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호접몽 
 병장 임정우 02-21 10:49 | HIT : 198 



 제길,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두눈커풀은 아교라도 잔뜩 칠해진듯 쿨하게 이별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고된 노고끝에 살짝 벌리어진 눈가의 얇은 틈 사이로 선명한 햇살 한줄기가 고통스런 축복으로 선사된다. 외적으로 자극이 가해지자 내적인 고통 - 즉 두통은 잠시 사그러들고, 덕에 어제 일들이 심연위로 하나 둘 떠오른다. 아, 어제 난 친구들과 엄청나게 술을 퍼먹고 기억을 잃었었다. 집에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몸의 기억이란게 비상시에 힘을 발휘해줌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띄엄거리는 상념들의 인과관계를 경험의 실타래로 곱게 묶어 한쪽으로 제쳐주는 사이, 동공은 더이상 햇살을 고통이 아닌 인식의 출발점 정도로 이해할 심적 준비를 완료한 듯 하다. 그리하여 주변은 시야속으로 빨려들어오고 뇌로 인식되어져 주변 상황을 이해할수 있다. 난 내 방 침대가 아닌 쇼파에서 잠이 들었고 눈앞 테이블에는 맥주캔 두개와 땅콩 부스러기가 담겨있는 접시 따위가 있었다. 대체 그렇게나 먹고 다시금 술을 먹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당시에 나 -기억을 잃었던- 에게 불미스러운 존경심이라도 갖도록 부추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게도 술을 먹은 이유는 기억나질 않는다. 평소 나란 녀석은 술을 이렇게나 먹는다면 그야말로 엄청나게 괴로운 사정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다가 곧 포기했다. 대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크나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고통의 지배력이 생각의 자유를 성가시게 집적거려 방해했다. 
 식도는 무슨 산이라도 들이켰는지 -물론 그 반대겠지만- 무진장 쓰라렸고, 배꼽 부위는 마치 태풍우 몰아치는 동해바다의 한복판처럼 울렁거리기를 멈추질 않았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건 두통이었는데, 그건 마치 나의 관자놀이 부위에 스위치라도 달려있고, 그것을 누군가 성의없이 누르는듯, 그리하여 오래된 모니터가 키고 꺼지기를 반복하는듯 깜박이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또한 갈증이 욕망이 심하게 들었다. 난 쇼파에서 억지 몸을 일으켜 정수기에 대고 물을 따라 마셨다. 이상하리만치 천천히 나오는 물, 허나 마시는 순간은 꿈처럼 짧고, 모두 삼키고 나자 씁쓸한 기운이 속에서 올라 왔다. 다시 걸어 돌아와 쇼파에 앉아 리모콘의 전원을 눌러 TV를 틀었다. 
- 피융- 브라운관의 중심부에서 다채로운 색들이 별빛처럼 퍼지듯 화면이 켜졌다.

[[ 지금 명동거리에 사슴벌레의 형상을 한 괴물이 나타나 무차별로 인명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는 방송은 뉴스였는데 화면 위쪽에 속보라고 붉은 글자로 새겨진걸로 보니 꽤나 급하고 중대한 일인듯 보였다. 아나운서는 초록색 와이셔츠에 분홍색 슈트를 입었으며 머리칼은 사방으로 뻣쳐 있었다. 얼굴은 밋밋하여 코가 거의 없는 것 처럼 보였는데 목소리에는 잉잉거리는 콧소리가 진하게 스며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 현재까지 희생자는 스물세명으로 그 중 대치동에 사는 5살의 이모양등이 있으며,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명동경찰서는 근처 경찰서 및 소방서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주위에 모든 사람들을 대피시켰으며 현 대치중에 있습니다. 인근 군부대까지 동원하여 총알세례를 퍼부었으나 괴물에게는 효과가 거의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특별수사대는 괴물의 행동반경을 최소한으로 좁힌후에 정의의 용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입. 피융]]

 나는 TV를 꺼버렸다. 이거 이대로 있을수만은 없는 것이다. 갑자기 두통과 복통이 씻은듯이 사라지는것 같았다. 기운이 솟아나 한 걸음을 방으로 접근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군악대의 빵빠레와도 비슷한것 같았는데 장엄하다기보다는 나이든 장난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하는편이 어울리는것 같았다. 동시에 알록달록한 빛이 방안을 휘감아 돌다가 일반 형광등보다 약간의 붉은기운이 엿도는 하나의 빛으로 통일되어졌다.
 내 방은 꽤 큰 편이어서 더블침대가 들어차 있어도 그리 꽉차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쪽에는 여성스러운 블라우스가 고풍스럽게 걸리어 하늘거렸고 침대 중앙에는 환한 나신의 여인이 누워있었다. 여인은 적당한 키에 부드러운 피부톤, 매혹적 몸매를 가지고 있었으나 얼굴만큼은 지나치게 평범해서 차라리 못생긴편이 낫겠단 생각마져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변신을 시도하기 위해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녀와 하나가 되어 성스러운 에너지의 폭발을 야기시키는 행위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나의 분신은 이미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서로의 움직임은 최소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하기에 최대에 가까웠다 할만 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갑자기 껑충 뛰어버린듯한 시간동안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한손에는 초생달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검은색 도가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속이 투명한 -그 속에는 물이 채워진- 물총이라 할만한 물건이 쥐어져 있었다. 등에는 둥근 무언가가 들어있는 보자기가 매어져 있었는데, 그 속에 물건이야말로 최후의 무기임이 분명했다.
 머리칼은 영화속 남자 주인공처럼 적당히 길고 갈색 브릿지가 물든 웨이브가 보기좋게 굽이져 있었다. 상의는 해골이 그려진 티에 가죽자켓을 걸치고 있었고 바지는 평소 입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스키니진이 입혀져 있었는데, 보기만해도 입었다 벗었다 하기가 버겁다는걸 알수가 있었다. 아마 이 바지야말로 그 잔혹한 괴물에게 부담감을 선사하여 나의 승리에 한몫을 단단히 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패션적으로도 만족스럽다 느껴졌다.
 모든것은 완료되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인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대신 방 오른쪽 벽에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안쪽은 명동거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덧 문은 열렸고 나는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약간의 진동이 팔다리로 전해졌지만 찰싹 달라 붙은 바지를 입고있는 두 다리의 평형감각은 최상의 상태였다. 잠깐의 흔들림과 티격대는 사이에 나는 명동거리에 도착했다. 
 주변은 무서울정도로 고요했다. 인적은 완벽히 제거되어있었고, 오른편에 평소 즐겨가던 영빈관의 간판이 험상궂은 표정을 조심스레 지어보곤 하다가 다시금 체념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의 침묵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이 분명했다. 탕! 뒷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나의 다리는 -어쩌면 스키니진이- 스스로의 날렵함을 증명하듯 치타처럼 빠르게 목표지점을 향하며 쏜쌀같이 달려 갔다. 
 적은 꽤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특수부대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적에겐 총같은 화기류가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허나 이제는 내가 나타났다. TV 아나운서가 그토록 갈망하던 '정의의 용사' 가 말이다. 난 긴장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왼손의 물총을 세게 움켜 쥐었다. 헌데 자세히 보니 괴물의 모습이 조금 바뀐듯 하다. 신장의 반을 차지하던 머리통은 원래보다 반이하로 작아졌으며 몸통은 수십개의 조각이 일렬로 늘어져 있었으며 그 조각하나마다 한쌍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이제 머리통은 사람만했고 몸길이는 3m에 육박하는것처럼 보였다. 실제 조금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을정도로 확연한 변화가 있었지만, 난 그 녀석이 좀전의 사슴벌레괴물이라는데 전재산이라도 걸만한 확신이 들었다.
 난 숨을 죽이고 녀석의 배후로 조심스레 압박하여 들어갔다. 이미 특수부대는 모두 달아나고 없었기에 행동하기가 오히려 수월했다. 한걸음, 한걸음... 적이 나에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나는 검은 도를 힘껏 내리쳤다. 
 챙! 강렬한 금속음이 귓전을 때렸지만 그것이 별 효과를 주지 못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녀석은 그제서야 나의 등장을 알아채고 백여개의 다리를 움지락거리며 뒤로 돌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난 녀석의 배후쪽으로 달라붙으며 도를 후려쳤다. 헌데 별 효과는 없고 무겁기만 해서 저쪽 편으로 대강 내던지고 물총을 사용하기로 했다.
 쓔욱- 강한 물줄기가 녀석의 눈주위를 강타하자, 녀석은 정신을 못차려 휘쳥거리는 듯 보였다. 당황해 하는 벌레같은 녀석의 불안감이 잔향처럼 내 가슴에 파고들어 묘한 동정심마져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난 정의의 용사다. 때로는 인정사정 없는 잔인함 또한 필요한 것이다. 난 한치에 주저함 없이 물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벌레녀석은 쉬익-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다 물세례를 피하려고 몸을 휘익 내저었지만 결국 한두방을 맞았다. 물공격이라는 것이 유심히 살펴보니 데미지를 입히는것은 확실하나 결정타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체력은 점차 고갈되어갔다. 그때 어디선가 얇팍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자기에 담긴 최후의 무기를 사용하렴" 스키니진이 말한듯한 착각에 아래를 바라보자 목소리가 끊어졌다.
 난 최후의 무기를 쓸 결심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 든것은 사과 5개 였다. 아, 그런것이었나? 녀석의 천적은 사과였군. 풋, 어지간히도 사과를 싫어하는 녀석인가 보네. 나는 이빨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녀석은 사기가 충전하여 다시금 백수십개의 다리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괴기스런 주둥이론 쉬익-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녀석의 갑작스런 돌진에 당황했지만, 금새 침착을 되찾곤 사과를 집어 들어 던졌다. 
 하나, 둘, 셋, 사과는 던져졌다. 하지만 녀석은 기다란 몸을 휭휭 휘저어 움직이며 공격을 잘도 피했다. 아무래도 나의 던지기 실력이 부족한것 같았다. 네번째 사과마저 피하자 나는 새로운 묘수를 생각해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획기적인 기술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스키니진으로 인하여 노골적인 부담감을 선사하여 움직임을 묶는 기술이었다. 거기에 최선의 효과를 위하여 그리도 가혹하다는 개다리 춤을 추고 만다면 그 기술은 완성되리라. 두둥! 드디어 개다리춤은 시현되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던져버린 위대한 기술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한량없는 신비로움을 표현하여, 한낮 미물따위인 녀석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머뭇거릴수 밖에 었었고, 또한 정의의 용사는 그 순간을 놓칠수가 없는 법이니, 다섯번째, 그러니깐 마지막 사과는 -초록끼가 다분한 단단한 그것은- 녀석의 40번째쯤 되는 몸통에 '푹' 소리를 내며 깊게 박히고 말았다. 
 그러자 녀석은 듣는이로 하여금 꺼림칙함을 요구하는, 비참한 비명을 연달아 내질렀다. 그리곤 백수십여개의 다리를 정신없이 위아래로 휘젖더니, 금새 풀썩 소리를 내고는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드디어 쓰러뜨렸다. 역시 정의는 승리한다. 승리자가 정의를 챙기는 것이던, 정의로움이 승리를 이끌어내던, 그런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승리에 그 순간에는 오로지 승자의 뿌듯함과 오만한 마음가짐만이 계곡의 샘물처럼 무한정 솟아나올 따름이니 말이다.
 난 승자의 포획물인 오만한 미소를 만연에 잔뜩 풀어 헤친채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수많은 다리중 몇개를 꿈틀대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둔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허나 자만심의 팔다리에 꼼짝없이 묶여있는 사람의 행동처럼 거리낌없는 행동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지금에 나에게 조심성이라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의 명칭쯤으로나 생각되어 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불이 꺼지기 직전에 촛불이야말로 가장 크고 환하다고 했었나. 내가 녀석에 발치에 -녀석에게 발치란 수백개정도 존재한다지만- 도달했을때, 갑자기 녀석이 벌떡 앞쪽 몸통을 일으켜 뽀죡한 다리로 나의 가슴팍을 찌르고 말았다. 
" 으악!!" 엄청난 고통이 번개처럼 스쳐지나 갔다. 폐를 관통했는지 숨이 막히는 괴로움이 찾아와, 나도 모르게 허공을 향하여 손발을 휘져으며 일어나려 하는데, 등에 무언가가 걸리어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세상이 칡흙처럼 어둡게만 느껴졌고,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흐릿한 목소리가 점차 뚜렷해 진다.

" 얘야, 좀 괜찮니? 어쩌면 술을 그렇게나 마시니?"
" 하아, 하아, 하아..."

 다행이었다. 이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 목소리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걱정하여 건네셨던 말이었던 것이었다. 

" 정말 괜찮니?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식은땀을 이렇게나 흘리고.."
" 예.. 이젠 좀 괜찮아요. 정말 끔찍한 악몽을 꿨어요."

 정말이었다. 아직까지도 가슴이 답답한것 같았다. 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쇼파 아래에서 밖으로 기어 나왔다.

" 꿈에서.. 제가 인간이 되어있었어요. 쇼파위에서 자다 일어나는게 처음 장면이었는데.. 아! 아무리 꿈이라지만 제가 어떻게 그처럼 무례하게 쇼파위에서 잠이 들수가 있는걸까요? 게다가 제가.. 인간이 되어 우리 동족을 공격했어요. 그것도 물과 신선한 사과로 말이에요. 물은 그렇다쳐도 어떻게 사과같은 독물질로 공격할수가 있는건가요? 게다가 그 인간은, 아니 그 인간이 저였지만.. 하.. 하여간 저는 성스런 스키니 진을 입고는 열등한 개다리 춤까지 추고 말았어요. 고작 두개의 다리로 말이죠. 다행히도 마지막에 녀석에 가슴에 우측 3번 다리를 깊숙히 꼿아버리긴 했지만 말이에요. 근데 그게 또 제가 당해버린것처럼 되어버려서.. 아아, 아무리 꿈이라지만 어떻게 이리도 끔찍할수가 있는 걸까요. 어머니!"  


 상병 이지훈 
 오홋 특이하네요. 이갈리아의 딸 모티브가 느껴지기도 하고 영화 괴물이 생각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즘 트렌드인 스키니 진이 자꾸 눈에 띄네요. 02-21   

 상병 서동영 
 재밌네요, 특히나 마지막 부분은...기분이 묘해지네요 02-22   

 상병 조윤호 
 괴물의 사과공격은 
 카프카의 변신오마쥬? 02-22   

 병장 임정우 
 윤호 / 응. 딱 그래 보이지 않니? 02-22   

 상병 박재탁 
 정우 / 내가 스키니 진 입고 다니면 여자들이 졸졸 따라옴.. 샤방샤방 02-23   

 병장 임정우 
 저도 졸졸 따라가고 싶어요, (한대 쥐어 박으러..) 02-23