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독서후기] 지리산과 허망한 정열들.
상병 김예찬 2009-06-13 172809, 조회 133, 추천0
※ 이병주 대하실록소설 지리산에 관한 독서후기입니다.
이병주의 지리산은 제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독 대하 역사 소설을 선호했던 꼬마 김예찬은 어느 여름 방학을 맞아 토지, 아리랑, 조선총독부 등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읽어나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바로 이병주의 지리산이었죠. 아무런 고민 없이 김진명 소설을 즐겨 읽던 저는 그 시점을 계기로 책은 고민하면서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겨우 초등학생 꼬마가 작품에 녹아있는 역사의 단편들이나 이념적 고민에 대해 얼마나 인식할 수 있었겠냐만은, 적어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낭만적 허무주의가 저에게 어떤 고민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지리산이 성장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에는 크게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규와 박태영. 각각 제도적 지식인과 비판적(실천적) 지식인의 성격을 가진 두 인물은 친구이면서도 서로 다른 인생의 궤적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규는 가세가 기운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중학 시절 부터 수재로 이름 높았고, 일본 유학을 통하여 경도삼고, 동경제대를 거쳐 후에 프랑스 유학을 떠나게 되는 인물이죠. 박태영은 빈농의 자식으로, 역시 수재로 이름 높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고학을 통해 나름의 지식을 쌓아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중학 시절부터 친구이며, 일제 치하에서 학병 거부를 위해 지리산 게릴라(보광당)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모두 하영근이라는 인물의 분신 격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하영근은 과연 누구인가 박태영과 이규에게 중학 시절 부터 책을 빌려주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재물을 통해 둘을 도와주기도 하는 스승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지역에서 제일가는 만석군이며, 동경외국어 학교를 나오고 수만 권의 원서를 갖춘 지식인이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딸을 두고 있는 부르주아 지식인입니다. 그는 소작인을 착취하는 반동적인 인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막심 고리키의 전집을 추천해주고, 학병 거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해방적 측면을 지닌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해 말만 앞서고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 나약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허무주의며, 그는 병약함을 내세워 구체적이고 실천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측면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영근이라는 인물 자체가 '근대성'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지요. 저는 어느 글에서 근대성은 '미완성을 향한 자기파괴적 노력'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발자크와 스탕달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그리고 지리산의 하영근에게도 매우 어울리는 '허망한 정열'이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영근은 제도적 장치로서 근대성(자본, 근대 교육)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서 일탈(해방 사상에 대한 관심, 행동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영근의 노력은 박태영과 이규라는 두 인물에게, 특히 박태영이라는 인물에게 승계됩니다.
박태영은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지만, 당원이 되는 것은 거부하는 인물이지요. 그는 학병 거부를 위하여 지리산에 들어가고, 보광당 활동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관한 두 명의 스승을 만납니다.(여기서 공산주의는 反제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권창혁과 이현상이죠.
권창혁은 하영근과 친구 사이로, 하영근과 같은 학교를 나오고 만철 조사부에 재직하면서 사상 운동에도 관여했던 인물입니다. 사상운동 연루로 인하여 6년 간 투옥되기도 했던 실천가지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언론인으로 활동합니다. 그는 보광당에 있으면서 박태영, 이규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교육하는 한편(이규는 권창혁을 통하여 독일어를 배우는데, 무려 자본론 독일어 원서로 독어를 공부합니다!! 후덜덜), 부하린의 억울한 죽음을 예로 들며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 역시 표출하곤 합니다. 요즘의 잣대를 권창혁을에게 들이댄다면, 그는 자유주의적 ㅈ파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는 '당'이라는 것은 억압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공상주의는 참으로 이상적인 사상이지만, 그 겻이 역사적 추진력(조직)으로 나타날 경우 오히려 인간을 억압한다고 말합니다. 하영근 보다는 더 비판적 지식인에 가깝지만, 권창혁 역시 결과적으로 허무주의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박태영은 이후 빨치산 투쟁에 가담하지만 결국에는 당에 가담하지 않는데, 이러한 권창혁의 가르침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이야기할 때 사상당을 나눠서 비판하는 이러한 시각 자체가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단순한 '사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요인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근대성을 논할 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성'이라는 것을 자유와 평등, 합리를 향한 발전이라고 규정하고 비판계승하자는 것이 안일한 이유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흔히 근대성을 말할 때 지나친 이성의 지향으로 인하여 도구적 이성만을 극대화했던 것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재앙이나 전쟁을 낳은 실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가 가져다준 결실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하고 근대성의 완성을 추구해나가야한다, 라고 절충적인 답안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결론이 위험한 것은 '근대성' 자체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근대라는 시대 자체가 근대성을 상징하는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대성'에서 무엇을 분리하고 무엇만을 비판하고 무엇만을 승계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인 이현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권창혁과 대립되는 인물로, 사회적 변혁을 위하여 제도적 측면(당, 조직)을 강조하곤 합니다. 그는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이며(실존 인물이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만큼 보광당 모두를 당원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상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을 구별하고, 제도적 측면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 이현상의 신념이었고, 그가 말하는 과학적 역사 인식이었죠. 엄격한 이론과 행동을 겸비한 충실한 공산당원이었던 그는, 결국 그가 믿어왔던 당에 의해 배반당하고 죽게 됩니다. 그 것은 허망한 죽음입니다.
결국, 지리산에서 묘사되는 근대성(=여기선 공산주의로 대표됩니다)의 기획은 어떤 방향을 선택하던지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결말 부에서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규(제도적 지식인) 역시 '살아남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허무함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작가는 일제시대, 한국전쟁, 전후 10여년의 세월을 거침없이 따라잡으면서, 이념과 사상을 향한 인물들의 노정을 '허망한 정열'로 규정하며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상대적으로 이념에서 자유로웠던, 지리산이라는 자연에 숨어있던 시간들)만을 추억으로 남깁니다. 이러한 작가의 입장은 분명히 비판할 구석이 많지만, 우리에게 어떤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특히 '해방'을 사유하는 열정적인 청춘들에게, 지리산은 좀 더 치열하고 근본적인 사유를 동반하지 않을 때 자신들의 몸짓이 단지 '허망한' 것으로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장으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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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2427
병장 정근영
잘 읽었습니다.
꼬마때부터 김진명을 읽은 점은 같지만, 바로 그 때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들을 읽으시다니.. 그저 허탈할 뿐입니다. 허허. 그 시점에 '책은 고민하면서 읽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다니요. 이거 불공평하잖아요(울음)
지리산이라든지, 언급하신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 소설에 대해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잠깐 나오는 스탕달의 소설 중에 '적과 흑'이라는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라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사실 내용이 잘 생각나지는 않습니다만. 흑
말씀드렸다시피, 스탕달이라 하면'적과 흑'이라는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쥘리앵의 생애도 '허망한 정열'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듯 싶구요.
그런데 마지막에, 자신들의 몸짓이 단지 '허망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좀 더 치열하고 근본적인 사유를 동반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치열'과 '근본'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모호함때문에, 당연한 말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에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2009-06-13
225750
상병 김예찬
'치열'과 '근본'은 모호한 말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의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권창혁과 같은 인물은 당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부하린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계기를 더해 '당'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사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의 '비판'은 그가 결국 그저 역사의 관조자 입장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무기력해집니다. 공산주의를 단순히 이상주의로 가정하는 순간, 그의 몸짓은 (이전의 영웅적인 투쟁 경력에도 불구하고) 허망한 것으로 남게 된 것이죠.
이현상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는 과학적 이론가이면서도 당에 대한 맹신과 놀라운 실천력으로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몸짓'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목하는 '정세'는 결국에는 그가 말하는 사상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현상은 사상과 현실 사이를 주목하기 보다는, 그저 현실에 따라 자신의 사상적 노선을 수정하기에 급급하죠. 그리고 그가 그토록 중요시했던 '정세'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들이 '해방'을 원했다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탐구를 선행했어야합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 이미 급속도로 진행된 자본의 착취, 전근대적 사회 구조, 제도화 될 수록 반동적으로 변해가는 '동지'들.. 그들을 괴롭혔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신중히 생각하고, 싸워나갔어야합니다. 그러나 권창혁은 싸우지 못하고 주저 앉았고, 이현상은 생각하지 못하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둘 다 허망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죠. 200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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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지호
'지리산'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흐음... 저 역시도 근현대사 쪽에 관심이 많은 터라..
김예찬님이 쓰신 태백산맥 독서후가 한번 읽고 싶네요.
그러면서 갑자기 영화 '남부군'이 생각나는 이유는 또 뭔지 참... 2009-06-14
115955
병장 정근영
그렇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요즘 '밤은 노래한다'의 독서후기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허망한 정열'이라는 말은 왠지 밤은 노래한다의 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군요. 박길룡이라든가, 최도식, 박도만, 또는 나카지마라든지 하는.
생각할 거리를 하나 안고 갑니다. 2009-06-15
090019
상병 김소망
네... 근대성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서로 유리시켜 놓고 근대성에 대한 담론을 진행해 나갈 수는 없지요.
해체는 해체를 위한 해체가 아니라 재구성을 위한 해체여야겠지요.. 네.. 2009-06-15
095754
상병 김태완
여기서도 니힐리즘을 보게 되네요.
요즘 책마을은 니힐리즘이 깔려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나고 나면 다 허무하죠. 사상도 추억도 사랑도.
진정한 해방을 근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뛰어나다 안뛰어나다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힘의 논리로 자유주의국가가 공산주의 국가를 굴복시켜서 그런 것 아니던가요.
또한 해방 뒤엔 또 다른 속박들이 존재할 수 있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절대진리를 찾는다는 게 불가한 것 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옳다 믿었던 것들이 살아가면서 부서질 때 이죠. 해방 후 오는 권태나 거기서 갈라진 이데올로기끼리의 싸움 등 진리찾기는 끝없는 제약과 갈등을 낳습니다.
어찌보면 세상사 모든게 다 허무합니다.
허무한디. 허무한디. 세상사 다 허무한디.
죽음이 내 옆에 드러난다.
죽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산송장이다.
치열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죽은게 아닌데.
날 구제할 것 그 무엇이리요.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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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진수유
잘 읽었습니다. 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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