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베스트-독서후기] 위험한 독서  
상병 정근영   2009-03-13 20:29:47, 조회: 378, 추천:1 

  1년전 쯤에 나에게로 찾아와 수줍은 인사를 건네던 당신은, 섬세하고 유약해보이는 겉모습과 반대로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으로 나의 모든 것을 훑어보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당신은 작은 도서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 나의 서재에 들어와 어린아이마냥 기뻐하며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녔지만,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던 당신의 눈은 마치 그 순간에 모든 책들을 머릿속에 담아두려는 듯이 전투적이고 정열적이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당신이 감추고 싶어하는 내면을 그 짧은 시간동안 낱낱이 꿰뚫어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 설마하니 찰나의 순간에 어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바라볼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할 리 없다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날 너무 만만하게 본 듯 하다. 아니면 독서치료사라는 듣도보도 못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쉬이 인정할 수 없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해체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그것을 솔직히 고백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유난을 떨며 나에게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었는지도.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당신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문 밖으로 내쳤겠지만, 내가 가정한 마지막의 경우는 꽤나 매력적이어서 한 번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그것이라면, 낱낱이 파헤쳐주마.

  당신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당신의 본질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평범하고 형편없어서 나를 실망시켰지만, 오히려 유리벽처럼 겹겹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막들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즐겁게 했다. 당신의 입에서 들은 당신의 일상은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공부를 잘했음은 물론이고, 정작 본인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쫓아다니는 여학생들도 많았으며, 웬만한 운동도 대부분 잘 하는 편에 속했고, 교우관계도 좋았다. 굳이 진위여부를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별 감흥이 없는 담담한 당신의 말투로 보아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당신은 프라이드가 높았고, 자존심도 강했으며, 한편으로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신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적당한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는 콧대높은 당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과는 반대로, 당신의 내부는 어둡고 우울했으며 자신에 대한 불신에 젖어있었다. 아쉬울 것 없는 당신이 왜 이런 면을 숨기고 있는가에 대한 원인까지 밝혀내는 것은 나에게도 요원한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을 포장하고 숨겨왔던 나머지, 당신마저도 스스로의 본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잔처럼, 당신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고 멋지게 보였지만, 한순간에 산산조각나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책을 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몰라서 나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당신은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장에서 이런저런 책을 살펴보던 당신의 모습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으니까. 역시 내 예상대로, 당신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의외로 진지하고 솔직한 대답을 했다. 당신은 일부 책을 험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인, 표지에 작가 소개가 나와있는 부분을 책갈피로 쓴다거나, 종이를 접어서 표시를 해놓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증오했다고 하는 편이 나으리라. 물론, 수십번을 읽어서 손떼가 묻은 책의 경우는 새 책보다 훨씬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무신경한 훼손(비록 본인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은 책을 더럽고 추해보이게 한다. 의외로 책을 대하는 태도에서 당신과 나의 공통점을 찾게 되자 나는 당신이 해왔던 독서가 궁금해졌다.

  아뿔싸, 당신은 이런 나의 기대를 다시 한 번 무너뜨렸다. 당신이 연기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다시 당신의 연기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책에 대해 저런 태도를 가질 수 없다는 나의 섣부른 확신때문에 나는 당신의 본질을 간과하고 말았다. 얄밉게도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겉모습만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것 같았다. 여태까지 나를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충분히 양호한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의 독서편력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고, 당신의 삶을 비추어보기도 어려울만큼 비좁았다. 나는 매우 실망했지만, 당신과 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하자 곧 당신의 새로운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다.

  당신은 요즘 갈증을 느낀다고 했다. 여태까지 어떤 것에도 열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당신이 무엇 때문에 책에 이렇게 몰입하게 되었느냐는 나의 물음에 당신은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지만, 대답을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상담사일 뿐,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형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신에 나는 당신이 무엇에 그렇게 자극을 받아 책에 탐닉하려 하는지 상상해보기로 했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당신은 어느 순간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를 해온 누군가를 만나 가늠할 수 없을만큼 깊은 내면과 날카로운 일본도처럼 잘 벼려진 그의 예리한 이성에 난생 처음 극도의 패배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평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에 별 관심이 없던 당신은, 아마도 당신이 여태까지 무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당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라는 행위에 특별히 우위를 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방구석에 처박혀 책이나 읽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고,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지. 당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오만하고 도도한 자신의 콧대를 무너뜨리자, 당신은 쓰디쓴 자조에 젖어 냉소를 머금었을 것이다. 그 냉소는 당신 자신마저도 믿지 못한 당신의 본모습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패배감의 발현인 동시에, 당신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당신은 충분히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자신이,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기계이며 어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 아닐런지. 그런 당신이 택할 수 있었던 건, 당신이 무가치하다 생각했던 독서에 미친 듯이 탐닉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으리라. 설령 그것이 당신을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든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당신은 그토록 책을 갈구하면서도 당신도 뭔지 모를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었다. 당신 자신으로부터 배척당한 자아를 찾기 위한 끝없는 여행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당신의 내면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와서 책을 빌리며 열정적으로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당신의 눈을 공허해졌다. 그런 당신의 눈을 볼 때마다 뭔지 모를 섬뜩함이 내 온 몸을 훑어나가곤 했다. 나는 ‘중독’이라는 말을 책에도 붙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책중독’이 있다면 필시 저런 모습일 거라고 확신했다. 오직 읽기 위해서 행해지는 독서. 책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무조건적인 수용. 나는 처음으로 독서가 위험한 것일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내가 겪어온 어떤 것보다도 압도적인 공포로 나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여러 개의 갈림길에서 어느 하나를 택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반대의 입장에 의해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를테면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이 서로 맞물리고 있으며, ‘개인’이 우선인가, ‘사회’가 우선인가 하는 문제도 또한 아직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하지 못한 난제라 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성선설과 성악설 또한 양측의 말을 들어보면 둘 다 그럴 듯 하지 않은가. 아마도 당신은 아직 완벽해지지 못한 인간으로서 저명한 누군가의 사상을 마치 자기의 생각인 양 뻔뻔스럽게 받아들이는 행위에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자신있게 ‘이건 이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보다 더한 가식과 위선이 어디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어떠한 가치관을 한 번 내면화하게 되면 그때부터의 모든 지적 활동은 그것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유명하고 권위있는 학자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지성인의 경우 더욱 심해진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갑자기 어떤 지적 충격으로 자신의 입장을 바꾸게 된다면, 그 동안 자신이 공들여 쌓아왔던 학식과 명예 등이 한순간에 곤두박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이에크가「노예의 길」에서 정부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며, 시장에 대한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면, 이어지는 그의 연구는 아마도 자신의 이론을 더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물론 실제로도 그러했다) 혹시 약간의 변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여태까지 자신이 주장해왔던 것에 크게 역행하지 않는 미미한 변화에 그치게 된다. 최대한의 객관으로 진정한 ‘앎’의 길 위에 서고 싶다고 자부하는 당신으로서는 이렇게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 논리라든가 경직되고 권위적인 인간의 심리가 역겨웠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 이전까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완벽한 진리와 절대적 객관에 도달하고 싶다는 당신의 욕구때문이 아니었을까. 오감에 의해 느껴지는 피상적인 모습으로는 결코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없으니까.

  다시 일주일만에 당신이 나에게 찾아왔다. 요즘에는 자신을 자극하는 책이 없다며, 어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며 투덜거린다. 웃기지도 않다. 여태까지 내가 권해준 책을 본 것은 두어권에 불과하고 언제나 자신이 끌리는 책만 읽어왔던 주제에 뻔뻔스럽게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가볍게 씹어 주고 읽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당신이 어떤 책을 더듬고 있는지 몰래 훔쳐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책을 고를 때의 당신의 표정은 너무 진지하다 못해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꽤 재밌거든.

  당신이 책을 한 권 꺼낸다.「위험한 독서」- 김경욱. 나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제목의 책에서 느껴지는 뜻밖의 기시감에 긴장한다. 무엇 때문인지, 당신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훑어본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읽고 있던 책에 집중한다. ‘독서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2인칭의 시점에서 서술해나간다. 나와 같은 직업이라니, 우연치고는 기묘하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끈질기게 읽어나간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시감은 더욱 강렬해진다. 데자뷰 현상이라고 했던가. 목이 마르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건지, 책에게 읽혀지는 것이 나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순간 책 속의 나와 지금 존재하는 내가 똑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득 오른쪽 하단의 제목에 눈이 간다. 위험한 독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눈 앞이 짙은 어둠 속에서 아득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신은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당신은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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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다. 위험한 독서라고? 그닥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지만, 저것만큼 나를 잘 설명하는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이유모를 유쾌함에 미소를 짓는다. 뜻밖에도 나의 심리를 낱낱이 꿰뚫고 있는 것 같아 힘겨웠지만, 결국은 그것뿐이다. 결국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나이고, 책은 단지 나에게 읽혀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나는 오늘도 위험한 독서에 탐닉한다.
절대적 진리와 완벽한 객관에 도달하기 위하여.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4-21 10:47) 

20.3.1.47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5:25 

 

병장 김동현 
16.34.2.14   책이 다양하니까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것 처럼 세상, 또는 궁에서의 모습에도 다양한 모습들이 있으니까 지루함을 느낄새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이에크의 예처럼, 익숙한 것만을 하려다보니까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건가 싶네요. 두 세 권 읽고서 질린다고 하는 모습에서 뜨끔합니다. 2009-03-14
07:56:50
 

 

병장 이우중 
16.32.7.127   서평에도 나와 있지만 누군가 김경욱의 글들을 두고 그를 가리켜 '진화하는 소설 기계의 탄생'이라고 말했죠. 허허. 
'장국영이 죽었다고?' 보다 이번 '위험한 독서'가 전 더 좋은 것 같아요.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이랑 마지막 수록작을 참 재밌게 읽었답니다. 2009-03-14
09:40:20
 

 

상병 김예찬 
48.9.2.115   이런 식의 독서 후기라니, 재밌네요. 살아가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겉모습만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듯한 사람은 저도 많이 만난 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저도 혼란스럽긴 하네요. 2009-03-14
12:54:31
 

 

병장 이지훈 
18.49.9.198   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는 좀 책에 대해 사디스트적인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사랑하기는 하는데 말이죠. 제가 여러번 많이 보고 사랑해주는(?) 책들은 그렇게 깨끗하거나, 손때만 묻어있는 경우는 많이 없거든요. 물론 일부러 찢어발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너무 완전한 책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요. 처음 산 책을 그냥 내버려두기 쉽지 않습니다. 음? 

이런 형식의 독서후기 신선하고 재밌어요. 우중님도 예전에 한 명의 팬이 되어 편지를 쓰셨었죠. 흥미롭지만 정체모를 당신, 김경욱. 저도 한 번 대화해봐야겠어요. 

가지로 보내버리고 싶지만, 일단은 참으렵니다. 지금 이 페이지에서 오롯이 빛나고 있는 하나의 독서후기를 없애버리고 싶진 않거든요. 3월 베스트로 보내버릴겁니다 흐흐 2009-03-14
16:39:23
 

 

병장 김민규 
22.34.42.32   좀 읽고 다시 리플 달게요. 사무실이 너무 어수선해서 주말인데 오자마자 일만 했어요. 이런. 2009-03-14
23:14:09
 

 

상병 정근영 
20.3.1.98   우중 / 왠지 우중씨의 댓글이 달릴 것 같긴 했는데, 역시나군요, 흐흐. 김경욱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어디서 들었나 했는데 '누가 커트코베인을 죽였는가'의 작가더군요. 책을 보긴 본 것 같은데,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나니, 원.. 
뒤의 서영채씨의 서평을 참 주의깊게 읽었는데, '작가의 탄생'을 논하는 부분이 있는데 꽤나 흥미롭더라구요. 발췌언으로 올려도 될 듯 싶기도 하고. 

예찬 / 이런 식의 독서후기라서, 저도 좀 혼란스러웠답니다. 책을 읽고 그냥 막 싸질렀는데, 다 쓰고 나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이 되어버렸어요. 위의 이야기는 반은 픽션이고, 반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속의 인물에 기대어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썼는데, 쓰고 보니 독서후기보다는 내글내생각이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고, 음. 2009-03-15
08:44:22
 

 

상병 정근영 
20.3.1.98   지훈 / 음찔, 사디스트라니. 저같은 경우는 책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이 있어서, 위에도 말했다시피 페이지를 접어놓는다거나 하는 행위가 너무 싫어요. 특히나 대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 뒤쪽의 작가소개란을 책갈피로 써서, 접히는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경우를 봤을 때는, 그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그래서 그런지, 밑줄 하나 긋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흐흐. 제가 아끼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새 것 같이 깨끗해서, 제가 봐도 책을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되더라구요, 허허 

민규 / 오옷, 민규형의 귀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흐엉. 저희쪽에 4월들도 대부분 집에 갈 준비들을 하고 있는데, 민규형은 얼마나 남았으려나, 음 2009-03-15
09:16:38
 

 

병장 김민규 
22.34.42.32   1. Narcissism - "마치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잔처럼, 당신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고 멋지게 보였지만, 한순간에 산산조각나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르시시즘을 굳이 번역하면 자아도취적 이기주의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자기애적 프라이드, 그러나 실상 스스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키마를 그 안에 품고있는 결핍의 정서를 제 안에서 발견하고 있어요. 이건 어차피 조만간에 글로 적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2. 완벽주의, 결벽증 - 고등학교 당시 어차피 한번 보고 말 문제지를 풀면서도 낙서 하나 하지 않고, 오로지 문제에 대한 단답형 답만 적고 넘어가던 끔찍스러울 정도의 '책 사랑', 그것이 과연 책에 대한 애정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내면의 어떤 금기였는지는 굳이 따져 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저는 책에 무언가 끄적인다는 행위를 혐오하고 두려워해왔습니다. 날개를 책갈피로 쓴다는 것은 표지를 울룩불룩하게 만드는 주범이요, 잘못 접은 첫장은 두고두고 책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죄악스런 일이었지요. 하물며 적는다니요. 노트라니, 상상하기 어렵죠. 

깨트렸습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줄을 긋고 감상을 적고 생각을 논하며 책과 대화하기 시작하니 - 그것도 재미있더군요. 물론 몇년 지나고 다시 읽으면 헛웃음을 내겠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차피 워낙 다시 읽지 못하는 체질인데, 현재의 저를 박제하는 차원에서라도 계속해볼겁니다. 

3.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당신의 눈은 공허해졌다. ... 오직 읽기 위해서 행해지는 독서. 책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무조건적인 수용. ... 당신은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니체를 읽고 있으면 초극해야 할 것 같고, 들뢰즈를 붙잡으면 생산해야 할 것 같은데 결국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이겠죠. 확실히, 많은 것을 읽고 접할수록 휘둘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아요. 이건 마치 '살바토레'처럼, '자기자신의 문장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다른 문장의 흩뿌려진 파편을 이용하고 있는 셈'(p.74, 장미의 이름) 이지요. 지식을 담는 통, 잡다한 파편들의 이어붙임 - 내가 생각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더구나 그놈의 지루한 관성이란, 어느 한 입장이 내킨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의 모든 지적 활동은 그것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죠. 정말로, 그야말로 줏대없음의 극치이기는 한데, 차라리 한 방향으로 강화시켜나간다면 어떤 높은 사유의 결과물이라도 얻어내지, 어줍잖게 여기저기 찝쩍대면 이도저도 아닌것이 양비와 냉소만 배워먹어서, 

그저 읽기 위한 독서, 단지 쓰기 위한 글쓰기, 구순충동을 채우기 위한 기관의 움직임같은 욕망하는 기계의 운동사이클을 깨트릴 궁극적인 방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4. 위험한 독서, 아직 안 읽었습니다. 
약간의 희망은 있군요. 

5. 가지로 2009-03-15
19:23:11
 

 

상병 정근영 
20.3.1.98   민규 / 헉, 두서없는 글에 이런 고품질의 댓글이라니. 절로 으억-하는 소리가 나오는군요. 나르시시즘이라. 딱 적당한 말인 것 같아요. 무기력한 자아도취는 스스로를 좀먹을 뿐이지요.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에 눈을 돌리는 일이란 요원한 일일 뿐이고, 결국에는 끝없는 내면으로의 침잠으로 이어지는. 그게 내적 성숙이라는 생산적인 행위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리 없지요, 허허 
많은 것을 읽고 접할수록 휘둘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됩니다. 더구나 그 많은 대안들 중 하나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양비와 냉소'만 머금고 있는 회의적 지식인에 그치고 말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저는 아직은 어떤 한 입장을 품을 생각이 들지는 않는군요. 본문에서 나온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그것이 제 것인양'하는 가식과 위선을 참을 수가 없어요. 조금 비겁하더라도,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많은 것을 거르고 거른 후, 제 스스로 어떤 '대안'을 만들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읽기 위한 독서, 쓰기 위한 글쓰기에 머무르지 않도록,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할 것 같군요. 양질의 댓글, 감사해요. 

그나저나, 이게 비록 [독서후기]라는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정작 '위험한 독서'라는 책이랑은 별로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민규형이라면, 다른 자아를 찾아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9-03-15
21:34:10
 

 

병장 김민규 
22.34.42.100   에이, 고품질이라니. 그야말로 '다른 문장의 흩뿌려진 파편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데, 계속되는 동어반복, 이어붙이고 접붙이며 포장하는 연금술, 그래도 어떡합니까. 그것의 저의 언어의 한계인 것을. 

저는 독서의 폭이 넓지도 깊지도 못해요. 여간해서 '이달의 화제작 BEST 30'은 잘 안읽기도 하고요. 이 쓸데없는 마이너리티적 정서 내지는 꽁한 반발심리때문에 책마을에서 회자되는 대부분의 책에 대해서 아는척 기웃, 하다 말고 있기는 하지만 

뭐 좀 깨트려 볼까 싶고, 더 지경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크게 불만은 없어요. 그저 고민거리를 던지고 사고의 촉발점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 문장력이나 사고전개의 개연성을 넓히는 측면에서의 독서라면 불충분한 동기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까닭에..... 더구나 정보획득의 차원에서는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소스가 너무도 많은 세상 아닙니까. 살아있는 공룡들이 돌아다니는데 도서관에 들어가 화석사진을 찾아봐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사실은 다 핑계고 변명이고, 정말 제가 최근에 품고 있는 몇가지 생각이 있는데, 그건 '절대반지, 프로도' 아래에 리플로 좀 더 남겼습니다. 조만간에 글로 쓰고자 애쓰겠지만 접속사정이 좀 여의치않아서(진득히 쓰고 있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리플이나 깨작이고 있는 상황. 

또한번 사춘기인가봐요. 자꾸만 울적하고 눈물이 납니다. 흐흐흐흐 2009-03-15
22:31:00
 

 

상병 정근영 
20.3.1.98   어머, 이달의 화제작 Best 30을 잘 안 읽는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남들 다 보는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끌리지도 않는 책을 냅다 집어들 정도로 제가 용기있지는 않아서요. 오히려 그런 책일수록 저는 막연한 반발감 같은게 생기더라구요. 시크릿이나, 공지영, 코엘료, 에쿠니 가오리 등에 잘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때문이구요. 더구나, '베스트셀러'일수록 기대심리만 증폭되어서 결국에는 실망감만 남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나저나, 그 글 기대하고 있을게요! 2009-03-15
23:03:11
 

 

병장 이동열 
22.36.32.21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데요- 
"절대적 진리와 완벽한 객관에 도달하기 위하여." 
저는 절대적 진리와 완벽한 객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절대적 진리'에 있어서는 절대적 진리라고 믿어왔던 자연과학적 법칙들도 자연과학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모습들을 봐왔던 터이고, '완벽한 객관'은 혹여 존재할지도 모르나 삶에 있어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한때 '객관'을 찾겠다는 생각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학후 어느 선배와의 대화에서 결국 인간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그 선배에게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릅니다.) 그 뒤로는 저의 주관을 강화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는 편입니다. 물론 저의 주관을 강화시키는데 급급해 타인의 주관을 경시하는 것에는 경계하고 있구요. 

저도 이번에 처음, 책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책에 대한 어떤 결벽이 있어 잘 빌려주지도 않았고, 접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형광색연필을 들고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그 효과는 두고 봐야겠습니다.(웃음) 2009-03-17
10:48:40
 

 

상병 정근영 
20.3.1.47   동열 / 흐흐, 왠지 이런 댓글이 달릴 것 같아서 좀 망설였었는데,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저의 한 측면을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쓴 글이에요. 제가 책을 읽는 데에는 많은 욕구가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이 글은 제목 그대로 '위험한 독서'에 포커스를 맞추고 쓴 글이기 때문에, 진정 위험해보인다면 제 의도가 성공적으로 전해졌다고 보면 되는 걸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