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내글내생각] 리모델링의 정치학  
상병 윤현상   2009-06-26 070916, 조회 226, 추천1 



우리 학교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얼마 전 설탕을 나갔다가 학교에 들릴 일이 있었다. 궁에 온지 일년 반 만에 학교는 무척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인문대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학관은 증축에 리모델링 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변화는 어느 학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학교에 다녔던 삼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건물 신축은 물론이고, 중앙도서관 통로 리모델링에, 시멘트로 그냥 대충 발라져 있던 길들이 ‘걷고 싶은 거리’라는 이름으로 고급스런 나무계단이 설치되고, 예쁜 블록이 깔리고, 밤에는 조명마저 색색깔로 빛나는 길로 재탄생 했었으니까, 사실 이런 변화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자극적으로 내 뇌리에 들어와 박힌 것은 사회대 앞의 한 건물에 들어갔을 때였다. 예전에는 작은 매점 하나와 빈 테이블들이 줄을 이어 있던 그 공간에는 한 브랜드 음식점이 들어 와 있었다. 스파게티를 주로 하는 그 음식점은 분명 밖에서 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메리트가 있었고, 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냥 하얀 벽에 플라스틱 의자가 몰개성적으로 놓여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아마도 원목을 이용한 인테리어와 갈색 톤으로 맞춘 의자와 테이블은 외관상으로도 훨씬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서 밥을 먹는 내내 불편함과 씁쓸함을 느꼈다. 왜 그랬느냐고 내가 4500원짜리 스파게티와 5000원짜리 라이스를 먹은 이곳은, 예전엔 450원짜리 우유와 500원짜리 빵 하나만 사도 몇 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앞에서 말한 다른 경우를 보자. 리모델링되기 전 중앙도서관 통로는 ‘통로’이기 이전에 학내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가장 뚜렷하게 들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양쪽 벽 가득히 자보가 붙어있었고 이를 통해 그곳을 지나던 학내 구성원들은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리모델링 후 그 공간은 3개의 자그마한 게시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자보도 붙일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자연스럽게 중앙도서관 통로에서 이루어지던 소통들은 리모델링 이후 양적으로도 대폭 감소하였고, 그 생명 주기도 짧아져버렸다.

흔히 낙후된 환경 개선을 위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여겨지곤 하는 리모델링은 사회 기득권층의 논리를 반영 ? 주입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리모델링이라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정도의 자본을 필요로 하고, 또한 그 리모델링에 필요한 자본을 제공하는 쪽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통한 공간의 변화는 그 공간을 실제 사용하는 사람의 요구보다, 자본을 지닌 기득권층의 요구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그래서 기존에 학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휴게실이 비싼 임대료를 내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으로 변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소통과 단합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게시 공간이 축소된 것이다.

또한 리모델링은 자본주의적 소외를 발생시킨다. 앞에서 언급했던 식당의 경우, 예전에는 1000원만 가진 학생에게도 접근을 허용했지만, 리모델링 이후에는 그 5배인 5000원을 가진 학생에게만 접근을 허용하도록 변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는 얼굴이 조금만 두꺼운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 그 공간에서 5000원짜리 음식하나 사놓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뻔뻔한 사람은 물론 없을 것이다.

좀 더 사회적인 예를 들어보자. 서울의 모 하천이 복개되면서 고가도로가 설치되어 있던 그곳은 맑은 물이 흐르고 인공습지가 조성되어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도심 속 휴양지로 변화했다. 그 일을 추진했던 모 시장이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큰 선거에서 승리했음은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지금도 그 하천의 리모델링은 성공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하천 복개 전 그 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노점상들은 리모델링을 위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강제이주 당해야 했고, 그 동대문운동장마저 리모델링을 위해 헐리면서 또다시 갈 곳을 잃게 되었다. 아마도 장담하건데, 새로 지어질 동대문운동장에도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일부 기득권층의 이익을 반영하고 또한 자본주의적 소외를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리모델링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인 편이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째서 사람들은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가 그것은 리모델링이 전과 후의 극명한 비교를 통해 개발에 대한, 현 체제에 대한 환상을 주입하고, 이를 자본주의의 내면화를 통해 보강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이 어떻게 현 체제에 대한 환상을 불러 오는가 우리가 TV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보면서 변화한 공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듯이, 기득권층은 리모델링 전과 후를 비교해 보여주면서 우리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홍보하는 것이다. 기득권층이 지금까지 이렇게나 잘 해 왔으며,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주장은 항상 덧붙여지는 덤이다. 사실 리모델링을 통한 이러한 홍보는 다른 어떤 광고보다도 효과적인데, 이는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개개인이 ‘경험적으로’ 변화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보의 대상이 되는 일반 중산층 사람들은 스스로 체험한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장에 눈을 빼앗기게 되고, 경험이 지니는 편견의 놀라울만한 고착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자본주의 이념이다. 끊임없는 자본주의 이념의 주입은 개발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와 결부되어 그 밖의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개발 - 여기서는 리모델링 - 로 인해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소외나 인간 개개인의 파편화는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이념을 이미 완전히 내면화한 사람들은, 이러한 소외나 파편화에 대해서 반발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스펙을 올리는 방법을 통해 주류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발전과 진보를 담보로 성장한다. 발전과 진보라는 약속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니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붕괴하지 않고 유지 될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더 윤택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자본주의를 내면화하고 지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기득권층은 그들이 이룩한 경제적 발전을 홍보하려고 노력하며, 그로 인해 일어나는 부조리나 일부 계층의 소외는 은폐시킨다. 리모델링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예전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우와, 좋아졌네.”라는 감탄이 아니라, 그곳이 좋아지기 위해 소외된 누군가를 한번쯤 생각하길 바라며 글을 올린다.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4 1141)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1253 

 

상병 기명균 
  그 잘난 리모델링 덕에 저는 3년의 대학생활을 
드릴소리, 공사중 푯말과 함께 해야 했습니다. 
뭐든 갈아엎으면 좋아진다는 근거없는 생각은 그 뿌리가 참 깊어 보입니다. 2009-06-26
073005
  

 

상병 정인환 
  과거 대학문화와 현재 대학문화가 다르듯이 
리모델링 또한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순응하는것이 아닐까요 
현상씨 말대로 현대 대학사회에선 스스로 스펙을 올려 주류사회를 가려고만 하지 
진정으로 소외를 위한 투쟁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은 적으니까요 
그런측면에서 볼 때 리모델링에 의한 개인주의화라기보단 
현대 학생들의 개인주의에 의한 리모델링이 될 수도 있겠지요 2009-06-26
082745
  

 

일병 이기훈 
  같은 학교 다니는 분 같네요. 

저도 참, 그 레스토랑 첫 개업하던 날에 씁쓸했었는데 - 

한 때는 만남의 장소였던 그 곳에 이제는 안 가겠구나 라고 2009-06-26
083617
  

 

병장 차종기 
  대구의 동성로도 그렇습니다. 예전엔 사람냄새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거려도, 
정겹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리모델링'으로 인해, 길 가운데 벤치가 생기고, 나무가 심겨져 있고, 커다란 무대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그곳은 길거리 장사를 하던 이들의 자리였는데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자주 가던 모자 가게 아저씨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이쁘다고 연신 감탄을 내뱉던 3000원 짜리 목걸이도. 거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밖에. 그저 걷는 길이 되어버린 거죠, 아마도 지저분 하다는 이유로 그랬던 것 같은데. 저는 지금이 훨씬 지저분한 것 같아요, 쓰레기 통이 있지만, 항상 넘치거나, 주위에 쓰레기가 흘려져 있으니까요. 왜 그사람들이 있는 것이 지저분했던 것일까요. 설탕 나가서 걷던 '동성로'가 바뀌어 버린 탓에 대구가 더 더워진 것 같아서, 싫었답니다. 2009-06-26
094823
  

 

상병 김예찬 
  거의 모든 학교에서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는 문제 같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 도시라는 것도 공간적사회적 벽 쌓기(구획 짓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09-06-26
105510
  

 

일병 심현주 
  복개된 모 천의 경우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덤으로 생긴 교통정체는 짜증났구요. 
현상님 덕분에 리모델링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헤헤 2009-06-26
111117
  

 

일병 오학준 
  1000원에 떡볶이 팔던 때가 그립던데... 2009-06-26
121516
  

 

상병 김태완 
  너무도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기득권층의 이율창출 및 자본주의 사회로 인한 소외현상. 진실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끄덕끄덕. 2009-06-26
133902
  

 

상병 진수유 
  잘 봤습니다. 2009-06-30
100747
  

 

상병 양동훈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사실 사회에서 '공공'의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대부분이 기득권층의 입맛을 담보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일 겁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이런 예들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차가워진 심장을 식혀줄 만한 '아련한 자연에의 향수'도 점점 더 쉽게 사라져가는 추세이지요. 

저는, 요즘은 산도 계곡도 싫습니다. 

사람이 밟아서 만든 구불구불한 오솔길은 사라지고, 산을 깎아서 그 속에 아스팔트로 길을 냅니다. 그나마 자갈을 깔아놓는 배려라도 있으면 조금 낫기는 하지만, 그 곳에서마저 인공의 냄새가 느껴져서 싫습니다. 

어릴 때 타던 그 산의 진짜 '자연'이 그리워지는군요. 2009-06-30
110100
  

 

상병 김태완 
  동훈  산도 계곡도 싫다면 어디서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오. 후 2009-06-30
153442
  

 

상병 윤현상 
  인환 자본주의적 마인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리모델링은, 개인주의의 심화와 어느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순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개인주의가 자본주의로의 예속을 부르고, 또 자본주의가 개인주의화를 격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찬 근대는 곧 하나의 '이념으로써의 개인'을 만들어냈죠. 근대만큼 개인을 강조하고, 개인의 공간, 개인의 위치, 개인의 소유를 중요시하는 시기는 이전까지 없었으니까요.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근대와 개인의 관계를 생각해보는건 물론 재미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제 능력이...(웃음) 예찬님이 한번 해 주시는건 어떨까요 2009-06-30
192230
  

 

상병 고재형 
  아 저의 학교도 옮기려 준비중인데 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겠죠. 
새로짓는 학교에 예전에 모두가 함께 사용하던 언덕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덧붙여서, 가지로. 2009-07-03
003510
  

 

일병 박정민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9-07-07
103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