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월간 결산 
 병장 김지민 05-29 09:16 | HIT : 385 





73. 제인 오스틴 - 오만과 편견

 사랑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연애 소설'이다. 해피엔딩은 멋진 결혼의 성사다. 물론 결혼 이전에 사랑의 성립이 있겠지만, 구시대적인 사랑의 개념이 꿈틀대는 이 소설에서는 다만 정열적인 사랑보다는 제도적인 결혼에서의 성공이 그 우선일 뿐이다. 말하자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와 같은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결합되는 궁극의 '사랑'보다,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갖는 의의는 크다. 남 주인공인 다아시가 신분적으로 엄청난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무척 떨어지는 엘리자베스와 사랑하게 된다는 점. 그래서 현실과는 좀 동 떨어진 느낌이 있지만, 이것은 신시대를 향한 주제라기보다도, 다만 허영심의 극대화를 위한 길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뿐이다. 일테면, 신분을 초월한 열정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신분을 초월한 남성의 고백을 통해 독자의 희열을 극대화 시키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데렐라적인 이야기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게다가 이 오만과 편견은, 제목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과정을 그려줌으로 인해서 연애의 밀고당기기 과정을 세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 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그 싸가지물들의 오리지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4. 박민규 -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프로가 뭐길래. 우리는 왜 프렌차이즈 된 프로의식의 세계에서 경쟁을 강요당하며 살고 있는가. 지면 어때? 라고 묻는 이 책은 좀더 복잡하지 않고 쉬엄쉬엄 사는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야구를 했다고 '믿어지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그 표본이다. 
 그러나, 과하게 찔러들어간 점은, 이세상엔 엄연히 승리와 패는 존재한 다는 것이다. 굳이 프로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지면 기분 나쁘고 이기면 기분 좋은 것이 이세상의 잔인한 논리. 우리는 짐승으로 시작한 동물이기에 그러한 성질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세상만사 물욕 다 뿌리치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이세상이 한꺼번에 그렇게 탈바꿈이 되던가. 이놈 저놈 다같이 아마츄어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프로의 세계가 엄연히 있고 승패라는 개념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우리의 사투는 계속 될 것이다.
 만약 진다면, 삼미슈퍼 스타즈의 팬클럽을 자처하면 되겠지

75. 로얼드 달 - 맛

 천재다. 역시 이 사람은 천재다. 탁월한 이야기꾼. 내가 바란 것은 바로 이런거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야말로 '잘 쓰는 것'에 너무 귀를 기울이다 보니, 플롯의 측면에서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흥미를 끄는 요소를 개발해야 겠다는 욕심이 적어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천재적인 '맛'을 보며 다시한번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보았다

76. 김연수 - 사랑이라니 선영아

 비유는 참신하다. 그러나 따로 노는 것 같다. 어지러운 틈바구니에서 소설의 스토리와 연계된 비유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에 대해 처음부터 조금은 비호감이 되어버렸다. 터져나오는 비유들은 대부분 나에게 와서 소설로 흡수되지 못하고 제 자취를 뽐내기만 했다. 그래서 비유와 스토리는 분리가 되었다. 박민규와는 사뭇 대조되는 필치다.
 오히려 나는 소설 스토리나, 묘사보다도, 김연수가 사랑에 대해 제시하는 입장들,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매끄러움 등에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 면모의 장점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 실망도 컸던 소설

77. 호메로스 - 일리아스

 문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꼭 봐야한다는 호메로스를 이제서야 읽었다. 그나마 오디세이아는 읽지 못했으니 반만 읽은 셈이다. 본디 구전문학이라는 태생을 생각해보며 읽었더니, 얼마나 재미있게 이 이야기가 구전되었으랴 하는 상상에 더욱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각 부분부분에 묘사된 표현들이 옛 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섬세하였으며 실감났다. 전쟁신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는 새에 영상 한편 한편이 머리 속으로 흘러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 '트로이'와 비교하였을 때, 이 일리아스가 과연 옛날 작품이긴 한 모양이다. 플롯에서 역시 세련됨이 조금 떨어지고, 지나치게 신의 권한을 늘리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뭐어. 그거야 시대적 한계니까 그렇다 치고.

78. 천명관 - 고래

 소설 고래는, 엮어진 플롯플롯을 통해 치밀하게 생의 모습과 그 부조리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그래도 아직 남은 게 있음을, 인간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주는 소설이다. 그러나 교훈적 의미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다만 이것은 인생이 부조리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한가지의 면일 뿐이며,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다만 이런 면면의 플롯일 뿐이지, 사상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하고자 하는 말을 위해 글을 썼다기 보다도, 인생 자체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런 김지민의 감상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는지도 모른다. 이문세도 부르지 않았던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고. 그래 알 수 없는거다. 그래서 더욱 흥미 진진하고, 그래서 회의주의가 무릎을 꿇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소설 후반부에 가서 극장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인간의 헛된 추구가, 꼭 헛되지 만은 아니라는 것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그래도 그 것만으로도 소중하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임을 말하기 위해 
 고래 극장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고래 극장을 세워야 할 인생이 망망히 펼쳐져 있다. 

79. 유종호 - 문학이란 무엇인가

 승보형 고마워요. 교과서보다는 덜 딱딱하고, 쉽게 보기에는 조금 깊은 감이 있었던 교양서적. 아닌가 내가 너무 파고들어서 읽은건가. 그동안 문학 이론에 대해서 뜬구름 잡듯이 그냥 생각만 하고 있던 나의 머리를 질서정연하게 바로잡아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80. 폴 오스터 - 거대한 괴물

 어째 폴 오스터는 점점 더 실망이다. 이제 안 읽을란다. 재담꾼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글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81. 파울로 프레이리 - 페다고지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높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교육론으로서는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하지만 한계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 책은 교육관을 정립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교육을 '인간화'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에 동참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를 위하여 타파해야 할 대상을 인간 스스로 저들 내부에 두고 영원한 혁명을 논하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한 이상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이상이 무엇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이상주의 말이다.
 실질적으로 교사가 되기 이전에, 이러한 교육이론을 스스로 정립한 후에 교육에 들어가는 것이 교사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실천해야 하겠다.

82. 김영하 - 검은 꽃

 결말이 조금 맹탕이어서 아무래도 소설을 읽은 임팩트 자체가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플롯에 대한 느낌은 꽤나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우리 정서가 풀풀 넘쳐나는 캐릭터들이 멕시코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격이 대단하고, 또한 이들의 험란한 인생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 같지만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실망인 것은 사실이다.



 진짜 게을러졌다. (....)  


 병장 김지민 
 대부분이 독서 후기를 남긴 것들이라, 그런 면에선 좀 뿌듯하네요 
 근데 진짜 게을러졌구나.. (아...) 05-29   

 상병 조진 
 읽고나니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땡기는 군요. 좋은 책은 나눠보자! 05-29   

 병장 진규언 
 읽은 양을 기준으로 게으름을 판단하신다면, 철저한 자기반성의 결산이네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독서후기를 차곡차곡 쌓으셨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박민규님과 로알드달님의 소설을 접해보았는데,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공감백배 
" 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 라고 까지 말씀하시는걸 보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전공서적처럼 진지하게 치열하게 읽으신것 같아요. 결산 잘 보았습니다. 저도 얼른 '결산'이란걸 적어보아야 하는데.. 05-29   

 상병 박수영 
 아니 이게 게으르면 저는..... 

 읽은 게 뭐있더라..(한숨) 05-29   

 상병 이지훈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 교수님 수업 재수강이 생각나는구요. 흑.. 
 재수강 하려면 까마득 하네요. (한숨) 05-29   

 상병 조중래 
 저도 좀 분발해야 겠습니다. 05-29   

 병장 한유빈 
 김연수의 소설은 늘 그런 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읽다 읽다 대체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이놈의 망할놈의 문학적 재능은 이런 참신해 '보이는' 비유들의 의미조차 제대로 낚아채지 못하나 자책할때가 많아요. 뭐 그런 자책들이 하나 둘씩 쌓이다보면 결국 

 너 잘났다. 안 읽고 말란다. 하고 내팽겨치기 일쑤지요. 05-29   

 병장 허익준 
 유빈 
- 그건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에요. 저는 김훈씨가 왜 위대한지 아직도 못 느끼고 있거든요. 
 책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은 천태만상이죠. 책 한 권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감상을 하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졸렬한 책이 아닐까. 라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05-29   

 상병 김재영 
 사랑이라니 선영아, 를 권해드린 사람의 입장으로 굉장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6 월에 나올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을 보고 얘기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