실험은 주로 과학 시험인 듯 하네요.. 
하나 생각 나는 것은.. 저희집이 19층이었는데.. 
자유낙하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실험이었습니다 2009-06-16
185714
  

 

상병 이석재 
  ...사회과학방법론때 써먹어야겠군요. 흐흐. 2009-06-17
080600
  

 

상병 이석재 
  아, 그리고 200~300대정도의 차에 실험한건 전혀 신뢰도가 떨어지는 일이 아니에요.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그 표집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문조사를 하는데 러시아워 시간의 지하철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그 경우에는 당연히 20~40대의 직장인 남-여성만 설문조사를 실시하게 될거고, 그럼 그들의 의견만 반영하게 될겁니다. 또 오후의 공원에서 설문조사를 하게 되면 그 대로 직장인보다는 노인분들만 설문조사에 참여하게 될 테지요. 그들을 집중적으로 하는 설문조사가 아니고 일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의 경우 표집을 하는 장소또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009-06-17
080850
  

 

일병 심현주 
  박준우님  아무래도 안정된 생활이 여유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오효섭님  지금 저걸 하라고 하면 왠지 못할 것 같아요. 엉엉 
김현우님  확실히 웃음과 인사엔 헤퍼지는게 좋을것 같아요. 특히 윗사람에게는 더욱더. 
김동혁님  19층 자유낙하실험이면 위험하진 않나요 지나가던 행인 1 이 맞기라도 하는 날엔 병원비가 무서울것 같습니다. 
이석재님  신뢰도에 대한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 헤헷 2009-06-17
084945
  

 

상병 김태완 
  이것 참 독특한 발상인데요. 인사로써 나이와 연령대비 여유로움의 정도에 대해서 실험을 하셨다니. 역시 천재들은 생각도 기발하단 말인가. 2009-06-18
094803
  

 

상병 이재익 
  동혁19층이라는 곳이 어렸을 때 존재했었다는 것이 신기할 뿐...거기다 시골학교라니... 
그 시골은 어디입니까.... 2009-06-18
095954
  

 

상병 김지호 
  ....무섭습니다. 한편으론 재밌었구요. 2009-06-21
124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